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시즌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날은 아직도 뜨겁고 습하고, 덥습니다.
최근 기사에는 이제 앞으로는 계속해서 덥다고하는데, 어쩌면 이번 여름이 앞으로 다가올 여름에 비해 훨씬 시원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여름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네요.
9시 15분,
일자리를 마치고 쉼터에 계신 어르신께서 마을에 초입한 점빵차를 불러세우십니다.
회관에서 드신다고 콩나물 3봉지 그리고 요리당 하나 사십니다.
이곳 회관은 아직 정식회관으로 등록되지 않았기에 부식비가 나오지 않습니다. 자체적으로 조금씩 갖고와서 함께 식사하시나 봅니다.
위로가니, 멀리 당산나무 뒤에서 걸어오시는 어머님 보이십니다.
밭에서 일하다 차 소리 듣고 넘어오신다고 합니다.
"울 애기 아빠가 15만원 줬어, 여기 여기 맞춰봐~" 하시는 어머님.
'미림, 진간장, 양조간장, 소세지, 조지아, 미니 카스 등" 다양하게 시키시는 어머님.
어머님의 주문 덕분에 오늘 하루 장사는 다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네요. 그만큼, 젊은 어머님이 사시는 양은 어르신들이 사는 양에 몇 배에 달합니다. 젊은 분들의 구매가 동락점빵 매출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네요.
9시 45분,
집에서 손을 까닥까닥하시며 누워 티비보고 계시는 어르신.
아무리 소리 질러도 모르십니다. 뒤에가서 조심히 등을 노크하니 어르신께서 놀라십니다. 오늘도 나가자고 하시는 어르신.
"사이다, 망고, 맛소금...음.. 뭘 더 사야하는데.. 두부 2모도, 아 그리고..빵도 3개... 그리고 망고쥬스도."
그런 와중에 현장에서 일하시는 인부님도 오십니다.
"없는게 없네~" 하시며 빵과 음료를 사십니다. 잠시 고민 하던 찰나,
"어르신, 이 망고쥬스는 저온저장고에서 막 갖고 왔으니, 여기 현장 소장님에게 드리고, 어르신은 이거 받는게 어떠세요~?" 하시니 그러라고 하십니다. 덕분에 현장 근로자는 시원한 망고쥬스 받고, 어르신도 원하는 쥬스 받아가셨습니다.
10시,
집에 가기전에 동락점빵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1박2일동안 내가 어디 갔다오니깐~ 집에 두고 가요~" 라고 하시는 어르신.
집에가보니 빨간 바구니에 어르신의 손글씨와 함께 돈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냉장고에 너녹코가새요'
주기적으로 주문한것에 대한 약속을 지키시려고 하셨던 어르신의 신뢰. 어르신께 감사한 마음으로 불가리스 2줄씩 냉장고에 넣어놓고 왔습니다.
10시 15분,
기다리고 가려던 찰나 위에서 어르신이 오십니다. 인사드리려고 내리니,
"어~ 안사 안사 안사~" 하시며 손짓하시는 어르신.
미안하셨는지, 점빵차에 오셔서 종합제리 하나랑 소세지 하나 고르시고 가십니다.
때때로 어르신들에게 이동점빵차는 부담이 되곤합니다. 장사꾼에게 빈손으로 가라고 하는 일이 미안한 마음이 크신것이지요. 아무리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도 어르신들의 마음은 어쩔수 없나보다 싶습니다.
10시 30분,
어르신께서 저번에 전화로 부탁하셨던 물건 들고 방문하였습니다. 담배를 넣을 수 있는 케이스를 주문해달라고 하셨던 어르신.
어떤것을 구체적으로 사달라고 이야기를 하진 않으셨지만 평소 일하다보니 땀에 담배가 젖어 케이스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물건중에 적합한 물건을 찾아 오늘 사갖고 방문하니 어르신께서는
"왜이렇게 비싸~ 5천원이면 산다면서~" 하셨습니다.
일전에 알아볼 때 5천원이었지만 해당 케이스는 위아래가 뚫려있고 겉에만 감싸는 형태라 다른 것을 알아보니 택배비까지 다 해서 20,100원이었지요.
어르신께 상세하게 설명해드리니 이해는 하시면서도 내심 아쉬운 마음이 조금 있으셨다 싶습니다. 물건을 구해드리는 일이 쉬울 수도 있으나, 직접 옆에서 보고 고르지 않는 이상 맞춰서 구매해드리는 일이 쉽지 않음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11시 20분,
오늘도 시정 부근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으니 건너편 집에서 어르신 오십니다.
그러곤 "커피 한 잔 하고 가~" 하시는데, 그 순간 뒷집, 옆집 어르신들 나오십니다.
처음봽는 어르신도 있고, 오랜만에 뵙는 어르신도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이렇게 많이 나온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건너편 집 어르신께서는
"내 덕분에 우리 마을 사람들 다 나오네~" 하시며 허허 웃으십니다.
어르신 집에가니, 어르신께선 밭에서 막 수확한 참외 하나 깍아주십니다.
"비가 많이 와서 달지 않겠다만, 함 먹거보게나~" 하십니다.
커피 한 잔에 참외 한 접시로 피곤함 사라집니다. 한창 먹으면서 이야기하던 찰나,
"아 어딧었어~~" 하시며 집으로 찾아오신 어르신. 아래집 어르신이었습니다.
"차는 두고, 도데체 장사꾼이 어디로 간거야~" 하시며 웃으십니다. 콩나물, 두부 사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아 윗집 아랫집 집집이 모두 가셨다고 합니다. 찾아다니느라 힘들었다는 어르신. 얼릉 물건 전해드리며 죄송하다고 인사드렸네요.
11시 40분,
앞 마을서 오래걸리다보니 뒷마을이 점점 늦춰집니다.
어르신또 밭에서 일하시다 점빵차 보고 손 흔드십니다.
"베지밀 하나 줘~" 하시는 어르신.
"일하다 먹으려고 해~" 하십니다.
생각보다 무거워서 들어드릴까 싶었는데
"왜 이래~ 그래도 나 이거 들 수 있어~ " 하시면서, "그래도 내 손목은 시큰하다~" 하십니다.
밭일 많이 하시는 우리 여성 어르신들의 신체는 도시 여성 어르신들에 비해 많이 쇠약할 수 밖에 없는 점이 보였습니다.
"아까 아짐 한 분, 물건 산다고 기다리다가 안와서 갔는데, 저 아래 가봐~ 계실것 같네~" 하시며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11시 45분,
집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어르신. 오랜만에 국수 드시고 싶으시다며 하나 사고자 하셨다고 합니다.
"더우니깐 입맛이 없네, 국시 하나랑 안매운 라면 하나 주쇼"
어르신께 오래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물건 건네 드렸습니다.
12시,
면사무소에서 생필품 지원하는 어르신 아드님이 마당서 기다리십니다.
수레를 끌고 오셨다가 마당으로 와달라고 하십니다.
"나는 잘 몰라여, 울 엄마가 말해야지~" 하시는 아드님.
마당까지 차 갖고가니 어르신께서 토방에서 말씀하십니다.
"콩나물 하나, 보리쌀 두개, 물엿 1개, 베지밀 2개"
걸어 나오기 힘드시니 집 안에서 이야기하십니다. 아들은 묵묵히 어머님 말씀 듣고 물건 받아 갖고가십니다.
13시 30분,
윗집 삼촌 내려오셔서 물건 주문하십니다.
"이거 옆집 아짐꺼니깐, 옆집 아짐 이름으로 올려놔~" 하십니다.
계란, 쫀디기 사니는 삼촌, 이웃집에 이렇게 심부름 해주는 젊은 사람 함께 사니 어르신께서 좋아라 하시겠다 싶습니다.
13시 45분,
"스톱!!" 하고 외치는 어르신.
어르신께서서는 지난번에도 점빵차가 그냥 지나가서 물건 못샀다고 하십니다.
점빵차가 지나가는 그 순간이 어르신들에겐 절박한 순간이겠다 싶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미안해서 주문하기도 어렵고, 또 1주일을 기다리려야하니 말입니다.
13시 50분,
회관에 부녀회장님과 총무님이 계십니다.
"울 아저씨 뭐 샀어요?" 라고 웃으며 물어보시는 회장님.
"맛난거 사셨어요~" 라고 답드리니 "맛난거 뭐요?" 라고 하십니다.
옆에 계신 총무님이 "술이겠지 뭐~!" 하시며 이야기를 던지는데, 제가 "정답!" 하니 부녀회장님 좋다가 기분 빠지십니다.
그러곤 "그럼 그렇지~ 에휴, 락스나 주세요~" 하십니다. 총무님도 락스를 사신다며 두분이 합쳐 5개를 주문하십니다.
다음번엔 회장님 남편분께 물건 팔게되면 말씀 건네드려야겠다 싶습니다.
"회장님이 맛난거 사시래요~"
14시 30분,
오늘도 두부를 2개 놓고 나오려다 지난번 건 말씀드리려고 하니 어르신께서 안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안그래도 말할려고 했는데, 잘 왔네~ 지난번에 안오는 줄 알았는데 눈떠보니 눈 앞에 두부 2개가 있더라구~"
"그거 계산해야겠어~ 그리고 하이타이랑 다시마 있지?그것도 좀 주게~" 하십니다.
어르신께는 그간 구매하신 금액에 포인트가 많이 쌓여있으니, 두부는 포인트로 계산하고 나머지만 하시게요~말씀드리니,
어르신은 고맙다며, 나머지 물값을 주셨습니다.
꾸준한 관계를 통해 거래를 하다보니 돈을 바로 받지 않아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어르신께서 필요한 물건은 바로바로 놓습니다.
그것이 어르신과 점빵의 신뢰이자 관계의 상징입니다.
14시 40분,
지난번 어르신께서 주문해주셨던 요플레, 요번에는 딱 맞춰 갖고갔습니다.
하지만, 금액이 생각보다 비쌌습니다. 저희를 통하다보니 금액이 조금 더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어르신께 기존에 드시던 요플레로 드시는것이 더 싸게 드실 수 있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도 알겠다고하며 추가로 주문하진 않으셨습니다.
15시 10분,
점빵차 올라가는 순간 어르신들이 손으로 마다하십니다.
"살 사람 없어~~ 올라가지마~~" 늘 시정 옆까지 올라갔는데, 오늘은 가지말라고 하십니다.
그러곤 회관 앞에서 다른 어르신들이 물건을 사십니다.
이후 그래도 시정 옆까지 올라가봅니다.
"어르신들이 여기서 저 먼발치서 오는 점빵차를 보고 있는데, 어찌 안오겠어요~" 하니,
"그려 맞어~ 안오면 그것도 서운해~" 하십니다.
서운해 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신것이 좋습니다. 그만큼 보고 싶다는 것이겠지요. 한 어르신은
"내가 물건 살게 있으니 타고 내려가게~" 하시며 차를 탄 순간,
"오메, 여기가 천국이네~" 하십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차량 안은 시원함이 가득했습니다. 어르신 모시고 집으로 함께가며 물건 내어드리고 갑니다.
15시 30분,
우리 반장님, 간만에 집 밖에 나와계십니다. 얼굴 보니 얼굴이 팍상했습니다. 그간 고추따고, 논하고 밭일하느라 고생하셨구나 싶습니다.
푸성한 머리에 거친 피부. 여성 농민의 모습이었습니다. 거친 손에 코다리 하나, 막걸리 하나, 콩나물 2개 드립니다. 반장님 고맙다며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15시 50분,
토방에서 아랫집 어르신과 함께 깨 다듬고 계시는 어르신. 물건 필요할 것 고민하더니 아랫집 어르신도 물건 사신다고 합니다.
하이타이, 계란을 사신다는 아랫집 어르신,
"아 그만 다듬고 어려 내려가서 돈 갖고와~" 하시는 윗집 어르신. 그러곤 본인도 고등어, 막걸리, 락스 달라고 하십니다.
어르신께 드릴 물건 갖고 오는 사이 아랫집 어르신도 돈 갖고 오십니다.
이제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랫집 어르신도 물건 사시는 일, 그리고 제게 말씀 건네는 일도 익숙해지시고 계십니다.
16시,
마지막 집, 어르신댁에 가니 어르신께서 "펑크린 있어~?" 하십니다.
화장실 물이 시원찮게 내려간다며 여쭤보십니다. 펑크린을 차에 못갖고 와서 갖다드릴지 여쭤보니,
"냅둬~ 담주에 올 때 갖고 와~~" 하십니다. 그러시곤,
"울 손주 들어와서 과일 하나 까먹고 가~ 맛난거 있어~" 하시는 어르신.
평소 같으면 들어가서 먹는데, 오늘따라 뒷일이 너무 많이 잡혀있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부랴부랴 나섭니다.
어르신께서 평상시 같으면 회관서 함께 있을텐데, 오늘은 집에만 계신것보니 외로움이 크셨구나 싶었습니다.
마침 총무님도 교통사고나서 어르신의 이동 지원이 어렵다보니, 어르신께선 점점 집에만 계시는 상황이 되겠구나 싶었네요.
어르신 집에 사람들이 자주 모여 사람 소리가 나는 집이여야하는데...
그런 어르신에게 유일하게 생명의 움직임을 내는건 고양이들 뿐이었습니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구실이 필요하겠다 싶은 생각을 해보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