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빠져 한동안 뜸했던 식도락 모임이 재개되었다. '매운 맛의 지존'을 보여주겠다며 내 손을 잡아 끈 친구는, 매운 맛에 강하지 못한 나를 걱정하면서도 그 메뉴를 포기하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낙지 볶음보다도, 불닭보다도 매운 맛이 강하다는 전설의 그 메뉴는 허탈하게도 떡볶이란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체 얼마나 맵길래-라는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
그렇게 걱정반 기대반, 친구를 따라 원조 매운맛을 보기 위해 신당으로 향했건만, 토요일 저녁 6시, 본점은 이미 문을 닫았다. 결국 명동에 위치한 체인점으로 가기로 했지만, 진짜 매운 맛은 본점에서만 맛볼 수 있다며 친구는 툴툴거렸다.
땡초를 넣어 만든 떡볶이 소스 때문에 '엽기적으로 맵다'고 해서 붙여진 '엽기 떡볶이'는 떡볶이라는 서민적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무려 만이천원이다. 거기에 매운 맛에 대비하기 위해 함께시킨 김밥과 쿨피스까지 하면, 떡볶이 값 치고는 상당한 편이 아닌가.
하지만 소세지와 어묵을 넣고 피자 치즈까지 얹어 나온 떡볶이의 양은 일단 상상 초월. 대접도 아니고, 이건 왠만한 양푼 크기다. 거기에 코를 찌르는 매운 향기. 첫인상이 만만치 않다.
소심한 마음에 어묵을 반 잘라 국물을 최대한 털어내고 입에 넣었다. 의외로 괜찮은데? 라며 남은 반조각을 입에 넣어 삼키자 그제서야 매운 맛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땡초 때문인가. 매운 맛이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가셨던 해물떡찜의 매운 맛과는 정 반대의 매운 맛이다. 늦게 오고 한참 가는 맛이랄까. 함께 나온 김밥과 쿨피스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신기한건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닦으면서도 계속 먹게된다는 점이다.
엽기 떡볶이. 매운 맛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신당에 위치한 본점이 더 맵다.) 먹고 나면 꼭 배탈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첫 도전자들은 휴일 전날 도전하는 게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