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安永綏)
1派25世-참찬공파
생원(生員)
安鏞綏 안용수
初諱는 영수(永綏)
字는 공리(公履)
號는 동산(東山)
순조(純祖)丁卯1807년生 고종(高宗)戊辰1868년1월21일卒
配탐라고씨(耽羅高氏) 父는 가선대부(嘉善大夫) 품계(品階)를 받은 한조(漢祚)
1809년己巳生 1860년庚申3월19일卒
묘황세왓 병좌(丙坐)
안영수(安永綏)[생원진사시] 순조(純祖) 34년 (183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三等) 48위-1派25世-참찬공파丁卯1807년生,字孔履-父-안민행(安敏行)
안영수(安永綏)
[생원] 순조(純祖) 34년(183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48위(78/100)
[인물요약]
UCI | G002+AKS-KHF_13C548C601C218B1807X0 |
자(字) | 공리(孔履) |
생년 | 정묘(丁卯) 1807년 (순조 7) |
졸년 | 임신(壬申)(주1)【補】 1872년 (고종 9) |
향년 | 66세 |
합격연령 | 28세 |
본인본관 | 순흥(順興) |
거주지 | 제주(濟州) |
[관련정보]
[이력사항]
선발인원 | 100명 [一等5‧二等25‧三等70] |
전력 | 유학(幼學) |
사마시제 | 이의(二義) |
부모구존 | 중시하(重侍下) |
[가족사항]
[부(父)]
성명 : 안민행(安敏行)
관직 : 출신(出身)
안영수(安永綏)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48C601C218B1807X0 |
자(字) | 공리(孔履) |
호(號) | 동산(東山) |
생년 | 1807(순조 6) |
졸년 | 1872(고종 9)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순흥(順興) |
활동분야 | 예술‧체육 > 서화가 |
[관련정보]
[상세내용]
안영수(安永綏)
1807년(순조 7)∼1872년(고종 9). 조선 후기 서화가. 자는 공리(孔履)이고 호는 동산(東山)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제주에서 안민행(安敏行)의 아들로 태어났다.제주에서 오점(吳霑)을 사사하였고
1834년(순조 3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 48위로 합격하였다.
문장,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칭찬을 받았다.
다산(茶山)의 맏아들 정학연(丁學淵)과 교유하면서 경세실용(經世實用)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에 눈을 떴으며,
전통 주자학은 멀리하였다.
정약용(丁若庸)의 둘째 아들인 운포(耘逋) 정학유(丁學游), 동번(東樊) 이만용(李晩用) 등과 교유하면서 글씨를 연마하였고,
스승인 오점의 아들 오태직(吳泰稷)과 함께 시(詩), 서(書), 화(畵)에 전념하였다.
여러 차례 문과에 낙방하자 술을 즐기면서 가산을 탕진하였다. 그러나 범속(凡俗)에 얽매이지 않는 호방함이 있었으며,
냉철한 판단력으로 시비(是非)를 분별할 줄 알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문하에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항일의병운동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父 24世
安敏行 안민행
字는 민규(敏圭)
정조(正祖)辛丑1781년生 헌종(憲宗)乙巳1845년卒
벼슬은 선략장군(宣略將軍) 행제주진관명월만호(行濟州鎭管明月萬戶)를 지냈다
공은 성질이 단정하고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받들다(公性端正奉親之孝子發薦)
묘사소장 기악 남록 자좌(子坐)
配영인김해김씨(令人金海金氏) 父는 후방(厚芳) 정조(正祖)壬寅1782년生 헌종(憲宗)丙午3월19일卒
묘합장(合葬)
后配광산김씨(光山金氏) 1844년甲辰12월11일卒
묘제주 남죽 성상 후원 오좌(午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