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웬, 날벼락?(셍겐 조약, Schengen Agreement)
B부부가 인야를 찾아오기 전, 방문 날짜 등 사전 조율을 하던 중... 하루는 B의 처가 얘기 끝에,
"이 선생님, 스페인 체류 날짜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어왔다.
"예, 이번에는 6개월을 머물다 돌아갈 겁니다." 하고 인야는 선뜻 대답해 주었는데,
"선생님은 모르고 계신가 본데, 제가 알기로는......" 하면서, 한국의 한 상사(商社)와 관계되는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직원 한 사람에게서 최근에 '셍겐 조약(Schengen Agreement)'이 바뀌어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선생님도 한 번 자세히 알아보세요.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했고,
인야가 깜짝 놀라, 마드릳에 있는 한국 대사관까지 전화를 걸어 알아보게 되었는데...
인야는 충격 속에서 그 문제에 대처할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지금 내가 스페인에서 머무는 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느닷없이 그게 무슨 얘기냐구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나 역시도 당혹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사실, 그런 문제가 생겨... 정확한 사태 파악에 나선 것도 얼마 전인데요.
애초에 나는 6개월 체류할 예정으로 지난 3월 중순 스페인에 입국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입국하면 3개월 무비자이므로, 그 전처럼 그 사이에(3개월을 거의 다 채울 무렵) 어디 외국(이제는 유럽연합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잠깐 나갔다가... 여권에 도장만 찍고 바로 돌아와, 또 3개월 더 머물 생각이었던 거지요.
그런 게 상례고, 이미 나도 그러면서(그 전에 독일에 살 때도 그랬듯) 아무 이상 없이 지냈으니까요.
그러다가 B부부가 나를 방문하는 문제로 B의 처와 통화 중,
자기가 잘 아는 한국 회사 직원 하나도 곧 귀국해 3개월을 한국에서 보낸 뒤... 9월에나 다시 들어올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도 곧 스페인을 떠나야 한다는 얘기였는데, 하루이틀 있다가 돌아오는 게 아닌... 석 달 뒤에나 돌아와야 한다니......
나는 정말 뒤집어지는 줄 알았답니다.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라면, 내 계획이 다 뒤죽박죽이 되는 거니까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나름대로는 한 달간의 여유가 있던 시점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건데요.
어쨌거나 나는 갑자기 맥이 확 풀리면서, 내 스페인 체류 일정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상황과 맞닥뜨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B의 처가 잘 안다는 마드릳에 있는 한국 대사관 직원과 통화까지 하게 되었는데,
최근에 유럽연합(EU)에서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돼, 출입국 심사도 그 전보다 더 까다롭고 또 새롭게 바뀌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내가 (위에 밝힌 대로) 하려던 방법을 이용해서 또다시 입국하면 끝이었는데, 이젠 유럽연합이 아닌 곳에서 3개월을 머문 뒤에나 다시 돌아올 수 있다니......
그 말이, 사실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불복'이라는 말을 하는 걸로 보면, 공항에 입국할 때 운이 좋으면(공항 직원을 잘 만나면...) 그냥 도장 하나 받는 걸로 다시 3개월이 연장되기도 한다던데... 운이 나쁘면, 미국에서처럼 공항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니...
누구보다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던 나는(옛날 멕시코 시절에), 앞이 캄캄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리고 내가, 만약 이번에도 세 달을 계산하고 나왔더라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슬슬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었는데... 이번에는 여섯 달을 계산하고 나온 상태라, 나는 또다시 '다가올 세 달을 어딜 가서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요.
그러다 보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좍 풀리면서, 어떤 방법이 최선인가를 연구해야만 했고... 그마저 안 된다면, 비행기표 스케줄(귀국행)을 바꿔서라도... 한 달 안으로 스페인에서 떠나야 할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차피 유럽연합이 아닌 제3국으로 나가야 할 거라면? 미국? 멕시코? 칠레?...
오죽했으면 내가, 아메리카 대륙까지도 떠올려 보았겠습니까.
'이 세상 어디에 있다 한들 나는 내 일만 하면 될 것 아니던가? 더구나 스페인에서 지금 지내면서도 이들의 ‘인종 차별’적인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중이라... 그렇지 않은 나라는 어딜까?' 하는,
일단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보다는, 제3국으로 선회해 보려는(?) 쪽으로 생각을 모아 보기에 이른 겁니다.
근데, 이럴 때 나는 참 이상합니다.
웬만한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할 텐데... 나는 꼭 어딘가 다른 곳을 먼저 떠올리거든요?
아무튼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닌, 이제 스페인을 떠나...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 놓여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어디로 간다지요?
5 . 12
그렇게 글까지 써놓았지만, 인야는 당장 그 사실을 동네방네 다 까발릴 수는 없었다.
그러던 하루는 바르셀로나의 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문제를 털어놓았더니... 그는 대뜸,
"여기 스페인에서는 웬만해선 동양 사람을 검문하지 않으니, 그냥 세 달을 머물러 보세요. 별일 없을 테니......" 하더니, "요즘 스페인은 경제난이라, 검문할 여력도 없거든요? 그리고 설사 검문해서 '불법 체류자'로 잡아 가둔다 해도... 이틀이 고작이고, 그 뒤에는 풀어 줘야 하거든요?" 하고 제법 상세하게 스페인의 현 상황에 대한 얘기까지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이 선생님은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표도 있을 거잖아요? 문제가 생기면, 그걸 보여줘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걸요? 그러니, 조금 걱정이 되기야 하겠지만... 느긋하게 버텨 보세요. 석 달, 금방 가거든요?" 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인야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언이었다.
인야는 추호도 그 나라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도 그랬고, '독일'에서도... 단 하루, 불법적인 체류를 하지 않았던 사람인지라...
"나에겐 그건, 현실성 없는 얘기야......" 하고 말았다.
그런 뒤 B부부가 인야를 방문하고 돌아가고, 어느 정도 생각이 굳어진 다음에야... 인야는 인터넷 까페에 글을 올렸다.
어찌 생각해 보면 가장 현실적이고, 또 어찌 생각해 보면... 가장 황당무계한 일이기도 한데요,
내 제3국행은, 어쩌면 '모로코(Morocco)'가 될 것 같습니다.
모로코는 당연히 유럽에 속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아프리카), 스페인과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1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이라... 그만큼 현실적인 제3국이라는 겁니다.
가까운 모로코에 가서 3개월을 머물다 스페인에 다시 들어오는 게 가장 손쉽고, 커다란 동요(차이)도 없을 것이라서요.
더구나 지난번 '빌랴누에바...' 알베르게에 머물다 그곳에 대한 정보를 주고 떠났던 떠돌이 커플이 연결해 준 스페인 친구(집을 세놓는다던)에게서도 며칠 전에 답이 왔기에, 마음은 이미 그쪽(바르바떼(Barbate) 해변)에 어느 정도 가 있었던 상태라... 이곳 '꼬랄레스...'를 벗어난다면, 안달루시아 지방의 '까디스(Cádiz)' 쪽으로 가려던 생각과도 얼추 이어지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남아 있던 커다란 트라우마였습니다.
어쩌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2000년 마드릳 사건'을 떠올리면, 나는 그 나라에 가서는 안 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모로코 놈들에 의해 의식만 잃은 게 아닌, 당시 가지고 있던 모든 걸 탈탈 털렸던 끔찍하기까지 했던 사건.
어디 그뿐이었던가요?
스페인 내에서 여행을 하려다 보면, 어느 구석에서든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만 같던 음울한 표정의 모로코인들......
'나를 죽이려 했던, 그런 사람들의 본토인 모로코에 내가 간다고? 더구나 내 발로 찾아 간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만 한 피신처가 없는 겁니다.
스페인에서 가깝기만 한 게 아니고, 현지에 가서 잘만 버틴다면(?)... 물가도 스페인보다야 쌀 터라, 나에겐 나쁠 일 없고......
그러니, 겁은 나면서도(?)...
'모로코라고 다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겠고, 나만 조심한다면... 못 살 곳은 아닐 텐데, 한 번 가서, 부딪혀 봐?' 하는, 은근한 모험심(?)마저 생기는 나였습니다. 물론,
'내가 어디라 한들, 못 갈 사람인가? 더구나 이번에는 본격적인 내 글 작업을 한답시고 6개월을 계산하고 나왔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는 만용(?)도 작용을 했구요.
일단, 그런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고도 있었답니다.
'그렇다면, 가서... 어디에 머문다지?' 하는 생각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일단, 한 번 알아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뒤에 방문하는 산티아고에게 혹시 잘 아는 모로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고,
바르셀로나의 장에게는, 주변의 모로코 사람을 찾아 뭔가 나 같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정보라도 구해 달라는 얘기까지 이미 해 둔 상태였습니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모로코 현지에서 좋은 사람을 소개받고 싶었던 겁니다.
또 서울의 제자에게는 메일로, 서울에 있는 모로코 대사관에 입국 절차를 물어보라고 했더니...
'아무 문제 없다'는 답이 온 게 2~3일 전이라,
모로코로 가게 될 일이 점점 현실화돼가고 있는 중이기도 한데요,
나름대로 약간의 도움이 될 만한 요소도 생겨, 처음보다 조금 낫기는 한데... 현재로서는 확신할 수 없기에, 굳이 이 자리에서 뭐라 열거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안 좋은...) 무조건 낙담하지만은 말자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내 상황과 모험으로의 인생은 계속되어 가는 모양새입니다.
여기서 멈춰질 수는 없는 거니까요.
물론, 아직은 여전히... 그 어떤 성급한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마 모로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네요.
아, 내 앞날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그런 나도, 궁금하기만 합니다......
5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