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삼대구년만에
모처럼 수요 휴무를 맞았습니다.
전 날 밤엔
'나홀로 영화' <심야식당>을 한 편 땡겼고,
간만에 찾아온
이 금쪽 같은 하루를
어디서 누구와 함께 보낼까..고심하다가
결국 혼자가 편한 저는
"나홀로 힐링"을 하기로 합니다.
어디로 가지?
경주
통영
함양 등...
몇몇 곳이 물망에 올랐지만
두 번의 늦가을에 가보았던 고즈녁한 숲길..
울산 울주군 두동면의 천전리 각석 가는 길이 눈 앞에 아른거려
초여름의 그곳을 만나러 가기로 하였지요.
울산 암각화 박물관입니다.
노마老馬는 이곳에 주차해 놓았고요~
반구교를 지나
대곡 박물관이 있는 천전리 각석 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호젓한 숲길..좋지 아니한가요...?
몇 발짝 안 걸어 멈칫...끝물 돌가시나무와도 인사를 나누고
양갈래로 나뉘었던 잎들이 밤이면 포개어진다 하여
금슬좋은 합환목으로 불리우기도 한다는
자귀나무꽃들과도 조우합니다.
넘 예쁘죠?
작고 앙증맞은 흰별꽃들이 모여 한덩이 꽃을 이루는...
까치수영(수염)과도 비슷은 한데..
이 아이들 이름을 모르겠어요~
아시는 분 계시면, 가르쳐 주시길!^^
하늘하늘 풀꽃들 줄지어 반겨주는 길을 걸어
점점 깊이...숲 안으로 들어갑니다.
왠지 으스스...오싹한 기분마저 들지만
저리 아름다운 풍광과
사랑스런 길의 품 안인데..어찌 황홀하지 아니할 수가요...
드디어..물소리도 시원한 천전리 계곡이 내려다 보입니다.
신이 난 저는, 발걸음을 마구 재촉하였고요.
초록 아래 뻗어있는..길 안의 길...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각석엔 두어 번 가보았기에
오늘은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는 천전리 계곡까지만입니다.
폭포소리를 능가하는 물가에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기로요.
아무도 없는 계곡을 통째로 전세낸 덕에, 자유함이 감도는 두 다리의 표정 ㅎ
내내 골방에 갇혀있다..나들이 따라나온 가방도 배시시 웃고
대추 토마토 한 알 한 알이..미소짓는 듯 보이는 감정이입이라니...
한동안을 나홀로 노닐다가..
천전리 계곡을 등지고 돌아나온 길목에서
하얀 나비 한 마리를 만납니다.
그 길섶..
낮게낮게 피어있던 애기똥풀...
잎이나 줄기를 꺾으면..
노란색 액이 스며나오는데..
그 색깔이 애기똥 빛깔이라고 애기똥풀...ㅎ
확인 들어간 제 손끝..넘나 이쁜 진노랑 액..보이시죠...?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르듯..
자연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분명 한 시간여 전..
걸어서 통과한 길인데..
돌아나가는 뒤태는..
들어올 때의 앞태와 확연히 다른 풍경...
공감하시나요.....?
이름을 몰라 궁금한 풀잎도
이름을 아는 풀꽃, 개망초도
사이좋게 저마다의 자리에 피어
평화를 이루고 있던 숲속..
천전리 각석으로 가는 숲길과 이별한 저는...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선
몇 백 년 된 정자 <집청정>의 안부가 궁금해져서
잠깐이지만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11월쯤..늦가을이면..저 흙돌담이
담쟁이며 덩굴식물들의 파리한 이파리들로 뒤덮여
얼마나 고풍스런 풍경을 연출하는지 모른답니다.
<집청정> 앞 수령이 오랜 배롱나무엔
아직 꽃들이 달리지 않은 채이더군요.
350년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집청정>
정자에는 두 개의 마주보는 방이 있는데,
정면에 보이는 바로 저 왼쪽 방에서
작년 가을 "집청정 산골 영화제" 때
객으로 참가했던 제가..하룻밤을 묵었었지요.
고풍스런 <집청정>의 전후좌우..운치있는 모습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한옥 스테이와 식생활 문화체험 등,
민박도 가능한 공간이니 필요하신 분들께선 참고하셔도 될 듯요~ㅎ
<집청정>의 안부도 확인했으니
그 앞을 흐르는 대곡천의 세찬 물소리를 남겨두고
서둘러 집으로 가는 발길을 돌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목격하지 아니한 트래킹.....!
노마가 기다리고 있는
암각화 박물관으로 원점회귀하기까지
왕복 4.5km 남짓...
속보로는 40~50분이면 떡을 칠 거리를
두 시간 이상 저홀로 즐기며
놀멘놀멘 유유자적하였네요~ㅎㅎ
걷기를 끝낸 나의 두 발에게 묻습니다.
오늘 하루,
진정으로
행복하였느냐고?^^
* 나무의 꿈 - 인디언 수니(임의진 詩/수니 曲)
초록별 뜬 푸른 언덕에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딱따구리 옆구리를 쪼아도
벌레들 잎사귀를 갉아도
바람이 긴 머리 크러놓아도
아랑곳없이 그저 먹먹히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아름드리 어엿한 나무가
만개한 꽃처럼 날개처럼
너를 품고 너희들 품고
여우비 그치고 눈썹달 뜬 밤
가지 끝 열어 어린 새에게
밤하늘을 보여주고
북두칠성 고래별 자리
나무 끝에 쉬어 가곤 했지
새파란 별똥 누다 가곤 했지
찬찬히 숲이 되고 싶었지
다람쥐 굶지 않는 넉넉한 숲
기대고 싶었지 아껴주면서
함께 살고 싶었지
보석 같은 꿈 한 줌 꺼내어
소색거리며 일렁거리며
오래 오래 안개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