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절현 伯牙絶絃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시조시인)
세모(歲暮) 맨 끄트머리날이었다. 부부동반 모임으로 화려한 한해를 송구영신하였다.
수필 동지와 예비시조인 셋이니 부인까지 여섯이 교외 마당 너른 집에 모여 한해를 배웅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란 고전에 나오는 거문고 대가 이야기를 닁큼 꺼냈다.
마침 淑川 강작가가 삼형제의 절절한 우의를 연시조로 낭송朗誦해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시고 난 뒤라 숙연하던 참이었다.
중국 춘추시대 백아라는 거문고 명수는 그의 연주를 잘 이해해 주는 종자기(鍾子期)라는 친구가 있었다.
백아(伯牙)가 높은 산을 주제로 연주를 하면 곁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종자기는 탄성을 질러 말했다.
ㅡ야, 마치 높이 치솟은 태산泰山 같구나!
ㅡ참으로 훌륭하도다,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와도 같구나!
이런 식이라 백아伯牙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거문고에 의착하는 기분을 종자기鍾子期는 정확하게 들어 판단해서 틀리는 법이 없었다. 어느날 백아와 종자기는 태산 깊숙이 들어간 일이 있었다. 도중에서 갑자기 큰 비를 만나 두 사람은 바위 밑에 은신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비는 그치지 않고 물에 씻겨 흐르는 토사 소리만 요란했다.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역시 거문고의 명수인 백아는 거문고를 집어 들고 서서히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임우지곡(霖雨之曲)
다음에는 붕산지곡(崩山之曲), 한 곡을 끝낼 때마다 여전히 종자기는 정확하게 그 곡의 취지를 척척 알아맞히고는 칭찬을 해 주었다.
백아는 감격의 눈물을 떠트리며 느닷없이 거문고를 내려놓더니 감탄하여 말했다.
ㅡ아아, 이건 굉장하구나, 자네의 듣는 귀는 정말 굉장하군, 자네 그 마음의 깊이는 내 맘 그대로 아닌가, 자네 앞에서는 거문고 소리를 속일 수가 없네
그러나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불행하게도 종자기는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일세의 명인으로 불리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용하던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 죽을 때까지 두번 다시 거문고를 손에 타지 않았다. 그것은 종자기라는 얻기 어려운 친구, 다시 말해서 자기 거문고 소리를 틀림없이 들어주는 친구를 잃은 비탄에서였음이 분명했다.
참된 예술가의 정신이라고 할만한 것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비단 예술의 세계에서만 아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친구를 믿고 남김없이 이해해 주는 참된 우인지기(友人知己)를 갖는다는 것은 무상의 행복이고,그런 친구를 잃는 것은 보상받을 수 없는 불행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인지기의 죽음을 슬퍼할 때 곧잘 사람들은 이 백아절현(伯牙絶絃)에 비유해 말하며 유감의 뜻을 표명하곤 한다.
진실로 친구와의 교정을 맺고 있는 우인지기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리 많을 수 없다. 마음이 통하는 지음 知音이라고도 하는 친구와의 우정이 요즘은 많이 희석되어 안타깝기만 하다. 친구 이름을 팔아 이익을 보고 속여 피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살면서 공자는 친구 셋을 두면 하늘과 땅을 얻은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나의 경우 아내를 언제나 세 명 중 꼽는다. 마음을 가득 부어주었다가 돌아오는 댓가는 오해와 사기로 그 실망은 무엇으로 감당이 안된다. 그런 후로 최근 절친한 지기가 진정 고프다. 마음을 주고 싶은 지기를 세모에 도원결의한 두형제를 그려보면 흐뭇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