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제10화 산토리니의 유적 답사와 신이 만든 섬 미크노스 -2018년 10월 14일-
리조트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오늘은 산토리니의 유적을 찾아 아크로 티리로
갔다
아크로티리 유적은 산토리니 섬의 남쪽 끝 부분인 아크로티리에 있으며
선사시대의 아크로티리 박물관의 간판을 따라 가면 발굴 현장이 나오는데
기원전 15세기에 있었던 대분화로 폼페이 처럼 화산재에 덮힌 도시의 유적지
인데 1960년대 발굴된 것으로 청동기 시대 후기 미노아 도시가 화산암 지층
아래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토된 유품들은 미노아 문명의 유적으로 기원전 3000년 이전의 에게해 문화로써
서구문명의 기초가 되었다는 미노아 문명은
융성기에는 그리스 남단의 미케네에 문명까지 전해 져 미케네 문명을 발전 시켰고
그리스 문명 로마 문화 동양의 오리엔트 문화에 까지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크로티리가 전성기(BC17세기)였을 때 나온 수많은 전시물 중에 주목할만 한
것들로는 가구 석고 틀, 가정용품, 청동 배, 청동 도구등이 발굴되어 미노아
문명의 화려함을 볼 수 있다고 한다
1967년 그리스의 고고학자 마리나토스는 용암분출에 의해 30cm ~50cm 씩
쌓인 화산 제로 인하여 사라진 마을을 그 모습 그대로 발굴하였다고 한다
멋진 벽화로 장식된 가옥들과 창고들이 그대로 있었고 커다란 항아리와 그림이
그려진 토기들도 속속 출토되었으며
바위 위에 핀 붉은 백합 사이를 나는 제비를 그린 〈봄의 프레스코〉라는 벽화는
아무런 손상 없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서쪽의 집 이라 불리는 2층집에서 나온 가느다랗고 긴 두루말이 그림 같은
<배들 어부들> 그림 벽화도 나왔으며 권투하는 두 소년,푸른 원숭이 같은
그림들이 상당수 나왔으며 원본은 모두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 하고
있다고 한다
1974년 현장을 탐사하든 고고학자 마리나토스가 현장에서 굴러 떨너져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으며 이 유적지 안에 그의 무덤이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지금도 유적지 전체에 천막으로 덮어 하나씩 발굴하고 있었으며
벽화의 형태는 크노소스궁전의 벽화와 비슷하게 제작되어 있어 미노아 문명의
동일 문화로 충분히 추정할 수가 있었다
우린 페허만 남은 유적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세월의 흔적이 이 처럼 가까이
느껴지고 있었다
삶의 방식이나 생활하는 법규가 지금과도 차이가 없어 시공을 초월한 느낌을 받았다
3000년전의 유적지 현장은 오늘날 재개발을 위해 철거하는 현장을 보는 것
같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하는 것 같았다
페허 속에서도 역사학자들은 고대사람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생활 상을 하나씩 풀어가는 노력이 정말 값어치 있는 것 같았다
이 유적지에는 사람의 뼈와 보석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화산 폭발전에
모두가 대피하여 인명피해가 없는 것으로 추정 된디고 한다
박물관을 나와서 점심시간이 되어 바닷가 식당을 찾아 이동하였다
우린 카만 비치(Caman Baech)근처의 그리스 음식전문점 Almia에서 현지식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흑모래를 밟으며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이곳 흑모래사장에 비치 파라솔이 펼쳐지면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우리 바닷 물에 발을 담그거나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12시 30분에 페리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미크노스(Mtknos)섬에 도착하였다
미코노스 섬은 주위에 델타 동명의 금고가 있었고 신들의 고향인 델로스 섬이
있기 때문에 아테네에서 많은 선박이나 항공기가 직항으로 도착하는 곳이며
산토리니와 함께 유럽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우린 페리에서 도착하자 근차에 있는 Porto Myonos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미코노스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하얀 호텔에서 방을 배정 받고 바로 델로스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하여 해안가를 거닐며 페리장으로 이동하였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소낙비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페리부두로 가는 해안도로에는 백색의 순결함과 청색의 정직과 평화스러운 채색으로
가득 채워진 거리를 걸어 가면서 기념사진도 남기면서 시간에 맞추어 부두에 도착했다
페리 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미코노스 섬을 빠져나와 30여분을 달려가니
델로스 섬이 나왔다
남북으로 5KM 동서로 1.3KM밖에 안되는 적은 섬이지만 신들의 고향처럼
113M의 킨토스 산상에는 헤라 신전을 비롯해 상업의 신 헤메스 신전과
아폴론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 아테나 신전, 레토 신전등 많은 신전의 흔적이
있는 섬이러고 한다
델로스는 에게 해 지역의 미코노스 섬 주위에 있는 섬으로 고대의 종교와 정치와
상업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울퉁 불퉁한 돌괴 유적들만
남아 있으며 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BC 3000년 후반부터 사람들이 정착했고 BC 9~10세기에 이오니아인들은
아르테미스와 아폴로를 이곳에서 낳았다는 전설을 지닌 레토를 숭배했다.
델로스섬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신의 제왕 제우스가 다산의 여신 레토와 바람을
피워 임신을 시키자 제우스의 부인인 하늘의 여왕 헤라의 저주를 받아 레토가
임신한 몸으로 떠돌이 신세가 되었는데
에게셤 어디에도 그녀를 받아줄 곳이 없었는데 뜨다니는 섬 델로스가 장차 태여날
신들의 고향이 되겠다며 레토를 받아 주었고 제우스는 레토가 안전하게 해산할 수
있도록 델로스 섬을 현재 위치에 쇠사슬로 고정시켰다고 한다
이후 태양의신 아폴론과 미의 신 아르테미스가 이곳에서 탄생하여 신들의
고향이 되어 크게 발전한 고대 도시이다
일찍부터 섬은 번영하는 항구이며 제식(祭式) 중심지였고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다음인 BC 478년 아테네가 주도하는 가운데 이 섬에서 델로스 동맹이 결성되었다.
초기에는 동맹에 참여한 그리스의 모든 도시 국가들이 동일하게 투표권을 행사
했지만 점차 아테네가 장악하여 델로스 동맹의 여러 도시는 거의 대부분 아테네의
속국이 되었는데 이는 그리스의 통치자 페리클레스의 전성기 시대였다
기원전 454년에는 동맹의 본부와 금고를 아테네로 옮기고 재정도 파르테논
신전을 짓기 위하여 마음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431년 아테네의 전형에 반발한 델로스 동맹 국가들이 스파르타와
새로운 동맹을 맺고 아테네를 공격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27년 동안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 끝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패망하였으며
이 전쟁은 아테네라는 패권 국가의 몰락과 동시에 고대 그리스 세계 문명의
쇠망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BC 166년부터 로마가 지배 시에는 자유항이 되었고 AD 1세기경에는 무역항로가
바뛰면서 신들의 도시로 전락하다가 페허가 되었으며 중세시대에 베네치아인과
투르크인이 건축 자재로 쓰기 위해 석재를 떼어내어 거의 훼손되었다고 한다
우린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적지의 원형극장 한 가운데서 선 교수님의
자작시인 신들의 고향을 아름다움 목소리 가진 회원이 낭송하는 추억의 시간
도 가졌다
킨토스 산에 있는 신전들과 극장이 있는 서쪽 신전이 있는 신성한 구역을
지나 레토가 아폴론 형제를 낳았다는 연못을 찾아갔다
신성한 호수 지역으로 가는 길은 폭이 13M나 되는 성로(聖路)가 시작되고
BC 7세기경 낙소스(Naxos)인들이 헌정한 대리석 낙소스 사자상들이 나열해
있으며 9기에서 최대 19기가 설치되었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레토가 호숫가 종류나무 밑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쌍둥이를 낳았는데 이후 이 자리에 월계수 나무와 야자나무가 생겨 났다고 한다
호수의 물이 오염되어 1925년에 물을 뼈 버리고 공터로 남아 있고 야자나무
한거루가 심어져 있었다
이곳 델로스에서 발굴된 유적들을 보관하고 있는 델로스 박물관에는
디오니소스 집의 거실 비닥에는 표범을 탄 디오니 소스의 모습이 모자이크
되어 있었다고 하며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달이 비칠때 활을 들고 나타나면 모든 동물들과 초목들은
춤을 춘다고 하는데 사슴을 타고 나타나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석양을 안고 델로스 섬을 출발하여 미코노스 페리 부두에 도착하였으며
부둣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상괘한 바닷 바람을 맞으며 해변가를
거닐며 호텔로 돌아와 편안한 휴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