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의 설법은 항상 중생에게 수순한다. 부모님을 만나면 사랑을 말하고 자식을 만나면 효도를 말한다. 바깥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안으로 망념을 없애어 사람에게 본래 있는 진심(本有眞心)을 회복하도록 하여야 불제자이니, 어찌 머리카락을 박박 깎았다고 참 불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선심에 의지하여 전력을 다해 불도를 배우고, 효(孝: 효도)와 제(第: 공경)를 잘 닦아 주위 사람들을 감화시키며, 재齋와 계戒를 잘 지켜서 살생하고 도둑질하는 사회분위기가 저절로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정토경론을 연구하면 괴로움을 벗어나는 요도를 알게 된다.
《안사전서安士全書》를 독송하면 과거세(淑世)의 사람됨이 좋은 계략인 줄 알아야 한다. 정토법문을 부모님에게 말해주고 정토법문으로 자식 및 모든 친척. 친구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바로 생사의 일이 크기 때문에 언제나 나의 금후 귀숙처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
그 밖에 달리 한 곳을 선택할 필요 없이 가정이 곧 도량이니, 부모와 형제 자식, 친구. 친척을 모두 진리의 권속(法眷)으로 삼을지라. 자신이 몸소 행하고 남을 교화하길 입으로 서로 권하고 몸으로 솔선수범하여 모두 함께 정토로 돌아가서 고苦의 수레바퀴를 다 벗어날지라. 이러면 당신은 머리 기른 고승이자 거사불자라고 말할 수 있다!
[보충] 인간관계의 덕목, 수직적 관계에서의 효도와 수평적 관계에서 공손
“그 사람 됨됨이가 효(효孝: 효도)를 행하고 제(悌: 공손)를 행하면서도 윗사람을 거스르길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고, 윗사람을 거스르길 좋아하지 않으면서 밖에서 소란을 일으키길 좋아하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군자는 근본을 힘쓴다. 근본이 서면 도道가 저절로 생겨난다.
그래서 효와 제는 인仁을 실천하는 본질일 것이다.”
ㅡ《논어》
정자程子가 말하길, “효제는 덕에 수순함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을 거스르길 좋아하지 않으니, 어찌 다시 그 이치를 거스리고 상도常道를 어지럽히는 일이 있겠는가?
덕은 근본이니, 근본이 서면 그 도가 더 확충해진다. 효와 제를 집에서 행한 이후에 인仁과 사랑이 중생에게 미친다. 이는 육친을 사랑하고서 백성에게 인仁을 실천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을 실천함은 효와 제를 근본으로 삼는다. 성性을 논한다면 인仁을 효와 제의 근본으로 삼는다. ”
어떤 이가 묻기를, “효와 제가 인의 근본이 된다고 하니, 이는 곧 효와 제를 통해 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정자가 대답하기를, “그럴 수 없다. 인은 실천함은 효와 제로부터 시작된다 말했을 뿐이다. 효와 제는 인의 한 행위일 뿐이니,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 말하면 옳지만, 「인의 근본」이라고 말하면 옳지 못하다. 대저 인은 성(性: 체)이요, 효와 제는 용用이다. 성중에서는 인의예지 사단뿐이니 어찌 효와 제라는 덕목이 달리 있겠는가.
그러나 인은 사랑을 주로 하고, 사랑은 혈연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래서 「효와 제란 인을 실천하는 본질일 것이다.」 말씀하셨다.”
[제 312칙] 집이 가난해서 음덕을 광대하게 쌓을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또한 나는 집이 늘 가난해서 음덕을 광대하게 쌓고 크게 보시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신구의 삼업이 모두 악하면 곧 더 없이 큰 악이고, 삼업이 모두 선하면 더 없이 큰 선인줄 알아야 한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이 인과를 믿지 않고, 죄와 복의 응보를 믿지 않으면 그대는 당당하고 침착하게, 선명하고 확실하게 《안사전서》 등의 말씀에 따라 그들을 위해 연설하여 처음에는 점차 인과를 믿게 되고, 이어서 불법을 깊게 믿게 하고, 마침내 서방극락에 왕생하여 생사를 요탈하도록 하여야 한다.
한 사람을 이와 같이 교화할 수 있으면 공덕이 무량무변하거늘 하물며 매우 많은 사람을 교화함이랴? 그러나 가장 먼저 몸소 흠이 없도록 행하여야 비로소 동인同人을 감화시킬 수 있다. 자기의 아내와 자식이 신수봉행信受奉行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도 저절로 서로 견주어 보며 선을 따라갈 수 있거늘 어찌 재산이 있어야 공덕이 많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역주】 불법은 심법이니, 안으로 배우고 안으로 닦아 마음의 경계를 상승시킴에 있어 재산은 필요 없다. 학불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보리심을 발하여야 한다.
심량이 진실하고 광대하면 비록 작은 선을 행할지라도 또한 공덕이 무량무변하다.
《지장보살본원경》에서 말씀하시길, “염부제의 중생은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일 때 업 아님이 없고, 죄 아님이 없다.” 하셨다. 진실로 보리심을 발한 자는 비록 보시를 크게 행할 수 없을지라도 염념마다 본유의 진심과 서로 맞으면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임에 선업이 아님이 없고 공덕 아님이 없다.
우익대사께서는 《불설사십이장경해佛說四十二章經解》에서 말씀하시길, “또 다시 앞의 8번은 모두 복전을 근거로 비교한 것이고, 이 제9번은 곧 (베푸는) 마음을 근거로 비교한 것이다. 일체 제법을 염하되 본래 염함이 없고, 머물되 본래 머묾이 없고, 닦음이 없고, 증득함이 없는 미묘한 이치를 요달하면 아래로 악인에서 위로 제불에 이르기까지 염함이 없고, 머묾이 없고, 닦음이 없고, 증득함이 없는 자가 아님이 없다.
그래서 사람이 위로 부처님께 공양함과 부처님이 굶주린 개에게 베풂은 그 공덕이 다름이 없다. 유마거사는 (영락을 나누어) 절반은 난승여래難勝如來에게 바치고, 절반은 가장 비천한 거지에게 베푸니, 그 복덕 또한 평등하다. 만약 복덕의 수승하고 하열한 차별을 모른다면 수덕修德의 귀중함을 드러낼 수 없고, 중생과 부처가 본래 절로 평등함을 요달하지 못하면 성덕性德의 연원을 깨달을 수 없다. 이는 항상 같되 항상 다르고, 항상 다르되 항상 같아 법계가 저절로 그러하여 미묘한 법문이라 말함이다.”
그래서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과 중생을 모두 미래 제불이라 보면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일 때, 손을 들고 발을 내딛을 때 공덕 아님이 없고, 곳곳마다 수승한 복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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