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추억"
밴쿠버 문인협회 김유훈
지난해 10월, 소띠 생인 나는 환갑을 핑게로 아내와 함께 고국을 다녀왔다. 마침 한국에서 영어선생으로 봉사하는 아들과 그가 좋아하는 여자도 볼겸 생업을 잠시 뒤로하고 갑짜기 고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 도착후, 우리는 제주도에서의 이틀을 즐겁게 지냈다. 30년 전, 나는 신혼여행을 제주도가 아닌 설악산으로 갔기 때문에 그 곳은 오랫동안 아내에게 숙제로 남겨둔 곳이다. 그 제주도를 이번 기회에 갈 수 있어서 늦게나마 아내에게 진 빚을 갚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온 같은 교민들과의 만남도 인상적이였다.
우리는 서울에 도착한 후 호텔에 여정을 풀고 아들과 친지들을 만났다. 두 주간의 짧은 시간 동안 아내와 나는 쇼핑은 물론 여행도 하였다. 여행으로는 "청양에서 김치체험", "횡성의 청룡포" 그리고 "기차타고 춘천가기" 등 을 하였다. 이렇게 고국에서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밴쿠버에 돌아 온 후 한동안 내 마음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춘천에서의 일이였다.
춘천은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도시이며 더우기 의암댐이 생긴 후에 강물이 호수가 되어 아름다움을 지닌 천혜의 호반도시가 된 곳이다. 31년 전, 당시 스믈 두살의 아가씨와 함께 춘천에 기차타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기차안에서 청혼을하여 결혼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춘천이였다. 특히 군대 시절 소양강가에서 훈련을 받는 중에 우리는 군가로 "소양강 처녀"를 목이 터지도록 부른 생각이 떠올라 내 입에서 소양강 처녀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기차를 타고 춘천을 가는 동안 아내와 나는 연애 시절의 추억도 살아났고 또 나는 내 나이 다시 청년 시절 군인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군에서 휴가 나와 귀대하는 그 때의 심정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였다. 마침 기차가 강촌을 지나가는 데 어쩌면 곧 헌병들의 검문 검색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차창 너머로 흘러가는 경치가 지나간 37년의 세월이 파노라마 같이 흐르는 듯 하였다.
우리 일행은 춘천에 도착하여 관광 안내원의 인도로 뻐스에 올라 먼저 비운의 소설가 김유정 생가 방문을 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문화 해설을 듣고 점심으로 춘천 닭 갈비를 먹으로 식당으로가는 데 마침 그 곳이 내가 근무했던 부대 앞이였다. 그러나 군부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관광지로 변하였다. 허긴 40년 가까이 지난 세월 속에 그만큼이나 알아 볼 수 있는 것도 춘천이라 가능하다 생각되었다.
우리의 오후 일정은 소양댐 방문이였다. 소양강을 따라 댐으로 가는 길에 관광 안내원이 댐 건설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즉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정주영회장과의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와 당시의 사실들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데 그 순간 나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나는 안내원을 향해 손을 들고 "저 한 말씀 드려되 되나요?" 하였다. 그러자 안내원은 "아 ,네 , 하실 말씀이 계시다고요?" 하며 마이크를 내게 건너 주었다. 나는 그녀를 대신하여 마이크를 잡고 "저는 카나다 밴쿠버에서 온 교민 김유훈 입니다. 이렇게 소양강에서 댐을 보니 37년 전 제가 군대생활 하며 겪은 일이 떠올라 이렇게 앞에 섰습니다. 당시 댐을 건설하는라 저 옆의 산을 깍아내어 그 흙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완공이 가까이오자 산의 속살이 벌겋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준공식에는 대통령과 내외 귀빈들이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흉한 속살을 메꾸는 일을 우리 군이 하였습니다. 당시 우리 군인들은 그 산을 잔듸로 메우느라 몇 달이나 춘천 근처에서 잔듸를 수없이 떠서 날랐습니다. 나중에는 그 잔듸도 모자라 남의 묘앞의 떼까지 떠와도 메꿀 수 없어 할 수 없이 보리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북한의 군시력이 우리 남한보다 더 강력했습니다. 그런 북의 군대가 쳐 내려 올까봐 댐의 옆 산 꼭데기에 고사포 진지를 구축하느라 큰 돌을 등에 메고 산꼭데기 까지 오르느라 죽을 뻔 했습니다. 돌을 지고 올라가서 손에 도장 받고 내려와서 또 돌을 등에지고 올라 갔습니다. 37년 만에 이곳에 다시 와 보니 그때 일이 떠올라 여러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며 내가 말을 마치자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춘천 출신인 젊은 안내원이 "여러분, 바로 이 분이 과거 이렇게 고생하시며 만든 이 소양댐이며 이 분이 증인 이십니다.우리 모두 이 분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시다" 하며 말하자마자 그 뻐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나는 감사한다며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않았다. 그 때 나도 모르게 형형할 수 없는 벅찬 가슴에 얼굴이 붉혀졌다.
그러나 순간 나는 다른 생각이 떠 올랐다. 나의 군대생활은 그래도 휴전 이후 70년 대 평화시대에 하였지만, 6.25전쟁 때, 수 많은 조국의 젊은 이들이들은 물론 외국의 청년들까지 군인이 되어 그 많은 전투속에서 피를 흘려가며 지켜낸 우리 조국땅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니 나의 군대시절 고생은 비교초차 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100년전 조국이 일본의 손에 넘어가고 나라 빼앗긴 우리의 선조들은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희생하였던 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번영을 이루어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어린 피와 눈물의 댓가였음을 생각할 때 그들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되고 또 잊을 수 없다. 다시한번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앞에 머리숙여 경의를 표한다.
춘천에서의 예기치못한 일로 인해 내가 40년을 넘게 살아왔던 고국에서의 경험들이 내 기억속에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고 그 동안 외국에서 살아가느라 정말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에대한 고마움을 잊고 지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기차타고 춘천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내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