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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불신
민수기 9 : 1 - 13
위인들의 전기에는 그들의 잘못된 것이나 실수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위인들은 어려서부터 신동처럼 착하고 어질고 공부도 잘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기 어디에도 잘못했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난중일기에 이순신 장군은 점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꿈을 꾸고 나면 점쟁이를 불러 해몽을 하고 점을 쳤답니다.
그러나 성경은 훌륭한 사람도 잘못한 것까지도 기록했습니다. 이런 것은 기록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다윗 왕도 남의 아내를 대낮에 불러 간통하고 그의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절에 스님들도 성경을 많이 잃습니다. 그들이 이런 것을 읽고 하는 말이 성경이 거룩한 책인줄 알았는데 소설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들을 기록하므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죄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 중 가장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애굽 왕 바로의 학대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지요, 홍해를 갈라 백성들을 건너게 했지요, 광야 40년을 굶기지 않고 인도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믿음의 사람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해도 모세만은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요단을 건너지 못하고 가나안을 멀리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병들어서도 아닙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의 죄 때문입니다.
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기업의 회장이 회사 돈 얼마를 빼돌려 자기 맘대로 사용했다고 검찰에 불려가 재판을 받습니다. 죄를 분명히 인정하지만 회사를 세운 공로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몇 천억의 자산을 가진 회사를 일으킨 공로로 몇 억 정도 자기 맘대로 했다는 것쯤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실형을 살게합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학대에서 구원해 낸 사람입니다. 시내산에 올라가 40일을 금식하고 내려왔을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고 모세를 가까이 하는 것도 두려워했습니다(출34:29). 이러한 모세가 본문에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고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모세 같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그것도 백성들의 원망 때문에 화가 나서 어쩌다 잘못한 것 정도는 봐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잘못을 덮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 모세에게 와서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2). 불평과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징입니다. 40년을 불평과 원망으로 모세를 괴롭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어 말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3)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 자체를 큰 불행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앞서 죽은 사람들보다 더 못하다는 말입니다. 고생만 했지 나은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자신을 저주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이 아니라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려준 하나님에 대한 원망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로 없도다”(4,5) 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기보다 모세와 아론이 인도하여 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받는 자유인이 되기보다는 배부른 노예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 없는 눈으로 현실만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광야에서 파종할 곳을 찾고 무화과나 포도를 찾았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물이 없었던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 번 물이 없을 때 모세가 반석을 처서 물을 내어 맘껏 마셨던 경험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을 듣고 모세는 여호와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하라’(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백성들을 반석 앞에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석을 명하여 물을 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10) 하고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 회중과 짐승이 물을 마셨습니다(11).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맑은 대낮에 날벼락과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세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많은 설교자들이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을 문제를 삼습니다. 하나님은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고 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에게 명하지 않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는 것을 잘못이라고 합니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가 말로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106편 32,33절에 “그들이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는 것 때문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모세가 입술로 망령되이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백성들에게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라고 말했습니다. ‘반역한’은 ‘패역한’, ‘소망이 없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하던 악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반역한 너희여’, ‘패역한 너희여’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이 비록 잘못한 일을 저질렀다고 해서 이웃 사람이 욕하고 저주 한다면 듣고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반역한 너희여’라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불평하고 원망은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백성들 입니다.
비록 믿음이 없고 말썽을 부리는 자라도 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성도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애 먹이더라도 그가 누굽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어 그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해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여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남편을 다섯을 가졌던 여인도 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열여덟 해 동안 귀신들려 꼬부라져 펴지도 못하는 여자를 안식일에 예수님이 고쳐 주셨습니다. 귀신들린 여자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보고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하셨습니다(눅13:16). 비록 허물이 있고 잘못한 것이 많아도 그가 하나님의 백성일 때 그를 향하여 ‘반역한 자’ 라고 말하는 것은 망령된 말로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잘못은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망령된 말은 ‘우리가’, ‘내가 반석에서 물을 내랴’는 말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일을 하였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는 일을 하였을지라도 모세 자신이 한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수종든 것 뿐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마치 자기가 반석에서 물을 낸 것처럼 말하였습니다.
목회자의 오류가 교인들을 내 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맡은 종에 불가 합니다. 어려운 교회를 부흥 시켜 큰 교회를 목회하시는 분들은 내가 이 교회를 이렇게 크게 성장 시켰다는 자만에 빠집니다. 그래서 은퇴하면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는 오류를 범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교회 세습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고 한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을 낸 것을 내가 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잘하고 성공하면 자신이 잘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채서 자기 것으로 말합니다. 이런 오류는 대개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이 잘 범하게 됩니다. 어려운 교회를 내가 이렇게 크게 부흥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모세 역시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들을 자기가 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이것은 망령된 말로 범하는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으로 믿는 무서운 죄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모세의 범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12)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기도에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기도문에 제일 먼저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므로 백성들로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내가 너희들에게 물을 내랴’고 말하므로 말로서 망령된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자신들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게 하므로 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존재를 확신 시켜 줄 기회를 모세가 박탈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마치 자신의 것 인양 착각하며 교만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와주심으로 잘 된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하는 데, 자신이 잘해서 잘된 것처럼 하므로 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큰 실수를 하고 범죄하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입성을 금지당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범한 죄의 댓가를 받아 들였습니다.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고(민27:28),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가나안 온 땅을 바라보고 죽었습니다(신34:5). 기록은 없지만 이때 모세는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세상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천국으로 비유를 많이 하지만 그러나 어디까지 상징적일 뿐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천국에는 분명히 들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를 하셨던 것을 보아서도 천국에 들어갔다는 것을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죄를 범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갔더라면 인간적인 욕망을 채우는 축복을 받아 누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으로 마지막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세상적으로 마지막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 끝까지 믿음으로 살다가 마지막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주의 품에 안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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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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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설교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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