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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스카이레이크’ 등장과 팽 당한 소비자들 |
[미디어잇 최용석] 윈도10의 정식 출시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인텔의 6세대 ‘스카이레이크’ 프로세서가 100시리즈 칩셋 ‘Z170’ 보드와 함께 등장했다. 더욱 향상된 처리능력과 개선된 전력효율, DDR4 지원 등 최신 기술로 무장한 스카이레이크 및 100시리즈 칩셋 보드는 올해 하반기 신규 PC 시장을 견인할 동력으로 꼽힌다.
하지만 ‘스카이레이크’와 100시리즈 칩셋의 등장에 내심 섭섭한 이들이 있다. 인텔의 ‘5세대 브로드웰 지원’이란 약속만 믿고 9시리즈 칩셋 메인보드를 구입하고 그에 기반해 PC를 꾸민 이들이다.
지난 2014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인텔은 거의 1년 주기로 새로운 세대의 CPU와 그에 맞는 새로운 칩셋을 선보여 왔다. 워낙 인텔의 시장 장악력이 막강하다 보니 주요 PC 제조사들의 신제품 출시 전략이 인텔의 개발 로드맵에 맞춰 짜여질 정도로 PC 시장은 인텔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 출시 예정이었던 5세대 ‘브로드웰’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첫 14nm 공정 도입 프로세서인 브로드웰의 출시가 뒤로 미뤄지면서 기존 4세대 ‘하스웰’을 살짝 고친 ‘하스웰 리프레시’를 대타로 내세운 것이다.
하스웰 리프레시 CPU는 가격이 이전 ‘하스웰’과 비슷했고, 기존의 8시리즈 칩셋 메인보드도 바이오스 업데이트를 통해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딱히 문제는 없었다.
정작 문제는 하스웰 리프레시 프로세서와 함께 선보인 9시리즈 칩셋(Z97, H97 등) 보드였다. 일단 하스웰 리프레시에 맞춰서 나온 칩셋이지만, 후속 제품인 ‘브로드웰’ 프로세서도 업데이트를 통해 지원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M.2(NGFF) 나 SATA익스프레스 등 새로운 고속 인터페이스 지원 등 새로운 기술도 적용되었지만, 9시리즈 칩셋 보드 구매자 상당수는 ‘브로드웰 지원’이란 인텔의 발표만 보고 구입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인텔답지 않게 ‘메인보드 교체 없이 차세대 CPU를 쓸 수 있다’는 점이 통했다.
게다가 ‘하스웰 리프레시’ CPU만 쓰는 것이면 8시리즈 칩셋 보드를 업데이트해서 쓰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가격도 더 비싼 9시리즈 칩셋 보드를 살 이유는 없었다. 하스웰 리프레시와 함께 가장 많이 팔린 칩셋이 8시리즈, 가장 하위 칩셋인 H81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연기 끝에 올해 초 등장한 브로드웰 프로세서는 노트북 및 울트라북용 저전력 제품만 출시됐을 뿐, 일반 데스크톱용 제품은 없는 반쪽 출시였다. 결국 반년이 더 지나 ‘컴퓨텍스 2015’를 기점으로 데스크톱용 브로드웰이 출시됐지만, 이는 다음세대인 ‘스카이레이크’의 출시를 불과 2달 정도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당수 소비자들은 ‘5세대 브로드웰’ 프로세서가 시장에 출시됐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새 CPU 출시 때 마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던 인텔이 데스크톱용 브로드웰은 소리소문도 없이 출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품 라인업도 i5 제품 1개, i7 제품 1개로 겨우 2종에 불과하며, 가격도 상당히 비싸 구입하기 망설여진다. 즉 데스크톱용 브로드웰은 고작 2개월을 버티기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며, 좀 더 비싼 돈을 지불하고 9시리즈 보드를 장만한 소비자들은 ‘팽’당한 셈이 됐다.
인텔 입장에서는 ‘이전 세대’인 브로드웰을 위해 이미 준비된 최신 제품의 출시 일정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PC 시장 전체의 흐름이 인텔의 개발 로드맵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브로드웰 연기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인텔은 스카이레이크를 미리 약속한 때에 제대로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 4세대 하스웰 이전 세대 시스템을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새 인텔 CPU=칩셋(보드) 교체’를 당연한 것으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은 정치인들의 공약처럼 상황에 따라 기존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방적 조치에 손해를 본 소비자들이 적지않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최용석 기자 rpch@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