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팔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대구를 중심으로 수 천억원의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불려주겠다고 해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투자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유혹에 빚을 내어서 돈을 건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쪽박을 차고, 빈털털이가 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 사기꾼이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장례식을 치루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습니다. 그 주변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증언하지만 그에게 당한 사람은 살아있다고 합니다. 죽음까지도 사기를 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 당국에서도 얼마든지 중국 현지에서는 죽음에 대한 사기가 가능하다고까지 증언을 했습니다.
여러분, 조희팔, 그는 죽었을까요? 아니면 죽음을 사기치며 살았는 걸까요? 저도 헷갈립니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의심이 갑니다. 서글픈 현상입니다.
인간사회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불신으로 가득합니다. 불신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우리는 노아하면 ‘노아홍수’와 방주 그리고 무지개 등을 생각해 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홍수 심판에서 모든 인류가 죽어가는 가운데 가족을 구원하여 인류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노아는 어떤 시대에 살았습니까?
창세기 6:11에 보면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죄가 땅에 넘쳤습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패악했습니다. 죄을 먹고 마시는 세상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노아시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시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우리 주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 하실 때가 바로 노아의 때와 같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더 이상, 이하의 일도 아닙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추구하고 하는 모든 일이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정치적인 노력이나 경제적인 노력이나 교육적인 모든 일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기껏해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메여있습니다.
왜 일합니까? 왜 공부합니까? 하나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에 메여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때와 정말 동일하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적 정신 속에서 노아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9).
한 마디로 노아는 믿음으로 죄악된 세상에 편승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아무리 큰 동물이나 생물도 생명이 없으면 흐르는 물에 떠내려갈 뿐입니다. 죽은 것들은 다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피레미라도 살아있으면 목표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법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살아있어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 우리도 노아시대처럼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는데 정신이 없는 이 시대정신 가운데 죽은 채로 떠내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세상의 방식에 길들려 져서 순응하고 살면 하나님을 결코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아는 다르게 살았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하나님이 세상을 지었음을 후회하고 심판하시려는 그런 상황 속에서 노아는 다르게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7)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노아가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일어날 일을 알리셨을 뿐만 아니라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알려주신 일이란 “아직 보지 못한 일에 경고”입니다. 무엇입니까? 앞으로 하늘에 비가 내려서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두메산골 농부가 서울의 친척집에 방문을 했습니다. 60년대 이야기입니다. 서울 구경을 하고나서 두메산골에 가서 서울 가서 본 것을 신기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야 서울에는 똥차가 와서 똥을 퍼가는데 돈을 받고 똥을 가지고 가더라”
그런데 동네사람들은 “야 거짓말하지 마라. 어찌 그 좋은 거름을 거저 줄 수 있느냐. 또 돈까지 주면서 어떻게 줄 수 있느냐? 거짓말이다”
동네 사람들이 거짓말이다. 아니다. 그럴 수 있다. 두 패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수결로 결판을 내기로 했는데 그 좋은 거름을 거저 가져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돈을 주면서 가져가게 할 수 없다는 편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경험하지 않는 사실에 대하여 믿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는 사실 비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홍수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창세기 2:6을 보면 지면에서 안개가 올라와서 온 지면을 적셨다고 했습니다. 노아시대까지 한번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자외선이 차단된 곳에는 수증기가 하늘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비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로 하늘이 열리므로 자외선이 생기고 수명이 단축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아에게 하늘에서 장대 같은 비로 인해 홍수가 나서 세상을 멸한다는 경고를 주셨습니다. 노아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믿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에 믿고서 방주를 해변가가 아닌 내륙지방에서 1년도 아닌 120년 동안 지으면서 홍수심판을 주변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겠습니까?
한결같이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정신이 이상한 노인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수 백 년을 살아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니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설득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는 정보의 홍수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말이 많은 시대입니까? 이런 시대에 온갖 잡다한 소리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예배 시간마다 귀를 세우고 잘 들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붙들 때에 세상의 흐름에서 죽은 자로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노아는 어떤 믿음의 소유자입니까?
(2)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감정을 가지고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적으로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느낌, 두려움이 있어야 그 말씀을 더 확고하게 붙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두려움이 있어야 행동을 하는데 동기를 부여합니다. 뉴질랜드 텔레비전에 보면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에 대한 공익광고가 나옵니다. 얼마나 끔직한 장면으로 피를 흘리며 죽은 모습, 그의 지인들이 슬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러한 동영상을 보면서 두려움을 가지고 안전 운전을 실천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매년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고 보험회사에 보험료를 꼬박꼬박 지불하기도 합니다.
어느 가난한 가정의 고학생이 법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등록금이 없어 고민하는 가운데 희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느 돈 많은 자선가가 있는데 그분에게 부탁을 해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선가 노인을 찾아가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에 그 노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 대학에 들어가서 무엇 할걸세” “예 법을 공부할 겁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할건가?” “예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될 겁니다”
“그 다음엔 무엇 할건가?” “결혼해서 잘 살겁니다.”
“그 다음엔 무엇 할건가?” “예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아야지요”
“잘 살다가 그 다음에 무엇할건가?” “늙어가겠지요?”
“그 다음엔 무엇 할건가?” “그 다음엔 죽어야지요”
“그럼 그 다음엔 .....”
그 고학생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에 자선가 노인은 “영원일세 영원일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고학생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기껏 자신이 대학에 들어가서 하고자 추구하는 것이 결국은 죽기 위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노인이 자신에게 말했던 “그 다음엔 영원일세 그 다음엔 영원일세”하는 말이 맴돌았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의 진로를 바꾸어서 신학을 전공하고 그가 대성해서 유럽의 유명한 대학을 창립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노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영원한 삶을 위해 방주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들 방주는 내가 손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 갈 수 있는 방주를 하나님이 미리 예비해두셨습니다. 우리의 구원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다.
오늘 밤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면, 여러분을 부르시면 하나님께로 갈 자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안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3) 노아는 의지적으로 믿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심판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그에게는 의지가 생겨났습니다. 120년 동안 변하지 않고 “방주를 예비”하였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필요한 지침을 다 주었습니다. 노아는 그것들을 글자 그대로 순종하며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열리지 않았고, 해가 갈수록 주변 사람들의 조롱과 불신을 더욱 깊어갔을 것입니다. 그는 120년에 걸쳐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 심판을 경고하면서 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돌아오는 자가 없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의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선한 뜻을 가지고 가다가 일이 풀리지 않으면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이 늦으면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거둘 수 있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경외하므로 방주를 예비했을 때에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가 되었느니라”
어떤 결과입니까?
(1) 온 집안이 구원을 받습니다.
(2) 그들 가족이 구원받으므로 심판을 보여주므로 세상을 정죄하였습니다.
(3)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음의 가계를 형성해서 후손에게 물러 주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면 됩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동행하므로 가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노아를 미쳤다고 했지만 아내와 아들과 자부들은 믿고 120년을 따라왔습니다.
믿음은 ‘이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가족에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거라사라는 지역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유명 인사가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귀신들려 날뛰므로 제어할 수 없는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러자 온전하게 된 사람은 주님을 따라다니겠다고 했습니다. 이때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족에게 고하라”(막 5:19)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나에게 일어나 복음의 역사, 예수 사건을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전하여 그들을 주께로 천국으로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는 악한 세대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가족을 구원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믿음입니다. 전인격인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악의 극치를 달리는 종말의 때, 말세지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붙잡으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됩니다.
이때에 우리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