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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대언자
“두려워하는 자”
이번에는 『두려워하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두려워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두려워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서 영원토록 고난을 받습니다.(계14:9-11)
성경에 두려워하는 자는 어떤 기독교인들을 말씀하는가를 바르게 알아서, 기독교인들은 두려워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이 세상의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는 ‘자’(하나님)를 두려워하라.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무리가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한 것을 성경에서 찾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7: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때가 되니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파의 목사들과 장로들’(영적인 유대교인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세상의 권세를 받아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목사들과 성도들을 죽이려고 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성경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 교파의 목사들이 정치하는 정당인 [기독교당]을 창당하고(한국기독당 2004년 3월 22일 창당),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정당인 한나라당의 당원이 되어 정치에 참여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십니다.(마5:18)
요7:11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요7:12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요7: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명절’(요7:2 초막절) 중에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가 어디 있느냐?” 하며 예수님을 찾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리 중에서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하게 한다.”하나, 그러나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예수님)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혹은 “좋은 사람이라.” 혹은 “아니다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는 이런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파의 교인들이 ‘성경’(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수준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아는 지식수준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파의 교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간다.” 혹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이런 정도의 성경을 아는 지식수준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드러나게 말하지 못한 것처럼,
지금 우리나라 교파의 일부 기독교인들도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을 두려워하여,
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어떤 목사들의 집회나 부흥회에 참석을 하는 때에도 드러내어 참석한다고 하지 못하고,
은밀하게 참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기막힌 현실입니다.
{1990년-2000년경에는 ‘지금보다’(2016년인 지금보다) 이런 일들이 매우 심하였습니다.}
예전에 교파의 목사들과 장로들이 이초석 목사님을 “이단이다.”라고 하면,
교파의 교인들은 뒤에서 수군거리며 “이단이 아니다.” 혹은 “이단이다, 기독교인들을 미혹하게 한다.”라고 하며,
목사와 장로들을 두려워하여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의 제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유대교인을 두려워한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은휘(隱諱) = 꺼리어 숨기고 피함.
예수님의 제자인 요셉은 부자이며(마27:57) 존귀한 공회원입니다.(막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은휘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파의 교인들은 교파의 목사와 장로들을 두려워하여, 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목사들의 「설교 테이프」나 「성경을 해설한 책」을 드러내어 듣거나 보지 못하고 은휘하면서 듣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요셉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는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드러내었듯이, 우리나라 교파의 교인들 중에서도 교파의 목사와 장로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이 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목사들의 제자인 것을 드러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번에는 ‘열 명의 사도’(가룟 유다와 도마가 빠짐)가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한 장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이 날’(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모인 예수님의 열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다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자신들을 죽일 것으로 알고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신령한 몸으로 오시어 가운데 서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못 박히신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이시니, 열 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열 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기 전에는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신령한 몸을 본 후에는, 자신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순교하면 예수님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알고,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의 열 명의 제자들과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은 잠시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후에는 믿음이 담대하여져서, 유대교인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행5:40-41),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파의 교인들도 교파의 목사와 장로들을 두려워하여, 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목사들의 집회나 부흥회에 드러내어 참석하지 못하고 은휘하는 신앙을 하지 말고, 담대한 신앙을 하여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20:1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스라엘 족속이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는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찌라도, 너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들을 두려워 말라.
기드온과 삼백 용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미디안 족속의 군대 십삼만 오천명을 쳐서 이겼습니다.(삿7:1-8:12)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과 오백여 명이었고(고전15:3-6) 유대교인들은 수만 명이었지만,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행4:16-21)
지금 우리나라에도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기독교인들은 극히 적고, 세상적인 교파의 기독교인들은 팔백만-구백만(800만-900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세상과 벗된 다수의 교파의 기독교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성경’(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신20:8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
유사(有司) =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족에 따라 지도하던 사람.
유사들은 ‘백성’(이스라엘 백성=지금은 기독교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와 함께 떨어질까 하노라.”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기드온을 좇은 백성이 처음에는 삼만 이천 명이었으나, 두려워서 떠는 자 이만 이천 명과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 구천 칠백 명을 돌려보내고, 기드온에게 강하고 담대한 자 삼백 명의 용사만 하나님께서 남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고 오병이어의 기적 등을 행하실 때에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고, 유대교인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백여 명의 제자들만이 남았습니다.(고전15:3-6)
지금 우리나라의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교파 교회들의 핍박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세상의 재물과 권세에 무릎을 꿇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다 돌려보내고, 기드온의 삼백 명의 용사와 같은 기독교인들을 하나님께서 뽑아내시고 있습니다.
빌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1: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빙거(憑據) = 어떤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
오직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성경 말씀)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사도 바울이)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사도 바울의 제자들이)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성경을 좇아 올바른)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핍박)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핍박을 받으며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 난 것이니라.
“예수님과 복음을 위한 아무 일에든지 ‘대적’(핍박)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한 유대교인들은 핍박하는 그것이 멸망의 빙거이고, 유대교인들에게 핍박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핍박을 받는 그것이 구원의 빙거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세상과 벗된 교파의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을 하는 성도들은 핍박을 받는 그것이 구원의 빙거니,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성도들’(예수님의 제자들)은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네가’(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성도들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세상의 권력자들과 교파의 정치하는 기독교인들이)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교도소)에 가두고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성도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성도들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두려워하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영원히 참예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독교인들이 고난을 받기를 싫어하니, 환난 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예수님과 함께 공중에서 칠년 동안 잔치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은혜(恩惠) = 베풀어주는 혜택.
예수님을 위하여 ‘너희’(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또한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뿐 아니라, 또한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연히 받아야 하며, 그것이 예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사울 왕이 백성을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상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종(聽從) = 시키는 대로 잘 좇아서 함. 이르는 대로 잘 들어 좇음.
사울 왕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지금은 성경말씀)과 ‘당신’(참 선지자인 사무엘)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백성을 두려워하여 백성의 말을 청종하다가, ‘하나님의 명령’(지금은 성경말씀)을 어기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된 것입니다.
사울 왕이 백성을 두려워하여 백성의 말을 청종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도 교단과 장로들과 교인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어긴다면, 사울 왕과 같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자들이 됩니다.
교회의 목사가 교단과 장로들과 교인들을 두려워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바르게 전할 수가 없습니다.
렘42: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시드기야 십 일년 사월 구일에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 구년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인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가고, 예루살렘 성전의 금은 기명들과 기구들을 다 빼앗아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왕하25:1-21)
신사(神社) = 일본 황실의 조상이나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
참배(參拜) = 신이나 부처에게 절을 함.
일제시대에는 세상의 권세를 잡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유다 나라’(다윗 왕의 자손들이 다스린 나라)를 핍박한 바벨론 왕과 같이, 우리나라의 교회를 핍박하고 신사 참배하지 않는 목사들과 교인들을 경찰서에 잡아가두고 고문을 하여 더러는 ‘죽이기도’(순교하게) 하였습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교회를 핍박한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짐승이며’(겔21:31.단7:17.계13:1-8) 일본의 신사가 바로 ‘짐승의 우상’(계14:9-11)인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정치 지도자’(짐승)들이 세운 ‘짐승의 우상’(신사)에게 참배하지 않고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분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녹명이 되신 분인 고로 ‘짐승의 우상’(신사)에게 ‘참배’(경배)하지 않은 것입니다.(계13:8)
신사 참배를 한 장로교의 많은 목사들은 일본의 고문을 두려워하여 “신사는 우상이 아니라 일본의 조상이니, 신사 참배는 우상 숭배하는 것이 아니므로 참배해도 된다.”라고 장로교의 많은 교인들을 미혹하여, 장로교의 많은 목사들이 앞장을 서서 신사 참배를 하고 장로교의 많은 교인들까지 참배하게 하여 짐승의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
일본의 신사에 참배한 장로교의 많은 목사들과 교인들은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본의 신사’(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한 것입니다.(계13:8)
“북한의 김정일은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을 북한의 각 ‘교화소’(교도소)마다 30-40명씩 잡아서 가두어 두고, 한 달에 한번 꼴로 밟아서 죽이거나 펄펄 끓는 쇳물을 들어 부어 죽여서 순교를 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짐승인 김정일과 공산당의 권세를 죽기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를 당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죽임을 당하면서도, 한 사람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복음신문 1998년 1월 11일자 기사) (탈북자 이순옥 씨의 증언).
{지금 ‘우리나라’(남한)의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두고 북한처럼 이렇게 한다면, 과연 순교할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바벨론 왕과 같은 일제시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과 북한의 김정일과,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에 나타날 짐승과 같은 정치 지도자들을 기독교인들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려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여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눅21:16-19)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형벌(刑罰) = 하나님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주는 제재.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좇는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부모들도 사랑하는 자식이 어떤 위험에 처하면, 그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기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대신하여 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입으로만 사랑하지 아니하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위하여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예수님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두려워하여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또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입으로 부인하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고 하였으니, 기독교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전화: (042) 9 3 6 – 7 5 9 9
부족한 종 전대복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