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883년 3월 13일 런던 시내를 걷는다
이 도시에서 내일 오후 2시 45분경 카를 마르크스가 서재 안락의자에 앉은채 임종자 없이 숨을 거둘것이다
혁명가인 그의 망명을 끝끝내 받아준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파괴하려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 제국이었다
그는 대영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집필한 빚을 그의 무덤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갚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안에 살면서 자본주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고 하였으되, 그거야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알기란 쉽지 않다. 사랑을 잃어버리고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 게 인간이니까.
나는 대학 89학번인데, 그 무렵 비로소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공식적으로 번역 출판됐다 이전에는 금서(禁書)였다
법학자인 아버지가, "이제야 우리 사회가 '자본론'도 서점에 깔리는구나. 별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금지해 놓으면 대단한 걸로
둔갑을 하지"라고 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것 역시 모든 것들에 해당된다. 가려졌을 때 매력적이고 가질 수 없을 때 강렬하다
마르크시즘은 오류가 많다. 한데 강한 이론은 완벽한 이론이 아니다. 분명한 오류가 수많은 변증들을 양산해 족보를 이어가는
이론이다. 강한 바이러스처럼. 마르크시즘이 딱 그렇다.
리처드 모킨스는 "범신론(汎神論)은 매력적으로 다듬어진 무신론이라고 했는데, 마르크시즘은 무신론과 경제적으로 변장한 사이비 기독교 이론이다. 대중은 자본론을 읽지 않는다. 다만 감염될 뿐이다
지식으로는 지동설을 믿지만 심정과 감각은 천동설에 친화적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천동설'이다
소련이 망했어도 마르크시즘이 영원한 이유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 오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제 묘비 하단에 새겨진 자신의 저 말을 실천했다. 그 비극적 결과와는 별개로.
이응준 시인,소설가
첫댓글 마르크스
한 때는 많이 섭렵 했지요
좋은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