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삶의 열매
잠언 12:26~28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잠언 12장의 마지막 부분을 오늘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의로운 삶의 열매가 어떠한 것이며, 악한 삶의 열매가 어떠한 것인가를 대조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26절 말씀에,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라고 하였습니다.‘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규례를 즐겨 준행하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이웃과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 구절은 난해 구절입니다. 여기서 ‘이웃’이라고 하는 단어가 ‘레아’인데 그 의미가 ‘절친한 친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레아’는 ‘악, 재앙’이라는 또 다른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인도자가 된다’라는 단어가 ‘투르’인데, 이 단어가 ‘정탐하다, 자세히 조사하다’라는 의미가 있고, ‘조심한다’라는 의미가 있고, ‘인도한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혹은 이 단어를 다른 단어에서 나온 변형어로 보고, ‘탁월하다’라는 단어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 흠정역 KJV은 “의인은 그 이웃보다 탁월하다”라고 해석합니다.
NIV는 “의인은 친구를 사귈 때 조심하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혹은 공동번역 성경은 “착한 사람은(의인은) 재난에서 벗어난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상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개역성경, 개역개정판에서 번역한 대로, “의인은 그 이웃(친구)의 인도자가 된다”라는 번역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후반부 구절과 대조가 잘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며 이웃을 멸시하는 자입니다. 그는 교만하고 거짓과 술수를 거리낌없이 사용하면서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자입니다. 그는 “자기를 미혹한다”고 하였습니다. 원문에 보면, ‘자기를’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복수접미사를 받았기 때문에, 악인들을 받는 것으로 해석했지만, ‘이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이웃들을 미혹하느니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게 보입니다. NIV나 KJV 같은 경우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혹한다’라는 말은 ‘타아’라는 단어인데, 집을 떠난 하갈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거나 술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가리킬 때 쓰입니다.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그릇된 길을 걸어갈 때 쓰입니다. 특히 이사야서 53장 6절 말씀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는 문장에서, ‘그릇 행하다’라는 단어가 본문의 ‘미혹하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그 악한 행실을 통하여 이웃과 친구들을 방황하게 하고 비틀거리게 만들고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시켜 구부러진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해석하면, 의인은 그 이웃과 친구들을 잘 인도합니다. 특별히, ‘인도한다’는 이 단어는 욥기 39장 8절에 보면,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고 한 말씀에서, ‘두루 다닌다’는 말로 쓰였듯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와 같은 생명이 충만한 목초지로 인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영원한 생명으로 충만한 신앙의 길과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길로 이웃과 친한 친구들을 조심스럽게 탐색하여 앞서서 잘 인도해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한 자들은 자기의 이웃과 친구들을 멸망의 길, 구부러진 길, 망하고 쇠약한 길, 팍팍하고 뜨거운 광야 길로 인도하여 주리고 목마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인의 길로 행하여 우리 자신의 길도 조심히 잘 가야하지만, 나아가 우리 이웃과 친구들을 생명 길, 복된 길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악한 자의 미혹이 늘 있으니 이를 잘 분별하여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NIV 번역처럼, 친구를 조심하여 잘 가려 사귀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이 만남의 축복을 받아서 평생에 의인들을 때를 따라 잘 만나서 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함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반면에 악인들은 잘 분별하여 그들을 멀리할 수 있는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7절의 잠언은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게으른 사냥꾼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사냥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냥하는 짐승들, 토끼, 노루, 산양, 산 비둘기 등을 잡으려면, 사냥꾼은 올무와 그물, 갈고리, 화살, 함정 파는 것 등을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세심함과 조심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부지런하게 사냥에 나서야 짐승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준비성도 없고, 세심함과 인내심과 부지러함이 없으면 산과 들에 짐승이 많아도 결코 잡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가족들은 먹거리가 없어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사람은 사냥에서 늘 성공하게 되고 가족들이 먹거리가 기름지고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단 사냥만이 아니라 농사나 장사나 모든 직업에서 다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함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잠언의 후반부에 이르기를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번역은 본문을 잘 살린 것인데, “존귀한 사람의 재산은 부지런함이라”는 것입니다. 부지런함이야말로 진짜 재산이요 모든 부와 귀가 부지런함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다 잃을 수 있습니다.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사람은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생을 살다보면 경제적인 점에서 흥할 때도 있고 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사람은 반드시 재기합니다.
현대 재벌 창시자 고 정 주영 회장님과 일제의 민족 사업자요 교육자이신 남강 이승훈 선생의 일화가 그러한 예입니다. 정주영 회장님이 젊었을 때 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였는데 화재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폭삭 망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업은 자신만의 재산이 아니라 자산 대부분이 인근에 돈이 많은 한 영감님의 빚으로 일군 것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전혀 낙심하지 않고 당당히 영감님에게 저간의 사정 얘기를 하고 빌린 만큼의 돈을 추가로 대부 요청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영감님은 정주영 회장이 가까이 쌀 장사를 할 때 보여주었던 근면함과 성실함을 알기에 두말없이 잃은 만큼의 돈을 빌려 주었던 것입니다. 그 일로 다시 재기하였고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성공한 후에 정주영 회장님이 그 영감님에게 크게 갚아주었을 것입니다. 근면 성실한 사람은 다시 일어납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도 젊은 시절에 유기 사업을 하면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청일 전쟁이 일어나 도망가던 청나라 군대가 사업장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갔습니다. 그 일로 장사가 쫄딱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훈 선생님은 자기에게 막대한 사업 자금을 대어준 평북 지역의 대부업 영감님을 찾아갑니다. 달도 안 비치는 저녁 싸리문을 밀치고 이승훈 청년이 들어서서 대청마루에 넙죽 엎드려 인사드리고는 도포자락에서 꼬질꼬질한 장부책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감님이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승훈 청년은 영감님께 갚을 빚의 목록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간 지불을 미뤄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영감님이 깜짝 놀랍니다. 당시에 돈을 빌려갔던 대부분 빚쟁이들이 전란통에 다 도망가고 얼굴 한번 나타나지 않는데, 이승훈 선생님은 전혀 달랐던 점에서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영감님은 장부책을 받아 찢어버리곤 호롱불에 붙여 태워버렸습니다. 놀라는 이승훈 선생님에게 그 영감님은 그 동안 밀린 빚은 탕감하고 새로운 자본을 그에게 넉넉히 대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승훈 선생님은 그 돈으로 결국 팔도를 호령하는 대상인으로 성공하여 은공에 보답하였습니다 또한 일제 때 민족을 위하여 독립운동과 교육 사업에 헌신하는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시련이 있을지라도 실패는 없습니다. 도중에 실패를 겪을 수 있으나, 부지런함의 근본 재산은 결코 부도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함이야말로 가장 큰 재산입니다. 우리 모두 자기의 일에 충성하고 늘 부지런한 삶을 살아갑시다.
마지막으로 28절에,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앞에 나온 모든 말씀들의 작은 결론입니다. ‘공의로운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교훈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길은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이 땅에서 복을 받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생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 길은 수많은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갔던 길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스라엘의 복된 성도들이 걸어갔던 길이요 신약의 성도들이 걸어갔던 길입니다. 이 길은 영원한 참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그 길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이 사망은 영원한 멸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한평생 이 공의의 길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꾸준히 이 길을 걸어갑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즐겨 순종하고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계속합시다. 반드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종국에는 함께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과 우리 교우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영원한 영광 중에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귀한 지혜의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기고 매일 순종과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