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산 엘레지' 화자처럼 아픔을 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든지 별리의 고통도 마음먹기 따라 열정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애별이고(愛別離苦)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과 슬픔을 뜻한다. 부모 또는 이성과의 이별로 인한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특히 현재 열애에 빠진 정인과의 헤어짐은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최근 대세 중의 대세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가창을 통해 대중의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용두산 엘레지'(작사 최지수·작곡 고봉산) 노랫말에서 애별이고의 예를 찾아보자. 엘레지(elegy)는 슬프고 애잔한 노래인 비가(悲歌) 또는 슬픈 마음을 읊은 노래인 애가(哀歌)이다. '용두산 엘레지'의 가사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용두산아 용두산아/너만은 변치 말자/한 발 올려 맹세하고/두 발 디뎌 언약하던/'. 용두산은 고유명사로서 사물이다. 그런데 화자는 마치 용두산을 사람에 비기어 사람처럼 생명과 성격을 부여하면서 의인화시킨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랑을 확신한다.
대부분의 경우 '변치' 않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을 때에는 '맹세'를 하거나 '언약'을 한다. 즉 손가락 걸고 맹세 다짐을 하거나 말로 굳은 약속을 한다. 그러나 인용한 곡의 화자는 한 발을 올려 서약하고 두 발을 디뎌서 언약한다. 아마도 화자와 연인은 계단을 오르며 밀어를 속삭이며 사랑의 맹세를 하는 듯싶다. '일백 구십 사 계단'을 함께 오르며 사랑을 다짐할 때 두 연인은 심장이 콩닥콩닥 숨이 가빠온다. 물리적으로 숨이 차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폭풍이 휘몰아치듯 사랑의 감정이 용솟음칠 것이다. 드디어 화자는 연인의 마음 깊은 곳에 '사랑 심어 다져' 놓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화자의 과거 플래시백 회상이다. 이제 그는 현재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과거 연인인 '그 사람은 어디 가고/나만 홀로 쓸쓸히도/그 시절 못 잊어/' 괴로움과 슬픔에 젖는다. 절대 고독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과 교제 기간 동안 별리의 아픔에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도대체 연인에 대한 사랑의 가로 세로 깊이 넓이가 얼마나 방대하길래 '그 시절'을 이토록 잊지 못할까. 화자는 감격과 희열로 가득 찼던 연인과의 사랑의 순간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사랑의 상실감에 괴로워 목 놓아 우는가 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너지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같이 우왕좌왕한다. 하물며 남녀 간 사랑이야 오죽하겠는가. 좋아할 땐 질풍노도 같은 미친 사랑을 한다. 그러나 사랑이 증오로 바뀌면 변심하여 사랑의 파국을 맞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연인과 '둘이서 거닐던' 194 계단에서 확인한 사랑을 화자는 이렇게 상기한다: '즐거웠던 그 시절은/그 어디로 가버렸나/'. 아마 그는 광풍이 부는 광적인 사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아름다운 사랑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 '그 어디로'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없다. 자신의 심장에 사랑의 꽃을 피우게 했던 연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쓰라린 작별의 엘레지를 이렇게 노래한다: '잘 있거라/나는 간다/꽃피던 용두산/아~아~아~아~용두산 엘레지'.
가수 이미자는 애별이고로 대변되는 엘레지의 여왕이다. 그녀 이후 오디션 우승과 함께 신데렐라로 등장한 송가인이 엘레지의 여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한 많은 대동강' 등 그녀가 부른 비가는 이별의 슬픔을 온몸으로 그려낸다. 또한 최근 윤민수, 치타 등과 소름 돋는 환상적인 콜라보로 열창한 '님아'도 애절한 애가의 전형이다. 곡명 '용두산 엘레지'의 화자처럼 애별이고의 아픔을 쓸개처럼 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든지 별리의 고통도 마음먹기에 따라 열정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헤어짐의 쓰라림은 오히려 미래에 아름다운 사랑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