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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효림스님 , 사회: 혜안, 인례: 현수, 헌향: 자명행 , 헌다: 명조,묘행주, 발원문: 부회장 법광, 촬영 및 방송: 방송담당 대원3구, 안내팀, 음악: 마하보디 합창단, 지휘자, 반주자, 취재: 미디어팀 , 법회 방역 및 안내: 대원 3구, 법회팀, 보광당 좌석 배치: 청정팀, 법회 후 뒷정리: (송파 11, 12구, 대원 2구 법회), 법회보 제작 : 법회보 제작팀, 법회보 배부: 송파 17구 법회, 데스크 안내: 법당 안내팀, 새법우 안내: 새법우 교육팀, 떡 및 생수 보시 : 송파 2, 5, 8, 32구.
보현행자의 서원 : 회향분
법회 오는 길,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누군가가 알아주든, 그러하지 아니하든, 석촌 호숫가엔 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더 많은 꽃의 향연이 펼쳐질 터이니 이제 완연한 봄인가 합니다. 이 따사로운 봄의 기운이 어찌 밖에만 있겠습니까? 불광 일주문을 지나 법당 안 구석구석 정상화의 환희도 함께 찾아오리란 걸 우리 모두는 그 환희를 그려냅니다.
현관, 사무국 봉사하시는 보살님들의 모습에도 화사한 불광(佛光)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보광당 입구, 곳곳에 오늘도 수고 많으신 봉사자분들, 뗙, 생수를 나누어주시는 구 법회 보살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혜담 스님, 효림 스님께서 자리하시고, 인례 거사님의 집전으로 천수경 독경합니다. 그리고 헌다를 준비하시고 계신 보살님들.
인례 거사님의 타종, 헌향, 헌다를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혜안 거사님의 안내로 법회가 시작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먼 길을 왔습니다. 보광당에서 법회를 볼 수 있게 되었고, 법회 순서도 스크린에 보이고, 음향 시설도 사용하게 되고, 또 한 걸음 성큼, 빠른 시일 내에 불광사 모든 스님들이 동참하시어 여법하게 일요법회를 볼 수 있기를._()_
금주의 법문 : 효림 스님 (경원사 주지)
금주의 법어 : 여법하게 받아 가짐. 그 열세 번째 말씀
며칠, 날씨가 몹시 따뜻하더니 오늘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매화꽃이 활짝 피고 목련꽃도 피고 매우 실감나는 봄의 시작입니다.
오늘은 금강경 제13분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법(如法)이란 말은 스님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법(法)답게 하자는 뜻입니다.
옛날에 어느 젊은 스님이 “스님은 이마에 닉네임이 ‘개혁승려‘라고 붙어있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개혁을 해도 조계종은 끊임없이 타락하고, 추락하고 있으니 왜 이러합니까?“ 그 원인이 무엇이냐고 나를 찾아와서 묻습니다. 스님들이 여법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법답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법답지 아니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오늘은 거기에 대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우 리얼하게 말을 하려고 합니다.
진실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은, 그런 마음이 불편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노래: 바람의 노래)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네.‘ 노래 가사처럼, 부처님 가르침도 모든 중생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대개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결혼하여 살면서도 계산을 하고 따지곤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상대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나의 사랑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는 그런 사랑만 한다면 다툴 일이 없을 것인데 말이지요.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진정한 사랑을 할 때에도 여법하게 하여야 하고 여법하게 받아서 가져야한다는 뜻입니다. 원문을 읽기 전에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가령 여기 ‘임효림‘이 스님이다. 대한 불교조계종에서 출가를 하여 행자생활을 거쳐서 사미계를 받고 또 일정기간 수행을 거쳐서 비구계를 받고 수십 년을 도를 닦았으니까 대한 불교조계종에서 발급한 승려증(僧侶證)이 있고, 그러면 진짜 스님인가. 세상엔 정규과정을 거쳐서 증(證)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에서 진짜로 가짜가 많습니다. 증도 없이 행세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피해가 적어요. 제가 언제가 말했던 제가 젊은 시절 고속터미널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길에서 절을 하는 사람을 보았어요, 종단에서는 가짜승려라고 그렇게 못하도록 막는 대책반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행색도 꾀죄죄하여 다가가서 “내가 대신 절을 해주겠습니다.”하고 내가 그를 대신해서 2시간 정도 절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스님이 말하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스님이 절을 하니 돈을 더 많이 넣었다며 같이 동업하자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가짜지만 사기를 친다거나 그런 범법행위를 하지 않았잖아요. 다만 지나는 사람을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절을 해서 나는 거기에 감동하여 내 젊은 시절, 그를 대신해서 절을 해준 적도 있었지요, 이렇듯 진짜를 가장한 가짜들이 많아요.
우리가 사람이면 사람이지. 무슨 가짜가 있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이 제대로 사람 노릇을 못하면 여법한 사람이 아니면 그것은 모두 가짜사람입니다. 최근에 TV에도 나오고 세상이 발칵 뒤집힌 사건 사고의 하나인 어떤 사람이 ‘나는 신이다.’ 그래서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추악한 행위를 다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대한민국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이마에 ‘사이비’다 라고 했잖아요. 한문 글자로는 같을 사(似) 아닐 비(非)자를 써서 같은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왜 그런 사람들을 가짜, 사이비라고 하면서 비난을 합니까? 이것이 진짜 목사를 흉내 낸 가짜이기 때문이지요. 극악무도한 연쇄 살인범도 범죄자라 하지 사이비라고는 하지 않아요.
더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보다 요즘 그 비슷한 사람이 다 뜨는데 사람한테 똥을 먹이는 사람도 있고, 어느 여자 목사는 타작마당이라 하여 뺨을 때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TV에 나오더군요.
오늘 내가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적발하고자 함이 아니고, 타종교를 비난하고자 함도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런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가를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일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의 종교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면 우리 불교는 떳떳한가? 우리가 똥바가지를 뒤집어 쓴 사람도 구린내가 나지만, 손가락 끝에 똥을 조금 묻히고 있는 사람도 구린내가 납니다. 깨끗하려고 하면 손가락 끝도 똥을 묻히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래야 구린내가 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금강경을 이야기 하면서 이런 것을 빼 놓고 갈 수가 없습니다.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기적을 바라는 사람, 그리고 평범하고 보편적이고 타당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이비에 잘 빠져요. 여러분들도 내 마음속에 은연중에 남이 안 가지는 남 보다 더 값나가는 특별한 것을 가지고자 하는 심리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사이비에 잘 속고 잘 빠집니다.
또 사이비 교주들은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잘 파고 들어가요. 수행 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스님들 가운데에서도 자기만 특별한 비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면 약간 사이비 냄새가 풍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금강경에서도 보시를 하되 무주상 보시를 하고, 사랑을 할 때도 무주상 사랑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부처가 돼요.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라 하지 않습니까?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이날부터 성을 내지 않겠다, 화를 내지 않겠다는 그 수행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은 부처가 될 수 있어요.
대승불교는 그것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보시를 한다하더라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며 집착하는 마음 없이 보시를 행하는 사람은 부처님이 돼요. 이렇게 평범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심한 것 같지만 70년 대, 한국 기독교가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사기를 쳤습니다. 그것이 부흥운동 입니다. 수많은 신도들을 모아놓고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다느니, 눈 먼 봉사가 눈을 번쩍 떴다, 이런 사기를 친 거예요. 지금 오늘날까지도 그 여파로 대한민국의 큰 교회라 하고, 신도가 수만 명이 된다고 하는 교회들이 한결같이 그때 그 부흥회로 일어난 교회들입니다. 이것은 사찰의 스님이 기독교를 그렇게 비난할 수 있냐며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해도 그것은 사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뒷받침하는 의학으로 환자를 고쳐야지, 무슨 기적을 일으켜서 병을 고치겠습니까. 인류의 역사에는 인간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지,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징기스칸이 전쟁을 잘해서 유라시아 전체를 점령했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신통을 받고 기적을 일으켜서 전 대륙을 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군사들의 목숨을 빼앗아서 대 제국을 건설 했지요.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강물을 이룬 것은 잊어버리고 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큰 국토를 점령할 수 있나? 이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적을 강조하고 기적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불교를 따질 것 없이 모두 사이비입니다. 이 불광 법회에 오시는 여러분들은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기적이나 신비주의 믿지 마세요. ‘나는 신이다.’ ‘네가 신이면 나도 신이지’
불교는 심즉불(心卽佛)이요, 인즉불(人卽佛)이라고 ‘우리가 모두 바로 부처님이다’ 항상 입만 열면 말하잖아요. 너도 부처님이고, 나도 부처님이지. 나만 홀로 부처님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부처면 나도 부처라는 것은 여법한 것이고, 나만 신이고 너는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 이것이 바로 사이비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생사와 인과를 벗어나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래서 ‘생로병사‘라 나이 들어 늙으면 병들게 마련이고 언젠가는 죽기마련이라 그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불도수행‘이다. (노래: 개망초)
금강경 제13분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원문을 읽으며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爾時에 須菩提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當何名此經이며 我等이 云何奉持하리이고. 佛告須菩提하시되 是經이 名爲金剛般若波羅蜜이니 以是名字로 汝當奉持니다.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佛說般若波羅蜜이 卽非般若波羅蜜이요 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有所說法不라. 須菩提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如來無所說이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 是爲多不아. 須菩提言하되. 甚多다 世尊이시여. 須菩提야 諸微塵을 如來說非微塵이요 是名微塵이니다 如來說世界非世界요 是名世界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 見如來不요.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說三十二相이 卽是非相요 是名三十二相이니다.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恒河沙等身命으로 布施라도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其福이甚多니라.
경전에서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이 경의 이름이 무엇이며,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경의 이름은 금강 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蜜) 이니 이 이름으로 받들어 가지도록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어찌하여 그러하냐? 금강 반야바라밀은 곧 금강 반야바라밀이 아니니 그 이름이 금강 반야바라밀이니라. 하고 하십니다.
금강 반야바라밀이면 그냥 금강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부처님은 다시 금강 반야바라밀은 금강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금강 반야바라밀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금강 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금강경을 읽으면 좋다고 하니 경을 읽어서 병을 나으려고 한다거나, 신통한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런 사람들은 이런 대목에서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필요하지요.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하신 바가 없사옵니다.” “수보리야,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가는 먼지를 많다 하겠느냐?” “심히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이 모든 가는 먼지는 여래가 가는 먼지 아님을 말함이니 그 이름이 가는 먼지이며 여래가 설한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 이 이름이 세계니라.”
이 세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체계에 따라서 다양하게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수보리야 너의 뜻은 어떠하냐? 가히 32상으로써 여래를 보겠느냐?
이 말씀을 하기 위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32상 80종 호를 갖춘 그 모습으로 보겠느냐 하시니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32상으로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32상은 상이 아니옵고 그 이름이 32상이옵니다.“
저는 ‘송강호‘라는 영화배우를 좋아합니다. 내 생각에는 잘 생겨야지만 배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는 것은 연기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32상 80종 호를 갖추어서 부처님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찌하여 부처님인가? 부처님 같은 마음을 쓰시고 부처님 같은 행을 하시기 때문에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항하의 모래같은 신명으로 보시하여도 만약 다시 사람이 있어서 이 경 가운데서 내지 사구게만이라도 수지하여 남을 위하여 심히 설하면 그 복이 심히 많으니라.”
부처님께서 앞에서부터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것이 보시를 행하되 보시하는 물건이나, 마음이나, 또는 보시를 받는 사람에게나 집착하지 말라는 ‘무주상보시’를 말씀하고 계신 이것이, 여법수지분의 핵심입니다. 무주상보시를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한시(漢詩) 하나 가져왔습니다.
『君 我』
임효림 詩
隋時𤿎虛空 (수시비허공) [때에 따라서 허공에도 금이 간다.]
種種擾地土 (종종요지토) [때때로 땅이 흔들릴 때도 있다.]
君悲同我悲 (군비동아비) [그대 슬퍼할 때 나도 같이 슬퍼하고]
吾擾俱汝擾 (오요구여요) [내가 흔들릴 때 너도 같이 흔들려 주는가]
이것이 바로 자비인 것입니다.
불광에서는 수없이 제목에 대해서 들었을 수 있겠으나 설명하자면 제목인 금강 반야바라밀은, 우선, 바라밀은 도피안(到彼岸)으로,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넘어간다는 뜻. 즉, 번뇌 가득한 이 언덕에서 부처님의 세계인 저 언덕으로 반야(지혜)의 용선을 타고 건너간다는 뜻.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금강(金剛)입니다. 내가 깊이 연구한 적은 없지만 우리 소천 스님께서도 금강(金剛)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르지 못할 것이 없는 가장 강한 금강석으로 말씀하셨고 역시 광덕 스님께서도 다이아몬드로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사람들이 학문도 더 깊이 연구하면서 금강(金剛)을 하늘의 번개를 상징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왜 금강이 번개를 상징하는가? 금강을 다이아몬드를 상징하고 번개라 읽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금강경 같은 명석한 경전은 진리이고, 접착력이 강한 우리의 번뇌,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체계 안에서는 우리의 탐진치 삼독보다 접착력이 강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금강석만이 자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나, 금강경이야 말로 하늘의 번개가 한 번 칠 때, 큰 나무나 바위도 한 순간에 반으로 자르듯이 번뇌를 쫙 잘라낸다는 것을 상징하여 금강 반야바라밀이라 이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목에 대한 설명도 마쳤으니 노래 한 곡 더 듣는 것으로 법문을 마칩니다.(노래: 광덕스님)
법문 중간중간에 '바람의 노래' '개망초' '광덕 스님'등의 노래를 불러주고 계신 청년 불자 가수분들
♬ 찬탄곡 : 윤회 (박지성 작사, 이철혁 작곡) 마하보디 합창단 ♬
그리운 인연들도 어디론가 떠나가고 모두가 일체고액 괴로운 고통인 것을
명예와 부귀영화 이 또한 몽상이고요 재물과 이 육신도 풀잎의 이슬이라오
영원토록 변함없는 금강주의 마음을 꿰어라.
그리운 사람들도 어디론가 떠나가고 이 몸도 변함없이 있는지 찾아보아라
자연은 밤낮없이 돌고 또 돌며 중생도 밤낮없이 육도의 윤회 속에
집착하는 마음 쉬고 금강주의 마음을 꿰어라.
발원문 낭독 : 부회장 법광 거사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불광법회에서 튀르키예 지진피해에 자발적 모금된 성금을 단체에 전달 하였습니다. 불광 형제분들의 '무주상보시행'이었습니다.
이젠 보광당에서 법등모임을 하는 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법등들이 참석하여 불광 활성화가 이루어지길 바람합니다.
법회 준비를 위한 청정팀의 한치 오차도 없는 좌석 배치는 완전히 전문가적입니다. 늘~ 수고하시는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보광당 일요법회 후, 오늘도 변함없이 금강경 독송은 대웅전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각 화광사, 조계사, 동명사, 불광사에서 1인 시위 동참하시고 계신 불광 거사님, 보살님들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법회소식 올려주시는
마음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감사드립니다.
법회에서 놓친 법문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복습을 할수 있어서
넘 좋습니다. ~^^~
스님 한시의 '隋時𤿎虛空 (수시비허공)'에서
'금 갈 비' 한자가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라 그런지,
컴퓨터엔 입력되는데 휴대폰으로 보니 입력이 되지 않습니다.
'비'는 한자 '금 갈 𤿎' 입니다.
마음님 늘 여법하게 법회일지 작성하심을 감사 찬탄 올립니다 덕분에 복습 잘 하고 있습니다 _()_
법회 소식전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의 찬탄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