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절 단장(丹粧)
김수연
알아채지 못할 만큼
성숙한 그림자 깊었습니다
불타는 호기심 시야 가려
잎새들 사이 구멍 뚫린 하늘 타오르고
가슴 터질 듯이 울리던 것을 누가 알고 있었을까
하늘에 퍼져 가는 저녁놀 배경으로
높은 산봉우리에 걸리는 흰 삿갓구름
석양빛 내리덮고 뒤 쳐져서 밀려올 때
소리 없이 콜라주로 흔들리는 나뭇잎
그 광경은 그림이듯 빛깔을 달리 합니다
깊은 계절에 만나자는 안부
낙엽에 새긴 사연 읽는 것은
인생에 대해서 들어 줄 사람 기억하고 있을까
청춘의 가까이에 느끼던
가을은 많은 영혼과의 대화를 건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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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주(collage): 화면에 인쇄물이나 천, 쇠붙이, 나뭇조각, 모래, 나뭇잎 등 여러가지 물건을 붙여서 구성하는 회화 기법
2. 방과 밥상
김수연
아버지가 기거하시던 방은
네모난 밥상에 흰쌀밥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졌다
남자들과 머슴들이 생활하던 방에는
밥상이 두 개 놓여지고
고봉으로 올라 온 밥은 두 사람 몫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숟가락 싸움하는
밥상은 전쟁터 같이 어수선하고
어머니와 여자들은 두레상 한 가운데
큰 양푼 가득 보리가 더 많이 섞인 밥을
눈치껏 나눠 먹으며 소리가 없었다
개울 건너 산 중턱에 올라앉은
부모님 봉분 봄바람 휘돌고
흰쌀밥 같은 싸리꽃 하얗게 날려간다
3. 돋보기
김수연
그 어떤 날에
물밀 듯이 쓸려가는 세월 성급히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의 시간 끝났습니다
왜 나는 어머니를 떠 올릴 때마다
이토록 아픈 기억만 흐르는지
은비녀 꽃으신 뒷머리 흘러내리도록
윤기 나는 머리숱 솎아 내시던 모습이
어렸을 땐 몰랐어라
동그랗게 묶어 몇 번을 모으시면
방물장수 다녀가고
이젠 어디에도 흔한
모조 가발 다양하게 진열돼 있는데
영면(永眠)의 세월 뒤 돌아보는데
어느덧 내 나이도 눈앞이라
빚진 마음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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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약력
월간 [문학세계] 등단 (1995년)
한국문인협회, 세계문인협회, 광명문인협회 회원. 문학에스프리 자문위원. 수연꽃꽃이 중앙회 회장
초대문교부장관 안호상 박사의 특별공로상(1986년). 대한민국 사회교육문화상(1988년) 외 다수
시집 : 제5시집 [사랑을 리필하다] 외 제1~4시집.
저서 : [꽃꽃이 백과] 외 3권
프로필 사진은 작년 것을 그대로 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