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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m.blog.naver.com/londone8/221679844873
영화는 밤 9시였다. 내가 사는 동네인 해크니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어정쩡하게 되어있는 구역이다.
한 10년전 쇼디치와 비슷한데, 쇼디치보다 더 외곽이라 상업구역보다 거주지역이 훨씬 많은 지역이다.
10년전의 이 동네는 정말 많은 칼부림과 갱으로 위험한 동네였고, 카운실 플랫 (저소득층을 위해 국가에서 저렴하게 제공되는 아파트단지) 과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곳이다.
쇼디치에서 밀려난 아티스트들과 젊은층들은 해크니지역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몰고 함께 이동했다. 힙하고 매력직인 전형적 젠트리피케이션의 동네지만, 여전히 칼부림이 나고, 크리에이티브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은근한 벽을 이루고 함께 사는 동네이고, 마약을 하거나 범죄를 저질렀거나 갈곳없는 사람들 대상으로 제공되는 숙소가 비싼 신축 플랫을 마주하고 있는 동네이다.
아무튼 동네얘기 그만하고. 젠트리피케이션과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의 젊은 부유층과 저소득에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엉겨 살아가는 이 동네 이야기는 다음번에 더 자세히 얘기해보고 싶다.
이 곳에 해크니 픽쳐하우스라는 체인 영화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친구들과 영화 Joker 떼관람을 하러 갔다. 우리는 팝콘과 드링크를 사서조금 늦게 상영관에 들어갔다.
내가 그룹 끄트머리에 앉았는데, 내 옆에 앉은 아빠와 아들로 보이는 영국인 부자가 앉아있었는데,
그게, 냄새가 냄새가 좀 그랬다.
영국의 허름한 펍에 가면 뭔가 술냄새도 아니요 냄새도 아니요 묘하게 뭔가에 찌든 냄새가 나는 곳들이 종종있는데, 이 아저씨에게서 딱 그 냄새가 났다. 물론 티안내고 나는 밖에서 둘렀던 머플러를 칭칭감아 코를 막았다.
아무튼 영화는 아무 문제없이 엄청 몰입해서 보았다.
중간 중간 의문점이 들기도 했지만, 거의 눈물나올듯이 보았다.
보고나서도 먹먹함과 헛헛함에 한참 말을 못했다.
영화 조커 자체에 대해서는 많은 리뷰들이 있고, 영화리뷰는 내 블로그 스토리에 적합하지 않으니 생략하고 기억에 남는 장면과 스토리를 정리해보고 싶다.
(전체 스토리에 관한 스포일러는 없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실분이면, 이후 글은 영화를 본 후 읽으시길 바래요)
영화의 대사들에서 내게 연상되는 장면들이 몇가지 있었는데, 아마 내가 한국에서 주류로 계속 살았으면 이정도의 슬픔을 공감하진 못했을것이다.
아, 그리고 제가 기록한 영문 스크립트가 틀렸을수도 있습니다. :)
천진난만하게 뒤돌아보면서 아이를 웃게 만드는 아서에게 애엄마가 하는말.
Will you stop bothering my kid? 우리애 좀 그냥 놔둘래요?
I wasn’t bothering him. I was…아니요, 전 그냥....
어쩌면 그가 조금 깨끗하지 못하고 뭔가 꺼림찍한 느낌으로 그렇게 말했을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아이가 분명 웃고 있었는데도 무례하게 저런 얘기를 하며 다그치는 애엄마도 버스에 탄 서민인 흑인이다.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 공격적이고 날이 선채로 대한다.
길거리에서 호객간판을 들고 일하는 아서를 쥐어패고 달아난 십대 깡패들이나, 같이 일하는 동료끼리나. 어찌 서로 공격적인 정도까지의 무례하게 대하는건 상류층이 아니라 같은 하류층, 또는 같은 소수의 사람들. 비슷한 부류들이다.
나도 런던에서 성인인 흑인무리 남자들이 모여있는 무리를 길에서 보면 불안하게 느낀다. 그래도 런던의 이스트런던에 5년 넘게 살아서인지, 괜히 피하는게 싫어 그들도 다른 런던사람들처럼 지나치려던 어느날 그 한무리에서 엄청난 무기를 들었거나. 잔혹한 짓을 하는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물론 선량한 흑인들이 95% 이상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무리를 보면 이제는 피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헷갈린다. 어떤 믿음을 가져야하나?
이런 사람들은 냄새가 나더라. 이런 사람들은 보통 이런 문제가 있다. 선입견으로 의심받는 이들이 겪는 세상에 분노하는 영화들이 많다. 어느정도 방어막을 쳐야할지 헷갈린다.
그러면 기본을 어긋나지 않는다면 될까?
Is it just me or is it getting crazier out there?
내가 문젠가요? 아님 세상이 점점 미쳐가는 건가요?
끼리끼리 공격하고, 파이를 더 차지하려 다투고, 만만하다고 무례하게 대하고.
런던에서 한국인을 등쳐먹는 사람은 다른 한국인이다. 런던에 살면서 쓰는 한국어 블로그로 비난하는 사람도 다른 한국인에 대해서다.
인터넷 세상으로 익명성이 더해지면서 이런 광적인 부분이 더해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You are the only one who has ever been nice to me.
넌 나를 나이스하게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야.
(한국말로 잘해줬다는 말 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라 나이스한 사람. 으로 표현하고 싶다)
나는 카르마를 믿는다. 비록 똑같이 해를 가하지 않더라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나이스 했던 사람과 악플을 달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I’ve got nothing left to lose. Nothing can hurt me anymore.
My life is nothing but a comedy.
( 머레이 쇼에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자, 머레이가 진짜냐고 왜 믿어줘야하냐고 다그칠때 )
난 이제 더이상 잃을게 없어. 이젠 아무것도 날 아프게 하지 못해. 내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저 코미디지.
세상의 바닥까지 가본사람의 처연함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기사를 읽고 뉴스를 듣고 스토리를 접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건 고작 그냥 바라만보고 소셜미디에어 글이나 글적대는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지
Comedy is subjective. Isn’t that what they say?
All of you, the system that knows so much you decide what’s right or wrong.
The same way that you decide what’s funny or not.
머레이가 니가 저지른 범죄는 웃을일이 아니라고 말하자,
코미디는 주관적인거야. 뭐 이게 다 너네들이 하는 말이잖아. 너희들이 너무 잘 아는 시스템으로 이건 맞다 틀리다를 판단하지.코미디도 똑같아. 니네가 정한 시스템에서 이건 웃기다 안웃기다 판단하잖아.
Everybody is awful these days. that’s enough to make anyone crazy.
계속되는 머레이쇼에서
요즘 세상은 모든 사람이 끔찍해. 그것만으로 누군가를 미치게 만들기 충분하지 (않아?).
연예인이 자살할때, 사람들은 약하다느니 등등.
그런데 그런 트리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있다. 이런 무례한 세상에서 다들 그 개인을 탓하는데, 사실 그 사회가 안미치고는, 그리고 미쳐서 죽음도 두렵지 않게 만든다.
you’re awful! Murray. Do you ever actually leave the studio?
당신도 끔찍해 머레이. 언제 이 방송국 밖을 나가본적있어?
(Live 인지 leave 인지 모르지만, 상황상 leave 인듯)
자기만의 세상에서 자기가 보는것만으로 세상을 그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영향력을 준답시고 떠들어댄다.
나에게 엄청난 기회를 주는것 같지만 세상에는 내 머리위에서 조정하고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
끔찍한 사람들이 많은데, 끔찍해보이지 않게 보여지는 세상인것 같다.
Everybody just yells and screams at each other!
Nobody’s civil anymore!
Nobody thinks what it’s like to be the other guy!
모두가 그저 서로에게 소리치고 고함지르지.
더이상 예의조차 없어. 아무도 그런 무례함이 상대방에게 어떤건지 생각을 안해!
'갑질'. '더이상 착하게 살지 않기로했다'
요즘들어 사회에 만연한 "무례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피로도가 쌓였다는 증거이고.
사람들은 (나를 비롯) 그저 포기하고 방관하거나, 누군가 지적이 되면 그 갑질만 가르켜 마녀사냥과 욕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슬프다. 나아지는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하나 미쳐도 이상하지 않을 사회가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조커의 탄생이 그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것이다. 그래서 더 슬픈것 같다.
What do you get when you cross a mentally ill loner with a society who abandons him and treats him like trash?
조커가 계속 말을 이어가자, 머레이는 그것으로 그의 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다그치자 아서가 말한다
니가 세상이 버린 Mentally 아픈 외톨이 만났을때, 그를 쓰레기처럼 대하면 어떻게 되는줄 알아?
(Mentally ill 이라는 표현을 조현병이나 정신병으로 표현하기 좀 불편하고, 머레이가 아닌 세상이 그를 쓰레기처럼 대한것 같지만 여튼 내가 이해한건 머레이도 그를 쓰레기처럼 대했으니)
범죄까지 연계해서 모든걸 생각하면 끝도 없으니 그런 대화는 제외하고싶다.
세상에 정신적으로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래도 주위의 도움으로, 내가 가진 돈으로, 내 힘으로 그런 상황을 이겨내고 해결할수있다.
그런데 만일 주변에 그런 도움도 없고, 재정도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우리 개개인이 내 힘든 상황을 해결하고 나서, 다른 개인을 돕는게 맞는걸까? 다른 개인에 대해서는 사회가 해결해주어야 할까?
내가 다른 개인을 돕지 못한다면, 최소한, 최소한 예의는 지키고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줘야 하는게 아닐까? 조커는 돈을 바란다고 하지 않았다.
그저 Hug 를 바랬다. 큰걸 바라는게 아니었다.
뭔가 큰걸 바랄줄 알고 지레겁먹고 손사래 치지 말고, 최소한 예의만 지켜주길 바라는 것.
조커가 사람들의 무례함속에 상처받고 고통받을때 엄청나게 이입된다. 비난의 화살을 누구에게 겨눌것인가. 무례함의 옮고 그름은 누가 판단하는가. 계단을 힘겹게 오르던 그의 뒷모습을 볼때의 아련한 연민에서, 춤추며 내려오는 모습에 정말 홀린듯봤는데도 섬뜩한건 나는 여전히 방관자의 자리에 있기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그 먹먹함과 헛헛함이 내속에 돌고도는건, 세상에 아서같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건 알지만, 한번도 그들입장에서 생각해본적도, 생각해보고싶지도 않아 한다는 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어릴때 부유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어려움없이 원하는것을 하면서 살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아마 블로그이웃분들도 대부분 그러실 것 같다.
나락의 끝에 서서 길바닥에 나앉게 될지모른다는 위협을 느껴본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 그런 걱정을 하면서 살지도 않는 내가 주인공 조커의 그러한 삶에 사는 듯한 절망감과 슬픔과 분노를 전해주었다.
최근에 내게 이런일이 있었다. 런던에서 신용카드를 발급했는데, 통장 셋업이 그 카드회사 잘못으로 잘못해놓고 연체가 되자 내게 10%넘는 연체료를 부과한것이다. 물론 이 일을 알게되면서 바로 처리를 했지만, 부당한 연체료는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아멕스 카드를 신청하면서, 내 신용의 문제때문에 아멕스카드가 안나온다는 것이다. 내게 부당하게 부과한 연체료를 어쩔수 없이 모두 납부했다. 납부 후 돌려받는 문제로 싸우는데 이것조차 너무 지쳐서 그냥 돈 버렸다고 생각하자. 하고 싸움을 포기하려 했다.
이런 불합리한 금전적인 상황이 발생했을때, 나는 그냥 돈버린셈치고 포기하고 말지. 그 부당함이 내 신용도를 좀먹게 만들지 않도록 하는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싸움을 싫어해서 그냥 돈버리고 만다. 런던에서 떼인 ? 돈이 생각보다 꽤 된다.... -_- 그리고 부당함을 바로잡는 프로세스를 거치기에는 너무 삶이 피곤해진다.
그런데 이런것들이 정말 방패도 없는 이민자들에게 발생한다면?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커를 본 그 극장에서 내 옆에 앉은 부자에게 노골적으로 내가 냄새난다는 티를 냈다면 어땠을까? 그 냄새는 내 머플러로 코를 가리면서 충분히 막을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부유층도 아니고 같은 해크니 동네에 살면서.
런던에서 일하면서, 자기업에 있어 소비자를 대할때 무례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가장 쉽게는, 우버를 이용할때. 그럴땐 우버기사의 자질을 삼아 레포팅을 하고싶지만 절대 그렇게 하지않는다. 그 기사에게는 우버가 밥줄일수도 있기때문이다. 그 우버기사가 내 분노와 불만으로 우버에서 짤린다고 해도, 그런 무례한 우버기사는 그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우버를 왠만하면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건 기사탓이라기 보단 우버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때문에.
어쩌면,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이방인", "주류가 아닌 소수" 의 삶을 살아가다보니, 이런것들을 깨닫게 된건 아닌가 한다. 다른 이민자나 유색인종을 볼때 "나는 당신들과 달라" 라는 그런 생각. 그렇게 살려고 더 노력하는 나.
런던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양극화와 계급의 간극이 더 명확해 보여진다. 그렇게 그 양극에 끼여있는 이민자로서의 런던에서 살아온 경험이 조금은 타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무튼 생각은 많지만 여기까지.
아, 이 영화에 이렇게 멋지고 적절한 음악이 없었다면, 이 조커는 지금의 조커가 될 수 없었을것 같다.
그의 댄스를 한번 더 보기위해서라도 또 보고싶은 영화. 음악이 캐릭터를 완성하는 그런 영화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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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린 연예인이 자살한 사건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타인이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한 생존 기반이 되는 속성이 있다. 스스로 자존감을 유지하고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세계이다. 직업의 속성 자체가 정신 건강상 위태로운 측면이 있는데, 거기에 악플 세례를 당하면서 안정적인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연예인뿐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들도 타인이 주는 상처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상적으로 주고 받는 말이나 sns 상의 글로 우리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쉽게 상처를 주고 받곤 한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오히려 상처 받은 개인 스스로가 그런 말들에 무던해지기를 종용당하기도 한다. 위로한답시고 하는 "그까짓 걸 가지고 뭘."이라든가 "얼른 털어버려."와 같은 말들은 개인이 받은 상처에 대해 무감각한 잔인한 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내적인 회복탄력성,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감정 수습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기에 앞서 서로가 좀 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예민해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 대해 '결국 먼지가 되고 말, 짧은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라는 연대 의식과 연민을 가지고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과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미쳐 돌아가는 듯 보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쉬워질 텐데.
악플로써 자기 우월감을 느낀 사람들, 불쌍하다.
죽은 그 아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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