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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주도이다. 영어로는 플로렌스라고도 한다. 이곳은 로마 북서쪽 233Km, 아르노강의 양안, 구릉과 선상지상에 있다. 근교의 아르노강 연변의 저지는 신흥공업지대로 상공업의 중심을 이루며 근대적인 대도시로서 아르노강 연변의 교통로와 아펜니노 산맥을 넘는 교통로의 요지이기도 한다.
또한 이 시는 공화국, 토스카나 공작령의 수도, 이탈리아의 수도 등 다양한 지위를 누리며 긴 역사를 이어왔다. BC 1 세기경 로마의 군사 식민지에서 비롯된 곳으로 14-16세기에는 예술을 비롯하여 상업·금융·학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다. 이곳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했던 천재들을 통해 이 시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및 메디치 가문을 들 수 있다.
제2일, ‘06. 4. 27(목)
우리는 다음 관광지를 향하여 아침 일찍 서둘렀다. 아직 시차적응이 잘 안되었기에 아침 일찍 배 시간을 맞추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어제 식사 때와 같이 우유에 빵을 간단히 요기한 후 짐을 챙겨서 7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피렌체로 향했다. 어찌 보면 피렌체는 중간에 잠깐 들르는 경유지이고 베니스를 관광하기 위하여 그 가까이 숙영하기 위한 긴 버스여행이었다. 어제의 ‘가이드’가 도착하여 안내를 시작한 가운데 수목이 잘 조성된 시골길을 따라 막힘없이 달렸다. 이제 누가 정하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지정석이 설정되었고 크게 마음 쓰지도 않았다. ‘가이드’는 계속 말을 했다. 교차로에 교통경찰이 나와 있었는데 그들은 해군 소속의 헌병이며 그들을‘까라베니아’라 한다고 했다. 농담으로 그들을(까라베니아) 2명이 1개조로 편성하여 운용하는 것은 그들이 약간 지적수준이 떨어지기에 그런다고 하면서 1명은 쓰기만 하고 1명은 읽기만 한데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완만한 구릉지대에 펼쳐지는 보리밭, 산재하는 실삼나무의 거리, 언덕 위의 성곽도시들이 토스카나 하면 생각나는 풍경들이다. 어느 곳을 방문해도 뛰어나게 아름다운 토스카나 주는 작은 도시와 마을 모두가 수세기 전의 번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주도 피렌체는 르네상스 미술의 보고로 전 세계의 보물이라 할 만한 미술품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도시 자체가 미술관이나 다름없는 피렌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겠다.
피렌체 Firenze
‘꽃의 도시’ 피렌체에는 지금도 르네상스 때의 모습 그대로 그 영광에 빛나는 건축과 회화가 남아 있다. 꽃의 도시에 이끌려 숱한 예술가와 시인들이 이 거리를 찾아왔고 사랑했다. 거리를 걷다보면 백합꽃과 환약을 본뜬 메디치가(家)의 문장(紋章)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약장사 출신이었다는 이 도시의 대표적인 메디치가를 빼고는 이 꽃의 도시를 이야기할 수 없다. 13세기의 미켈란젤로를 발견하고 그에게 조각 공부를 시킨 것도, 라파엘로를 지원해 그 예술을 개화시킨 것도 메디치가 사람들이었으며 피렌체를 대표하는 꽃의 성모 교회 두오모에 쿠포라를 완성시킨 브루넬레스키나 방탕했던 화가 필리포 리피의 후원자가 되었던 사람도 메디치가의 사람들이었다. 이들 수많은 예술가들이 기라성처럼 메디치가라는 태양의 주위를 둘러싸던 때가 다름 아닌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 시대의 일을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가 1400년대에 흥했으므로 크와토르첸토=400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르네상스를 사랑하고 키웠던 피렌체 사람들이다. 신랄한 비평가로서 저명한 예술가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그들은 르네상스의 개화를 저변에서부터 지지했다. 그래서 그들의 놀랄 만한 안목에 겁을 먹고 이 도시에서 도망친 예술가들도 많다. 라파엘로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라는 화가는 고전적인 화풍을 사랑했지만 항상 변화를 요구하는 피렌체 시민들의 기호를 맞추지 못하고 결국에는 고향인 페루자로 돌아갔다고 한다. 결국 이 도시가 의외로 빨리 문화적 종식을 맞은 것은 시민들의 비평이 너무나도 예리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 옆 정면 오른쪽에는 조토의 종루가 있다. ‘유리 상자에 넣어두어야 할 공예품’ 이란 찬사를 받는 색 대리석과 섬세한 부조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공예품이다. 이렇게 볼 것이 많은 두오모 광장 Piazza del Duomo은 시의 중심지이다. 두오모의 왼편 북쪽으로 200m쯤에, 지금은 시장 동네이지만 예전에는 르네상스의 대후원자로 명실 공히 도시를 지배했던 메디치가의 본거지인 메디치가 예배당인 산 로렌초 교회와 그들의 주거지였던 리카르디 궁전이 집중되어 있다. 두오모의 오른쪽 아르노 강에 걸린 베키오 다리까지의 500m 내에는 시뇨리아 광장ㆍ베키오궁전ㆍ우피치 미술관 등이 있는데 이곳은 옛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 중심지였다. 당시에는 정치집회가 열렸던 이 공장도 지금은 카페가 늘어서 있는 휴식의 장소 이다. 귀금속 세공 가게가 늘어선 베키오 다리를 건너면 피티 궁전과 넓은 숲이 있는 이탈리아식 정원 보볼리이다. 프랑스 정원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여서 정원 산책도 즐겁다. 이곳에서부터 성벽이 아르노 강을 향해 동쪽으로 뻗는다. 공원 베르베델레 요새에서 남동으로 뻗은 산책로를 가면 올리브가 무성한 언덕 위에 큰 다비드상이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는 아르노 강을 따라 둘로 나뉜 피렌체의 장미색 거리가 건너다보인다.
먼저 피렌체 관광의 진수라 할 수 있는 꽃의 성모 교회 두오모를 보자. 노벨라 교회의 오른 편에는 호텔과 상점이 늘어서 있고 버스들이 왕래하는 판차니 거리 Via de' Cerretani를 100m 나가면 오른편으로 두오모의 빨간 벽돌의 게 말이 건초를 먹고 있는 광장에 산 조반니 예배당이 있다. 백색과 분홍색ㆍ짙은 녹색의 대리석으로 된 아름다운 8각형의 건물이다. 항상 많은 사람들이 휴식하거나 오가는 이 광장 옆에 군림한 것은 그 옛날 유럽 제 1의 도시인 피렌체 그대로의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꽃의 대성당 두오모이다.
‘가이드’는 일행들이 잠들지 않도록 ‘최대의 성의’를 보이느라 고군분투했다. ‘까라베니아’ 얘기가 나오자 우리나라의 ‘최불암’ 시리즈처럼 바보스런 말이나 동문서답을 잘하는 이탈리아식 ‘토티 TOTI' 시리즈를 말하여 좌중을 웃겼다. ’토티‘는 이탈리아의 축구천재인데 단지 그가 무척 바보라는 것이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토티‘에게 좌우 신호등이 잘 들어오는지 머리를 내밀고 보라고 한 모양이다. ’토티‘가 머리를 내밀고 말하기를 ’들어왔다‘ 아니 ’나갔다‘ 아니 ’들어왔다‘ 아니 ’나갔다‘ㆍㆍㆍ 깜박이등은 깜빡깜빡 거리니까 작동이 잘된다고 하는데 그 상황을 모르는 것이니 그는 깜빡이등의 용도도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등등 몇 가지 동문서답적인 예를 들면서 일행을 웃겼다. 평야가 잘 발달된 이탈리아의 풍경은 무척 전원적이었다. 곳곳에 수목원이 마치 연병장에 사열받기 위해 도열한 병사들처럼 앞 뒤 대각선이 잘 맞춰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평소에 거리낌 없이 불렀던 ’아카시아‘, ’플라터너스‘, ’아네모네‘ㆍㆍㆍ 특별히 ’아네모네‘의 붉은 색 꽃은 얇은 꽃잎의 선명함이 너무 강렬하게 느껴왔고 순수했다. 우리나라의 ’논개‘ 시에 보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ㆍㆍㆍ 그 선명한 붉음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그림 아네모네와 양귀비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연인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청년 아도니스를 사랑하였으므로 아레스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사냥하던 아도니스가 멧돼지에 받혀서 죽게 만든다. 그래서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서 붉은 아네모네 꽃이 피어났고 그를 구하러온 아프로디테가 가시나무에 찔려서 피가 나자 그때까지 흰색이었던 장미꽃이 붉게 물들었다는 신화의 꽃이다.
그런 글에서 애틋함이 담긴 서정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아네모네’가 우리나라의 민들레처럼 야생화이고 널부러져 있으며 어느 언덕에는 군락지어 화사함을 더했다. 무화과나무도 우리나라 시골 감나무처럼 흔했고 만개한 아카시아는 뻣뻣하게 자란 ‘수국’꽃 같았다. 넓은 밭에는 의외로 노랗게 된 유채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자연의 풍광에 잠길 여유도 없이 ‘가이드’는 계속 떠들었다. 이태리 경제에 대하여 말을 안 할 수 없다나? 그의 말인즉슨 어느 국가에 여행을 다녀왔다면 그 나라의 인구는 어쩌고 경제는 어떠하며 정치는 그렇고 문화 등등 해가면서 자식들 앞에서 말할 수 있어야 수준 있고 폼 나는 지식인 행세할 수 있다면서 남부는 농업이 주이며 사람들이 게으로고 소득이 낮아서 북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반면에 북부는 공업이 발전하여 소득수준도 높고 부지런하여 북부사람들이 남부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형국이니 내부적 불만으로 계속 통일 무용론이 북부사람들에게서 제기된다는 주 내용으로 국민 소득은 얼마이고 주산업은 어쩌구 하는 등 상당한 시간을 경제 분야에 대해 얘기했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자고 있었다. ‘가이드’는 현지 교통법에 따라 뒤를 보고 설명할 수 없게 되어있었기에 앉아서 앞만 보고 한참을 혼자 떠든 것이다. 아예 나처럼 잠을 안자기로 작심한 사람 한 둘 빼고 그나마 나는 밖의 풍경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으니 깊이 학습차원에서 듣기나 했겠는가. 하여튼 얼마를 그렇게 떠들다가 낌새를 차리고 여담을 섞어 했는데, 역시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와 ‘시칠리아 섬’의 사람들 특색으로 꾸민 얘기다. “영국사람, 프랑스사람, 스위스사람, 나폴리사람, ㆍㆍㆍ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고 있었는데, 영국사람이 밖으로 손을 내밀고 나서 하는 말이 방금 런던 상공을 지났다. 이유인즉슨 런던탑이 손에 잡혔다. 프랑스사람은 ㆍㆍㆍ 에펠탑이, 스위스사람은 알프스가, ㆍㆍㆍ 마지막으로 나폴리사람이 “나폴리를 지났다면서 방금 손을 내미니 손목시계를 훔쳐갔다.” 물론 거짓말의 과장이겠으나 나폴리는 유난히 좀도둑이 많고 소매치기가 극성이라는 뜻이란다. 아울러 마피아에 대하여 많은 말을 했다. 과거에는 마피아가 지하 조직적 요인이었으나 오늘날의 마피아는 정계, 관계를 영향 하에 두고 있고 과거처럼 ‘갱’조직이나 영화‘대부’와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소매치기 등은 어느 지역이나 흔히 있는 것으로 이탈리아 등 유럽의 ‘집시’ 문화라는 것이다. 즉, ‘집시’들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죄로 생각하지 않고 잠시 빌리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빌려간 것은 내세에 갚는다는 아주 괴변적인 발상에서 이루어지므로 경찰 등 법에서도 관대하므로 당하는 사람만 바보가 되고 억울하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하여간 다시 ‘소매치기 집시’의 경계주의는 거듭 강조 되었다.
토스카나 주 요리
토스카나의 요리는 프랑스 요리의 원조인 이탈리아 요리를 전파한 피렌체의 메디치가(家)를 생각게 한다. 웅장한 아펜니노 산맥과 아름다운 테리니아 해로부터 나오는 자연산물이 풍부해서 토스카나 주의 도시에서는 아직도 미식의 전통이 남아있다. 옛날 해양 도시로써 번영했던 피사를 비롯한 해변도시에서는 향기 높은 포르치니 버섯과 토리프 올리브유가 생산된다. 키아나 협곡에서 방목되는 키아나 소고기는 피렌체풍의 비프스테이크로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지금은 미국으로까지 수출된다.
그림 피렌체 비프스테이크와 키안티클라시코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와인 키안티도 이곳 생산품이다. 특히 검은 닭 칼로네로 마크가 붙은 키안티 클라시코는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있는 유서 깊은 포도 농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토스카나에서는 키안티를 비롯한 3종의 이탈리아 최고급 보증인 D.O.C.G와인이 생산되는 곳으로 와인 애호가들이 동경하는 지역이다. D.O.C.G 와인은 Brunello di MontalcinoㆍVino Nobile di Monte-pulcianoㆍChianti 그리고 Carmignano이다. 백포도주로는 중세의 모습이 남아있는 탑의 도시로 유명한 산 지미냐노 Vernaccia di San Gimignano의 것이 맛있다.
티레니아 해의 어항 리보르노에서는 각종 해산물의 살로 만든 해물 수프 Cacciucco가 유명하다. 요리 이름에 C가 5개 들어 있듯이 5종류 이상의 어패류를 이용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아랍 요리인 쿠스쿠스 Cúscus도 맛있다.
그림 해물 수프 Cacciucco와 쿠스쿠스 Cúscus
이탈리아 요리의 매력
이탈리아 요리는 소재를 살린 건강 메뉴가 주종을 이룬다. 다양한 안티파스토(전채)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방금 데친 파스타가 테이블에 오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와인을 손에 들고 “Buon Appetito 본 아페티토(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 요리는 없고 향토 요리뿐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처럼 요리에 향토색이 짙은 것은 1861년에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국토가 여러 왕국과 왕령으로 나눠져 있었던 까닭에 향토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 어머니의 맛
맛에 대해 유별난 미식가들도 ‘어머니의 맛’을 인정하고 있다.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불룩 나온 사람들이 엄마의 맛이 세계 제일이라고 입을 모른다. 결국 어머니의 맛이란 집의 텃밭에서 태양을 듬뿍 받고 자란 야채와 마당에서 키우던 닭과 그 달걀, 그리고 사냥한 것에 애정을 담아 만든 것이다. 인정이 넘치는 식탁이 이탈리아에는 아직도 남아있다.
● 이탈리아의 식탁
이탈리아인의 아침식사 프리마 콜라치오네 Prima colazione는 간단하다. 커피만 마시는 사람이 많고 성장기의 아이들도 커피와 우유로 된 카레 에 라테 Caffe latte와 비스켓 뿐이다. 출근 전의 바는 짙은 에스프레소 커피나 카푸치노와 코르네토Cornetto라는 달고 작은 빵을 먹는 사람들로 붐빈다. 2시 경의 점심식사 Pranzo 식료품 가게에서 올리브유와 소금만으로 맛을 낸 피자 블란카 Pizza Blanca에 햄, 샐러드를 끼운 것을 사서 쉬는 시간에 먹는다. 오전 중에 먹는 간식을 스푼티노 Spuntino라고 한다. 일이나 학교가 끝나는 것은 1시 경이고 점심식사는 1시 반이나 2시 경부터 시작된다. 점심식사에는 하루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내놓는데, 가정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닌 한 전채가 나오는 일은 드물다. 파스타ㆍ고기나 생선요리ㆍ야채요리ㆍ와인ㆍ과일ㆍ커피로 이어진다. 5시 경이 되면 오후의 간식 메렌다 Merenda를 먹는다. 저녁 무렵의 피자점에는 식욕 왕성한 젊은이들이 피자를 먹고 가정에서는 집에서 만든 케이크에 커피나 홍차를 마신다. 8시 경부터는 저녁식사인 체나Cena가 시작된다. 성찬의 점심식사에 간식까지 끝냈기 때문에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가벼운 음식을 먹는다. 보통 가정에서는 Minestrone 등의 수프나 햄ㆍ치즈에 샐러드, 와인으로 가볍게 끝내는 경우가 많다.
● 이탈리아를 알려면 이탈리아 요리를
향토 요리를 먹기 전에 알아둘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북이탈리아 요리는 프랑스 요리에 가까워서 버터ㆍ생크림을 많이 쓰며 남쪽으로 갈수록 토마토ㆍ올리브유가 많이 사용된다. 북쪽에서는 유고슬라비아의 굴라쉬Gulash(파프리카풍 맛의 소고기 찜), 독일ㆍ오스트리아의 과자 스트류델Strüdel(사과 파이), 남시칠리아에서는 아랍요리인 쿠스쿠스 Cúscusu가 인기이다.
● 와인의 매력
고대 그리스인이 와인의 나라 ‘에트루리아’라고 불렀던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와인 역사는 오래되었다. 공화제 시대의 웅변가 키케로와 황제 시저도 와인을 즐겼다.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하룻밤 사이에 죽음의 거리가 된 폼페이의 유적에도 서기 79년의 와인 병이 남아있다. 예로부터 로마의 병사들은 전장으로 무기와 함께 포도주 묘목을 가져가서 영토를 확대할 때마다 그 땅에 묘목을 심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탈리아로부터 유럽 각지로 포도 묘목과 와인 만드는 법이 전파된 것이다.
●세계적 와인 생산국
전통과 좋은 풍토를 만들어낸 이탈리아 와인은 지금도 세계 와인 생산량의 1/4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출이나 소비량에서도 세계 제일을 자랑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활기차게 와인을 즐기는 이탈리아인을 보고 있으면 피렌체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바커스’ 상이 떠오른다. 술에 취한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은 이곳의 활기롭고 풍부한 자연이 혜택과 삶을 구현해 내는 것 같다. 남북으로 좁고 긴 이탈리아는 자연환경이 다양하다. 북이탈리아의 엄격한 자연 속에서는 세계에서도 뛰어난 품질을 지닌 짙은맛의 적포도주와 샴페인. 스푸만테 등이 생산된다. 중부의 삼나무가 줄지어 있는 구릉의 포토밭에서는 생기 넘치고 부드러운 키안티 와인을 만들고 있다.
●생선에는 백포도주, 고기에는 적포도주
와인을 마시는 데 특별한 제한은 없다. 그렇지만 보다 맛있게 마시게 위해서 대개의 경우 생선이나 흰 살 고기(송아지ㆍ닭고기 등)에는 백포도주를 고기요리에는 적포도주나 로제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상식이다. 파스타나 리조토 요리는 그 소스에 따라 와인을 결정한다. 어패류의 소스에는 백포도주를, 볼로네제 등의 고기가 든 소스에는 적포도주나 로제가 알맞다고 한다.
●가벼운 와인에서 중후한 와인으로
식사용 와인에는 조금 쌉쌀한 맛의 와인이 최적이며 그 지방의 요리에는 그 지방의 와인을 쓰는 것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중에서 이탈리아의 지방요리에 꼭 어울리는 와인의 예를 들어보면 에밀리아 로마냐 주 모데나의 돼지다리로 만든 소시지 참포네Zampone에는 발포성의 적포도주 람브루스코Lambrusco가 로마인의 연중행사에 빠트릴 수 없는 어린양 Abbacchio에는 상쾌한 맛의 프라스카티 백포도주가 어울린다.
■ 와인의 등급
이탈리아 와인의 등급에는 테이블 와인 Vino da Tavolan, 통제 원산지호칭 D.O.C.와인, 통제보증원산지호칭 D.O.C.G.와인의 3가지로 나뉘어 상표에 표시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격 분류를 위한 것이다. 값이 싼 테이블 와인이라도 이탈리아의 것은 다른 외국산 와인을 섞지 않고 이탈리아 와인만으로 되어있어 맛있는 것이 많다. 다만 테이블 와인을 고를 때는 보통 코르크 마개로 된 것을 고른다. 알루미늄 마개로 되어 있는 것은 값은 싸지만 맛과 향이 빈약한 것이 많다.
●최고의 D.O.C.G.와인
200종 이상이나 있는 통제 원산지호칭 D.O.C.와인(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이란 엄밀하게 산지가 제한되어 재배되며 포도의 종류를 비롯한 산지가 제한되어 재배되며, 포도의 종류를 비롯하여 최저 알콜 함유량ㆍ제조법ㆍ저장법ㆍ미각상의 특징 등이 법정 특별 제조기준에 맞는 것이다. 더 품질이 좋은 것은 통제보증 원산지호칭 D.O.C.G.와인(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이다. 이것의 인정기준과 제품검사는 더욱 엄격하고, 검사에 합격한 것은 D.O.C.와인과 마찬가지로 품질보증을 위한 각 와인협회의 마크와 정부의 검사필증이 붙어진다. 현재 D.O.C.G.와인에는 피에몬테산의 적포도주 바롤로Baroloㆍ바바레스코Barbaresco, 에밀리아 로마냐 주산의 백포도주 알바나 디 로마냐 Albana di Romagna, 토스카나 주의 적포도주 칼티Chiantiㆍ비노 노벨레 디 몬테풀치아노 Vino Nobile di Montepulcianoㆍ부루넬로 디 몬탈치노 Brunello di Montalcino등이 있다. 위에서 말한 포도주는 이탈리아에서 꼭 맛보고 싶은 것이다. 특히 숙성에 시간이 걸리는 적포도주 중에서 ’88년산ㆍ’87년산ㆍ’85년산ㆍ’82년산ㆍ’78년산ㆍ’74년산 포도주를 만난다면 놀랄 정도로 뛰어난 방향에 매료될 것이다.
●와인을 보다 맛있게
장기 숙성을 거친 와인을 맛있게 마시려면 적어도 식사 2시간 전, 술에 따라서는 이틀 전에 마개를 빼면 좋다고 한다. 그러나 레스토랑에서는 와인의 주문이 있어야 비로소 마개를 뽑으므로 와인을 테카시타에 옮기는 테칸테이션 작업을 행한다. 이것은 오랜 잠을 자던 와인의 눈을 뜨게 하여 본래의 풍부한 향기와 맛을 끌어내기 위해서이다. 맛있는 와인을 마시며 식사를 즐기려고 생각한 날은 레스토랑을 예약할 때 미리 와인의 종류를 선택하여 알려주는 것이 좋다.
●와인용어
rosso 적포도주
bianco 백포도주
rosato 로제와인
frizzante 약(弱)발포성
spumante 발포성, 최고의 제품은 샴페인과 겨누어도 손색없다.
liquoroso 리큐어 타입의 단맛 와인
secco 쌉살한 맛
abboccato 약간 단맛
amabile 중간 단맛
dolce 단맛
classico 옛날부터 있는 특정의 포도원에서 생산된 와인
riserva 최저 숙성기간을 지나서 규정 숙성기간을 경과한 것
superiore 법정 알콜도수를 1도 이상 넘은 것
●식료품점 Generi Alimenteri
빵ㆍ햄ㆍ치즈ㆍ과자에 와인 등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있다. 파테나 고급 음식을 다루는 델리카테션 Delicatessen도 북이탈리아에는 많다. 로마에서는 로제타 Rosetta 라는 가운데가 뚫린 빵을 많이 먹는다. 가게에서는 이 빵에 햄이나 살라미ㆍ치즈를 끼워서 간단한 스낵 파니노를 만들어 준다. 살라미를 끼운 파니노가 먹고 싶으면 “보레이 운 파니노 콘 살라메 Vorrei un Panino Con Salame" 라고 주문한다. 이밖에 돼지기름이나 피스타치오가 든 초특대 소프트 소시지인 모르타넬라Mortadella, 본고장 이탈리아의 생햄 프로슈토 크루도 Prosciutto crudo, 가열한 햄 프로슈토 코토 Prosciutto cotto 등이 인기 있다. 치즈 Formaggio에는 크림처럼 부드러워서 먹기 좋은 벨파에세Belpaese, 신선한 맛의 모차렐라 Mozzarella, 약간 딱딱하면서 순한 맛의 프로볼로네 Provolone에서 외국산 치즈까지 다양하다. 치즈 중에는 매운맛과 단맛이 있는데 풍미가 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운맛 Paccante을, 부드러운 것을 좋아한다면 단맛 Dolce을 선택한다.
●서서 즐기는 Bar와 앉아서 즐기는 Sala da té Caffe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를 마시는 이탈리아인에게 있어 휴식의 장, 사교의 장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Bar이다.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가게로 들어와서 커피나 술을 단숨에 마시고 나가게 되는 바는 그들에게 있어서 마시는 장소일 뿐이다. 천천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차나 커피를 즐기는 곳은 살라 다 테Sala da tè와 카페Caffe이다.
메뉴를 간단히 알아보면 에스프레소 커피는 작은 컵 1/3정도(약 30cc)의 아주 미세한 포말이 일어나는 농후한 커피로 설탕을 듬뿍 넣어 밀크 없이 마시는 것이 이탈리아인들의 습관이다. 컵 밑에 가라앉은 설탕을 스푼으로 떠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카푸치노는 증기로 덮여 포말이 일어나는 우유를 넣은 커피로 때로는 위에 코코아가루가 뿌려져 있다. 카페라테는 이탈리아식 카페오레이다. 카모밀라는 이탈리아인 상용의 차로 약간 두통이 있거나 복통ㆍ불면에 효과적이다. 여행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보충하려면 스프레무타를 마시도록 한다. 주문하면 바로 앞에서 과일을 짜주게 되는데 오렌지는 아란치 Arancia, 레몬은 리모네Limone, 그레이프 프루트는 폼펠르모 Pompelmo, 프레시 레몬 주스는 스프레무타 디리모네 Spremuta di Limone라고 주문한다.
바 Bar 메뉴
●Bevande 음식물 ●Alcolico 알콜 음료
caffe 에스프레소 커피 ㆍAperitivo 식전 술
Cappuccino 카푸치노 Campari 캄파리
Caffe e latte 카페라떼 Cynar 치나르
latte 우유 Martini 마르티니
thé 홍차 ㆍDigestivo 식후 술
Camomilla 카모밀라차 Amaro 아마로
aranciataㆍCola 탄산이 든 오렌지 Grappa 그라파
주스ㆍ콜라 Sambuca 삼부카
frullato 밀르셰이크 Brandy 브랜디
Succo di Frutta 프레시 주스 Whisky 위스키
Spremuta 스프레무타
Acqua minerale 미네랄워터 ●경식
Gelato 아이스크림 Tramezzino 샌드위치
granita 프라페ㆍ셔벗 Panino 둥근 빵의 샌드위치
로마의 순환도로 (Ring Route Roma)를 벗어나 북부로의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렸다. 넓은 평원의 양떼와 논에 모를 심는 인부가 가끔씩 보였고 지평선은 아니지만 평야가 끝날 지점의 낮은 산등성이에 카라카라 소나무로 산등성 위에 점을 띄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다시 경제 얘기를 하려다가 그는 조금씩 힘이 들었던지 포도주 등급에 대하여 말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잠을 자던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나 관심 있게 듣기 시작했다. 첫째가 부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mo 이탈리아산 포도주이고 이와 비슷한 레벨도 28만원 정도이며, 68년산 정도는 45만원까지 합니다. 2003년산의 경우 약 40₤이고 최고의 프랑스 산인 “싼 조베네제” 종자와 같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가 피에몬테산의 바롤로Barolo, 세 번째가 피안테, 네 번째 피안티, 토스카나주의 적포도주 칸티핀 제품은 비교적 고급입니다.
미네랄 워터는 가스가 든 콘 가스 Con Gas와 가스가 없는 센차 가스 Senza Gas가 있다. 그러나 아쿠에 미네랄 Acquw minerale(미네랄워터)이라고 주문하면 가스가 들어있는 콘 가스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알콜류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하며 아티초크로 만든 치나르, 포도 찌꺼기를 발효ㆍ증류시킨 알콜 38도의 그라파 향이 강하고 단 산부카 등 이탈리아 특산의 술이다.
커피에 구애되는 이탈리아인, 거품이 이는 농후한 커피를 최고로 하는 그들도 다양한 변화를 즐긴다. 언제나 보다 짙은 커피를 희망할 때에는 Caffe ristretto, 엷은 것은 Caffe lungo(또는 alto)를 주문하면 된다. 덧붙여서 말하면 아메리칸 커피는 Caffe americano이다. 식후의 커피는 리큐어가 들어 있는 Caffe corretto를 마시는 것도 좋다. 진한 커피와 풍부한 리큐어 향이 배부른 위를 편안하게 해준다. 추울 때나 위기회복에도 좋다. 또 커피 Caffe와 우유 Latte의 궁합도 뛰어나다. 우선은 Macchiato라고 하는 단어를 기억해 두자. 본래 ‘더러워진’ 이라든가 ‘물들이다’ 의 의미지만 Caffe mecchiato는 소량의 우유를 넣은 커피이고 한편 Latte macchiato는 소량의 커피를 넣은 밀크커피이다. 덧붙여 말하면 카페라테와 라테마캬토의 차이는 커피 양의 많고 적음에 있는데 왠지 라테마캬토는 컵에 넣어 내놓는 경우가 많다.
●피자리아 Pizzeria
이탈리아 음식에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Pizza는 피자라고 발음하지 않고 ‘피차’라고 발음하므로 주의한다. 피자를 파는 피자리아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알 탈라오 Al taglio나 루스티카 Rustica라는 서서 먹는 가게와 테이블에서 서비스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불까지 지펴가며 구워먹는 가게가 있다.
․ Pizza Margheita 피자 마르게리타: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를 이용해 만든 피자
․ Pizza con funghi 피자 콘 푼기: 토마토와 치즈로 만든 피자에 버섯을 얇게 썰어 올린것
․ Pizza con funghi e Prosciutto: 피자 콘 푼기 에 프로슈토 위의 피자 위에 생햄을 얹은 것
․ Pizza Napoletana 피자 나폴레타나: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와 더불어 안초비풍의 맛
․ Pizza Marinara 피자 마리나라: 토마토 소스에 오레가노의 맛
․ Pizza con Peperoni 피자 콘 페페로니: 달고 두꺼운 황색 피망을 얹은 것
․ Pizza quattro stagioni 피자 콰트로 스타지오니
한편 전형적인 피자점은 밤에만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인에게 있어 피자는 밤의 가벼운 식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한 번 권하고 싶은 것이 브루스케타 Bruschetta라는 갈릭 토스트인데 그 맛은 이탈리아가 아니면 맛볼 수 없다.
4계절의 피자, 피자를 4등분해 네 가지의 맛을 즐길 수 있다.
․ Pizza Capricciosa 피자 카프리초사 여러 종류의 조개가 얹어 있다.
․ Pizza Pescatore 피자 페스카토레 어패류의 피자
․ Calzone 칼초네 피자 :반죽에 토마토 소스나 치즈 등을 박아 구운 것
․ Crostino 크로스티노: 치즈 토스트로 모차렐라 치즈와 안초비ㆍ생햄이 어우러져 가장 맛있다.
․ Bruschetta 브루케스타: 마늘 토스트
․ Bruschetta con checca 브루스 케타 콘 체카: 마늘 토스트에 신선한 토마토를 얹은 것
●대중음식점 타볼라 칼다 Tavola Caldaㆍ로스티체리아 Rosticceriaㆍ카페테리아 Caffetteria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카운터 형식 또는 작은 테이블이 있는 곳이다. 요리는 이미 조리되어 카운터에 진열되어 있어 지적해서 주문을 하면 되므로 말이 필요 없다. 주문품의 주문서를 가지고 카운터에서 지불을 하며 카페테리아에서는 줄을 서서 정산하면 된다. 요리는 피자나 쌀 크로켓 Aranciniㆍ각종 파스타ㆍ닭ㆍ소고기ㆍ로스트ㆍ로스트포테이토ㆍ샐러드 등 간단한 것이 많다.
●리스토란테 Ristoranteㆍ트라토리아 Trattoriaㆍ오스테리아 Osteria
리스토란테는 고급 레스토랑이고 트라토리아는 가정 요리를 주로 하는 대중적인 곳이며 오스테리아는 술집으로 나눌 수 있지만 엄밀한 구분이 없다. 로마의 오스테리아도르소Osteria d'Orso는 격식을 자랑하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
■레스토랑
이탈리아에 도착하면 이 나라를 알려면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음식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풍토ㆍ국민성까지 모두 나타나는 것이다. 번잡한 번화가의 트라토리아에는 서민의 생활이 훌륭한 장식의 리스토란테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자들의 생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예약을 하면 식사의 즐거움도 두 배
숙소 근처에서 보통으로 식사를 하고 싶을 때는 주민들로 혼잡한 식당에 들어가면 문제없다. 로마에 있는 리스토란테에서는 5개 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금발의 미남청년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실제로는 식당의 격이 올라갈수록 식당도, 서비스를 하는 사람도 세련된 것이 일반적이다. 좌석에 앉아 메뉴를 펼치고 쓰여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주문해도 상관없지만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주방장이 권하는 요리는?”
“Che cosa consiglia(케 코사 콘실리아)”
“이 식당의 특별 요리는?”
“Quale é la specialitá di questo ristorante(쿠알레에 라 스페시알리타 디 퀘스토 리스토란테)?”
이렇게 물으면 적당히 메뉴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주고 그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주방에서 실물을 가져다 보여주기도 한다. 보통 4만원~5만원 수준이 wine bar에서 맛볼 수 있는 제품이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자기 입맛에 맞는 포도주가 최고라고 하였다. 그렇겠지. 포도주를 잘 아는 선수들은 대접할 상황이 되면 명품은 진열대나 진열장에 놓지 않고 서재에 숨겨놓는다고 한다. 2003년 나온 것은 35€정도이고통상 5년 숙성된 것은 45€에서 75€정도의 가격이 된다고 했다. 부루넬로 디 몬탈치노 Brunello di Montalcino 1996년 상급 세르바토는 특정종자로 최고품만 갖고 제조하는데 그해에 한정생산으로 전세계적으로 5만명정도만 판매하는데 10년에서 30년까지 남아있는 것은 희귀품이 되어 부르는 것이 값이라 했다. 알콜도수가 20˚가 넘으면 고급인데 피에몬테산 적포도주 바롤로 Barolo 1963년산이 25˚정도가 됩니다. 이태리 와인은 단가가 세서(높아서) 한국에는 잘 안들어(수출)갑니다. 맛있는 와인일수록 이탈리아를 벗어나면 먹기 어렵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나야 할 때는 계산을 한다. 서비스를 해준 카멜리에레를 불러 “계산서를 부탁합니다 Il conto per favore (일 콘토 페르 파보레)”라고 부탁한다.
●풀코스에 도전.
①전채, 안티파스토 Antopasto
냉채가 많다.‘생햄과 멜론’이나 어패류 샐러드, 야채요리 등이 듬뿍 나온다.
②첫째 접시, 프리모 피아토 Primo piatto
건조한 파스타에서부터 손으로 뽑은 면ㆍ쌀요리ㆍ리조토ㆍ수프류까지를 포함한다.
③둘째 접시, 세콘도 피아토 Secondo piatto
고기ㆍ생선요리ㆍ버섯요리 포르치니는 여기에 포함된다.
④딸림음식, 콘토르노 Contorno
야채 샐러드나 따뜻한 야채
⑤치즈 Formaggio
⑥디저트
과일 Frutta, 과자 Dolce
⑦커피ㆍ식후 술
이 순서대로 메뉴에서 요리를 선택하면 문제는 없지만 다 먹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파스타류만으로 끝내고 싶다고 해서 첫째 접시에서 끝내는 것은 식사예절 위반이다. 이것만 염두에 두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이탈리아인 중에도 생선이나 고기요리, 딸림음식인 4번째의 야채요리만으로 끝내는 사람도 있다. 또 파스타류 먹은 뒤 두 번째 접시에 전채를 먹어도 싫어하는 얼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파스타류를 먹고 싶지만 다 먹으면 둘째 접시를 못 먹을 것 같은 사람은 첫째 접시를 반쯤Messo 부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메뉴를 보면 아래쪽에 coperto와 I.V.A eservizio라고 쓰여 있다. 코페르토는 좌석료를 말하며 I.V.A는 부가가치세, 세르비치오는 서비스료를 말하는 것으로 12~25% 가량 지불해야 한다. 이 요금들은 식사대에 가산된다. 세트 메뉴로는 메뉴 투리스티코 Menu Turistico를 관광지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여행자 메뉴로 좌석료ㆍ서비스료ㆍ첫째접시ㆍ둘째접시ㆍ딸림음식ㆍ디저트 때로는 음료를 세트로 한 메뉴이다. 식당에 따라 L 12,000 정도부터 있어 싸지만 메뉴가 다양하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다. 와인에 관해서는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요리에 맞추어 백색인가 적색인가를 선택하면 카파라에 들어있는 1/4리터짜리 unquarto나 1/2리터 mezzo를 들고 온다. 카라파에 들어 있는 하우스 와인이 없는 곳에서는 병에 들어 있는 와인을 따주며 마신만큼 지불하기도 한다. 물론 좋아하는 와인이 있으면 와인 리스트에서 고른다. 디저트ㆍ커피를 끝내면 식후 술이 시작된다. 식수 술을 한손에 들고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열중하는 이탈리아인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식후 술은 소화를 도와주는 것으로 강한 리큐어가 많이 준비되어 있는 약초 풍미나 과일 풍미 등 종류도 다양하여 선택의 폭이 넓다.
●전채 antipasto
prosciutto e melone fichi 생햄과 멜론ㆍ무화과
antipasto misto all'taliana 이탈리아풍 전채 햄, 살라미가 주체인 요리
insalata di mare 데친 어패류를 올리브유ㆍ레몬즙으로 버무린 샐러드
salmone e crostini 훈제 연어에 버터 토스트 첨가
cocktail do gameberetti 새우 칵테일
antipasto arrostito 좋아하는 전채 모듬
antipasto di mare 생선이나 어패류 샐러드와 구운 조개에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전채
•수프류 zuppa e minestrone (primo와 함께 쓰여 있는 경우도 있다)
stracciatella 양파의 콩소메 수프
minestra 파스타가루가 든 콩소메 수프
zuppa di verdura 인삼ㆍ감자 등 각종 야채 수프
minestrone 파스타 또는 쌀이 든 야채 수프
zuppa pavese 달걀 을 접시에 놓고 뜨거운 콩소메를 부은수프에 파슬리와
토마토 소스가 첨가된다.
tortellini in brodo
고기가 든 파스타를 넣은 콩소메 수프
•첫째접시 Primo piatto
spaghetti alla pescatore 어패류의 스파게티
spaghetti alla vongole veraci 모시조개 스파게티로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것은 rosso,
토마토가 없는 것은 bianco라고 한다.
spaghetti al pomodoro 토마토소스의 스파게티
spaghetti alla bologness 미트소스의 스파게티
bucatini all' amatriciana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와 고추, 퍼코리노 치즈를 곁들인 토마토풍미
이다. 부카티니란 마카로니 모양에 구멍이 있는 스파게티
spaghetti aglio, olio e peperoncino 고추ㆍ마늘ㆍ올리브유만으로 맛을 낸 스파게티
spaghetti alla carbonara 파르미자노 치즈가 듬뿍 들어 있으며 달걀ㆍ돼지고기 절임으로
맛을 낸 크림 상태의 요리
gnocchi alla romana 세모리나 가루를 우유로 찌고, 파르미자노 치즈를 뿌려 구운 것
gnocchi di patate으깬 감자에 달걀ㆍ치즈 등을 섞어 작은 완자로 빚어 끓인 것으로 토마토
소스나 살라미 풍미의 버터, 골콘졸라 치즈로 버무릴 때가 많다.
fettucine 달걀을 많이 넣어 손으로 뺀 면으로 자른 폭에 따라 명칭이 바뀐다. 이것은 약
1cm의 폭이다.
tortellini 손으로 만든 파스타에 간 고기를 넣어 작은 링처럼 만든 파스타
ravioli 손으로 친 파스타에 간 고기를 넣은 약간 대형의 파스타
lasagna 라자니아
risotto alla pescatore 어패류 리조토
risotto crema di scampi 새우와 생햄의 리조토
risotto al pomodoro 토마토 맛의 리조토
•어패요리
cozze e vongole alla marinara 홍합과 모시조개로 만든 토마토 맛의 요리
cozze al gratin 마늘향이 나는 홍합 그라탱
zuppa di cozze 홍합과 토마토 풍미의 수프
zuppa di pesco 어패류의 토마토 맛 수프
•두 번째 접시 secondo piatto-육류
cotoletta alla milanese 얇게 썬 소고기 커틀릿
cotoletta alla bolognese 위의 커틀릿에 생햄ㆍ치즈ㆍ토마토소스를 얹어 오븐에서 살짝 구운 것.
scaloppine al vino bianco 송아지로 만든 와인 풍미 소테
piccatini al limone 송아지로 만든 와인ㆍ레몬 풍미 소테
scaloppe al marsala 송아지로 만든 마르살라 주 풍미의 소테, 송아지고기에 샐비어ㆍ 생햄을 얹은 백포도주
풍미의 소테
osso bucco 송아지의 정강이를 둥글게 썰어 토마토와 함께 찐다. 뼈나 골수의 젤라틴질도 먹는다.
lombatina송아지의 등심 스테이크
bistecca 비프스테이크
bistecca alla fiorentina 한 접시 최저 500g인 T본 스테이크
bistecca alla pizzaiola 오레가노가 든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비프스테이크
filetto di Manzo al pepeverde 소고기 필라프에 후추와 생크림 소스
petto di pollo dorato 닭고기 가슴살 피카타
braciola 돼지고기 로스 스테이크로 오레가노 마늘 풍미
tacchino 칠면조
coniglio alla cacciatore 오레가노ㆍ와인 풍미의 토끼고기 찜
trippa alla romana
고추가루와 토마토 소스를 이용한 송아지 내장탕
fegato alla veneziana 송아지 간과 양파를 듬뿍 넣은 요리
rognone al cognac 송아지 신장의 코냑 풍미
fritto misto all' italiana 뇌수ㆍ흉선 등의 모듬
•어패류
sogliola alla griglia 넙치 석쇠구이
sogliola alla mugnaia 넙치 뮈니엘
spigola bollita 데친 농어에 레몬즙이나 마요네즈를 뿌린다.
orata 이끼의 일종
spiedino di mazzancolle 새우 꼬치구이
scampi alla griglia 가재구이
fritto si calamari e gamberetti 새우와 오징어를 튀긴 것
•딸린음식 contorno
insalata mista 샐러드
fagioli bianchi 데친 흰 강낭콩에 올리브유 풍미
spinaci a piacere 시금치요리, 버터 소테를 마늘과 고추ㆍ올리브 유로 볶아 레몬즙을 뿌린 것이 일반적이다.
patate fritte 프라이드 포테이토
patate al forno 로스트 포테이토
peperonata 이탈리아풍의 라타투이유ㆍ붉고 노란색의 피망ㆍ가지 등의 토마토 찜
•과일 frutta
frutta di stagione 제철의 과일
macedonia di frutta al maraschino 말라스키노 술 풍미의 프루트 펀치
macedonia con gelato 프루트 펀치에 아이스크림 첨가
•과자와 아이스크림 dolce e gelato
dolci della casa 케이크
cream caramelle 푸딩
zuccotto 생크림을 얹은 반구형의 케이크
zuppa inglese 생크림을 듬뿍 얹은 리큐어 또는 레몬즙이 든 시럽을 듬뿍 넣은 스펀지 케이크
crostata 비스킷 반죽에 잼을 발라 구운 것
torta di ricotta 설탕절임의 과일과 치즈의 타르트
gelato misto 혼합된 아이스크림
•식후 술
amaretto
벚꽃 종자의 액즙을 추출해 여러 가지 향초를 첨가하여 맛을 낸 단맛의 리큐어
marsala 시칠리아 마르살라가 원산지로 알코올17~18
도의 강한 술이며 보드카와 비슷하다. 단맛과 쌉쌀한 맛이 있다.
grappa 알코올 38도로 무색투명하고 불이 날 정도로 강하다.
sambuca 아니스를 재료로 한 단맛의 리큐어
Brandy 와인의 본고장 이탈리아 브랜디
Wisky 스카치가 많다. 이탈리아인은 스트레이트를 좋아한다.
이것으로 이탈리아 요리 이야기는 끝난다. 언제나 경제적인 요리만을 먹고서는 이탈리아 요리의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값이 비싼 것이 맛있는 것이 라고는 말할 수 없다. 맛있는 요리를 자신이 직접 찾아다녀 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 사정을 안다면 자신들도 국내에 들어갈 때 비싼 와인은 못 구하고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인사를 위해 가져가서 선물하는데 “선생님, 혹은 선배님, 마침 나와 있는 상품이 이것뿐이라서 약소하지만 제 성의이니 받아주십시오.” 하고 내놓으면 “으잉! 이렇게 귀한 것을!!” 하면서 입이 귀 밑까지 째지게 좋아하면서 사양 한마디 없이 받는다지 않는가, 하여간 귀족문화의 필수품이고 서양에서 더욱이 고급의 ‘음악’을 공부한 엘리트들의 사치에서는 당연히 각 개인들의 수준을 척도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표시이니 피곤하기도 하겠거니와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품격을 대변하는 제품이기도 하니 얼마나 자신들을 내세우기에 편리한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형식과 모양을 쫒는 사람들에게 더 없는 장식품인 것이다. ‘가이드’의 은연중 자신들의 빈한한 처지와 그들 사치의 허영에 짓눌려 대물림되고 있는 힘든 관습의 무게를 느낀다. ‘가이드’의 계속된 포도주 설명과 용도를 귀로 흘리면서 창밖의 이색적인 풍경에 의문이 갔다.
중세풍의 성곽들과 도시들이 산 정상에서 시작되고 대부분의 주택과 마을들이 산위에 발달하여 있다. 첫 번째 의문이 산꼭대기 저 사람들은 무엇으로 생활할까? 산 밑의 경작지에는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 무엇 때문에 저렇게 올라가 있지? 등등.. 중세에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쉽고 당시에 흑사병 등 전염병이 창궐하여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일조량이 적은 유럽의 기후에서 조금이라도 햇볕을 많이 쬐기 위해서 등등.. 과연 그렇겠구나~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주택들이 산 밑으로 내려와 있었고 우리가 쓰는 ‘빌라’의 기원이 저기 산꼭대기에서 지어진 아파트에서 나왔다고 했고, 소형 크레인이 곳곳에서 저층의 집들을 짓고 있었다. 로마에서 합류한 ‘가이드’가 한참을 떠들고 잠시 쉬자 우리 본래의 ‘가이드=오 과장’이 피렌체 에 대하여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였다.
●피렌체 탄생과 모직물의 도시로서의 발전
고대 로마의 명장 카이사르가 기원전 59년에 아르노 강 북쪽에 식민지를 세운 것이 피렌체 시의 시작이다. 카이사르는 이곳에 도선장을 정비해 아르노 강의 안전한 도하를 보증함으로써 로마와 북이탈리아를 잇는 교통로의 확보를 꾀했다. 1082년에 신성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의 군대를 격파한 피렌체는 1125년에는 자치도시를 선언했다. 피렌체 약진의 원동력이 된 것은 모직물 산업의 발전이다. 피렌체의 모직물업자는 프랑스나 플랑드르지방에서 수입한 양모와 동방의 레반트 지방에서 수입한 염색재료로 고급질의 모직물을 생산해 유럽 제국이나 이집트로 수출했다. 나중에 영국 등 신흥국에서 모직물업이 성해지자 피렌체 업자는 품질을 높이고 디자인에 힘을 기울여 이에 맞섰다. 현재 피렌체의 토르나 부오니 거리에는 구치 등의 유명점이 들어서 있고 패션이 관광과 나란하게 2대 산업을 형성하고 있으나 모직물업의 전통이 지금의 패션산업에 남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금융의 수도, 피렌체
피렌체인들은 모직물업으로 얻은 이익을 국왕이나 제후에게 빌려주는 등 은행업을 발전시켰다. 피렌체에서 주조된 플로린 금화는 이 시대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통화였으며 피렌체는 13세기 말에는 2세기에 걸쳐 유럽 금융의 수도로 군림하였다. 이 은행업의 번성을 빼면 피렌체에서의 르네상스 개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후에 피렌체의 지배자가 된 메디치가도 은행업으로 재산을 불린 집안이었다. 피렌체의 발전을 담당했던 상공업자는 1293년에 포고한 ‘정의의 규정’ 으로 호족을 정치에서 추방하고 정치적으로도 권력을 잡았다. 이 점에서도 피렌체는 일찍이 비스콘티가가 지배자가 되었던 밀라노나 교황의 로마와는 다르다. 1290년대의 피렌체에서는 산타크로체 교회ㆍ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두오모)ㆍ베키오 궁정 등이 차례로 착공되었는데, 이는 이 무렵 권력을 쥐었던 대상인의 부와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1406년에 숙적 피사를 정복함으로써 바로크의 출구를 확보한 피렌체는 이제 명실 공히 서구 경제의 중심의 위치하게 된다. 1417년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착공된 두오모의 둥근 지붕은 이 피렌체 번영의 상징이었다.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작은 산과 같은 그 위용은 건축학상으로도 기적이라고 한다. 피렌체의 경제 번영은 이윽고 메디치가하에서 피렌체를 예술의 도시로 승화시켰다.
●대 파토로네 코지모 디 메디치의 등장
1434년 망명지에서 피렌체로 돌아온 코지모 디 메디치는 메디치가의 지지자에 의해 시정을 장악할 수 있었다. 코지모는 피렌체 시민의 자유에 대한 정열을 배려해 자신은 정치일선에 나서지 않고 메디치가의 부와 민중의 메디치가에 대한 인기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피렌체를 지배하려 했다. 그리고 유능한 경영자로서 사업의 발전에 노력을 기우렸다. 코지모 자신의 생활은 무척 검소했지만 학예 발전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아 그리스의 석학을 피렌체에 초대 했고 나아가 제국으로부터 귀중한 서적을 구입해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이 시대 코지모의 보호 아래 피렌체에서 활약했던 예술가로는 기베르티ㆍ도나텔로ㆍ프라 안젤리코ㆍ필리포리피ㆍ우첼로ㆍ알베르티 등이 있다.
●천재 브루넬레스키의 고향
코지모는 또 브루넬레스키나 미켈로초를 이용해 건축사업을 폈다. 이 브루넬레스키의 손에 의해 르네상스의 피렌체는 면모를 입신했다. 직접 피렌체 거리를 걸어보면 피렌체를 대표하는 예술가는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가 아니고 실은 건축가 브루네레스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두오모의 둥근 지붕을 비롯해 산 로렌초나 산토 스피리토의 교회 등 도시 곳곳에서 브루네렐스키의 업적을 인정하게 된다.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인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도 브루넬레스키의 설계이며 장려한 피티 궁전도 그의 설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 피렌체 거리의 아름다움은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성과 피렌체의 경제적 번영으로 태어난 것이다.
●로렌초 디 메디치의 야심과 복수
1469년에 피렌체의 지배자 위치에 오른 코지모의 손자 로렌초는 이때 20세의 젊은이였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에 오르자 비범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메디치가를 지지하는 그룹에 권력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로렌초의 이런 태도는 반대파를 자극해 드디어 1478년에 파초가의 음모사건이 발생했다. 부활제인 4월 26일 일요 미사가 행해지고 있는 두오모에서 음모의 실행 단체는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를 덮쳤다. 동생 줄리아노는 암살자의 칼에 쓰러졌지만 로렌초는 가벼운 상처를 입고 동료들의 보호를 받으며 성물실로 도망쳤다. 두오모에서의 암살과 병행하여 다른 그룹은 시청인 베키오 궁을 점거하고는 시뇨리아 광장에서 민중을 선동했다. 그러나 줄리아노의 죽음에 격양한 피렌체 시민은 그들의 호소에 귀기울이지 않아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이 사건에 대한 메디치파의 복수는 무서운 것이었다. 3일 동안 음모에 가담했다고 보이는 70명 이상의 사람들이 베키오 궁과 바르젤로궁 창에서 내걸려 교수형에 처해졌다. 줄리아노를 암살한 하수인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체포되어 터키의 술탄으로부터 로렌초에게 인도되었고 1년 반 후 바르젤로 궁의 창에서 교살 당했다. 이 사건 후 나폴리군이 피렌체 영내에 침입해 와서 피렌체는 한때 곤경에 빠졌지만 로렌초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단신으로 나폴리 왕에게 달려가는 기사회생의 방법으로 평화의 실현에 성공했다. 피렌체로 돌아온 로렌초는 메디치가의 피렌체 지배를 확립했고 이후 조부 코지모의 정권을 이어받아 이탈리아 평화유지에 노력했다.
●피렌체의 황혼
그러나 그것은 피렌체의 르네상스 몰락 직전의 일시적인 부흥이었다. 로렌초의 시대에 메디치가의 사업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로렌초의 능력 부족이라기보다 이 시대의 일반 정세에 의한 것이었다. 로렌초는 점차 사업에서 손을 떼고 황금을 토지구입에 충당했다. 그리고 정치활동의 여가는 칼레지의 별장에서 네오플라토니즘의 문인들과 우아한 철학논의에 시간을 보냈다.
●괴승 사보나롤라의 등장
로렌초 말년 피렌체에서는 산 마르코 수도원장 사보나롤라의 설교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피렌체 시민의 향락적 생활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신의 가르침에 따라 청빈한 생활을 할 것을 설교했다. 프라안젤리코의 ‘수태고지’로 유명한 산 마르코 수도원은 코지모 디 메디치가 건립한 것으로 가장 깊숙한 곳의 세 방은 원장의 거실로 썼으며 현재는 사보나롤라의 초상화와 유품이 소장되어 있다. 사보나롤라의 명성을 더욱 높인 것은 로렌초의 죽음과 외적의 침입을 예언한 것이었다. 설교회장은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더 큰 두오모로 옮겨졌지만 그래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청중이 두오모 주변에 넘쳤다고 한다. 1494년 프랑스군의 침입 후 메디치가가 추방당하고 피렌체에서는 민주적인 정부가 성립했으나 내부 대립의 심화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 혼란을 뚫고 나가려면 사보나롤라의 위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1498년 5월에 사보나롤라는 이 단죄로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에 처해졌고 잿가루는 아르노 강에 뿌려졌다. 지금도 광장의 처형 터에는 이 사실을 전하는 비가 서 있다. 사보나롤라의 처형 직후 피렌체 공화국 제 2 서기관장에 취임한 마키아리의 노력으로 피렌체는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서자. 체자레보르지아의 야망을 꺾고 자유와 독립을 지켰다. 미켈란젤로의<다비드 상>은 피렌체의 자유와 독립을 상징한 작품으로, 제작되었을 당시에는 시뇨리아 광장에 있었다. 그러나 1512년에 피렌체로 진격한 스페인군 앞에서 마키아벨리에 의해 조직된 시민군이 이를 파멸했고 메디치가가 그 뒤에 피렌체에 복귀하면서 피렌체는 자유를 잃었으며 르네상스 문화는 두 번 다시 꽃 피지 않았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입니다. 리 쌍세라하여 문화의 부활을 의미하며 리=다시 , 쌍세=탄생 이란 뜻입니다. 르네상스는 로마제국의 역사와 연결 됩니다.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자 이탈리아 반도를 포함한 로마제국은 혼란에 접어듭니다. 북쪽의 게르만족의 침입이 있었는데 이때 쳐들어온 게르만은 고트족이었고(GOTH→Gothic), 이들은 다시 멀리 스칸디나비아서 내려온 롬바르드족의 침입을 받아 568년에 롬바르디아 지방을 점령하고 롬바르드 왕국을 창건하여 북부 이탈리아 지방을 약 200년 동안 지배 했다. 로마제국이 멸망 하였으나 크리스트교는 유럽 대륙을 기독교라 하였고 오히려 로마교황의 세력은 강대해져서 각 나라의 왕위계승의 정통성은 교황의 인정서가 있어야 가능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는 천 여 년이 넘도록 이문제로 외국세력들의 대결장으로 혼란을 겪었고 특히 북부 롬바르드 왕국은 그러한 로마 교황의 위협으로 존재하였다. 그래서 프랑크 왕국의 피핀 왕에게 롬바르드 왕국들 제거하도록 요청하였고 피핀은 로마 교황령을 정하여 신성 불가침지역으로 선포한다. 745년 로마교황형이 탄생하여 오늘의 바티칸이 되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의 주변
미켈란젤로 광장에서는 두오모와 지오토 종탑, 베키오 다리 등 피렌체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광장 중앙에는 <다비드> 상 복제품이 서 있다.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elangelo
중앙에 미켈란젤로의 커다란 <다비드 상(복제품)이 서 있는 광장이다. 시내 동남쪽에 있는 낮은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아르노 강에 의해 둘로 나뉜 피렌체의 장미색 거리와 두오모의 쿠포라가 인상적이다. 피렌체가 한눈에 들어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림 미켈란젤로 광장과 피렌체 시내 전경
●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 San Miniato al Monte
내부에는 마자초의 <삼위일체>와 로이바의 채색 테라코타로 만든 세례반Lavado이 있다. 왼쪽의 곤디가 예배당에는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 안쪽에는 기를란다요 작인 <마리아와 조반니의 생애>의 프레스군화 등이 있어 볼 만 하다. 또 정면의 왼쪽으로 들어가면 박물관 Museo S.M Novella가 있다. 녹색의 승원 프레스코화ㆍ스페인 예배당ㆍ스트로치 예배당 등 이 볼 만하다.
그림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 그림 산타 크로체 성당 Santa Croce
●산타 크로체 성당 Santa Croce
피렌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광장에 있는 큰 성당이다. 옆에 부속 건물로 승원 안뜰과 브루넬레스키의 파치가(家) 예배당은 피렌체 르네상스의 정수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140cm X 140cm의 넓은 교회 내부에는 이 도시에서 쫓겨나 라벤나에서 죽은 단체의 기념묘에서부터 미켈란젤로ㆍ마키아벨리ㆍ로시니 등 276개의 묘가 있다. 내부 장식도 여러 예술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른쪽 다섯 번째 기둥 부분에 있는 도나텔로의 금색 부조 <수태고지> 조토의 프레스코화 <산 프란체스코의 생애 La Vite Di San Francesco> 그리고 도나텔로의 십자가 Crocifisso는 꼭 보아야 한다. 또 파치가 예배당 옆에는 박물관 Museo dell'Opera di S. Croce가 있으며 치마부에와 도나텔로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Santa Maria Novella
진기한 목세공 같은 아름다운 파사도를 가진 내부의 길이가 100m나 되는 교회이다. 14세기에 도미니크파의 설교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그림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두오모 성당 주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두오모는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피렌체 공화국과 길드가 함께 지은 것으로 1292년에 착공, 1446년에 이르러 완공된 피렌체의 상징물이다. 106m의 높이인 대원개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7년에 완성되었는데 3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이며 성당 왼쪽 입구에서 463계단을 올라가 대원개의 옥상에서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꽃의 성모 교회, 두오모 Duomo(Santa Maria del Fiore)
옛날 피렌체 공화국 종교의 중심지로 흰색ㆍ핑크ㆍ그린의 대리석이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대성당이다. 4세기의 산타 레파라타 교회 상부에 당시 피렌체 명성에 어울리도록 ‘되도록 장엄하게 그리고 호화로운’교회를 짓겠다는 취지 아래 1296년에서부터 175년간의 세월에 걸쳐 건설한 것으로 약 3만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이이다. ‘언덕과 같다’ 고 형용되었던 대쿠포라는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것이다. 호화로운 바깥과는 대조적인 내부는 베네디토 마이아노의 십자가, 안드레아 델 카스타니요ㆍ파올로베첼로에 의한 2개의 대규모 기마천상화, 로비아의 채색도판으로 만든 아름다운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또 쿠포라 안쪽에 바자리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최후의 심판>도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쿠포라에는 464단의 계단으로 되어 있어 피렌체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지하의 산타 레파라타 교회 터Cripta Reparata에는 이 쿠포라의 설계자 브루넬레스키의 묘가 있다.
그림 피렌체 대 성당 구조(김은영/부산일보)
●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S. Giovanni)
두오모 앞의 8각형 건축으로 두오모와 같이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이루어졌으며 11~13세기의 건축물이다. 이곳의 수호성인 성 조반니에게 바쳐진 것으로 두오모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성당으로 이용되어 왔다. 단테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3개의 브론즈 문이 있는데 남쪽의 문은 안드레아 피사노, 북과 동쪽의 문은 기베르티의 작품이다. 이 동쪽의 문은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이름붙인 것으로 방문객들마다 손으로 만져 지금은 전체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내부의 쿠포라 부분에는<최후의 심판>, <창세기> 등을 주제로 한 비잔틴풍의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도나텔로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교황 요한 23세의 묘도 있다.
그림 산 조반니 세례당 그림 조토의 종루 Campanilr di Giotto
(Battistero S. Giovanni)
● 공예 걸작품인 조토의 종루Campanilr di Giotto
높이 82m의 조토가 설계한 종루이다. 조토의 예술성은 단테가<신곡>에서 언급했을 정도이며 당시는 ‘과거누구의 예술보다 완전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탑의 디자인과 색채의 오묘함 그리고 섬세한 부조를 보면 누구나 이 말을 납득할 것이다. 414개의 계단을 통해 상부 테라스로 올라갈 수 있다.
■‘천국의 문’(동문)의 해설
① 아담과 이브의 창조, 원죄 ② 아벨의 희생, 카인의 아벨 살해
③노아와 그의 가족 ④ 아브라함의 이야기, 이삭의 희생
⑤ 에사우와 야곱의 이야기 ⑥ 요셉과 형제들
⑦ 모세와 율법 ⑧ 여호수아 이야기
⑨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⑩ 솔로몬과 시바 여왕
그림 남쪽 문 그림 북쪽 문
이탈리아 피렌체 한 가운데는 마치 꽃봉오리 형상 같은 아름다운 지붕을 가진 성당이 있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은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이라는 뜻이다. 이 성당 바로 앞에는 새날을 상징하는 팔각형 모양의 ‘성 세례자 요한 세례당’이 있다. 이 세례당에는 14~15세기에 만들어진 세 개의 육중한 청동문이 있다. 1330년대에 안드레아 피사노가 만든 남문에는 세례자 요한의 생애가 묘사됐고, 1403~1424년에 로렌조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가 만든 북문에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표현됐다. 1425~1452년에 같은 기베르티가 만든 동문에는 구약의 오경과 역사서에 나오는 주요 열 장면이 등장한다.
내로라하는 조각가들이 시합을 벌인 이야기는 레오나르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피렌체의 성 요한 세례당에 붙일 청동문 공모 이야기. 결국 피렌체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가 우승을 차지하고, 뒤이어 천국문 제작까지 독점하는 명예를 차지합니다.
첫 번째<청동문>은 <천국문> 앞에서 볼품없어 보입니다. 첫 번째 <청동문>은 오밀조밀한 맛은 있지만, 부조가 스물여덟 점이나 들어가서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지 다 읽어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천국문>은 부조를 열점으로 줄여서 장면마다 크기가 커져서 보기에도 시원합니다. 황금빛 광채가 우리를 성서의 줄거리 속으로 안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국문>은 닫쳐 있어도 꼭 훤히 열려 있는 느낌이 듭니다.
프랑크 왕국과 로마 교황의 관계는 계속되어 피핀의 아들 카를시대에 절정을 이루는데 카를 대제는 샤를마뉴이기도 하다. 그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침공하는 이슬람 세력을 막아 유럽대륙에서 크리스트교를 지켰으며 롬바르드 왕국을 멸망시키고 프랑크, 롬바르드 왕국의 왕이 되었고 800년에 로마교황으로부터 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됨으로써 이탈리아 역사는 도이칠란트, 프랑스의 역사와 관계를 맺게 된다.
karl카를(독일어), Carolus카롤루스(라틴어), carol카롤(루마니아어) carlo카를로(이탈리아어), carlos카를로스(에스파냐어), charles샤를(프랑스어), charles찰스(영어), karol카를(폴란드어), karel카렐(네덜란드어), 로마의 북부지방에 게르만족인 프랑크왕국의 지배에 들어간 반면 남부이탈리아는 827년 튀니지에서 건너온 이슬람교도의 아랍인의 침공을 받아 점령되어 북부와는 다른 아랍식,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남부이탈리아의 이슬람 지배는 11세기에 들어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족인 노르만족에 의해서 끝나게 된다.
노르만족은 11세기부터 로마순례, 또는 용병으로 내려와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십자군으로 대거 몰려 시칠리아 섬을 점령하고는 1130년에 로저2세에 의해 시칠리아 왕국을 건설하게 되고 동부이탈리아는 동로마제국과 관계하면서 콘스탄티노플, 즉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어 북부의 게르만, 남부의 아랍과 라틴, 그리스의 혼합문명과 동부의 비잔틴 문명권으로 나뉘게 되었다. 840년 카를 대제가 죽고 그 후손들 사이에 영토싸움이 벌어지고 843년 베르댕verdun 조약에 의해 프랑크 왕국은 셋으로 분할되었다가 870년 메르센조약으로 이탈리아 북부는 동 프랑크왕국(도이칠란트)의 소유가 되는데 황제 프레드리히 2세가 1250년 죽자 세력이 약해져서 신성로마제국의 주도권은 오스트리아 합스브르크 왕가로 넘어간다. 결국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브르크 왕가, 프랑스 브로봉 왕가, 도이칠란트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 지역에 대한 어느 나라도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자기나라 국내 문제로 관심이 없어지자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지방에서는 실력 있고 돈 많은 도시들이 두각을 나타냈는데 비잔틴과 교역으로 크게 돈을 번 이 도시들은 십자군 전쟁으로 더욱 그 중요성이 돋보이게 되었는데, 즉 십자군이 이런 도시들을 중심으로 휴식과 보급, 부대정비를 실시하여 동방원정길에 나섰던 것이다. 이렇게 돈은 벌게 된 도시들은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발전하였고 용병으로 성을 지키게 하였으며 부를 축적하여 자유를 누렸다.
그림 미켈레 성당과 내부
●예전의 곡물창고, 오르산미켈레 교회 Orsanmichele
옛날 곡물창고였던 것이 피렌체의 상공회관이었고 지금은 성당이다. 건물 바깥벽에 장식된 각종 동상은 당시 피렌체를 이끌던 은행가․수공업자 등 각 업종의 수호성인이다. 당시 유럽 제 1의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피렌체의 모습을 지금도 보여주는 듯하여 흥미 있다. 내부에는 14세기의 소예배당Tabernacolo을 빼놓을 수 없다. 대리석 ․ 금으로 세공된 부조가 볼 만하다. 내부 벽면 곳곳에는 위에서 아래로 밀가루를 내려 보내는 관 등 곡물창고의 면모가 남아있다.
성누가 –행정가,성 엘리지오-편자공,성마가-포목업자,성마태-은행가,성필립-신발공
성모자-의사약사,성베드로-정육업자,성스테파노-모직업자,성요한-모직상,성제임스-모피상,성 조지-갑옷장인
오르산미켈레(Orsanmichele)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성당이다. 이 성당은 본래 산 미켈레 수도원의 텃밭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피렌체의 비아 칼차이우올리(Via Calzaiuoli)에 위치하고 있으며, 1337년 건축가 프란체스코 탈렌티와 네리 디 피오라반테, 벤치 디 치오네에 의해 곡물시장으로 처음 건설되었다가 1380과 1404년 사이 피렌체의 강력한 상공업 길드들의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정사각형 건물의 일층 내부는 기존의 곡물시장의 로지아(loggia)를 형성하던 13세기의 아치들이 있는데, 이층은 사무소로 운영 되었으며 삼층은 기근과 전쟁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피렌체 시영(市營) 곡물 창고였다.14세기 후반 상공업 길드들은 도시정부로 부터 각 길드의 수호성인의 조상(彫象)을 제작해 성당의 파사드를 장식할 것을 의뢰 받았는데, 현재 볼 수 있는 조각상들은 복제본으로서 원본들은 박물관으로 옮겨진 상태이다. 오르산미켈레의 파사드는 건축적으로 기획된 열 네 개의 외부 벽감을 가지고 있는데 1399년부터 1430년경까지 조각상들로 채워졌으며, 가장 부유했던 세 길드는 벽감에 들어갈 자신들의 수호성인 조각상을 석재보다 대략 열배가량 고가인 청동제로 의뢰하기고 했다.
●시뇨리아 광장 Pizza della Signoria
옛날 그리고 지금도 피렌체 행정의 중심지로서 공화정을 모토로 했던 피렌체인이 곳곳에 모여 토론을 벌이고 거수에 의해 표결에 부쳤던 곳이다. 광장은 베키오 궁정과 많은 조각이 늘어선 조각관이 있는 야외 미술관의 역할도 한다. 광장의 다비드 상(복제품) 과 넵튠의 분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모여 휴식을 취한다. 이 분수 근처 둥근 브론즈의 부석이 매장되어 있는 곳이 저 사보나로라가 화형으로 처형된 장소이다.
●단테 생가
시뇨리아 광장에서 우피치미술관으로 통하는 골목에는 르네상스의 단초를 열었던 불멸의 고전 신곡(神曲)을 저술한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 생가가 있다. 단테 생가는 비좁은 골목에 있는데, 오래 전에 없어졌던 생가를 1865년 피렌체시가 단테 탄생 600주년을 기념하여 복원 후 미술작품 갤러리로 사용하다가 1965년 단테 탄신 70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한 것이다. 비좁은 공간의 층계를 올라가면 7개의 방에 걸쳐 단테의 침실과 서재, 그리고 그의 행적을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생가 골목길의 왼편에 단테가 다녔다고 하는 성당과 그 당시 신곡을 출판했다고 하는 인쇄소도 있다.(출처 : 디트news24)
그림 단테생가와 동상
●로지아 데이 란치 Loggia dei Lanzi
14세기 말에 코지모 1세의 명에 의해 비를 피하는 집회장소로서 건설되었다. 때로는 그의 호위를 맡은 창병의 결집소로도 이용되었다. 지금은 조각 전람회 앞에는 관광마차가 진치고 있으며 좀 악취는 나지만 이곳은 고대 그리고 르네상스 조각의 화랑이다.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상과 지암볼로냐의 ‘사비네 여인들의 강탈’ 등이 있다.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시뇨리아 광장을 내려다보는 94m의 탑이 있는 강건하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딕 건물이다. 옛 피렌체 공화국 청사로 입구에는 피렌체의 사자상 Marzocco이 장식되어 있다.
르네상스 대표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란치의 회랑(Loggi dei Lanzi)
넵튠분수, 다비드상,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상,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기수상의 듀크 코지모(Duke Cosimo) 1세의 초상화식 동상(1594년)
메두사의 머리를 벤 페리세우스
로마의 로물루스네무스 군대가 사비니마을 침략 여인겁탈,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안고 있는 메넬라오스,
메디치 사자들(Medici lions), 켄타우로스(반인반마) 니수스를 죽이는 헤라클레스, 광장의 인간 마네킹
폴릭세나의 강탈-<아킬레스와 트로이 공주 포리세나>삐오 페디의 폴리세나의 겁탈(The Rape of Polyxena),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르는 유디트,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상(반치오 반디넬리, 1533)
섬세한 안뜰 가운데에는 베키오가 만든 ‘이카루를 가진 천사’(복제품)라는 분수가 있다. 내부는 2,3층으로 되어있고 궁전 내부를 견학할 수 있다. 2층의 ‘1500년대의 방 Salone dei Cinquecento'은 피렌체 공화국의 회의장이었던 곳으로 바자리파의 회화로 장식되어 있다. 3층의 ‘1200년대의 방 Salone dei Duecento’의 천장화 또 의상실에 있는 당시 피렌체 지도의 태피스트리(16세기 작품)도 볼 만하다. 그 외에 바자리에 의해 설계된 코지모 1세와 그의 처 에레오노라의 집이 있다.
그림 피렌체 지도의 태피스트리 그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6세기 작품)
(티스타 스포르짜)
그림 80세의 미켈란젤로가 완성하지 못한 피에타 상 과 그림 미켈란젤로<아담과 이브의 원죄>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장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는데 원개의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심판’ 이 프레스코 형식으로 그려져 있고 제단 왼쪽으로는 그의 미완의 대작인 “피에타” 가 있다. 흰색과 핑크, 녹색의 대리석으로 된 외관은 장엄하면서도 꽃의 산타 마리아 라는 명성에 걸 맞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돈 많은 상인, 큰 토지의 지주를 중심으로 한 도시세력은 주변 봉거 영지의 지배자인 기사계급과 손을 잡고 도시와 그 주변 영토를 독립국가처럼 지배하는 이른바 콤무네Commune를 만들어 인근 봉건 왕국들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지켜 나갔다. 이들은 왕계가 아닌 세도가들에 의한 공화국 형태로 유지하는데 공화제가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각 도시국가들 간의 무역에서 경쟁관계였고 상인 지주들 세도가의 지배는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하여 가문끼리나 세력끼리 서로 대립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15C 이들 도시국가들이 전성기 일 때 르네상스 운동이 도시국가들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 피운 것도 도시끼리의 경쟁에서 나온 경제전쟁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도시간의 반목과 경쟁은 내부적으로 지배계급과 지배당하는 시민들 사이에 심각한 반목이 계속되는데다 밖으로는 유럽 전체가 교황과 황제간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으로 혼란스러웠다. 도시국가들도 이 싸움에 휩쓸리게 되는데 교황파를 Guelf 구엘르파, 황제파를 Ghibelline 기벨린파로 나누어 전쟁을 하게 된다. 안팎으로 분쟁과 소요가 심해지자 도시국가들은 시뇨리아SIGNORIA라는 지도자를 선출하여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실권자를 요구했다.
그림 바르젤로 국립 박물관 Museo Nazionale del Bargello
●바르젤로 국립 박물관 Museo Nazionale del Bargello
전형적인 중세 건축의 건물로 중세에는 집정장관의 저택으로 이용되고 그 후 토스카나 대공국 시대에는 경찰본부 Bargello가 있었던 곳이다. 미술관은 조각으로 둘러싸인 정원과 1,2,3층으로 나뉘어 있다. 1층에는 미켈란젤로의 <바쿠스 Bacco><성가족 Tondo Pitti>와 16세기 피렌체파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도나텔로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다비드상 Davide>은 르네상스에 있어서 최초의 나체상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 <성 조르조 상 San Giorgio> 등이 있다. 3층에는 데라 로비아가 만든 아름다운 채색 도필(陶筆)과 르네상스 조각ㆍ무구 등이 진열되어 있다.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
아르노 강에 걸린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 양쪽으로 귀금속 세공점과 보석점들이 늘어서 있다. 층계 위는 엣날 우피치 궁과 피티 궁전을 잇는 통로로 바자리가 건설한 것인데, 당시에는 작은 차도 다녔다고 한다.
그림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
■아르노 강 주변
●피티 궁전 Palazzo Pitti
피렌체 르네상스의 전형적인 건물이다. 피렌체의 상인 피티가 궁전 건설을 착공했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그 후 당시에 베키오 궁전에 살던 메디치가의 코지모 1세에게 매각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다. 궁전 내부에는 라파엘로 작품 11점을 소장한 파라티나 화랑과 은기 박물관ㆍ현대 미술관ㆍ콘서트 홀 등이 있다. 궁전 뒤에는 자연을 사랑한 코시모의 아내 엘레오노라를 위해 만들어진 광대한 보볼리 공원이 있다. 지금은 완전히 산책로로 되어 그 모습이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토마토나 감자를 심었었다고 한다.
그림 피티 궁전 Palazzo Pitti 그림 보볼리 정원 Giardino di Boboli
●보볼리 정원 Giardino di Boboli
피티 궁전 뒤에 자연 그대로의 숲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 이탈리아식 정원이다. 무료 입장이므로 휴식을 취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궁전 왼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인조 종유동과 거북이를 타고 있는 난장이의 분수이다. 이것은 코지모 1세를 섬겼던 도화사를 모델로 한 것이다. 야외 극장을 지나 소나무와 삼나무의 사잇길을 지나면 레몬ㆍ오렌지 나무가 무성하며 작은 섬이 있는 광장 Piazzale dell'Isoletto에 도착하게 된다. 더 나아가면 언덕 정상에는 베르베테레 요새가 있고 여기서 바라본 피렌체 민가는 잊을 수가 없다.
●팔라티나 회화관 Galleria Palatina
피티 궁전 2층에 있으며 라파엘로 작품 11가지를 소장한 라파엘로 방은 반드시 볼 만한 미술관이다. 특히 꼭 보아야 할 것은 티치아노의 작품인 <음악회 Concerto>와 <회색의 목(目)신사 L'uomo degli Occhi Grigi>이다. 그리고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자 Madonna del Granduca><작은 의자의 성모 Madonna della Seggiola> 등이다. 그 외에 루벤스ㆍ카라바조ㆍ필리포리피 등의 작품이 있다.
그림 팔라티나 회화관 그림 은기 박물관 Museo delgi Argenti
Galleria Palatina
그림 은기 박물관 Museo delgi Argenti
●은기 박물관 Museo delgi Argenti
궁전 1층에 있는데 훌륭한 보석ㆍ금은 세공품ㆍ상아와 에나멜 등은 메디치가의 부와 권력을 생각하게 한다. 로렌츠 이르 마니피코 소유인 화병 수집품도 유명하다.
그림 성 스피리트 성당 Santo Spirito
●성 스피리트 성당 Santo Spirito
오전 중에는 번화한 시장이 서고 여름밤에는 수박 장사나 노천 카페가 늘어서 있는 성 스피리트 광장 한쪽에 있는 교회이다. 만년의 브루넬레스키가 만년에 디자인한 전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의 교회이며 소박ㆍ검소하면서도 내부는 장중한 분위기로 필리포 리피가 그린<성모> 등 미술적 가치가 높은 것이 많다.
그림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Santa Maria del Carmine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Santa Maria del Carmine
성당 내부 오른쪽의 브란카치 예배당 Capella di Brancacci의 마사초와 마솔리노의 프레스코화를 빼고는 피렌체 르네상스를 말할 수 없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천재 마사초는 르네상스기에 발전한 투시화법과 명암을 응용하여 회화에 양감을 주었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당당하게 표현했던 시대의 혁신자였다. 예배당 입구 기둥 위에 있는 마솔리노의<아담과 이브(원죄)>, 마사초의 <헌금><낙원추방>은 지금도 생생한 감동을 주고 있다.
■산 로렌초 성당 주변
●산 로렌초 성당 San Lorenzo
메디치가 대대의 사원이 있으며 시대와 양식이 다른 3개의 묘지 공간, 즉 브루넬레스키의 구 성물실ㆍ미켈란젤로의 신 성물실ㆍ17세기의 군주의 예배당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구 성물실만 있고 그 외 두 곳은 메디치가 예배당에 있어서 성당 뒤편으로 들어간다. 잡다한 장식이 없어서 우아하고 맑고 깨끗한 분위기로 가득찬 구 성물실. 도나텔로 작은 흉상이 있다. 사랑스러운 정원에서 이어지는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계단을 오르면 2층에도 그가 설계했다는 라우렌치아노 도서관 Biblioteca Mediceo Laurenziana이 있다. 이 도서관에는 메디치가 대대로 수집한 고문서 1만 권이 소장되어 있다.
그림 산 로렌초 성당 San Lorenzo
●메디치가 예배당 Cappelle Medicee
산 로렌초 교회 뒤에 입구가 있다. 군주의 예배당과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새벽>ㆍ<황혼>ㆍ<낮>ㆍ<저녁>의 4체의 상(像)이 있는 신성물(新聖物)이 있다.
그림 메디치가 예배당 그림 군주의 예배당 La cappella dei Principi
Cappelle Medicee
●군주의 예배당 La cappella dei Principi
이미 정치적 권력을 잃은 메디치가(家)가 17세기에 그 부유함을 나타내려는 허영심에서 세운 예배당이다. 귀한 돌과 대리석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인 호화로움은 보는 사람들을 압도시킨다.
●신 성물실 Sacrestia Nuova
하늘로 오를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밝은 신 성물실은 미켈란젤로의 설계이다. 이 도시에서 다양한 피렌체 르네상스의 유품이었던 공예품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느끼게 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고뇌하는 4체의 상은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던 인간 심리를 호소하는 듯 강력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입구 오른쪽에는 로렌초 2세의 묘와 맞은편에 줄리아노의 묘가 그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명상하는 로렌초 상 아래에 남성상<새벽>과 여성상 <낮>과 남성상 <밤>이 배치되어있다. 이 지하 벽에는 미켈란젤로가 휴식 때 그린 데생이 남아있다.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Palazzo Medici-Riccardi
거친 돌로 쌓아올린 외관은 당시 메디치가의 융성에 비해 소박한 편이다. 그 이유는 유럽 제 1의 거부로 명실 공히 피렌체를 지배했던 코지모 1세가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을 때 민중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체험하고 친구인 건축가 미켈로치와 상담해 이렇게 검소한 궁전을 지은 것이다. 1460년부터 약100년 간 메디치가의 주거지였다. 내부, 안뜰 우측의 계단을 올라간 곳에 위치한 예배당에는 고촐 리가 그린<동방 3박사의 예배>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이 그림이 있는 말 위에 용사는 메디치가의 로렌초인데 아름다운 귀공자로 그려져 있으나 실은 매우 추남이었다고 한다. 그림 안에 빨간 베레모를 쓰고 있는 것은 당시의 화가 고촐리이다.
■산 마르코 광장 주변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가 가득한 산 마르코 미술관 Museo di San Marco
옛날 도미니크회 수도원이었던 곳으로 내부는 이곳 수도승이었던 프라 안젤리코와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사보나로라의 승방과 이곳의 절대적 재정 보호자였던 메디치가의 코지모 베키오의 명상실도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정면에 <수태고지 Annunciazione>가 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Galleria dell' Accademia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피렌체파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소규모 미술관이다. 그러나 생애를 예술에 바친 미켈란젤로의 혼이 그의 다이나믹한 조각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예 Schiavi>는 줄리오 2세의 묘를 장식하기 위해 조각된 미완성의 작품이다. <다비드 상 Davide>은 피렌체 공화국의 자유의 상징으로 시뇨리아 광장, 미켈란젤로 광장에 있는 다비드상의 원작품이다. 기타로는 <산 마테오 상 San Matteo><팔레스트리나 의 피에타 상 Pietá di Palestrina>리피ㆍ보티첼리ㆍ가디 등의 작품이 있다. 2층에는 14,15세기의 제단화 등이 있다.
그림 아카데미아 미술관 Galleria dell' Accademia 그림 다비드상 원작품
그림 팔레스트리나 의 피에타 상 Pietá di Palestrina 그림 노예Schiavi
●고아양육원 Spedale degli Innocenti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양육원이며 피렌체에는 이런 자선사업이 발달해 두오모 옆에는 미혼모를 위한 시설도 있었다고 한다. 15세기에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했으며 정면은 9개의 아치로 구성된 아케이드로 되어 있다. 그 아치 사이에 포대에 싼 유아 상의 아름다운 도자기 메달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필리포 리피의 작품인 <성모자와 천사 Madonna col Bambino e un angelo>나 기를란다요가 그린 <동방박사의 예배 Adorazione del Magi>가 있다.
그림 고아양육원 Spedale degli Innocenti
그림 필리포 리피의 성모자와 천사 그림 동방박사의 예배 Adorazione del Magi
Madonna col Bambino e un angelo
■스트로치 궁전 주변
●스트로치 궁전 Palazzo Strozzi
르네상스 궁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다. 스트로치가를 위하여 1489년부터 8년에 걸쳐 건축된 것이다. 지하에는 소박물관이 있어 스트로치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위층에는 현대 미술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는 미술전과 견본 시 등이 열리는 화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림 스트로치 궁전외부 Palazzo Strozzi 그림 스트로치 궁전내부 Palazzo Strozzi
●‘마시는 온천’ 몬테카티니 테르메 Montecatini Terme
피스토이아에서 서쪽으로 15km 더 가면 이탈리아 최고의 고급 휴양지 몬테카티니 테르메이다. 이곳 온천은 해독작용이 있어 위장ㆍ간장병에 효과가 있다. 단 마시는 온천이다. 오손 윌즈와 그레이스 켈리가 단골이었던 이곳은 한마디로 호화롭다. 넓은 정원 깊숙이 서 있는 호화로운 호텔, 마치 숲과 같이 나무가 무성한 공원을 여유 있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바쁜 도시 속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또 다른 이탈리아의 얼굴이다. 케이블카로 산상의 몬테카티니 알토 Montecatini Alto에 올라가 전망대에서 전망을 즐기고 광장의 카페에 앉아서 휴양지의 분위기를 느낀다. 피렌체에서 버스 또는 기차로 1시간이 걸린다.
●민가 박물관 Museo di Palazzo Davanzati
우아하고 아름다운 르네상스의 방을 당시 그대로 재현시켜 놓은 곳이다. 부엌ㆍ침실ㆍ서재 등과 방에는 14~16세기의 가구ㆍ일용품ㆍ회화ㆍ조각ㆍ도기 등이 노형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림 민가 박물관 Museo di Palazzo Davanzati
●천재 레오나르도를 기른 빈치 Vinci
피렌체에서 피사로 가는 도중이나 돌아오는 길에 들를 수 있는 다 빈치가 태어난 곳이다. 마을에는 13세기의 성을 그대로 이용한 다 빈치 박물관 Museo Leonardiano di Vinci이 있다. 1층은 레오나르도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다양한 기계의 소형 모형 전시실이고 2층은 인력 비행기와 자동차 등의 대형 모형전시실. 3층은 비디오룸으로 되어 있다. 도서관과 연구실도 있다.
그림 다빈치 박물관
출처: 이미지;구글, 일부 글; 해외여행 유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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