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사료편찬관
-마엘 르누아르 지음/김병욱 번역/(주)뮤진트리 2023년판/368page
타자적 삶의 굴레
1
한평생 누군가를 항상 강하게 의식하며 사는 사람의 일생은 어떠할까.
우리는 그러한 삶을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 자기가 믿는 신(神)의 존재를 염두에 두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고, 이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절대 권력자로서 측근에서 모시는 전제군주 왕에 대해 총애(寵愛)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한평생 사는 인생도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자신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을 어느 기간, 혹은 평생에 걸쳐 곁에서 같이 살면서 의식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인간 누구나 겪게 되는 삶의 보편적 존재방식의 하나인 것이다.
자조적으로 그런 삶은 그림자 인생이랄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만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녹록치 않게 타인의 인생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거나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대부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근대 교육의 영향 하에 배운 지식인들은 주창하지만 현실의 삶은 이에 부합하지만은 않는다는 반면교사인 셈이다.
2
주인공 화자(話者)인 ‘나’는 장차 모로코의 왕(실제 모로코 왕국의 2대 국왕 하산2세를 모델로 한)으로 왕국을 승계할 왕세자와 지방의 은밀한 교육기관에서 수학하도록 귀족 자제 층에서 엄격히 선별되어 같이 수업을 받으며 청소년기를 보낸다.
왕세자는 ‘나’보다 면학적인 면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런 왕세자를 ‘나’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은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수학하는 내내 갖은 방면으로 머리를 짜내야 한다. 왜냐하면 왕세자의 공부를 위해 선별되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운명은 일찌감치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왕세자가 왕으로 등극하는 순간부터 ‘나’와 친구들은 고위 관료로서 출세의 길을 가는 유일한 길과 주변부로 밀려 존재감이 사라지는 길 중 하나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탓이다.
‘나’는 체스를 통해 왕세자의 총애를 얻으려 애를 썼는데, 왕세자의 만족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서 내가 사용한 방식은 내가 이길 수도 있지만 왕세자가 더 뛰어나 내가 결국 지고 말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최대한 표정 연기와 수의 계산을 연출해야 한다.
‘나’는 애매모호하게도 왕세자의 일개 신하일 뿐으로 경쟁자가 되는 인상을 절대 심어주면 안되는 것이다. 그건 같이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3
‘나’는 때로 오지로 전출되어 기약 없이 왕국의 미래 사업(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왕이 머무는 왕궁으로 부름을 받아 왕국의 ‘사료편찬관’이라는 관직을 제수 받는가 하면 ‘왕국의 300주년 기념‘사업을 촉박하게 지시받아 지방에 내려가 준비하는 등 평생의 시간을 왕 주변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때마다 이번에는 총애를 얻은 것인지, 실총한 것인지 늘 노심초사하며 살아간다.
실제 역사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왕의 생일 때 왕궁에서 일어난 쿠데타 음모라든지, 프랑스 방문 후 귀국 길에 반란군에 의해 왕이 탄 비행기가 하마터면 격추될 뻔한 사건속에서도 그와 함께 한 ‘나’는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희생을 감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늘 왕을 의식해야 하는 사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늘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어느 임지에서 만나 사랑을 느낀 여자와 별 생각 없이 주고받은 반체제성 말들이 어느 날 늦은 결혼을 주선하는 왕의 부름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날 줄이야. 왕은 과연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모두 안다는 것인지, 알고도 모른 체 해준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나’는 등골이 오싹하고 모골이 송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4
‘나’는 여타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얻고 누리는, 남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득권에 속하지만 자신의 태생적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제약받고 평생을 사는 존재인 것이다. 굴레를 안고 사는 삶이라고 할까.
‘나’는 그런 삶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가타부타의 항변을 작품 속에서 결코 늘어놓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번역이 잘 되어 잔잔한 수면 위를 바라보는 것처럼 줄거리가 전개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20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