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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터뷰] 민주주의 활동가 이민철 - 권력을 함께 만들 때 진정한 협치가 가능하다
조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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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페이스북에서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내가 하는 활동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 너하고 잘 맞을 것 같은 활동가가 광주에 있으니 나중에 한 번 만나보라고. 그 사람과 페이스북 친구로 지내다가 2년 전 쯤 우연히 서울시청 광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서울시 정책박람회 기간이었는데 그는 광주에서 서울정책박람회와 비슷하지만 좀 더 직접 민주주의 방식에 가까운 시민정치페스티벌을 기획했던지라 ‘민주주의’ 관련 토론회 참석했다가 서울광장에 들른 것이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나중에 광주에 한 번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그를 2018년 지리산포럼에 초청했는데 3박 4일 동안 포럼 운영에 신경쓰느라 정작 그와는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그리고 2018년 겨울, 그를 만나러 광주에 갔다.
그의 이름은 이민철이고 활동가다. 그를 만난 후 나는 그를 ‘민주주의 활동가'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도 그 시기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그는 대학에서 교육운동을 했다. 물론 그가 고등학생일 때 전교조 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이유를 알 것도 같았지만 그는 왜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때도 교육운동 고민을 많이 했고, 대학 가서도 교육운동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육운동이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를 밑바닥부터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예요. 4년 전에 덴마크에 다녀와서도 생각한건데 저는 한국 사회에서 크게 바꿔야 할 게 있다면 교육과 정치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에게는 그래요”
그래서였을까? 그는 대학 졸업 후, 실제 학교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30대에 대안학교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98년부터 2년간 교육 관련 모임도 만들고 공부도 했어요. 2000년부터는 대안학교 만드는 일을 시작했는데 2003년까지 학교는 못 만들고 그냥 교육운동만 계속 했어요. 돈 문제도 있었구요. 지금 생각하면 어설펐던 것 같아요. 생각만 있었지 그걸 담아낼 실력이 없었던거겠죠. 30대 초반이었고 이상이 높았던지라 학교 만드는 건 실패했어요.
제가 일을 집중해서 하다가 뭔가 안풀리면 외유를 좀 하는데, 그 때도 외유를 했어요. 그러다가 도법스님이 진행하는 탁발순례도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5년간 교육운동과 평화운동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그리고 2009년 복귀해서 정말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학교 만들기를 시작했어요. 2010년에 학교를 시작했고, 학교밖센터도 만들고, 청소년문화의집 관장도 하면서 지냈어요. 그렇게 작년까지 일하다가 지금은 직장밖 시민으로 살고 있죠.”
이민철씨는 사회가 바뀌려면 교육과 정치 두 가지를 바꿔야 한다 했다. 교육과 정치는 사실 누구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분야이고, 변화에 대한 열망도 큰 분야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교육과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욕구의 공통 키워드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일인 게 당연한데 그가 정치라는 단어를 쓸 때는 새로운 사람을 등장시키고 그 사람들과 무엇인가를 같이 만들어가는 일 자체를 정치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것 같아요. 저에게 관심사는 사람의 성장이예요. 어떤 분은 운동을 접근할 때 이기고 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던데, 저는 그 일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가져요. 그런 일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것을 좋아하구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죠.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시민들에게 힘이 생기는 것,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시민성이 생기는게 중요하죠.”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제도를 바꾸기는 쉬울 수 있어도 사람을 성장시키기는 일은 말만큼 쉽지 않다. 사람의 성장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일이다. 내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의 성장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되지만 막상 그 시기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시민들의 성장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다. 그에게 활동을 통해 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지 물었다.
“근데 제 눈에는 그런 것만 보여요.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것, 삶의 태도가 바뀌는 것, 새로운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보이죠. 그런 점은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살아가는 모습이 바뀐다는 것은 관심사가 바뀌는 것이기도 하죠. 늘 소비와 돈벌이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 관심사가 바뀌어서 뭔가에 참여해요. 선거 시기에 브로커처럼 살던 사람이 자기 선거 조직을 좀 더 공적인 곳으로 바꿔보려고 하고. 저는 이런 게 변화라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게 ‘세월호시민상주모임’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증언하고 있다고 할까요. 내 삶이 이렇게 바뀌었다고요. 그분들이 지금은 광주 지역의 여러 운동들을 주도하고 참여하고 계세요. 마을 운동이 자칫 잘못하면 마을 사업이 되어버리잖아요. 근데 ‘세월호시민상주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마을 운동을 하고 있어서 조금 더 생명력을 갖는 것 같아요. ‘세월호시민상주모임’ 사람들이 참여하는 마을 운동과 시나 구의 예산이 들어가서 진행되는 마을 사업은 차이가 보이죠.”
2014년 광주에서는 여러 마을에서 주민들과 예술인 등이 모여 세월호 마을 촛불모임을 열고 있었다. 이민철씨는 그 때 SNS를 통해 마을촛불모임을 엮어 시민상주모임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3년 상을 치르듯 적어도 3년 동안 활동하자는 취지로 모임 이름에 상주를 넣었다.
그의 제안대로 3년 동안 그도 시민상주를 자임했다. 그는 ‘세월호시민상주모임’으로 사람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 성장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특히 외부에서 봤을 때 다양한 개인들의 네트워크 모임이 3년 동안 잘 운영되어왔고, 그 모임 속 사람들의 성장이 눈에 들어온다면 모임의 발전과 성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임의 성과는 곧 그 모임을 있게 한 제안자에게 돌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말 가끔 들어요. 성과에 대한 이야기, 조직운동에 대한 이야기죠. 그러니까 이민철은 광주에서 이런 저런 새로운 일은 벌이는데 결국 자기 조직은 없지 않느냐는 말이죠. 엇그제도 그런 말을 들었네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내가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면 조직과 사람을 관리하겠지만 나는 조직을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저한테는 신뢰하는 관계망들이 있어요. 제가 뭘 같이 하자고 하면 한 번 해볼께라고 믿어주는 관계망이 있어요. 그게 저에게 조직이라면 조직이지만 그걸 이민철의 조직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죠.
저는 어떤 신뢰가 있냐면요. 충분한 명분이 있고 공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사람들이 한다고 생각해요. 공적인 일도 아니고 명분도 없는데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상한 사람들이죠. 공적인 시민들이 아닌 거죠. 저도 광주에서만 한 30년 가까이 운동을 했기 때문에 관계가 굉장히 많죠. 고등학교 운동했던 그룹부터 대학그룹들, 사회 나와서 운동한 그룹들과 다 관계맺고 있지만 제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세력을 구축하고 파로 몰려다니고… 별로 긍정적인 면을 보지 못했네요. 파벌이라고 하는 게 대체로는 이해 관계로 결집되어서 나쁜 경우를 더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굳이 애써서 그런 쪽에 가담하거나 동문회를 가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세월호시민상주모임’을 만들고 3년 간 하기로 했는데 지금도 활동하고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이 성공했다고 해요. 심지어 이 상주모임이 최근 광주에서 했던 운동 중에 가장 성공적 모델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제가 봐도 성과가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야기해요. 이 조직을 새로운 조직으로 만들어서 이 힘과 성과를 버리지 말고 새로운 모색을 해야 된다구요. 저는 반대했거든요. 해체해야 한다고 했어요. 416재단 같은 곳에 참여하고 상주모임을 해체해야 한다고요. 세월호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고 일종의 플랫폼이니까 3년 간 일이 끝났으면 해체하고 일이 있으면 다시 모이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논란이 있긴 했어요.”
그는 자신의 관계망 안에서 부탁하고 제안하는 일들이 충분히 공적이기 때문에 굳이 조직이 아니어도 관계망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조직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운동의 지속가능성 때문이다. 내가 아니어도 이 운동의 대의와 명분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 보기 때문에 함께 모여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을 유지하려면 조직의 성과도 있어야 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하는 일도 있어야 하지 않냐고도 한다. 관계망을 신뢰하고, 관계망 속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조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이야기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죠. 광주에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라고 하는 조직이 있고, 약 3년 정도 운영을 해온 셈인데 저는 상근은 아니거든요. 구성원으로서 일을 만들고 같이 하고 있지만요. 필요할 때 일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필요가 사라지면 없어지고, 저는 그런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조직은 필요하죠. 조직을 통해 의제가 발굴되고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구성원들의 힘이 함께 커지기도 하죠. 전 그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예요. 다만 제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죠. 공적인 조직, 시민 조직은 더 많아져야죠.”
그가 스스로 조직을 만들지 않는 것은 조직운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활동 방식이다. 하지만 많은 활동가들이 그와 똑같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조직 내에서 일하고 있는 전업 활동가들이 있고, 그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시민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일반 제도권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자마자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는 어렵거든요. 그래서 제도권 학교와 사회 진출 사이에 대안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거쳐야 살아갈 힘도 생기고, 두려움도 없어지고, 그렇게 사회에 나오게 나올 수 있거든요. 활동도 그런 과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활동가들 중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활동가는 많지 않아요. 그렇게 하려면 스스로 버틸 수 있는 내공도 필요하고, 자기 전문 영역 내에서 성장도 해야 하는데, 그 전 단계로 조직에서 일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봐요.
활동가 입장에서도 그렇고, 조직 입장에서도 전업 활동가가 있어야 일의 효율성 뿐만 아니라 책임성도 생기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하고 집행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무책임해질 수 있죠. 그래서 어떤 모임과 활동가에게는 조직이라는 우산이 필요해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과 조직에서 일할 것이냐의 문제는 다르지만 활동가의 역할와 존재 방식도 점점 다양화되니까요”
조직이라는 우산이 필요하다는 것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1인 활동가라는 말도 사실은 온전히 혼자서 하는 활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혼자서 하는 활동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1인 활동가로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관계망을 잘 유지해야 한다. 조직에 속하지 않는 활동가도 조직은 필요하다. 소속 조직이 아니더라도 본인 활동의 우산이 되어줄 수 있는 조직, 뒷배가 되어줄 수 있는 조직, 먼저 길을 닦아줄 수 있는 조직,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그는 지금 스스로를 직장 밖 시민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이민철씨를 소개해준 고등학교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면, 사실은 그 친구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를 것이다. 페이스북으로 일하는 내용을 접했을 뿐일테니까. 그래서 단지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그는 단지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사람만은 아니었다. 사람의 성장에 관심을 두고 교육과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활동가였다.
그 활동의 기반을 조직에 두지 않고 관계망 속에 둔다는 측면에서는 새로울 수 있지만 그것을 단지 새로움만으로 의미부여할 수는 없다. 그는 여전히 전통적인 시민사회단체의 의제인 정치의 변화, 행정의 변화를 위해 일하고 있는 활동가다. 지금 그는 광주 민주주의온라인플랫폼을 제안하고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과 향후 선거 시기에 대비해서 정치적 역량을 갖춘 사람이 성장하고 그 사람이 정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미디어 프로젝트를 운영중이다.
이민철씨와의 두 번째 대화 주제는 시민 참여와 민주주의 플랫폼. 그는 활동가의 인건비 이야기를 하던 중 뜬금 없이 참여예산 이야기를 꺼냈다.
시민참여예산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기분 나쁘더라구요. 왜 시민참여예산이지? 원래 시민의 돈인데 말이죠. 마치 원래 정부 돈인데 우리가 참여해서 좀 쓰겠다고 부탁하는 느낌이 드는거예요. 돈을 빌려줄 때는 빌리는 사람이 아쉬운 소리를 하는데 나중에는 돈 받아야 할 사람이 쩔쩔 매잖아요. 딱 그런 꼴이예요.
시민들은 자기 돈을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위임한 거예요. 그러니까 예산 자체가 시민예산인데 이게 국가예산 틀에 갇히면서 시민참여예산으로 전락한 것 같거든요. 장기적으로는 시민예산 영역을 만들고, 그 예산의 일부를 공적인 일을 하는 단체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면 현재 활동가들의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참여예산제도의 운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그는 예산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시민 참여가 배제된 예산 계획과 집행, 결산 과정을 생각하면 시민참여예산는 한 단계 진전된 제도지만 더 나아가 공적인 일을 하는 단체와 사람들에게 예산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시민참여예산을 '시민예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단지 명칭을 바꾸는 문제를 뛰어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신선하게 들렸다.
현재 참여예산제도는 시민이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이름을 빌려서 관변단체나 공무원들이 제안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본인들이 애초에 하려고 했던 일을 시민의 이름으로 빌려서 제안하고, 시민참여예산위원들이 그걸 결정하죠. 정확히 이야기하면 현재의 시민참여예산은 100% 시민이 참여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참여예산제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민사회단체가 주장해서 도입되었다. 좋은 취지의 제안이 행정 체계 안으로 들어가 실행 단계로 접어들면 애초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제안은 시민들이 했으나 그 제안을 수용해서 정책으로 만들고 집행하는 권한은 여전히 행정만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참여예산제도의 개선에 대해 어떤 생각이 하고 있는걸까?
작년(2017년)과 올해 광주시민총회를 하고 나서 총회에서 제안된 내용을 시민참여예산과 연계하는 논의를 광주시하고 하고 있는데 아직은 그 단계까지 가지는 못했어요. 논의 과정에서 대안으로 나온 게 ‘광주시 민주주의 온라인 플랫폼’이예요. (바로소통광주라는 이름의 광주시 민주주의 온라인 플랫폼이 최근 오픈했다.) 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시민들이 제안하고 토론하고 결정한 것을 시민참여예산과 연계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시민참여예산의 핵심 원리인 시민이 제안하고 결정하는 것을 관철시킬 수 있으니까요. 대신 의회가 맘대로 삭감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죠.
가장 좋은 방법은 ‘디사이드 마드리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시민이 제안하면 온라인에 숙의 과정이 생기고, 그 다음에 예산을 어떻게 배정할 지 시민들의 투표로 결정하는 거죠. 현재 광주 모델은 시민의 제안에 100명이 동의하면 토론 안건으로 올리고, 토론 안건에 1,000명의 동의하면 시민권익위원회에서 실행 여부를 논의하고, 정책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할 수 있어요. 아직 시민참여예산과 연계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시작을 해봐야죠.
서울시도 시민의 제안을 정책으로 수렴하는 정책박람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또 일상적으로는 ‘민주주의 서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의 제안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시도만으로도 과거에는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제는 시민들의 제안에 대해 시민들이 토론을 거쳐 결정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데 이민철씨도 이야기했듯이 시민의 결정권을 확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고려해야 할 점들도 많다. 그럼에도 시민의 결정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민 제안의 채택 여부를 행정이나 지자체장의 결정에만 의존하게 되면 우리는 계속 선한 의지를 가진 지자체장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민철씨의 민주주의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2017년 광주시민총회로 거슬러 올라 간다. 광주시민총회는 광주 금남로에 시민들이 모여 정책을 제안하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페스티벌이다.
2016년에 총선이 있었죠. 그래서 2015년 12월에 커피파티라는 시민정치모임을 했어요. 커피파티를 하면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 높일까 고민하다가 시민참여 정치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총선이 끝나고 2016년 가을쯤, 시민참여정치플랫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나온 이야기가 ‘시민정치축제'를 해보자였어요. 시민들이 정치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시민정치축제를 구상하게 되었는데 저는 그때 광주시민총회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80년 5월에 시민대성회가 있었는데 그게 광주민주주의의 상징이예요. 만약에 80년 5월을 재현한다면 그 첫 번째가 광주도청 분수대 앞에서 개최된 시민대성회라고 생각했어요. 5.18을 전후해서 광주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와요. 정치인들도 많이 오죠. 그래서 광주에 오는 사람들이 5.18묘역에만 가지 말고 민주주의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정치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중에서도 시민대성회를 재현한 시민총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거죠.
(▲1980년 5월,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서 열린 시민대성회)
그렇게 시작된 ‘광주시민총회’는 민회라고 하는 시민들의 모임에서 제안한 내용들을 온라인에 올리도록 하고, 그 제안 중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내용을 5월 20일 도청 앞에서 모여 시민들 앞에서 발표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2017년에는 약 100건의 제안이 있었고, 2018년에는 약 250여건의 제안이 있었다. 2017년 100개의 제안 중에 바로 수용한 제안이 10여건, 부분 수용한 게 30여건 정도였다.
이렇게 광주시민총회의 경험을 5월 광장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운영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광주 민주주의 온라인 플랫폼이다. 지금은 플랫폼이 오픈되었지만 우여곡절이 있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시장과 지방의원들이 바뀌면서 민주주의 온라인 플랫폼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자 했던 논의들이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일이 시장이나 의회가 바뀌면 다시 원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도 이민철씨는 할 말이 많았다.
민주주의 플랫폼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조례가 있는 게 좋긴 하죠. 하지만 조례가 있어도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시장이 아니면 형식적인 종이에 불과할 뿐이예요. 안하면 그만이거든요. 그래서 제 결론은요. 협치는 권력을 함께 만들 때 가능하다는 거예요. 권력을 함께 만들지 않으면 협치는 시민사회가 구걸하는 것이 되고 대등한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요즘 ‘시민정부 모델'을 생각하고 있어요. 기존의 정부 영역 중에 시민이 결정하는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영역과 그와 결합된 예산, 이걸 저는 시민정부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시장 후보들과 토론할 때 시민참여정부, 시민공동정부라는 말을 썼어요. 근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냥 구호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 시민정부 영역을 만들어야겠다 싶더라구요. 시민은 제안만 하고 행정이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민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 시민정부 영역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시민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다고 제안하면 이건 공적인 일이거든요. 현재 민주주의 온라인 플랫폼은 시민이 제안한 것을 행정이 하라는 것이거든요. 일종의 제안 플랫폼이예요. 요즘 사회혁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논의를 하고 있는데요. 사회혁신은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것이예요. 내가 우리 지역의 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보겠다는 건데 이걸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요. 그리고 이 일은 공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시민들에게는 보상을 해줘야 해요. 이런 일에 필요한 예산이 바로 시민예산이죠. 광주로 보면 시민총회에서 제안된 일, 민주주의 온라인 플랫폼에 제안된 일, 시민들이 나서서 내가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한 일, 시민단체에서 프로젝트로 수행하겠다고 한 일들에 들어가는 돈을 시민예산으로 하자는거예요.
그래서 이 시민예산은 시장이 누가 되든 상관 없이 예산 편성 단계부터 시민들이 설계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시민예산이 있으면 이 예산을 계획하고 집행할 시민정부가 있어야죠. 행정 내에 시민정부 체계를 만들어야죠. 시민정부가 하는 일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행정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이 행정조직은 개방적이고 유연성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두 사람이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시민정부 안에 들어와서 일을 한 후에 프로젝트가 끝나면 나가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제안되면 그 프로젝트를 수행할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시민들, 힘을 가진 시민들이 많아져야죠. 그리고 이 시민정부의 영역을 계속 늘려가야 해요. 그래야 시장이 누가 되든 시민들이 주인인 정치와 행정의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어요.
시민참여예산 용어에 대한 불만이 급기야 시민정부애 대한 이야기까지 나갔다. 시민과의 소통과 참여를 넘어 아예 시민정부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언뜻 보면 급진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재정개혁을 주장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예산의 일정 부분을 시민들이 쓰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예산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시민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법을 바꿔야할 문제지만 국가 재정을 설계할 때 주류세와 담배세 같은 것은 시민예산으로 별도 편성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주민세 중 일부를 주민자치회 같은 곳에서 쓸 수 있도록 하고, 마을의 다양한 조직을 위탁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저는 마을정부 체계도 갖출 수 있다고 보거든요. 시민예산과 연동해서 시민정부와 마을정부 체계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권력과 상관없이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우리만의 체계를 가질 수 있는거죠. 그리고 이 영역을 계속 늘려가는 방향으로 운동을 해야죠.
행정과 의회에 우리가 위임했던 시민의 권력을 이제는 회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은 위임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건데 사실 전혀 효과적이지 않고 문제가 계속 생기고 있죠. 디지털 기술도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위임했던 권력을 회수해서 시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개입하는 영역을 늘려가고 그 일을 하는 시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죠. 다만, 이 체계가 너무 경직되면 안되니까 유연한 체계를 만드는 걸 고민해야 하구요. 이 과정이 저는 '국가의 사회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계속해서 사회를 넓혀가고 국가를 줄여가야죠.
그는 권력을 같이 만드는 것이 진정한 협치라고 이야기했다. 권력을 같이 만든다는 것은 선거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데 그는 사실 인터뷰하기 전 식사할 때부터 선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할 2018년 말 당시, 총선이 1년 넘게 남았음에도 광주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다음 총선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
협치 논의를 시나 교육청 등과도 꾸준히 해왔는데요. 지금까지 수준은 자치단체장의 선의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언제든지 깨질 수 있어요. 협치가 깨지지 않고 작동하게 하려면 법이나 제도도 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저는 시민사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일 좋은 것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함께 만드는거죠. 그래야 시민정부라는 타이틀에 맞는 수준의 협치가 가능해요.
선거를 치루면서 새로운 걸 발견했는데요. 사실 거의 매년 선거가 있어요. 선거를 시민사회가 잘 활용하면 시민사회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거판에는 항상 많은 시민들이 몰려와요. 돈으로 오든, 관계로 오든. 그리고 선거판에서는 꽤 많은 정치적 토론을 할 수 있어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도 하구요. 시민운동을 하다보면 자칫 시민들과 만나지 않고, 이야기를 듣지 않는 오류에 빠질 수 있어요. 늘 보는 사람하고만 소통하죠. 그런데 선거운동을 하면 시민들을 참 많이 만나요. 그래서 저는 선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시민사회가 시민들에게 더 가까워지고 지지받기 위해서는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권자운동 플랫폼을 어떻게 만들지가 가장 큰 고민이예요. 뭐든지 단순해야 일이 쉽잖아요. 동료들과 함께 논의 중인 것은 유권자 플랫폼 안에서 각자가 원하는 정치그룹을 만드는거예요. 예를 들면 100명이 100개의 그룹을 만들어요. 마징가당을 만들 수도 있고, 짱가당을 만들 수도 있어요. 그리고 자기 당에는 친한 사람들을 모아요. 인맥을 총동원해서. 우리가 선거할 때 보면 인맥을 총동원하거든요. 그리고 일상적인 정치토론을 그 안에서 해요. 매주 원탁회의를 할건데 각 당에서 사람을 뽑아서 원탁회의에 내보내는거예요. 그 원탁회의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해요. 원탁토론에서 그 의제와 관련된 정치인들을 소환해서 압박할 수도 있구요. 그리고 선거 시기에는 후보를 낼 수도 있어요. 어떤 그룹에서 후보를 내면 그 후보를 지지해줄 수도 있고, 후보를 같이 낼 수도 있고요. 현실적으로 광주에서는 민주당이 나오면 당선 가능성이 꽤 높은데 이렇게 우리만의 유권자 플랫폼을 만든 후에 그 힘으로 민주당과 권력을 함께 만드는 작업을 해야만 실질적인 시민정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이야기한대로 시민들이 직접 만든 당이 함께 만드는 TV토론 프로그램)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미 광주에서는 그때 이민철씨가 이야기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생방송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토론회가 유권자 운동을 일환이고, 선거와도 관련이 있고, 그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진정한 협치를 하기 위함이고, 협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시민정부를 만들고자 하는 그의 구상을 2시간 동안 들었다.
앞서 이민철씨를 민주주의 활동가로 소개했는데 그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민주주의 기획자라는 말이 어울릴 것도 같다. 그는 무엇보다 시민들에게 힘이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민철씨가 왜 시민들의 힘이 생기는 것이 관심사라고 했는지, 힘이 생긴 시민들과 함께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알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시민에게 힘이 생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권력을 운영할 역량을 갖춘 시민들이 많아진다는 의미였다. 선한 정치인을 믿고 지지하고 선출해서 시민의 힘을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권력을 함께 만들어야 진정한 협치가 가능하다는 생각,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기획하고 설계하고 운영하는 민주주의 시스템, 그의 표현으로 하자면 시민정부에 동조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넓혀가기를 기대하면서 긴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_ 조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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