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과 발자크와
김정희>
아들과 함께 로댕전에 갔다. 방학동안 학생들을 겨냥해 소품 몇 개 가져온 후 대가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처럼 과대선전하는
특별전이 판치는 세상에 이번 로댕전은 아주 내용이 알찼다. 로댕의 삶을 추적해볼 수 있도록 시대별로 작품을 전시한 것도 그렇고 대작이 많은 것도
좋았다. 전시되지 못한 로댕의 대표작은 사진과 설명으로 대체했다. 전시 기획자의 정성이 느껴지는 전시회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멈춘 곳은 역시 ‘생각하는 사람’ 앞이었다. 책 속에서 워낙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그러나 실물을 본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나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모두들, ‘이렇게 컸어?’
‘생각보다 힘이 넘치네.’등등의 얘기를 하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원작품을 보는 맛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사진으로만 봤던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우표딱지만한 좁은 공간을 탈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작았는데 실물은 건장한 청년이 앉아 있는 것처럼
우람하고 컸다.
그런데 아들과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발자크상과 빅토르 위고상이었다. 마치 거적대기를
걸친 듯 단순하게 조각된 발자크상을 보면서 요즘 한참 책읽기에 빠져 있는 아들에게 그의 삶을 얘기해줬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발자크는
작가가 되기까지 순탄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야했는데, 20대 중반에 시작한 인쇄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평생 빚쟁이에게 쫓겨 다녀야 했다. 오후에
잠깐 눈을 붙이고 자정에 일어나 다음날 낮까지 열 여섯시간 씩 글을 써야 했던 이유도 사실은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만약 발자크에게 빚을
갚아야하는 절박함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치열하게 글을 쓰지는 않았을 테니까 명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닥친 불행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삶이 고통이었을 지 모르지만 그 고통은 하늘이 그에게 좋은 글을 쓰게 하려고 준비해놓은 통과의례였다는 것을
주섬주섬 얘기했다.
오귀스트 로댕, <발자크>, 청동,
270cm, 1893-97년, 로댕미술관, 파리, 프랑스
내가 발자크를 좋아하는 제일 큰 이유는 그도 나처럼 커피를 잘 마셨기 때문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유치하게 별 것도
아닌 공통점을 찾아 마치 그와 내가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니리라. 발자크는 밤새워 집필하면서 하루에 커피를
40잔 이상 마셨다. 결국 과도한 작업량과 지독한 자기 몰입 때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그 또한 작가다운 죽음으로 보인다. 작가가
자신이 창작하는 작품을 만들다 죽어야 진정한 작가지 어디 호화스런 유람선 위에서 썬텐하다 죽으면 그게 작가겠는가. 커피 때문에 좋아하게 된 나의
우상을 위한 찬사는 빅토르 위고상 앞에 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빅토르 위고를 얘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미끼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발자크 소설 『고리오 영감』을 읽지 않으면 후회할거야.”
그런데 빅토르 위고상은 발자크 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고 위대해보였다. 로댕이 발자크상을 만들 때
발자크라는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고심했다면, 빅토르 위고상을 만들 때는 그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빅토르 위고는 사진에서처럼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다른 손은 단호하게 뻗은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그의 위쪽에는 작품 속 주인공같은 젊은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작가를 향해 몸을 구부리고 있다. 깊은 침묵에 빠져 쉽게 깨어날 것 같지 않은 빅토르 위고의 모습은 단순히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창조자의 입장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질러대는 통곡과 비명과 아우성을 주의 깊게 들으려는 자의 진정성이 배여 있다. 그의
글이 단순히 타고난 글재주를 자랑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아니, 그런 빅토르 위고의 진심을 로댕이 꿰뚫어 봤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가. 진심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건가.
불과 열한 살의 나이에 벌써 ‘샤또브리앙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문필가의 길을 선언한 빅토르 위고. 그는
자신이 결정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인생 또한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국외로 추방되어 거의 19년동안 망명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빅토르 위고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느껴지지 않니? 너도『레미제라블』을 읽으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그 말을 하는 순간 퍼뜩 추사 김정희가 생각났다. 프랑스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빅토르 위고를 사랑했다면 나는 추사를
사랑했다. 추사는 내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준 사람이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머리도 좋고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경지의 학문적 성취를 이뤄냈다. 그야말로 엄친아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는 추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절망스럽게 했다.
그러나 추사는 자신의 삶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을 두 차례의 유배를 통해 거듭나고 거장이 되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련이 결국 추사를
진정한 추사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덜커덕 주저앉으려는 나를 추사가 일으켜 세운 것이다. 추사의
제자였던 소치 허련이 그린 <완당선생초상>에는 생전에 스승을 극진하게 생각했던 제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화려함과 쓰라림이 교차된
스승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제자의 마음이 녹아 있다. 그 마음은 백 오십 년 세월을 생략하고 한 번도 추사를 본 적 없는 용인의 내게도
전달된다. 추사를 담기에는 턱없이 작은 그릇인 내가 굳이 추사에 관한 책을 썼던 것도 그를 향한 연모와 흠숭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산 사람의 생애는 단지 그의 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바라본 사람의 삶까지 치열하게 물들인다. 로댕의 삶이 발자크와
빅토르 위고로 물들었다면 허련과 나는 추사에 물들었으리라. 한 사람을 모델로 삼아 조각을 하든 초상화를 그리든 자신이 모델로 삼은 대상에 물들지
않고는 결코 영혼이 담긴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생애를 복원하여 평전을 쓰는 것 또한 그러하리라. 나는 추사의 평전을 쓰면서 그에게
물들었다.
허련, <완당선생초상>, 종이에 담채,
36.5×26.3cm, 개인소장
전시장에 다녀 온 며칠 후,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로댕전에 다녀온 소감을 얘기했다. 조각을 하는 그녀가 본 로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로댕의 손길이 얼마나 간절하고 애절하던지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고 말했다. 같은 길을 걷는,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그런 로댕을
봤다고. 예전에 보이지 않던 로댕의 손끝이 느껴져 작품을 통한 감동이 아니라 그의 손끝이 그녀의 마음을 만지는 것 같다고 했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시공간을 뛰어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그녀의 고백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로댕의 작품을 본 감동이 그녀의 마음을 휘몰아쳐
새로운 창작욕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가 바쁜 일상을 접고 잠시라도 시간을 내서 전시장을 찾고 공연장을 찾아야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곳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평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의미를 되물을 수도 있고, 애써 무시하며 살았던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찌
전시장과 공연장 뿐이겠는가. 누군가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무엇이라도 좋다. 배낭에 무거운 짐을 쌀 필요가 없는 하룻
동안의 여행이라도 좋고, 역사 속의 위대한 사상가를 온전히 독차지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도서관도 좋다. 혹은 고요히 앉아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행의 장소도 좋고, 삶과 죽음이 한 호흡에 갈라지는 병원 응급실도 좋다. 차마 품지 못할 참혹한 불평만 늘어놓으며 자신의 인생에
어깃장만 놓고 살고 있다면 무조건 나서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읽은 책과 두 발로 걸어 다니며 가슴으로 느낀 세상의 넓이만큼만
살다 갈 것이다.
로댕전 관람이 계기가 되어 아들과 나는 집에 오자마자 그들의 대표작을 빌렸다. 나는 발자크의『고리오 영감』을, 아들은
빅토르 위고의『레 미제라블』을 읽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책을 다시 읽으니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책을 읽던
때의 기억까지 겹쳐 묘한 향수가 느껴졌다. 대학교 때는 무조건 어리석게만 보이던 고리오 영감의 행동이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수 있는 것이 부모 아닌가.
로댕의 전시장에서 본 발자크상을 보며 발자크를 해석한 로댕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면, 발자크의 소설을 다시 읽으며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로댕전 관람은 단순히 로댕의 작품만을 본 것이 아니라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언제나 마지막 질문은 현재의 나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를 비추어볼 수 있는 만남은 계속될 것이다. 벌써부터 14일에 국립박물관에서
시작될 <이인상 특별전> 때문에 마음이 설레인다. (조정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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