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락사 /전통사찰
- 경북 상주시 서성동
상주포교당, 왕산역사공원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400m쯤.
왕산역사공원에서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여기까지 걸으면 된다.
상주 상락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문화재자료)
육계를 포함한 머리 부분이 몸체에 비해 크며, 몸통은 좁고 작은 편이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치는 우견편단, 왼쪽 무릎 위에는 옷 끝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듯이 몸 바깔으로 삐치고 있다.
이는 독특한 표현이다. 만든 시기는 조선후기, 17세기 불상 양식이다. (설명문 인용)
대한민국구석구석, 여기엔 이 불상이 문경 김룡사에서 옮겼다고 한다.(사진 가운데 불상)
동해사(東海寺) /전통사찰
- 경북 상주시 서곡동
17세기 편찬된 상주의 읍지인 『상산지(商山誌)』 사찰조,
한산사(寒山寺), 고을 10리 지점에 있는 식산 고수대(高秀臺) 아래에 있다.
1384년(우왕 1)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가 읍의 지기(地氣)를 돕기 위해 창건,
자초는 상주 지형이 배가 떠나가는 모습인 행주형(行舟型)이므로 이곳에 돛대 역할을 하는 절을 세워 동해로 향하게 하고,
절 이름을 동해사라고 하였다. 동해사는 풍수도참사상에 따른 풍수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세워진 비보사찰(裨補寺刹)이다. 1638년(인조 16) 희선(熙善)이 중건,
숭명처사(崇明處士) 이경남(李景南)이 경내에 충효당(忠孝堂)을 세우고 숭명배청(崇明排淸)을 주장, 명 황제를 위해 매년 제사. 1838년(헌종 4) 용담(龍潭)이 중창, 1879년(고종 16) 박정선(朴貞善)과 이정호(李庭豪)가 옛터의 동쪽으로 옮겨 지으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2년 후에 박인형(朴仁亨)이 불사를 이루었다.
최근 1989년 불에 탄 것을 1991년 김성운(金成雲)이 대웅전을 중창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때 경내에서 석조여래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4년 지정) 이 발굴되었는데 직지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겼다. 현존 건물은 대웅전과 칠성각·산신각·요사채 4동이 있다. 근대적 학문으로서의 불교학 연구에 크게 기여했던 뇌허(雷虛) 김동화(金東華) 박사가 1913년 이곳에서 출가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조금 고침)
상주 시내를 지나면서 동해사 표지를 보았다. 시내에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였다.
주소는 시내이지만 식산(息山, 506m) 정상 가까운 곳에 있다.
상주 시내가 휜히 보이는 건 아니지만 문경 방향 산들을 보는 건 즐거움이다.
경내는 잘 가꾸어져 있다. 갑갑할 때 이곳에 주차하고 가볍게 식산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 쉬면 좋겠다.
대웅전 안
상주 무곡리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 경북 상주시 공성면 무곡리
연암산(기양산)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마을사람들이 1982년 현재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1991년 복원하여 다시 세웠다. 2층과 3층 몸돌은 복원 때 만든 것이다. 탑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만든 것으로 여긴다.
문비(문짝)가 있다.
왕산역사공원
- 경북 상주시 서성동
복룡동 석조여래좌상(보물), 왕산역사공원 안에 있음.
상주시 복룡동에 있던 것을 1975년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고 있다.
불상 자세나 신체 묘사가 투박하고 얼굴이 풍만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만든 것으로 여긴다.
팔 위치와 손가락 모양을 보아 비로자나불로 여겨진다.
복룡동 당간지주(경북 유형문화재)
- 경북 상주시 복룡동
당간지주가 있는 이 일대가 옛날 동방사란 절이 있었다.
고려시대 백운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집>과 <동해사실기>에 나온다.
동해사실기에 식산 근처 두 하천 사이의 허함을 막기 위해 이 절을 세웠다고 적었다.
이 일대에서 청자와 기와편이 나와 동방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안내판 인용)
왕산역사공원에 있는 복룡동 석조여래좌상도 이 절과 관련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013년 10월 17일
구미 보천사, 구산리 삼층석탑, 원각사, 죽장사 오층석탑, 상주시 무곡리 삼층석탑, 왕산역사공원
2013년 10월 18일
왕산역사공원, 복룡동 석조여래좌상, 복룡동 당간지주, 상락사, 동해사, 충주 미륵대원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