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요약 공부 했습니다
로마 네스크
9세기 초반 프랑크 왕국을 기점으로 건축에 대한 관심이 일고 중세의 건물은 구조적 안정이 가장 우선시 되었기에 건축양식이 쉽게 탄생하지 않았고 결국 로마가 발전시킨 안정적인 건축양식을 바탕으로 문화를 이식하면서 발전.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발전한 건축양식이 로마 네스크다.
두 개의 단어가 조합된 말로서,
로마(Roma)는 로마제국을 의미하고 네스크( Nesque)는 풍을 뜻한다
즉 로마네스크 양식은 로마제국이 멸망과 함께 중세의 시작부터 중세 중기에 발전한 건축양식이다.
중세는 팍스 로마노로 이룩했든 평화가 깨진 뒤 확실한 지배계급이 바로 서지 못하면서 시작되었다.
긴 혼돈의 시간을 거친 후 게르만족이 서유럽의 새로운 지배세력이 되었고,
정착을 통해 문명화를 시작하면서 사회시스템을 안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지배세력은 그들의 학문적 문화적 토양을 그리스 고전주의에 두었고,
정치적 토대는 로마 가톨릭과의 결탁을 통해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교회에 두었다.
급변하는 ,불안정한 시대적 상황은 이전 로마제국이 성취한 문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또안 교황과의 관계 지속을 위해 교회 성장의 믿바탕인 예배당신축이 지배세력의 의무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건축양식이 로마네스크다
로마네스크의 건축양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리스-로마 건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그리스 -로마 건축의 특징은 기둥, 페디먼트와 같은 건물 구성요소를 통해 알 수 있다.
질서의 의미를 가진 기둥의 경우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투스칸, 콤포지션 양식으로 구분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상부의 조각이 화려하게 발전했음을 알수 있다.
페디먼트는 건물의 입구에 있는 삼각형 프레임 부조를 말한다.
이 프레임 안에는 일반적으로 해당 건물의 용도와 의미에 따른 핵심 가치와 의미를 표상하는 조각이 새겨진다.
양식의 발전은교회 건축과 동일시 되었다. 로마 시대의ㅣ 예배당인 바실리카를 원형으로 그리스교의 예배의식에 대한 연구와 발전이 결함된 양식적 성취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단순했던 바실리카의 평면이 교회의 기능적 필요성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로마네스크 양식에는 비잔틴제국(동로마)의 비잔틴 양식이 일부 적용되었다.
특히 상부 돔의 구조와 내부 공간의 벽화기법을 이들로부터 받아들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성과 요새의 폐쇄적 성격, 단단한 벽이나 작은 창과 같은 물리적 구조, 그리스-로마 건축에서 받아들일 기동과 조각들을 통해 그 예술적 특성을 보여준다.
또한 비잔틴 제국의 건축양식과 기법을 받아들여 이전 시대와의 차별성을 확보했고 마지막으로 지배계급인 게르만족의 공예문화가 흡수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완성을 이루었다.
고딕
빛과 탑으로 성스러움을 높이다
고딕 양식은 로마네스크에 이어 등장했다.
두 양식은 다르지만 그리스토교의 주요한 건물인 수도원과 예베당 등의 제의 공간을 통해 발전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중세라는 동일한 시대에 속하는 공간을 통해 발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 사조의 이름과 시대의 이름이 동일시 되기도 하는데 중세시대와는 별개로 문화사와 예술사의 시각에서 고딕 양식이 유했든 시대를 고딕시대로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건축양식에서 대표적인 특징은 총 네 가지로,
첨탑, 뾰족한 아치, 플라잉 버트리스(벽을 받쳐주는 기둥),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회화나 조각에서도 로마네스크 미술의 경직성을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표현과 형식을 취하면서 고딕 시대의 미술을 완성했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그들의 이름을 찾은 시대.
인간의 가치를 발견한 시대.
유럽에게는 세계의 범위가 확장된 시대.
고전주의가 다시 중흥한 시대.
과학의 발견이 이뤄진 시대.
르네상스를 설명할 수 있는 여구들은 너무나 많다. 하나의 시대로 정의할 수 없는 시대만이 르네상스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유일안 말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요소와 상대적 관점이 공존했든 역사의 첫 시기가 바로 르테상스 시대다.
그래서 서양 역사의 시대구분을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라는 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르네상스는 근세의 문을 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근세의 시작은 중세를 벗어나는 데 영향을 준 우연한 사건과 필연적 사건들, 특정한 사회 환경이 결합하면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흑사병 창궐, 화약의 개발, 종교의 도덕적 퇴행 , 항해술의 발전, 고전주의의 획복, 과학의 발견, 종교의 개혁 등이 동시다발적 또는 순차적으로 일어나면서 사회구조의 변화를 야기했다.
구조의 변화는 정치와 국가의 변화, 즉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했고 문화와 예술사조의 변화를 동반했다.
특히 알프스 산맥과 지중해라는 지정학적인 경계는 이탈리아와 나머지 유럽사회를 유리시켰고, 독립적으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발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고대 로마의 유산을 가진 이탈리아에서는 중세의 고딕을 대체하는 르네상스 고전주의로의 전환은 예정되어 있던 수순과도 같았으며 이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많은 도시와 예술가, 조력가들이 향유했든 문화와 예술에 소외되어 있든 보통 사람들 까지 이 새대를 함께 살아갔다.
르네상의시대의 예술에 담긴 의미는 그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에 담긴 의미를 통해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를 찾는데 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는 서양 역사 최초로 주체적 인간에 대한 관심이 생긴 전환의 시대였음을 우리도 기억하자
피랜체의 르네상스 -르네상스의 황금기 로마-르네상스의 확산 베네치아- 이미 많은 작품소개로 나름 뇌로, 가슴으로로 전해졌으리라 생각 하면서,
이어서 찾아 온 매너리즘
원래 습관적 모방, 반복 등의 부정적 의미를 갖는 매너리즘이라는 말은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른 의미로 사용 되었다.
매너리즘의 어원이 되는 manner 는 이탈리아어 메니에라 maniera 에서 나온 단어로 영어로 매너리즘, 이탈리아어 마니에리스모로 표현하며 "양식주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사회적으로 그 보편성을 인정받고 체계화된 기성의 양식이 아닌 한 예술가에 의해 독립적인 개성이 드러나는 개인의 양식을 뜻한다. 기존의 고전주의의 가치인 기하학, 비례, 형식으로 완성된 조화를 깨는 반고전주의적 성향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해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욕망이 화려하게 수를 놓다
르네상스 이후 17세기에 이르자 유럽사회는 재편된 그리스도교의 질서, 즉 가톨릭과 신교의 세계를 맞이 한다.
여기서 가톨릭과 절대왕정, 두 문화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이것이 바로크 (Baeoque) 양식이다. 포르투칼의 barocco, 스페인어 barrueco를 어원으로 하는데 그 의미는 방송에서 많이 봤든 비뚤어진 진주로 알려진다
단어에 함축된 부정적 의미와 관점으로,
후대 학자들에 의해 처음 정의 되었다는데 이후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몇 역사학자들이 바로크를 르네상스와 구분되는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양식으로 정의하면서 서양예술사의 주류 흐름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다 생략하고 ,
바로크 양식의 특징 부터 살펴보면, 욕망과 비정형성, 두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
이는 특별한 사조나 형태의 특징이 아니고 그냥 보통명사다
욕망은 로마 카톨릭의 종교적 열망과 이를 선전하기 위한 욕망, 절대왕정의 독보적 권위를 표출하기 위한 욕망, 상업가문 또는 귀족들의 축적된 부를 표출하기 위한 욕망들이다.
그대로 바로크의 미학적 특징으로 발현된 것이었다
비정형은 말 그대로 정형에 반하는 특징이다
형태가 일정하지 않거나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규칙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고전주의 기둥이 갖는 안정성과 상징성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열과 구성의 다양성을 넘어 극단적으로 실현해 선보인다
로코코 - 신고전주의와 반동들-새로운 양식들은 생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