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언제 끝날지 갑갑 답답하다. jtbc의 민완기자가 이사 간 더블루K의 텅 빈 사무실에서 두고 간 태블릿PC을 수거 분석과 관계자 인코뷰를 통해 촉발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양파 껍질을 벗기듯 그 전모가 끝간 데가 없다. 국정농단 사실은 어떠한 뉴스나 코미디보다 새롭고 흥미롭다. 국가 시스템을 붕괴한 비선실세와 청와대, 재벌과 뇌물을 주고받은 공범인 대통령의 변명과 거짓 발언, 국가기밀 누설과 뇌물의 고리가 고스란히 담긴 태블릿PC는 삼성 갤럭시탶 SM-P815 모델이다. 그 속에 담긴 내용으로 제작판매회사 삼성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될 지경이다. 영하의 강추위가 맹위를 떨친 새해의 두 번째 주말에도 ‘즉각퇴진, 조기탄핵, 공작정치 주범 및 재벌총수 구속을 외친 12차 범국민행동의 날’이 개최되어 꺼지지 않는 시대정신의 촛불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혔다. 한 가닥 희망이라면 헌법재판소와 특검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하루빨리 심판을 내려 국정 공백을 매워야한다. 이와 더불어 눈치만 보는 학계와 종교계가 옳고 그름에 입을 다문 채 몸을 숨긴 꼴이 가관이다.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무서운가?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태블릿PC를 가진 것은 2012년 11월 미국에서 태어난 리아다. 손녀, 리아에게 태블릿PC는 가장 절친한 동무이자 유아교육 수단이다. 태블릿PC는 노트북과 개인 정보 단말기 PDA의 혼합형 기기로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처음 발매한 기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삼성과 LG 등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터치 스크린을 주 입력장치로 사용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컴퓨터다. 리아의 태블릿PC(아이패드)는 방안 어디에 두어도 찾을 수 있다. 태블릿PC케이스 아이가이(iGuy)가 노란색 이어서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예쁘장한 아이가이는 부딪히고 떨어뜨려도 안전하고 세워두면 잘 넘어지지 않는다. 리아는 태블릿PC(아이패드)를 통해 ‘뽀로로’와 ‘코코몽’, ‘겨울왕국’과 ‘디즈니랜드’를 보았다. 여섯 살 난 리아는 지금도 태블릿PC를 켜고 끄며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즐긴다. 최순실은 국내외의 동선이 나오는데도 "내 것이 아니며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한다. 소도 웃고 개도 웃을 일이다. 국정농단의 주범과 공범들은 거짓말과 빠져나가려고 ‘모른다’와 ‘아니다’를 반복해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분노케 할뿐이다.
리아가 지난해 여름에 왔을 때는 ‘메르스’ 때문에 상동마을 강나루에 있는 외가로 피신했었다. 새해 겨울방학에는 군사쿠데타 이후 유신독재를 휘두른 독재자 박정희의 후광을 업고 정치에 입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와 더불어 저지른 국정농단과 기밀유출에 의한 국기문란 행위로 시끄러워진 할아버지 나라로 왔다. 나는 손녀에게 한없이 부끄러울 다름이다. 맑고 바른 모국의 모습은커녕 TV만 켜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와 ‘블랙리스트’, '권력과 재벌이 결탁한 뇌물잔치'의 그 지저분한 음모를 캐는 일이 넘쳐난다.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릇된 욕망과 권력, 그리고 무지와 허세가 이 나라를 어지럽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을 토탄에 빠뜨렸다. 그것은 국민이 독재의 망령에 정신이 홀려권력의 스펙트럼을 통과한 빛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을 뿐 견제해야할 우리의 법과 제도가 권력 앞에 한없이 무력했다. 이제야 나라를 바로 잡으려는 국민의 열망이 광장으로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책임 지는 정치인은 하나 없고 차기 대통령을 하겠다고 떠들고 다닌다.
지난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장군이 독재자 박정희를 살해함으로써 유신독재에 종언을 고한 10. 26사건을 떠올린다. 김대곤이 쓴『김재규의 혁명(필요한 책, 2016. 12, 30)』에서 김재규는 최후 진술을 통해 “나는 국민을 위해 할 일을 하고 간다.”라고 밝혔다. 최근 문영심이 쓴 김재규 평전『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네(시사인북, 2016. 12. 9)』에서 함세웅 신부는 ‘김재규 장군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추천사를 썼고 김재규는 “이 사건으로 나는 1심에서 3심까지 재판을 받았지만 또 한 차례의 재판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하는 역사의 4심입니다. 나는 기쁘게 갑니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편안히 사십시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긴 채 광주 5.18 민주화 불꽃이 타오르던 1980년 5월 24일 신군부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두 책보다 두 달 앞선 2016년 10월 26일 매직하우스가 펴낸 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을 개척한 혁명이라는 부재를 단 김성태 엮음『의사 김재규』에서 함세웅 신부는 “독재자 박정희는 악마다. 김재규 장군은 짐승의 마음으로 상관이고 친구였던 박정희를 제거한 것이다. 오천만 민중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던져 이런 거사를 치렀지만 이러한 내용이 지금 시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고 한상범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은 “김재규는 엉터리 ‘쪽지재판’의 수모를 당하고 패륜아와 대역죄인으로 매도당하며 죽어갔다. 피고인들에 가해진 고문으로부터 각종 가학적 불법행위를 비롯해 엉터리재판에 의한 권리 박탈은 방치할 수 없다. 비록 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고인이 되었지만 이제라도 그들에게 정당한 재판을 받게 할 재심기회는 응당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재평가 되어야할 정치인은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 이정희다. 그가 대선후보의 토론에서 박근혜에게 “나는 이 자리에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나왔습니다.”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당시 이 발언을 지켜보고 들은 유권자와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로 선명하게 나누었다. 그 결과 할 말 했다는 진보진영의 반응에 비해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박근혜의 당선을 도왔다는 평가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9개월쯤 지난 2013년 11월 어느 장외집회에서 이정희는 “헌법을 파괴하고 야당을 탄압하는 박근혜 씨가 바로 독재자가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대선 당시부터 박근혜 후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말이 공공하게 나돌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빨갱이 집단으로 몰린 통합진보당은 강제해산의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그 뒤 이정희는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세월호참사와 촛불집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특검후보로 이정희 변호사가 물망에 올랐다. 포털사이트에서 한동안 검색순위 1위를 마크했다. 나는 2010년 2월 알다 도서출판에서 발행한『사랑하며 노래하며 아파하다』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학고재에서 펴낸『내 마음 같은 그녀』를 읽었다. 그 서문 ‘희망의 샘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를 통해 “희망이 과연 어디 있느냐고, 누가 희망이냐고들 묻습니다.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끝임 없이 샘솟아 나오지요. 바로 우리들 스스로의 가슴 속에서부터 희망은 만들어집니다. 바로 우리들의 손으로, 우리들 속에서, 희망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한 이정희가 살면서 말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깊은 내일의 만남을 목마르게 기다리게 한다.’
나는 요즘 중세 암흑기의 반(反)종교운동과 함께 이성과 합리성을 모든 행위의 원리와 기준으로 삼아 신의 종속과 지배로부터 인간해방을 외쳤던 계기가 된 고대 그리스 루크레티우스의 장편시『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와 스티븐 그린블렛의『1417년, 근대의 탄생』에 의한 르네상스의 흐름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나는 기자초년병이던 지난 70년대 중반 김기춘이 중앙정보부 대공수사 국장일 때 남산지하실로 끌려가 고초를 당한 원한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다. 간첩 제조기로 악명을 떨친 법꾸라지 김기춘은 지금도 입을 굳게 다문 채 건재한 채 법망을 피헤 다니고 있다. 우리는 왜 프랑스 대혁명 때처럼 왕의 목을 친 ‘키로틴’을 갖지 못했을까? 군사독재의 맛을 들인 정치인들의 머리에는 계엄령을 만지작거리지 있을지 모른다. 외갓집에 간 리아는 그동안 조소과를 나온 외할머니와 만들기와 그리기, 색종이접기와 도자기에 색칠하기 등 발도르프(Waldorf) 미술교육을 집중적으로 받고 돌아온다. 리아가 올 날이 다가오니까 제라늄이 다시 튼실한 꽃대를 올렸다. 이번에 오면 시립미술관을 둘러보고 최근에 개통한 부전역으로부터 일광에 이르는 동해남부선 전철을 타고 나가 생명이 숨 쉬는 겨울 바다를 함께 바라볼 작정이다.
첫댓글 그리움님을 할아버지로 둔
손녀 리아가 무척 부럽네요.^^
같은 기능을 지닌 두 대의 태블릿 pc, 선과 악을 보는듯 싶네요.
지나간 어두운 역사, 미처 깨닫지 못한 1%를 짚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는 힘든 숙성기간을 지나 조금 더 바람직한 모습의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로 오늘을 살아가기가 부끄럽습니다.
신이 우주를 지배하지 못하듯 독재자를 제거하고 바른 나라를 세우지 못하나 봅니다.
그럼 우리가 세워야지요,^^*
조금전 저녁 서면을 지나 오는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목이 터지라고 정의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집회를 보고 지나면서 우리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고생하는 것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리아가 커서 어른이 되면 정의로운 사회가 되리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학생 때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느라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는데
그 현실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모양 그 꼴입니다.
우리나라도 프랑스 대혁명 때처럼 광화문 광장에 '키로틴'을 세워서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어지럽힌
왕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목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혁명적 전환이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