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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7 하나님의 영 외에는
고린도 전서 2장 6절- 12절
우주는 무엇입니까? ‘Cosmos’입니다. 바로 ‘질서’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습을 보면 이 우주는 정밀하고 질서정연하게 디자인된 조직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거대한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속도는 시속 10,700km입니다. 비행기 속도보다 약 10배나 빠른 속도입니다. 또한 자전 속도는 1,600km, 비행기보다 두 배나 빠르게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중으로 올라가 그대로 떠 있을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 미국을 가는데 6시간이면 됩니다. 지구가 스스로 그처럼 빨리 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창조 이래로 지구나 달이나 태양이 한 치의 오차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몸속에는 DNA란 것이 있어서 내가 누군가를 알려줍니다.
사람의 태에는 두 종류의 DNA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태 안에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태 밖에 있다고 합니다. 태안에 있는 DNA는 그 사람에게 속한 고유한 것이고, 태 밖에 있는 것은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태에 밖에 있는 DNA를 쭉 조사해 간다면, 인류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세 교수가 이를 조사 했습니다. 하와이 대학교의 레베카 칸 교수, 버클리대학교의 마크 스톤 킹 교수와 윌슨 교수 등이 세계 147개 나라의 산모들로부터 태를 기증받아서 DNA를 조사했습니다. 그 연구 결과 모든 나라 어머니들의 DNA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는 한 어머니로부터 나왔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몸이 이처럼 정밀하게 디자인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만든 분이 분명하고,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정밀하게 디자인해서 이 세상에 내놓으셨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태어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피조물인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당신의 뜻과 목적은 무엇입니까?
제가 어떻게 그 뜻을 알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만들어진 모든 창조물은 연구하므로 알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들이 연구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한 가지를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에게 오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은 물론이고, 어떤 인간도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배하신 모든 것” 이란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예비하신 모든 것들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비해 놓으신 것이란 말씀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성령을 통해서만 자신의 생각과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고, 믿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얼핏 보면 이것은 단순하게 지역을 옮긴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지역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들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살려고 부르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2장 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이르러 보니까 하나님이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생애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산 생애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는 ‘믿음으로 산 사람의 대표’란 말씀이며, ‘믿음의 본보기와 같은 인물’이란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일생 동안 몇 번이나 하나님을 만나서 인도를 받았습니까?
하란에서 부름을 받고 가나안으로 출발할 때부터 숨질 때까지를 성경에서 찾아보니까, 15번이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큰 사건만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곳 모두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지금 이곳에도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저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건이 몇 번이나 되는지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잘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 하나, 하루, 하루의 삶을 실제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인도함 받고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의하면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제한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친구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인도받는 인생의 여정은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을 알도록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신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려 주십니까?
조이 도우슨이 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란 책에 보면 성령이 사용하시는 방법이 24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수십만 가지라고 말해야 좋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만 이야기한다면 바로 이렇습니다.
첫째, 가장 쉬운 방법은 모든 걸 성령님께 맡겨놓고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겨 놓는다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맡겨 놓을 수 없고, 가만히 기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 스스로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만나면 성령님께 맡기고 가만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마치 양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듯이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정확하게 인도해 가십니다.
사도행전 16장을 읽어 보십시오. 바울 사도가 아시아에 가려 하지만 길이 막혔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하자 자존심 강하고, 다혈질이며,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성취하고야 마는 집념을 가진 그가, 그 다음부터 아무것도 안하고 무조건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꿈속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입니다. 그래서 곧 바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도착했지만 며칠 동안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이윽고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로 나갔더니 거기에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전도했고, 그들이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자주장사 루디아’입니다. 결국 그 가정에 들어가 지내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기다리는 그를 계획된 대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끝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어렵습니다. 끝까지 죽으면 죽는다는 결심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결정적인 시간에 나타나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둘째,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성경 말씀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령님을 통해 그 성경 구절들이 살아 움직여 역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말씀이 아니라, 현재 살아계시므로 현재 읽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면한 문제나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성경으로 인도하시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겁니다. 다윗도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19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이다.”
여기서 ‘모사’란 어떤 뜻을 가졌습니까? 'Counselor'란 말이며 상담자, 조언자라는 뜻입니다.
또한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여기서 ‘내 발’이란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우리의 ‘즉각적인 필요’를 말씀하십니다.
또한 ‘내 길’이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바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내 즉각적인 필요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시는 분, 그러므로 언제나 나를 돕는 상담자, 조언자와 같은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마음대로 성경을 펴서 우리 손가락이 가리키는 구절을 문자적으로 받아드리면 안됩니다. 만약 성경을 펴고 손가락으로 찍었는데, 마태복음 27장 5절이 나왔다고 합시다. “목매어 죽었더라.” 얼마나 기분이 나쁜 말씀입니까? 기분이 나빠서 또 다른 성경을 폈습니다. 그랬더니 누가복음 10장 37절 말씀이 나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렇지만 어느 때는 성경구절을 가르쳐 주실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성경을 읽을 때, 특별한 말씀에 감동을 주실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때는 기도하고 성경을 펼 때가 있습니다. 그곳을 자세히 읽다보면, 감동이 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을 성령님께서 자세하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셋째, 성령께서 잘 사용하시는 방법은 꿈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포르노 영화 제작자가 사흘 밤 동안 심판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 충격이 얼마나 그를 깊이 뒤흔들었는지 좀처럼 그 꿈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돌아오고, 변화된 사람이 되었고, 그 후부터는 주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통하여 경고하셨던 것이다. 욥기 33장 14부터 16절 말씀에 이런 경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 듯 교훈 하시나니.”
저는 꿈속에서 밤이 새도록 찬양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온 밤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도 그 찬양이 마음과 생각과 제 입술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찬양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배에서 그 찬양을 부르면 함께 부르는 성도들과 함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넷째,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래 전부터 이태리에서 유럽 성악 계에 새로운 태양처럼 떠오르는 한국 여성이 한 명 있습니다. 푸치니가 작곡한 나비부인의 주인공입니다. 어느 정도로 그 여인이 사람들의 호평을 받는가하면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공연이 있으면 신문에서 “이제야 비로소 나비부인을 찾았다”고 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오페라를 관람하다가 굉장히 감동을 받으면 물론 일어나서 박수도 치지만 더 감동을 받으면 발로 바닥을 구릅니다. 그 정도로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오페라가수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극장에서 주연으로 발탁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 분이 이태리에서 수 년 동안을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직 빛을 못 보는 것은 내 눈 때문이구나. 쌍꺼풀 수술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남편을 겨우겨우 설득시켜서 허락을 얻었습니다. 서울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제일 좋은 병원에 예약을 해줄 것을 부탁 드렸습니다. 그 여인은 날짜가 예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뻤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자기가 섬기는 로마 한인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목사님이 “왜 주어진 것을 감사하지 않느냐? 무엇 때문에 여자들 쌍꺼풀 수술을 하냐? 쌍꺼풀 수술했다가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 갔는데 하나님이 ‘네가 누구냐? 나는 너한테 쌍꺼풀을 안 줬는데 네가 누구냐?’하면 어떻게 하냐?”라는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 설교를 들으면서 “이 얘기는 내 문제이구나. 나를 향하신 주님의 말씀이구나.”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 날에 열리는 콩쿠르에 참가 했습니다. 그녀는 그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현장에 독일의 유명한 극장의 극장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그녀가 나비부인으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극장장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처럼 서툰 사람을 왜 이렇게 처음부터 주연으로 뽑았습니까?” “당신의 눈 때문입니다.” 본래 나비부인은 일본여인이지만 일본여인의 가창력은 한국 사람에 비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유럽에서 인정을 못 받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여자는 100% 쌍꺼풀 수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여자를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 유럽 관객이 볼 때에 일본 여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 같은 가창력을 가진 사람으로 쌍꺼풀 없는 동양여자는 처음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후부터 그녀는 무대에서 나비부인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섯째, 성령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마음에 들려주는 음성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영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강한 확신과 더불어 마음과 생각 가운데 평강이 자리를 잡습니다. 로마서 8장 6절과 14절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므로 깊은 평강이 없다면 절대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또한 결정한 것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기 전까지는 주 앞에서 기다리십시오.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담대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
지금 바울은 가이사랴 옥중에 2년 이상을 갇혀 있습니다. 그러니 재판이 쉽게 끝날 것 같지도 않고, 여기서 죽게 될지, 아니면 풀려나게 될지, 또 그처럼 가고 싶었던 로마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바울에겐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있는 바울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음성은 풀려난다는 말도, 그렇다고 재판에서 이길 것이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오직 한마디 “로마에서 증거 하여야 하리라”란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입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인도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실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지 못한 것은 우리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했다면, 그건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했기 때문이거나,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며,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배웠다는 사람, 뭘 좀 안다는 사람, 가진 사람 그리고 젊을수록 성령님의 인도보다는 자기들의 생각을 앞세운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일을 할 때,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때, 성령의 인도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할 때 가슴이 아픕니다. 그 결과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성령님께 구하십시오. 그분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이 범사에 잘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길과 삶이 있습니다. 그 길을 가야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고 삶은 하나님께도 기쁨이요, 여러분에게 지극한 복이 되는 삶입니다. 모든 일에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셔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