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5곳 정도의 태권도장 사범들이 아이들 픽업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 태권도 관장들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안전을 위한 정부의 정책이 영세한 태권도장에 타격을 주고 있어서다.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를 노란색 어린이 전용 차량으로 6월까지 갖춰야 하고 자동차 안전성 때문에 차량을 9년까지만 운행하도록 했다.
이번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차를 새로 구입해야 하는 영세한 체육관에서는 차량 운행이 어려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또 2년 후부터는 셔틀버스에 보조기사 인력을 꼭 두어야 한다고 하니 갈수록 태산이다. 초등학교 학급수가 줄어드는 것만큼 태권도장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또 늘어난 태권도장의 숫자는 경쟁을 부추기고 있어서 어려운 체육관 운영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이 IOC와 마찰을 겪고 있는 스포츠어코드에서 탈퇴했다는 뉴스를 봤다.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스포츠어코드의 임원들이 올림픽 조직인 IOC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태권도의 미래가 조금 걱정 되는 점도 있다. 최근 비과세인 태권도장을 일반과세로 바꾸려 한다는 소식이 있어 앞으로 태권도장의 시름은 더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일어났던 이야기가 있다. 국내 유명 기업이 나서서 방과 후 활동으로 학교 수업의 연장 선상에서 태권도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태권도 학과가 있는 대학을 비롯해서 일선 태권도 관장들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를 외쳤다. 이유는 학교에서 태권도를 하게 될 경우 학교 주변에 있는 태권도장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주변에 있던 태권도장은 그야 말로 생사를 걸어야 하는 판국이었다.
얼마 전 일본에서도 무도를 학교체육으로 지정하고 학교에서 운동할 수 있게 했다. 기업에서 컬리큘럼을 만들어 시행하려는 것이 아닌 국가차원에서 시행하는 무도 교육이었다. 모든 학생은 공수도, 검도, 유도, 합기도, 소림사권법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해 수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수련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고 지도 교사들을 각 협회에 보내 교육시켰다.
그렇게 학교에서 무술을 시작하고 나서 무술도장 사범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학교 주변에 있는 도장에 수련생 숫자가 줄어 도장운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자격을 갖춘 지도자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기 과정 교육을 받은 일선 학교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무도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도장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한국과 많은 차이가 있다.
무술을 생계의 한 수단 정도로 여기는 한국과 교육의 한 축으로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차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무술 협회들의 행태를 비교해보면, 한국에서는 자격증과 단증에서 실제 그 무술의 최고 스승이 주는 증명서가 아닌 것이 많다. 단증을 받은 사람들도 그 단증이 누가 발행하는 단증인지를 전혀 살피지 않는다. 타협회에서 발행한 단증 분실로 확인하는 문의 전화가 거의 매일 잘못 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어느 선생이 발행한 단증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일본에 무술을 하면서 내가 알 지 못하는 사람이나 실제 운동을 하지 않는 선생의 단증이나 자격증을 받아 본 적이 없다. 합기도는 도주(道主)라고 하는 선생이 단증을 발행하고 있고, 그 도주는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도복을 입고 실제 수련지도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선생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한국은 전혀 다르다. 누군가는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내 앞에 있으면 뺨이라도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사업가나 정치인들이 개인적인 목적을 가지고 협회장을 하고 있는 곳이 많다. 협회에서 발행하는 단증과 같은 증명서는 실제 스승이나 아니면 그 조직에 큰 선생이 발행해야 옳은 것이다. 하지만 협회장으로 앉아 있는 사업가나 정치인의 이름으로 단증을 발행하고 있다. 스승도 없는 그런 엉터리같은 단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찰청 가산점 단체 인정에 목을 매달고 있는 실정이다. 단증의 권위가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일본에 있는 합기도 조직의 예를 들자면 전일본합기도연맹이 있고 국제조직인 국제합기도연맹이 있다. 국제조직은 IOC, 스포츠어코드, IWGA 등에 회원국으로 가맹된 조직을 말한다. 굵직한 조직들이 있고 회장이 별도로 있어도 합기도 단증은 세계본부에서 도주(道主) 선생이 발행하는 단증 하나만 신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름만 국제 또는 세계조직인 것처럼 만들어서 마치 국제적인 공신력을 가진 것처럼 단증과 사범자격증을 발행하고 있는 곳도 실제로 있다. 모두가 기만적인 행위이지만 금지할수 있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제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문제는 한지역에서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인도에서 합기도에 복싱을 섞은 조직이 나타났는데 한국형 합기도에 일본무술, 중국무술은 있는데 서양의 무술인 복싱은 없어서 하나를 더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름도 거창하게 "합기도복싱국제기구(Hapkido Boxing International Organization)"다. 하필 합기도(Hapkido)라는 명칭을 가져다 쓰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