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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
플라톤
[등장인물]
▪ 파이돈(Phaidon)
펠레폰네소스반도의 엘리스 출신이다. 그는 아테네에 전쟁 노예로 팔려 왔다가 소크라테스의 주선으로 케베스(다른 기록에 따르면 알키비아데스 혹은 크리톤)가 몸값을 지불한 덕분에 자유인이 되었고, 이후 철학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소위 엘리스학파를 세웠고, 이후 이 학파는 에레트리아의 메네데모스에 의해 에레트리아로 옮겨져 에레트리아학파로 불리게 된다. 메네모스가 메게라학파의 에우클리데스와 더불어 폄하되고 있는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파이돈학파는 메가리학파와 밀접한 유사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에케크라테스(Echekrates)
에케크라테스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일원이었고, 그의 공향인 플레이우스는 당시 그 학파의 주요 근거지 중 하나였다. 플라톤이 피타고라스학파의 일원을 파이돈의 주된 청자로 설정한 데에는 파이돈의 주요 주제들, 예를 들어 영혼의 불멸이나 이데아론이 그 학파의 주장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케크라테스가 아테네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머물고 있고 아테네의 소식을 듣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사실도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직접적인 묘사가 아닌, 간접적인 보고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플라톤의 의도에 잘 들어맞는 점이다.
▪ 심미아스(Simmias)와 케베스(Kebes)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주된 대화 상대자로 등장하는 심미아스와 케베스는 모두 테베이 출신이다. 크리톤 45b에서 이 둘은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위해 마련한 돈을 들고 아테네로 온 것으로 그려진다. 플라톤은 <열세 번째 서한>에서 케베스를 소크라테스적 대화편들 속에서 심미아스와 더불어 영혼에 관한 논의를 소크라테스와 나누는 인물,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가깝고 호의를 가진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파이돈]
에케크라테스, 파이돈, 심미아스, 케베스
에케크라테스 : 당신 자신이, 파이돈,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약을 마신 그날 그의 곁에 있었습니까, 아니면 다른 누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파이돈: 저 자신이 곁에 있었습니다, 에케크라테스
에케크라테스: 그럼 그가 죽음을 앞두고 한 말들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는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요? 제가 들었으면 싶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요즘은 플레이우스 시민들 중에 아테네를 찾는 사람이 도무지 없는데다가, 그가 약을 마시고 죽었다는 것 외에는 그 일들에 관해서 뭔가 명확한 걸 전해 줄 수 있는 외지인도 오랫동안 그곳으로부터 오질 않아서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에케크라테스 : 그렇다면 그의 죽음 자체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파이돈? 그가 말한 것들과 행한 것들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친한 사람들 중에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혹 관리들이 곁에 있는 걸 허용하지 않아서 친구들도 없이 외로이 돌아가셨나요?
파이돈: 천만에요. 사람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요.
파이돈 : 실은 저는 곁에 있으면서 놀라운 걸 느꼈습니다. 친한 사람의 죽음 곁에 있는 것 같은 연민의 감정이 제게 들지를 않았거든요. 저에게 그는 행복해 보였고, 에케크라테스, 태도에 있어서나 말에 있어서나 얼마나 의연하고 고결하게 최후를 맞이하시던지, 제겐 그 하데스로 가시면서 신의 가호 없이 가시지는 않으리라는, 그리고 행여 누군가가 그런 적이 있다면, 그는 그곳에 이르러서도 잘 되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
파이돈: 실은 저와 다른 사람들은 그 앞선 날들에도 줄곧 바로 그 재판이 있었던 법정에 새벽부터 모여 소크라테스에게로 가곤 했었습니다. 그곳이 감옥 근처였거든요. 그러고는 매번 옥문이 열릴 때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다렸지요. 문이 일찍 열리지 않았으니까요. 문이 열리면 우리는 소크라테스 곁으로 들어가서 보통 그와 함께 하루를 보냈습니다. 특히 그날은 우리가 더 일찍 모였는데, 전날 저녁 감옥을 나설 때, 텔로스로부터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여 왔던 장소로 되도록 일찍 오라고 서로 전했지요. 우리가 도착하자, 문지기가 우리를 맞이하던 대로 나와서는 자신이 지시할 때까지는 들어오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11인회가 소크라테스의 결박을 풀고 오늘 죽음을 맞도록 지시를 내리고 있어서요.” 그러고는 오래지 않아 그가 왔고 우리에게 들어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고, 막 결박을 푼 소크라테스와 그의 아이를 안고 옆에 앉아 있는 크산티페를 -이분을 알고 계시겠지요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크산티페가 우리를 보고는 울부짖으며 여인네들이 해 버릇하는 바로 그런 말을 하더군요. “소크라테스, 이제 친구들이 당신께, 그리고 당신이 그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정말이지 마지막이네요.”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크리톤, 누가 이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도록 하게.”
그러자 크리톤 집안사람들 몇몇이 통곡을 하며 애통해하는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침상 위로 올라 앉아 다리를 굽히고는 손으로 문질렀습니다. 그러고는 문지르면서 말했습니다. “여보게들, 사람들이 즐거움이라 부르는 이것은 얼마나 기이한 어떤 것인 듯싶은지! 그것은 그것에 반대된다고 생각하는 것, 즉, 고통과는 얼마나 놀랍게 연관되어 있는지! 이 둘이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려 하지는 않을 텐데도. 만일 누군가가 둘 중 하나를 좇아 그것을 취하면 필연적으로 늘 다른 한쪽도 취하게 되기 마련이거든. 마치 그 둘이 한 머리에 붙어 있는 것처럼 말일세.”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만일 아이소포스가 그 생각을 했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지었을 거라고 생각하네. 신이 그것들이 다투는 것을 화해시키고자 했지만 그럴 수가 없자 그것들의 머리를 하나로 묶어 버렸고, 이런 이유로 둘 중 어느 한쪽이 일어난 사람에게는 나중에 다른 한쪽도 따라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일세. 나 자신의 경우에도 바로 그래 보이는 것이, 족쇄에 의해서 다리에 고통스러움이 있고 나서는 과연 즐거움이 뒤따라 온 것처럼 보이거든.
자, 그러면 자네들 앞에서 재판관들 앞에서보다 더 설득력 있게 본론을 해보도록 하지. 그가 말했습니다. 심미아스 그리고 케베스 그가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우선 다른 지혜로우며 훌륭한 신들 곁으로,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죽은 사람들 곁으로 가게 될 거리고 생각지 않는다면, 죽음에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겠지. 하지만 이제 잘 알아 두게. 내가 훌륭한 사람들 곁으로 가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말일세. 이 점에 대해서 아주 단정적으로 말하진 않겠네. 그렇지만 아주 훌륭한 주인인 신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이 점에 관해서는, 잘 알아 두게나. 만일 내가 그런 일들 중 무언가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그 점에 대해서일 것임을 말일세. 이런 이유로, 나는 그렇게 노여워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가 있으리라는, 그리고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나쁜 사람들에게보다는 훌륭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좋은 일들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네. 그러면 어떻습니까, 소크라테스? 심미아스가 말했습니다. 그 생각을 당신 자신만 지닌 채 떠날 작정인가요, 아니면 저희에게도 나누어 주실 건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건 저희에게도 마찬가지로 좋은 일이고, 말씀하시는 바가 저희를 설득시킨다면, 그것은 동시에 당신에게 변론이 되기도 할 텐데요. 안 그래도 그래볼 참이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크리톤이 아까부터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 알아보세나.
다른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 자네에게 약을 주게 될 사람이 아까부터 내게 말하기를, 이야기를 가능한 한 적게 하라고 자네에게 일러 주어야 한다는군. 이야기를 하면 열이 지나치게 나게 되는데, 약에 그러한 영향을 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안 그러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때로 두 번이나 세 번까지도 마셔야만 한다는군. 크라톤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내버려 두게, 두 번을 주든, 필요하다면 세 번을 주든 그 사람은 자기 일이나 준비를 하도록 하게.
진정으로 철학 속에서 삶을 보낸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확신을 가지는 것, 그리고 자신이 최후를 맞이하면 저승에서 최대의 좋은 것을 얻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어떻게 내게 그럴 법해 보이는지를 말일세.
철학에 올바르게 종사해 온 사람들이 다름 아닌 죽음과 죽어 있음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네. 자, 만일 이것이 참이라면, 그들이 전 생애 동안 다름 아닌 이것을 열망하면서도 정작 오랫동안 열망하고 추구해 온 것이 닥쳐왔을 때 그것에 노여워한다는 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일 걸세.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하자 케베스가 받아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 다른 것들은 제 생각에 잘 말씀하셨습니다만, 영혼에 관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일단 영혼이 몸으로부터 해방되면, 그것은 더 이상 어디에도 있지 않고 사람이 죽는 바로 그날에 몸으로부터 해방되는 즉시 파괴되고 소멸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그것은 밖으로 나오면 마치 숨결이나 연기처럼 산산이 흩어져 날아가 버려, 더 이상 어떤 곳에도 있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지 하고 말이지요. 만일 정말로 그것이 그것 자체로만 결집되어서 어딘가에 있고 당신이 방금 설명하신 나쁜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있다면, 소크라테스 당신이 말하는 것들이 참이라는 데 대한 크고 멋진 희망이 있겠지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서는 아마도 적지 않은 해명과 논증이 필요할 겁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도 영혼은 있으며 그것이 어떤 능력과 현명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맞는 말일세, 케베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들 자체에 대해서 그것이 그럴 법한지 그렇지 않은지 이야기 나누길 원하나?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저야 당신께서 그것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셨건 기꺼이 들을 겁니다. 케베스가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 지금 내 말을 듣고 누군가가, 설사 그가 희극 시인이라 해도, 내가 수다나 떨고 있고 상관도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고 말 하진 않을 걸세.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된다면 자세히 검토해 봐야지.
그건 이런 어떤 식으로 검토해 보세. 과연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은 하데스에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자, 우리가 기억하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네. 그 영혼들은 이곳으로부터 가서 그곳에 있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 말일세. 그리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즉 산 자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들의 영혼이 거기에 있지 않을 수 있겠나? 어쨌거나 그것들이 없다면, 그들은 다시 태어날 수 없을 테니 말일세. 그리고 만일 산 자들이 죽은 자들 외의 다른 어디로부터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로 분명해진다면, 이것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데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될 걸세.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다른 어떤 논변이 필요할 것이고. 물론입니다. 케베스가 말했습니다. p50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추한 것에 반대되고, 정의로운 것은 부정한 것에, 그리고 그 밖의 무수히 많은 것들도 그러할 걸세. 그러면 이것을 검토해 보세. 반대되는 어떤 것이 있는 것들의 경우, 그것들은 다름 아닌 그것들에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필연적인가? 예를 들어 어떤 것이 더 큰 어떤 것이 될 때, 그것은 어쨌든 이전에 더 작았던 것으로부터 더 큰 것이 생겨나는 것이 필연적인가? 그가 말했습니다. “예” 그러면 더 작은 것이 되는 경우에도, 이전에 더 컸던 것으로부터 나중에 더 작은 것이 생겨날 게 아니겠나? 그렇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더 강한 것으로부터는 더 약한 것이, 더 느린 것으로부터는 더 빠른 것이 생겨나는 것이지? “물론입니다.” ~~~즉 반대되는 사물들은 반대되는 것들로부터 생겨난다는 것 말일세. 물론입니다.
그러면 이건 또 어떤가? 그것들에게는 이런 어떤 점도 있는가? 예를 들어 모든 반대되는 쌍 사이에는, 이것들이 둘이니 두 개의 생겨남, 즉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의 생겨남과 다시 역으로 후자에서 전자로의 생겨남이 있는가? 더 큰 것과 더 작은 것 사이에는 확대와 축소가 있고, 우리는 그 한쪽을 커짐, 다른 한쪽을 작아짐이라고 부르니 말일세. “예”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분리됨과 결합됨, 차가워짐과 뜨거워짐,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은, 때로 우리가 이름을 사용하지 않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경우에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가? 그것들은 서로로부터 생겨나고, 각각의 다른 쪽으로의 생겨남이 있다는 것 말일세. “물론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은, 서로 반대되는 것인 한, 서로로부터 생겨나고, 그것들이 둘이니 그것들 사이의 생겨남 역시 둘이 아니겠는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내가 자네에게 방금 말한 것들 중 한 쌍에 대해서 그 쌍 자체와 그것의 생겨남을 말하겠네. 자네는 다른 것에 대해서 내게 그렇게 해 주게.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은 자고 있음과 깨어 있음이네. 나는 자고 있음으로부터는 깨어 있음이, 깨어 있음으로부터는 자고 있음이 생겨나며, 이 둘 사이의 생겨남은 잠듦과 깨어남이라고 말하겠네. 자네에겐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은가? “물론 충분합니다.”
그러면 자네도 내게 그런 식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해 주게. 그가 말했습니다. 삶에는 죽음이 반대된다고 말하지 않겠나? “저는 그럴 겁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무엇인가? 죽은 것입니다. 죽은 것으로 부터는 무엇이 그렇지? 그가 말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라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케베스, 죽은 것들로부터 살아 있는 것들과 살아 있는 자들이 생겨나는군. 그래 보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들의 영혼들은 하데스에 있는 것이군. 그런 듯싶군요. 그러면 이것들과 관련된 두 생겨남 중에서 한쪽은 분명하지 않은가? 어쨌든 죽어 감은 분명 아니니 말이야. 그렇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반대되는 생겨남으로 균형을 잡지 않아서 그로 인해 자연이 절름발이가 되게 할까? 아니면 죽어 감에 반대 되는 어떤 생겨남을 돌려주어야 할까? 전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살아남입니다. 그러면 만약 살아남이라는 것이 있다면, 죽은 자들로부터의 산 자들로의 생겨남이 바로 그것, 즉 살아남이지 않겠나? 그가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란 식으로도 죽은 자들이 산 자들로부터 생겨나는 것 못지않게 산 자들이 죽은 자들로 부터 생겨난다는 것에 동의한 셈이군.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필연적으로 어딘가에, 즉 거기로부터 그것들이 다시 생겨나게 되는 바로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아마도 충분한 증거가 될 거라 생각했었네. “제가 생각하기에, 소크라테스. 합의된 것들에 근거할 때 그것이 사실임은 필연적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p54
자 이제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케베스. 내게 그렇게 생각되는 것처럼, 우리가 부당하게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게. 만일 마치 원을 이루며 도는 것처럼, 생겨남에 있어서 언제나 한쪽이 다른 쪽과 균형을 이루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직선적으로 한쪽으로부터 그 반대쪽으로의 생겨남만이 있어서, 그것이 다른 쪽으로 다시 되돌아오지 않고 반환점 돌기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것이 같은 꼴을 가지게 될 것이고, 같은 일을 겪게 될 것이며, 생겨남을 그치게 되리라는 걸 자네는 아나? “무슨 말씀이신지?” 그가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잠듦은 있는데 그것에 대응해서 깨어남이 자고 있음으로부터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것이 엔뒤에온(※달의 여신 셀레네가 사랑했던 젊은이. 그는 밀레토스 서쪽 헤라클레이아에 있는 라트모스산 동굴에서 영원한 잠에 빠졌다. 달이 뜨지 않는 밤은 셀레네가 그곳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한다)을 별것 아니게 만들 것이고, 그는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걸 자넨 아네. 다른 모든 것들도 똑같은 일, 즉 자고 있음을 겪으니 말일세.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려 했네. 그가 말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뭔가를 상기하게 된다면 그는 그것을 이전의 어떤 때에 알고 있었어야만 한다는 데 아마도 우리는 동의할 걸세. 물론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언제 우리의 영혼이 그것들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고 나서는 분명 아닐 테고. 물론 아니겠지요. 그럼 그 이전이겠군? 예. 그럼 영혼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있기 전에도 몸들과 떨어진 채 있었고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군. 심미아스.
우리의 영혼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다는 것만이 증명된 것으로 보이거든. 증명이 완결되려면 죽은 다음에도 태어나기 전에 못지않게 그렇다는 것이 더불어 증명되어야만 하네. 케베스가 말했습니다. ~~~자네들이 그 주장을 우리가 그것 전에 동의 했던 것, 즉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음 것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과 하나로 결합할 거라면 말일세. 만일 영혼이 이전에도 있고, 그것이 삶으로 들어와 태어나는 것이 필연적으로 다름 아닌 죽음과 죽어 있음으로부터의 태어남이라면, 그것은 어쨌든 다시 태어나야만 하니, 그것이 죽은 다음에도 있는 것이 어찌 필연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영혼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하나? 그건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비가시적인 것인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비가시적이군. 예. 그럼 영혼은 몸에 비해 비가시적인 것과 더 유사하고, 몸은 보이는 것과 더 유사하군, 전적으로 필연적입니다. 소크라테스.
자 이전에 우리는 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나? 영혼이 어떤 것을 탐구하면서 몸을 이용할 때에는 몸을 통해서건 - 감각을 통해 무언가를 탐구하는 것, 이것은 몸을 통해서 하는 것이니 말일세 - 몸 때문에, 결코 같은 식으로 있지 않은 것들에게로 끌려가게 되고, 그런 것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마치 술에 취한 듯, 헤매고 혼란스러워하며 어지러워한다고 말일세. 물론입니다. 반면 영혼이 그것 자체로 탐구할 때에는 순수하고 항상 있고 불사적이고 그대로 있는 것들에게로 떠나가서, 자신이 그것과 한 종류이기 때문에 늘 그것과 함께 있게 되네. 영혼이 그 자체로 있게 되고 그럴 수 있을 때면 말일세. 그리고 그런 것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헤매는 것도 그치고 저것들 곁에서 항상 같은 식으로 그대로 있게 되네. 그리고 영혼의 이러한 상태가 현명함이라 불리는 것이지?
신적이고 불사적이며 가지적(可知的)이고 한 모습이고 해체되지 않고 늘 그 자체로 스스로와 같게 있는 것과 가장 유사한 것은 영혼이고, 인간적이고 사멸하고 비가지적(非可知的)이고 여러 모습이고 해체되고 결코 그 자체로 자신과 같게 있지 못하는 것과 가장 유사한 것은 몸이라고 말일세.
사람이 죽으면 그의 보이는 부분, 즉 몸은 보이는 세계에 놓이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시체라 부르는 것이네. 그것은 해체되고 부서지고 흩어지기 마련이지만, 곧바로 그런 일들 중 무엇인가를 겪지 않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보존되기도 하지. 만일 누군가가 양호한 몸 상태로, 그리고 그러한 나이에 죽으면, 더더욱 말일세. ~~~~그럼 비가시적인 것인 영혼이 그런 성격을 가지는 다른 장소로, 고귀하고 순수하며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하데스의 참된 거처로, 훌륭하고 현명한 신의 곁으로, 신이 바라신다면 나의 영혼 역시 가야만 할 그곳으로 가는데, 우리에게 있어서 그러한 성격을 가지며 그러한 본성을 지닌 영혼 자신은, 다중들이 말하듯, 몸으로부터 해장되자마자 곧바로 흩어져 소멸해 버릴까? 어림없는 얘길세. 친애하는 케베스 그리고 심마니스,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것이 훨씬 더 참일 걸세. 만일 영혼이 몸에 속하는 것을 함께 끌고 가지 않는 채 순수한 상태로 몸으로부터 해방되면, 그것은 사는 동안 자발적으로는 절대로 몸과 함께 지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피하며,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로 결집시켜 왔기 때문에, 늘 이것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 이것은 다름 아닌 올바르게 철학을 하고 태연히 죽는 것을 수행하는 것이네. 이것이 죽음의 수행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런 상태에 있는 영혼은 자신과 유사한 비가시적인 것, 즉 신적이고 불사이며 현명한 것에게로 떠나가게 되는데, 그곳에 이르게 되면 그것에게는 행복이 몫으로 주어지고, 그것은 방황, 무지, 공포, 거친 욕망, 그리고 그 밖의 나쁜 인간사들로부터 해방되어, 비교의식을 치른 사람들에 대해 하는 말처럼, 남은 시간을 진정으로 신들과 함께 보내게 되지 않겠나?
반면 영혼이 오염되고 순수하지 않은 상태로 몸으로부터 해방되면, 내 생각에 그 영혼은 몸과 늘 함께 지내고 그것을 보살피고 사랑하며 그것과 그것이 가지는 욕망들과 즐거움들에 의해 미혹되어 왔기 때문에, 육체적인 것, 즉 잡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성욕을 채울 수 있는 것 외의 어떤 것도 참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네. 반면 그 영혼은 눈에는 어둑어둑하고 비가시적이지만 지성에 의해 알려지고 철학에 의해 포착되는 것, 이것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며 피하는 데 익숙해져 있네. 과연 이런 상태의 영혼이 그 자체로 순수하게 해방될 것이라고 자네는 생각하나?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한 영혼은 무거워지고, 비가시적인 것과 하데스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서 보이는 세계로 다시 끌려 들어가는 걸세. 이야기에 따르면, 그러한 영혼은 비석들과 무덤들 주변을 맴도는데, 이것들 주위에서는 정말로 영혼들의 그림자와 같은 어떤 환영들이 목격된다는 거야. 이런 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순수한 상태로 풀려나지 못했고 보이는 것을 나눠 가지며 이 때문에 보이기까지 하는 그러한 영혼들이라고 하네. 그럴 법합니다. 소크라테스
게다가 그것들은 절대 훌륭한 이들의 영혼들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자들의 영혼들로, 이것들은 이전의 나쁜 생활방식에 대한 죗값을 치르느라 그런 것들 주변을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네. 게다가 그것들은 다시 몸 안에 감금되는 그때까지는 자신들을 따라다니는 것, 즉 육체적인 것에 대한 욕망에 의해서 떠돌게 되네. 그것들은, 그럴 법하게도, 그것들이 사는 동안 일삼아 왔던 바로 그 습성들 안에 갇히는 것이지. 어떤 습성들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 예를 들어, 탐식과 방탕과 탐주를 일삼으며 삼가지 못한 사람들은 나귀 부류나 그런 짐승 부류 속으로 들어갈 법하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반면 부정의와 독재와 강도질을 선호했던 사람들은 늑대나 매나 솔개 부류 속으로 들갈 법하네. 이런 것들이 다른 어디로 갈 거라 말할까?
그러면 이들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좋은 장소로 가는 이들은 대중적이고 시민적인 덕을 길러온 이들이 아닌가? 이것을 사람들은 절제와 정의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철학이나 지성 없이 습관과 행함을 통해 생겨나는 것일세. ~~~대체 어떤 점에서 이들이 가장 행복한 거지요? 이들이 같은 종류의 시민적이고 유순한 부류로 다시 돌아갈 법하기 때문이지. 즉 그들은 꿀벌이나 말벌이나 개미 부류로, 혹은 동일한 인간의 부류로 다시 돌아가, 이들로부터 절도 있는 사람들로 태어날 법하니 말이야.
반면에 신들의 부류에 도달하는 것은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채 떠나는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고, 오직 앎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용된다네. 이 때문에, 친애하는 심미아스와 케베스, 올바르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몸에 관련된 모든 욕망들을 멀리하고 견뎌 내며 그것들에 자기 자신들을 내맡기지 않는데, 그것 많은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그가 가산 탕진과 가난을 조금이라도 겁내서가 아니라네. 또 그는 권력을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불명예와 타락으로 인한 오명을 두려워하고, 그로 인해 그것들을 멀리하는 것도 아니라네.
모든 즐거움이나 고통은, 마치 못을 가진 듯 영혼을 몸에 대고 못질해 박아 육체적으로 만들어서는 , 몸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참이라고 여기도록 만들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몸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에 대해 즐거워함으로 해서, 내 생각에, 영혼은 필연적으로 그것과 같은 성격과 같은 습성이 되고, 결코 순수하게 하데스에 이르지 못하고 매번 몸에 감염된 채 떠나가야 하는 그런 어떤 것이 되어서, 결국 다른 몸속으로 곧바로 다시 떨어져, 마치 씨 뿌려진 듯,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런 이유들로 해서 신적이고 순수하며 한 모습인 것과의 함께 있음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말거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은 그렇게 추론하지. 다음과 같이 생각하지는 않은 걸세. 철학은 자신을 풀어 주어야 하는데, 정작 풀어 주는 동안 그것은 스스로를 즐거움들과 고통들에 넘겨주어 다시 꽁꽁 묶어서, 직물을 거꾸로 짜는 페넬로페의 끝나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일세. ~~~~이러한 양육으로 해서 심미아스 그리고 케베스, 영혼이 몸으로부터 해방될 때 그것이 흩어지고 바람에 흩뿌려지고 흩날려 가 버려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게 될까를 두려워할 위험은 전혀 없네.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하고는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소크라테스, 당신께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아까부터 저희들 각자는 당혹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어서, 답을 들었으면 하는 열망 때문에 질문을 하라고 서로 떠밀며 재촉하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불운 때문에 당신께 불쾌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번거로움을 끼치는 걸 주저하고 있었어요. ~~~이 말을 듣고 ~~~내가 현재 닥친 일을 불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긴 아마도 어려울 것 같군. 자네들도 설득을 못 시켜서, 자네들이 내가 이전의 삶에서보다 지금 더 안 좋은 기분이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 마당에 말일세. 그러고 보아하니 자네들은 내가 백조들보다 예언 능력이 더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있군. 백조들은, 그 이전에도 노래를 하긴 하지만, 자신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바로 그때 가장 많이 그리고 최고로 노래를 하는데, 그건 그들이 섬기는 신 곁으로 떠나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두려움 때문에 백조들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해서, 그것들이 죽음을 애통해하면서 괴로움으로 인해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하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새도 배고프거나 추위에 떨거나 다른 어떤 괴로움을 겪을 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괴로움으로 인해서 애통해하며 노래한다고들 이야기하는 나이팅게일과 제비와 후투티 같은 새들조차도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네. 이것들과 백조들은 내 생각에 괴로워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아폴론에 속한 것들로서, 예언 능력을 가지고 있고 하데스에서 좋은 일들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노래를 하고 그 이전의 시간과 달리 바로 그 날을 즐거워하는 것이네. 그런데 나 자신도 백조와 같은 주인을 섬기는 종이고 같은 신에 봉헌되었다고 여기며, 그들에 못 지 않은 예언 능력을 주인으로부터 받았고, 그들보다 더 기죽은 채로 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네.
제가 생각하기에는, 소크라테스, 어쩌면 당신도 그렇겠지만, 현재의 생에서 그러한 문제들에 관해 확실한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된 것들을 모든 방식으로 따져 보지도 않고 모든 측면에서 철저히 탐구하기도 전에 그만두는 건 아주 나약한 인간에 속하는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소크라테스. 논의된 것들을 저 스스로 검토해 봐도 이 사람과 함께 검토해 봐도, 그것이 아주 충분하게 논의된 것 같지가 않아 보이거든요.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벗이여, 아마도 자네가 본 것이 참일 걸세. 하지만 과연 어떤 점에서 충분치가 않은지를 말해 주게. p87
심미아스처럼 저에게도 어떤 비유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제 생각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마치 누군가가 늙어 죽은 어떤 직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직공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온전하게 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그 자신이 짜서 둘렀던 외투가 온전하게 있고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세우는 거지요. 그리고 만일 누군가가 그를 미심쩍어 하면, 그는 사람의 부류와 착용되는 옷의 부류 중 어떤 것이 더 오래가느냐를 묻고, 사람의 부류가 훨씬 더 오래간다는 답을 얻으면, 더 짧게 가는 것이 소멸되지 않았으니 그럼 확실히 저 사람은 온전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심미아스, 나는 그것이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하네. 자네도 내가 말하는 바를 살펴보라니까. 모두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어수룩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응수할 걸세. 왜냐하면 이 직공이 그러한 많은 외투들을 짜고 닳게 했으며 많은 것들보다 나중에 소멸하기는 했지만, 그는 내 생각에 맨 마지막 것보다는 먼저 소멸했거든.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외투보다 더 열등하고 더 약한 것은 전혀 아니지.
에케크라테스 : 맹세하지만, 파이돈, 저도 당신들과 같은 심정입니다. ~~~부디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그 논의를 따라갔는지 말해 주십시오.
파이돈 : 에케크라테스, 제가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여러 번 놀라긴 했지만, 그때 곁에 있었을 때보다 더 감탄한 적은 없었습니다.
파이돈 : 저는 마침 그의 오른쪽, 침상 옆에 있는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는 저보다 훨씬 더 높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 머리를 쓰다듬고 목덜미에 난 머리카락을 쥐시고는 -그는 때때로 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시곤 했거든요.- 말했습니다. 파이돈 내일이면 이 아름다운 머리카락들을 자르게 되겠군.
그러면 내 말할 테니 들어 보게. 케베스. 젊었을 적에 나는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탐구라 부르는 바로 그 지혜를 굉장히 열망했다네. 각각의 것의 원인들, 즉 왜 각각의 것이 생겨나고, 왜 소멸하고, 왜 있는지를 아는 것이 내겐 대단한 일로 여겨졌거든. 처음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탐구하면서 정말 여러 번 우왕좌왕했다네. 따뜻함과 차가움이 부패되는 바로 그때, 어떤 이들이 말했던 것처럼, 생물들이 형성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수단은 피인가, 공기인가, 불인가, 아니면 이것들 중 어떤 것이 아니라, 뇌가 듣고 보고 냄새 맡는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고, 이것들로부터 기억과 판단이 생겨나며, 기억과 판단이 안정되면 이것들에 따라서 지식이 생겨나는 것인가? 그리고 이번에는 이것들의 소멸들에 대해 탐구하고,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탐구하다가, 마침내 나 자신이 이런 종류의 탐구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 충분한 증거를 자네에게 말해 주지. 나는 그때 그 탐구에 의해서, 적어도 나와 다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내가 이전에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완전히 눈이 멀어 버려서, 내가 이전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에 대해서도 앎을 잃어버렸으니 말일세. 다른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예를 들어 무엇 때문에 인간이 자라는 가에 대해서, 나는 이전에는 그것이 먹고 마심 때문이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네. 음식물들로부터 살은 살에 더해지고, 뼈는 뼈에, 그리고 같은 원리로 각각의 것에 그것들에게 고유한 것이 더해지게 되면, 바로 그때 작은 덩치였던 것이 후에 크게 되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일세. 이런 식으로 그때 나는 생각 했었다네.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나의 지성이 맞는 원인을 가르쳐 줄 사람, 즉 아낙사고라스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니 기뻤네. 그리고 나는 우선 그가 지구가 평평한지 아니면 둥근지를 말해 줄 것이고, 그것을 말해줄 때는 더 좋은 것, 즉 그것은 그러한 편이 더 좋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그 원인과 필연성을 덧붙여 설명해 줄 거라고 생각했네. 그리고 지구가 한 가운데에 있다고 그가 말한다면, 그는 그것이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도 덧붙여 설명해줄 거라고 생각했네. 그리고 그가 내게 이런 것들을 밝혀 준다면, 나는 다른 종류의 원인을 더 이상 열망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네. 특히 태양과 달과 다른 별들에 대해서, 그것들의 상대적인 속도와 방향 전환과 그 밖에 그것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 그 각각이 하는 일들을 하고 겪는 일들을 겪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더 좋은 일인가를 같은 식으로 알게 될 준비가 되어 있었네. 왜냐하면 그가 그것들이 지성에 의해서 질서 지어진다고 말하고 나서, 그것들이 지금 있는 대로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외의 다른 어떤 원인을 그것들에 들이대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거든. 그래서 그가 그것들 각각과 전체에 공히 원인을 할당하고, 그 각각에 가장 좋은 것과 전체에 공통적으로 좋은 것을 덧붙여 설명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 엄청난 기대로부터, 벗이여. 나는 그만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네.
그는 우선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은 내 몸이 뼈들과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뼈들은 단단하고 관절들에 의해 서로 분리되어 있는 반면, 근육들은 팽팽해지고 느슨해질 수가 있어서 이것들이 뼈들을 살들과 이것들을 유지시키는 피부와 함께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걸세. 그래서 그 뼈들이 그것들의 관절들에서 들려졌을 때, 근육들이 느슨해지고 팽팽해짐으로써 어떤 식으로 지금 나의 사지를 굽힐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내가 여기에서 다리를 굽히고 앉아 있다는 것이지.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그런 종류의 다른 원인들을 대서, 소리니 공기니 청각이니 그런 종류의 다른 무수한 것들에 원인을 돌리면서, 참된 원인들을 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네. 그 참된 원인은 아테네인들에게는 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이 되었고, 바로 이 때문에 나에게는 여기에 앉아있는 것이 더 좋은 일이고 여기 남아 그들이 명하게 될 처벌을 받는 것이 더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는 것이네. 왜냐하면 맹세하지만. 내 생각에, 만일 내가 도피하거나 도주하지 않고 이 나라가 어떤 처벌을 내리든 그것을 받는 것이 더 정의롭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근육들과 뼈들은, 더 나은 것에 대한 판단에 이끌려서 오래전에 메가라나 보이오티아 지역에 가 있었을 테니 말일세.
어떤 사람은 주위에 소용돌이를 놓음으로써 지구를 하늘에 의해 그 자리에 머물도록 만들고, 어떤 사람은 마치 평평한 반죽 통처럼 공기를 납작하게 만들어서 밑받침으로 삼자.(※아낙사고라스. 아낙시메네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가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가능한 최선의 상태로 지금 그렇게 있도록 하는 힘, 이것을 찾지도 않고, 그것이 어떤 신적인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네. 오히려 그들은 언젠가 이것보다 더 힘세고 더 불사이며 모든 것들을 더 잘 결합시키는 아틀라스를 발견할 거라 여기며, 정말로 좋고 묶는 것이 함께 묶고(※마땅함) 결합시킨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네. 자, 나는 그러한 원인이 대체 어떠한 가를 배우기 위해서 누구의 제자라도 기꺼이 되려 했다네. 하지만 이것을 박탈당했고, 스스로 그것을 알아낼 수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도 없게 되어 버린 다음, 내가 그 원인의 탐구를 위한 두 번째 항해에 어떻게 힘써 왔는지를 자네에게 보여 주길 바라나. 케베스? 그가 말했습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원인을 제시하고, 영혼이 불사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싶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만일 아름다움 자체 외에 다른 어떤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것은 저 아름다움을 나눠 갖는다는 것 외의 다른 어떤 원인 때문이 아니거든. 그리고 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고 말하겠네. 이러한 원인에 자네는 동의하나? 동의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다른 저 지혜로운 원인들을 더 이상 알지도 못하고 알아볼 수도 없네. 만일 누군가가 내게 무엇 때문에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에 대해서, 그것이 피어나는 색깔이나 모양이나 그런 종류의 다른 뭔가를 가졌다는 사실을 댄다면, 나는 그 다른 것들에는 작별을 고한 채 단순하고 우직하고 아마도 순진하게 다음과 같은 것만을 내 곁에 붙들고 있을 걸세.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저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그것의 현전이 되었건, 공존이 되었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덧붙여지건 간에 말일세. ~~~이것을 붙들고 있으면 나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도 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다움에 의해서 아름다운 것들이 아름답다고 대답하는 것은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되니 말일세. 자네에게도 그렇게 생각되지 않나?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럼 큼에 의해서 큰 것들이 크고 더 큰 것들이 더 큰 것이며, 작음에 의해서 더 작은 것들이 더 작은 것이군? “예”
그러면 이제 불사적인 것에 대해서도 만일 그것이 불멸하기까지 한다고 동의된다면, 영혼은 불사인 것에 더해서 불멸이기도 할 걸세.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다른 논변이 필요할 것이고. 아니,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논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불사적인 것이 영원한 것인데도 소멸을 받아들인다면, 소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거의 없을 테니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p133
내 생각에, 최소한 신과 삶의 형상 자체, 그리고 다른 불사하는 것은 무엇이건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고 모두에게 동의될 걸세. 소크라테스가 발했습니다. ~~~그렇다면 불사적인 것이 불멸하는 것이기도 하니 영혼이 불사한다면 불멸하기도 해야겠지? 매우 필연적입니다. 그럼 죽음이 사람을 공격할 때, 보아하니, 그의 가사적인 부분은 죽지만, 불사하는 부분은 소멸하지 않은 채 죽음으로부터 온전히 물러나 떠나가는 것 같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케베스,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영혼은 불사하고 불멸하며 정말로 우리의 영혼들은 하데스에 있게 되겠군.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보게들, 다음과 같은 점은 유념하는 것이 옳네. 만약에 영혼이 불사한다면, 그것의 돌봄은 사실 우리가 살아 있음이라 부르는 것이 있는 그 시간을 위해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위해서 필요하네.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그것에 무관심하기라도 하면, 이제 정말 그 위험은 무서운 일로 여겨질 걸세. 만일 죽음이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이라면, 나쁜 인간들에게 그것은 신의 선물이겠지. 그들은 죽을 때 몸으로부터 벗어남과 동시에 영혼과 함께 자신들의 나쁨으로부터도 해방되는 것이니 말일세. 그런데 이제 영혼이 실은 불사인 것이 분명하니, 그것에게는 최대한 훌륭해지고 현명해지는 것 외에는 나쁜 것들로부터의 어떤 도피나 구원도 없네. 왜냐하면 영혼은 교육과 양육 외에는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은 채 하데스로 가게 되는데, 바로 이것들이 저승으로의 여정의 맨 처음부터 죽은 자를 최대로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한다고 이야기되는 것이니 말일세.
이런 이야기가 있네. 각 사람이 죽으면, 그가 살아 있을 때 뽑힌(※어떤 삶의 방식을 선태 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다이몬이 결정되는 것) 그의 다이몬(※각각의 영혼에게 할당된 일종의 수호신)이 그를 어떤 장소로 인도하는 일을 맡게 된다고 하네. 그곳에서 모인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하데스로 가야만 하는 데, 이것은 이승에 있던 사람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도록 지정된 바로 그 안내자와 함께하는 것이네. 그들이 그곳에서 겪어야 할 일들을 겪고 머물러야 할 시간 동안을 머무르고 나면, 또 다른 안내자가 그들을 다시 이승으로 데리고 오는데, 이것은 여러 주기의 긴 시간을 거친 다음에야 이루어지네. 그럼 그 여정은 아이스퀼로스의 텔레포스가 말하는 대로는 아닌 거지. 그는 단순하지도 하나이지도 않으니 말일세. 왜냐하면 누구도 그 어딘가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 테니 말일세. 그런데 이제 그것은 많은 갈림길들과 삼거리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이건 이승에서의 의식들과 관습들을 증거로 삼아 하는 얘길세.
이제 방정하고 현명한 영혼은 안내자를 따르고 자신의 상황을 모르지 않는 반면, 몸을 욕망하는 상태인 영혼은, 앞서 말했던 대로, 몸과 보이는 영역 주변에서 오랜 시간 동안 퍼덕거리다가, 여러 번 저항하고 많은 일을 겪은 다음에야 강제로 그리고 힘겹게 지정된 다이몬들에 의해 이끌려 떠나가게 된다네. 다른 영혼들이 이르게 되는 w아소에 이르게 되면, 정화되지 못한 상태이고 다음과 같은 어떤 짓을 저지를 영혼, 즉 정의롭지 못한 살인에 관여했거나, 그런 부류의 짓들과 그런 부류의 영혼들에 걸맞은 짓들을 저지를 영혼은, 모두가 그것을 기피하고 외면하며 아무도 동반자나 안내자가 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까지는 어찌할 바를 전혀 모르는 채 홀로 방황하다가, 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필연에 의해서 그것에 알맞은 거처로 인도되네. 반면 순수하고 절도 있게 삶을 영위한 영혼은, 신이 동반자이자 안내자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에게 합당한 장소를 거처로 삼게 되네. 그런데 지구에는 많은 놀라운 장소들이 있고 그것은 지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것도 그만한 크기의 것도 아니라네. 이건 내가 누군가에 의해서 믿게 된 바일세. 그러자 심미아스가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소크라테스? 지구에 대해서라면 저 자신도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만, 당신이 믿게 된 것들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p137
자 나는 우선 이렇게 믿게 되었다네. 만일 지구가 구형으로 천구 한가운데에 있다면, 그것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공기나 그런 종류의 다른 어떤 강제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천구 자체가 모든 방향에서 그 자신과 동일성을 가진다는 사실과 지구 자체의 평형상태로 충분하네. 왜냐하면 동일한 어떤 것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평형상태의 것은 어떤 방향으로도 더나 덜 기울어질 수 없고, 동일한 상태로 기울어지지 않은 채 유지될 테니 말일세. p138
~~~그리고 나아가 나는 이렇게 믿게 되었네. 지구는 거대한 어떤 것으로, 우리는 파시스강으로 부터 헤라클라스의 기둥들에 이르는 작은 일부 지역에, 마치 연못 둘레에서 개미들이 혹은 바다 둘레에서 개구리들이 거주하는 것처럼, 거주하고 있을 뿐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그러한 다른 많은 지역들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일세. 지구 둘레에는 도처에 온갖 모양과 크기의 우묵한 곳들이 많이 있어서, 이곳들로 물과 안개와 공기가 함께 흘러들어가 있거든. 반면 지구 자체는 순수한 상태로 순수한 천구 안에 위치하는데, 바로 이 안에 별들이 있고,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아이테르라 부르지. 바로 이것의 찌꺼기가 저것들로, 그것들을 항상 땅의 우묵한 곳들로 함께 흘러드는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의 우묵한 곳에 거부하면서도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구 위쪽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마치 누군가가 바다 밑바닥 가운데 살면서도 바다 위쪽에 산다고 생각하고, 물을 통해서 태양과 다른 별들을 보면서도 그 바다를 하늘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말일세. 느릿함과 나약함 때문에 결코 해수면에 이른 적도 없고, 바다 위로 떠올라 고개를 들고 이 세상이 그가 사는 곳에 비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를 본 적도 없으며, 이 세상을 본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도 없이 말일세. 바로 이와 똑같은 처지에 우리도 놓인 걸세. 왜냐하면 우리는 지구의 어떤 우묵한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 위쪽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공기를 천구라고 부르는데, 이는 천구인 익서을 통해서 별들이 운행한다고 생각해서거든.
그렇다면 벗이여, 우선 이 지구는 보기에 다음과 같다고 이야기되네. 위에서 보면 그것은 마치 열두 조각으로 된 가죽 공처럼 다채롭고 색들로 나뉘어 있는데, 그 색들에 대해서 이 세상의 색들은 마치 화가들이 사용하는 견본 같은 것이네. 저곳에서는 땅 전체가 그런 색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은 이곳의 것들보다 훨씬 더 밝고 순수하다네. 그중 일부는 자주색으로 아름다움이 놀라울 정도이고, 일부는 황금색이고, 흰 부분 전체는 백묵이나 눈보다 희다네. 그리고 그 땅은 그 밖의 다른 색들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색들은 우리가 보아 온 것들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아름답다네. 이 땅의 우묵한 곳들 자체도, 물과 아이테르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다른 색들의 다채로움 속에서 빛나면서 어떤 색의 모습을 띠게 되어서, 그것의 모습이 어떤 하나의 연속적인 다채로움으로 나타나게 되네. 이러한 것인 이 땅에서 자라나는 것들, 즉 나무들과 꽃들과 열매들은 그에 비례해서 자라나게 되네.
호메로스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것일세. “아주 멀리, 땅 밑 가장 깊은 심연이 있는 곳으로” 이것을 그가 다른 곳에서도, 그리고 다른 많은 시인들도 타르타로스(※천구에서 땅까지의 거리만큼 땅 아래 깊이 있다는 심연)라 불렀지. 이 틈 안으로 모든 강들이 함께 흘러 들어오고 이곳으로부터 다시 흘러 나가는데, 그것들은 각각 그것이 흘러 지나가는 땅과 같은 성질의 것이 된다네. ~~~
사실 그 밖에도 여러 개의 크고 다양한 흐름들이 있긴 하지만, 이 많은 것들 중에서도 네 개의 흐름들이 있어서, 그중 가장 크고 가장 바깥쪽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 소위 오케아노스(※지구 전체를 둘러싸고 흐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대하大河이다. 신으로서의 오케아노스는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소위 티탄들 중 하나이고, 바다의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 테튀스와 결혼하여 모든 강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이고, 이 맞은 편에서 반대로 흐르는 것이 아케론(※오케아노스를 건너가 맞닥뜨리게 되는 저승의 강으로, 그곳으로 코퀴토스와 퓌리폴레게톤이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이네. 이것은 여러 사막 지역들을 관통해 흐르고, 특히 땅 밑으로 흐르다가 아케루시아스(※아케론 강에 의해 형성된 호수)호수에 이르는데, 이곳에 많은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이르러서, 할당된 시간 동안, 어떤 이들은 더 길게 어떤 이들은 더 짧게, 머물다가 동물들로의 태어남을 위해 다시 내보내진다네. 세 번째 강은 이 둘 가운데서 흘러나와서, 그 출구 부분에서 불길로 가득한 거대한 지역으로 떨어져서는, 우리의 바다보다도 더 큰 호수를 형성하는데, 이것은 물과 진흙으로 끓어오르고 있네. 이곳으로부터 그것은 원을 이루며 혼탁하고 질퍽한 상태로 나아가서는, 땅을 휘돌아 여러 지역들, 그중에서도 아케루시아 호수의 가장자리에 이르지만, 그 물과는 섞이지 않네. 그것은 여러 번 땅 아래에서 순화한 다음, 더 아래쪽 타르타로스로 흘러 들어가지. 이것이 사람들이 퓌리플레게톤이라 부르는 것인데, 이것의 용암이 흐름들이 어디서에든 땅과 만나면 파편들을 분출하는 것이네.
이것의 건너편에서 이번에는 네 번째의 강이 흘러나와서, 우선 무시무시하고 험한 지역,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들이 스튀기오스라 부르는 곳이고, 그 강이 흘러들어 만든 호수가 스튁스이네. 그 강물이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가 그 물에서 무시무시한 힘들을 얻게 되면, 그것은 땅 밑으로 스며들어 가 퓌리플레게톤과 반대 방향으로 휘돌아 나아가서는, 반대쪽에서 아케루시아스 호수를 만나게 되네. 이것의 물 역시 어떤 것과도 섞이지 않고, 이것 역시 원을 이루며 돌아가서는 퓌리플레게콘 반대쪽에서 타르타로스로 흘러 들어가네. 이것의 이름은, 시인들 이야기로는, 코퀴토스이네.
이것들의 본성은 이런 식이네. 이제 죽은 자들이 각각의 다이몬이 인도하는 장소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우선 심판에 처해지는데, 그건 훌륭하고 경건하게 산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네. 그리고 중간 정도로 살았다고 생각되는 자들은 아케론으로 향하는데, 그들은 그들을 위해 준비된 배에 올라 이것을 타고 그 호수에 이르게 되지. 그리고 누군가가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는 그곳에 머물면서 자신의 잘못들에 대한 벌을 받고 정화가 되고 나서야 풀려나게 되네. 그리고 선행들에 대해서는 각자 정당한 몫에 따라 상들을 받게 되네. 반면 그 과오들의 크기 때문에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자들, 즉 여러 번의 tlar가한 신전 약탈이나, 여러 번의 부정의하고 불법적인 살인을 저질렀거나, 이런 종류의 다른 짓들을 저지른 자들의 경우, 마땅한 운명이 그들을 타르타로스로 던져 버리고, 그들은 그곳으로부터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네. 반면 치유 가능하지만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다고 생각되는 자들, 예를 들어 화가 나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어떤 폭행을 가했지만 뒤에 뉘우치며 다른 삶을 산 자들이나, 그러한 다른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를은 타르타로스로 떨어져야 하기는 하지만, 그곳에 떨어지고 나서 일 년이 되면, 큰 파도가 그들을 내던지는 데, 살인자들은 코퀴토스를 따라서, 부친 폭행자들과 모친 폭행자들은 퓌리플레게톤을 따라서 그렇게 한다네.
그들이 실려 와 아케론 호수 맞은편에 이르면,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을, 일부는 자신이 폭행한 사람들을 소리 질러 부르지. 그들을 부르고 나서는, 자신들을 호수 안으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받아들여 주기를 기원하고 간청한다네. 그리고 만일 설득을 하게 되면 그들은 빠져나와 나쁜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타르타로스로 실려 가서 그곳으로부터 다시 강들로 들어가게 되네. 그리고 이런 일을 겪는 것은 그들이 해 끼친 자들을 설득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네. 이 벌은 심판자들에 의해서 그들에게 부과된 것이기 때문이지. 반면 경건함에 있어서 남다르게 살았다고 생각되는 자들의 경우, 이들이 지구의 이쪽 지역들로부터, 마치 감옥으로부터 그러하듯, 자유롭게 되고 해방된 사람들이고, 위쪽의 순수한 거처에 이르러 지구 위에 거처하게 되는 사람들이네.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철학에 의해서 충분히 정화된 사람들은 앞으로 올 모든 시간 동안 몸 없이 살게 되며, 저들의 것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거처들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설명하기도 쉽지 않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충분치 않군. 하지만 바로 우리가 설명한 것들을 위해서, 심미아스, 우리는 삶 속에서 덕과 현명함을 나눠 갖도록 모든 일을 해야만 하네. 그 보상은 고귀하고 그 희망은 크니 말일세.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다음과 같은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만 하네. 그의 삶 속에서 몸과 관련된 다른 즐거움들이나 장식들로부터는, 그것들이 이질적인 것들이고, 이롭게 하기보다는 해롭게 하는 것들이라는 생각으로 작별을 고하되, 배움과 관련된 즐거움들에는 열성을 다하면서, 영혼을 그것에 이질적인 것이 아닌 그것 자체의 장식, 즉 절제와 정의와 용기와 자유와 진리로 장식하고서는, 언제든 운명이 부르면 떠날 생각으로, 그렇게 하데스로의 여행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말일세. 자, 심미아스 그리고 케베스, 자네들과 다른 사람들은 언젠가 각자 그 길을 떠나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건 비극에서의 등장인물이 함 직한 말이긴 하네만, 운명이 나를 부르고 있네. 그리고 내가 욕실로 향해야 할 시간인 듯하군. 목욕을 하고 약을 마셔서, 여인들에게 시체를 씻기는 수고를 끼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으니 말일세. 그가 말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크리톤이 말했습니다. 알겠네. 소크라테스. 자네 자식이나 그 밖의 일들에 관해서 이 사람들이나 나에게 뭔가 일러 줄 것은 없나? 뭐든 우리가 그걸 해서 자네를 가장 기쁘게 할 일 말일세. “내가 늘 말하던 바로 그 일이네. 크리톤. 더 새로운 뭔가가 아니고, 자네들이 자네들 스스로를 돌본다면, 설사 지금 내게 약속을 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하건 나와 나의 가족과 자네들 자신들을 위해서 기쁜 일을 하게 될 것이네. 하지만 만일 자네들이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마치 발자국을 따라가듯 지금 그리고 앞서 말한 바대로 살려 하지 않는다면, 설령 지금 당장 몇 번이고 굳게 약속을 한들, 그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될 걸세.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애쓰겠네. 자네를 매장하는 건 어떤 식으로 할까?” 그가 물었습니다. “자네들 하고 싶은 대로 하게나. 나를 붙잡아서 내가 자네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기라도 하다면 말이야.” 그러면서 그는 조용히 웃었고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여보게들, 내가 크리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군.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야기된 것들 각각을 정리하고 있는 이 소크라테스가 나라는 점을 말일세. 한데 그는 조금 뒤에 시체로서 보게 될 저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고는, 과연 어떻게 나를 묻을 것인가를 묻고 있네.
내가 아까부터 길게 이야기했던 것, 그러니까 내가 약을 마시고 나면 자네들 곁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저 멀리 복된 자들의 행복한 세상으로 떠나가게 될 거라는 것이, 내 생각에, 그에겐 자네들과 나 자신을 동시에 북돋우려는 공연한 이야기에 불과했던 거지. 그러니 자네들이 크리톤에게 내 보증을 서 주게나. 그가 말했습니다. “여기 이 사람이 재판관들에게 섰던 것과는 반대되는 보증을 말일세. 이 사람은 내가 정말로 머물 거라는 데에 그랬지만, 자네들은 내가 죽고 나면 머무는 것이 아니라 떠나가리라는 것을 보증해 주게. 크리톤이 견디기 용이하도록. 그리고 그가 내 몸이 태워지거나 매장되는 것을 보고 내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언짢아하지도 않고, 장례식에서 그가 소크라테스를 앞에 눕혀 놓았다느니, 운구하고 있다느니, 매장하고 있다느니 말하는 일이 없도록 말일세. 명심하게, 크리톤.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잘못일 뿐 아니라 영혼들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걸 말일세. 오히려 자네는 확신을 가져야만 하네, 그리고 나의 몸을 매장한다고 말하고, 자네 보기에 좋고 가장 관습에 맞는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매장해야만 하네.
이렇게 이야기하고 그는 일어서서 목욕을 하기 위해 어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크리톤은 그를 따라가면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된 것들을 서로 논의하고 재검토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때 얼마 얼만한 불행이 우리에게 닥친 것인가에 이야기가 미쳤는데, 우리가 영락없이 아버지를 여의고 남은 인생을 살게 된 고아들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목욕을 하고 나자 그의 자식들이 - 그에게는 어린 아들 둘과 장성한 아들 하나가 있었습니다. - 그의 곁으로 이끌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안의 여인들이 왔는데, 그는 크리톤 앞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원하는 것들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는 그 여인들과 자식들에게는 떠날 것을 명하고, 그 자신은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어느덧 해 질 녘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안에서 보냈던 것입니다. 그는 목욕을 한 상태로 와서 앉았고, 그 후로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11인회의 관리가 와서 그의 곁에 선채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제가 다른 사람들을 꾸짖는 바로 그 일로 당신을 꾸짖게 되지는 않겠지요. 다른 사람들은 집정관들의 지시로 제가 그들에게 약을 마실 것을 명할 때면 저에게 화를 내고 저주를 퍼붓지요. 하지만 당신은 여기에 왔던 사람들 중 가장 고결하고 가장 온화하며 가장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제가 이 기간 동안 다른 식으로도 알고 있었고, 더구나 지금은 탓해야 할 사람들을 알고 계실 테니, 제가 아닌 저들에게 화를 내시리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자 이제 제가 무엇을 전하려고 왔는지 아시겠지요.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일은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견디려 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러면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자네도 잘 있게.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하겠네.” 그러면서 그는 우리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얼마나 예절 바른 사람인지! 그동안에도 줄곧 내게 와서 가끔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는데, 최상의 인간이었네. 그리고 지금은 또 얼마나 진심으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자, 크리톤, 이제 그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세. 약이 찧어졌으면 누가 그걸 가져오게 하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찧도록 하고.”
그러자 크리톤이 말했습니다. “아니ㅡ 내 생각에, 소크라테스. 해는 아직 산등성이에 있고 아직 지질 않았네. 더구나 내가 알기로는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고 난 훨씬 후에야 그걸 마시네. 폭식과 폭음에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욕정을 느끼는 상대와 성교까지 하면서 말일세. 아니, 서둘지 말게. 아직 시간이 있으니.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자네가 말하는 사람들이야 그 짓들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이득을 얻는다고 생각하니까 - 나의 경우는 그러지 않는 게 당연하지. 조금 후에 마신다고 한들. 나 자신에게 비웃음을 자초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니까. 삶에 집착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남았는데도 아낀다면 말일세. 그러니 가게, 내 말대로 하고, 딴짓은 하지 말게.
그러자 크리톤은 이 말을 듣고 근처에 서 있던 소년에게 고갯짓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년은 나가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약을 주게 될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는 찧어 놓은 것을 잔 안에 가지고 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좋아, 이보게, 자네는 이 일에 정통하니, 뭘 해야 하나?” “그저 마시시고 다리에 묵직함을 느끼실 때까지 주변을 거니시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누우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스스로 작용을 할 겁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잔을 소크라테스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잔을 잡고는 아주 혼쾌하게, 에게크라테스, 어떠한 떨림도, 안색이나 표정의 변화도 없이, 늘 하시던 대로 마치 황소처럼 그 사람을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이 정도 마실 것에서 신에게 바칠 술을 약간 따르는 건 어떻겠나? 가능하겠나. 그렇지 않은가?” “소크라테스, 저희는 마시기에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정도만을 찧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알겠네. 그래도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이주에 행운이 따르도록 신들게 기원할 수는 있을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하겠지. 바로 이것을 나도 기원하네. 그렇게 되기를.” 이 말과 동시에 그는 그것을 입에 대고는 아주 침착하고 편안하게 비웠습니다. 그때까지는 우리들 중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어느 정도 자제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마시고 있는, 그리고 다 마신 것을 보자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찌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서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 내며 울었습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벗을 잃게 된 저 자신의 불운 때문에 말입니다. 크리톤은 저보다 훨씬 먼저,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 나가 버렸습니다. 아플로도로스는 그 전에도 눈물을 그치지 않고 있었지만, 특히 그때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울부짖어서, 함께 있던 사람들 중 가슴을 무너지게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 본인을 제외하고는요.
그가 말했습니다. “무슨 짓들인가, 이 놀랄 사람들아. 바로 이래서 내가 여자들을 내보낸 거라니까. 이런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말일세. 그리고 나는 엄숙하게 죽음을 맞아야 한다고 들었네. 자 조용히 하고 참아 내게.” 그러자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워져 눈물을 그쳤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거니시더니 다리들이 무겁다고 말하고는 등을 대고 누우셨습니다, -이렇게 하도록 그 사람이 지시했거든요,- 그러자 그에게 약을 준 사람이 그를 잡고 얼마 동안 발과 다리를 살폈고, 그러고 나서는 그의 발을 꽉 누르며 느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느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다시 정강이를 누르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위로 올라가면서 우리에게 그가 차가워지면서 굳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만지면서 그것이 심장에 이르면 그땐 떠나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덧 그의 배 주위가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을 덮은 것을 벗기며 - 그것은 덮여 있었거든요-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아플론과 님프 코르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의술 때문에 그가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 것을 두려워한 제우스가 벼락으로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리아스>에서는 단순히 유능한 의사로 묘사되고 있지만 훗날 의술의 신으로까지 신격화되었다. 이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통상 삶이라는 병으로부터 자신이 낫게 된 상황에 대해서 의술의 신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안적으로,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진 빚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으나, 그 근거는 박약하다.) 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부디 갚아 주게. 잊지 말고.” 그렇게 하지 크리톤이 말했습니다. “그 밖에 다른 할 말이 있나 보게.” 이렇게 물었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저 사람이 그를 덮었던 것을 벗겼고, 그의 두 눈은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크리톤이 입을 다물어 드렸고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벗의 최후였습니다. 에케크라테스, 우리는 말할 겁니다. 그는 당시 우리가 겪었던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현명하며 가장 정의로웠노라고.
[작품 안내]
파이돈의 중심 주제가 영혼의 불멸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에게 영혼이 불멸하는지 여부보다 더 적절한 철학적 문제를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이돈>의 내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영혼 불멸에 관한 네 개의 논증들과 그것들에 대한 대화 상대자들의 반론들이다.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논증들의 설득력이 아니라, 철학적 토론에 임하는 소크라테스의 태도 자체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오직 철학함을 통해서, 즉 영혼을 육체적인 것들로부터 가능한 한 분리시키고, 순수한 지적 파악의 대상들을 오로지 이성의 힘으로 추구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플라톤은 이 메시지를 단순히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전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그가 묘사하는 소크라테스의 태도와 행위들을 통해 구체화된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정확한 사태의 진실을 알기 위해 토론에 몰두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플라톤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철학자의 상 바로 그것이었다.
~~~파이돈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서양의 사상적 전통에서 진정한 철학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스토아철학자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불가피한 악을 마음의 동요 없이 견뎌 내는 스토아적 현인의 모델이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적 순교자의 원형이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니체가 보기에, 소크라테스를 그리스도로 만든 플라톤은 “그리스도 이전의 기독교인”<우상의 황혼>이었다.
~~~<파이돈>에서 이데아에 대한 논의는 모두 네 번 등장한다. 그 첫 번째는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참을 포착하는 것은 몸에 속한 감각기관들을 통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사유를 통해서 탐구할 때뿐임을 강조한다. 철학자들은 그래서 몸을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영혼을 최대한 그것으로부터 멀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맥락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정의로운 어떤 것, 아름다운 어떤 것, 좋은 어떤 것이 철학자가 추구하는 대상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이것들의 본성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일단 강조 되는 것은 이데아가 철학자가 추구하는 대상이며, 그것에 대한 진실은 감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사고와 추론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는 점이다.
파이돈에서 두 번째로 이데아가 논의되는 것은 영혼 불멸에 대한 소위 상기 논증에서이다. ~~~같은 돌들이나 같은 목재들은 어떤 것과는 같게, 어떤 것과는 같지 않게 보이는 반면, 같음 자체는 같지 않아 보이는 적이 결코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데아의 본성에 관한 플라톤의 생각을 밝히는 데 이 구절의 이해가 결정적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구절의 해석은 학자들 사이에서 오랜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
이데아에 관한 논의는 세 번째로 소위 유사성 논증 중에 등장한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데아가 가지는 성격들을 직선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감각적인 대상들이 가지는 성격들과 확고하게 대비시킨다. 그는 존재하는 것들은 두 부류로 나눈다. 한쪽에는 늘 그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며 어떠한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그리고 순수하고 불사적이며 신적인 부류의 존재들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결코 같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며, 본성상 사멸할 수밖에 없고 해체될 수밖에 없는 부류의 존재들이 있다. 이데아는 전자의 종류에 속하고, 감각적 대상들은 후자의 종류에 속한다. ~~~
<파이돈>의 주제가 영혼 불멸인 만큼, 그 속에서 영혼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논의 속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영혼과 몸의 확고한 이분법이다. 이 이분법은 인식론적 측면과 종교적 측면 양자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식론적 측면에서 영혼과 몸의 이분법은 오로지 순수한 이성 작용에 의해서만 진리가 포착될 수 있으며, 몸에 속한 감각기관들을 통한 모든 인식은 기만적이고 오도적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 이분법은 영혼이 몸으로부터 유래하는 모든 욕망들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정화될 수 없고 행복해질 수 없다는 주장과 닿아 있다. 다소 거칠게 요약하자면, 인식론적인 측면에서의 반경험주의, 그리고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금욕주의가 <파이돈>에서의 영혼 -몸의 이분법을 구성하는 두 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파이돈>의 영혼관은 후대에 이데아론 못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기독교적인 영혼관, 즉 영혼은 영적인 실체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육체와 결합해 있다가 죽음과 함께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원히 살게 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상당 부분 선취하고 있다. <파이돈>의 영혼관은 때론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의 원조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순한 동일시는 위험을 수반한다. 플라톤, 아니 나아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영혼 개념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으며, 그 안에 근대 철학에서의 마음과 동일시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의미의 층위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줄거리 및 분석]
1. 도입부
<파이돈>은 일종의 액자 구조를 가지는 대화편이다. 액자 구조의 바깥 이야기를 굿어하는 것은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의 대화이다. 고향 엘리스로 돌아가는 길에 플레이우스에 들른 파이돈은 그곳에서 에케크라테스를 만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관해 늘 궁금해 왔던 에케크라테스는 그 현장에 있었던 파이돈에게 당시의 상황을 들려 줄 것을 부탁한다. 이 요청에 응해 파이돈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액자 구조의 내부 이야기의 내용이 된다.
2. 철학자의 죽음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철학자들은 전 생애를 통해 죽음을 열망하고 추구한다는 놀라운 주장을 내세운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죽음이 몸으로부터의 영혼의 해방이라는 점에서 논의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그는 몸과 그것에 결부된 감각지각을 통해서는 참된 존재들에 대한 앎이 획득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앎은 오직 순수한 사고와 추론에 의해서만 확득 될 수 있다. 그런데 순수한 사고와 추론은 오직 영혼이 몸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만일 죽음이 몸으로부터의 영혼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찬된 존재에 대한 앎을 추구하는 철학자들은 결국 죽음의 상태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셈이다.
3. 영혼 불멸에 관한 논증들
철학자는 죽음을 태연히 맞이할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영혼이 죽은 다음에도, 즉 몸과 분리된 뒤에도 소멸하지 않고 계속 존재함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케베스는 이 전제가 참인지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해명과 논증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이제부터 이에 대한 심미아스와 케베스의 반론들이 <파이돈>의 중심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3-1 순환 논증
3-2 상기 논증
3-3 유사성 논증
3-4 심미아스와 케베스의 반론
3-5 심미아스에 대한 답변
3-6 마지막 논증
4. 신화
- 지구의 참된 모습과 그것의 여러 부분들에 관한 흥미로운 묘사
-지하 세계에 대한 묘사
5. 소크라테스의 죽음
[Review]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성서. 디모데후서 4장 6~8절>
AD 66년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던 사도 바울은 자기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보낸 직후, 전설에 의하면 로마 서부의 ‘오스티안웨이’에서 참수되었다.
소크라테스는 BC399년, 71세에 사약을 받고 죽음에 처했을 때, 마지막까지 그 옆에서 시중을 들던 제자들에게 육체는 죽지만 영혼은 불멸한다는 것을 철학적 논증으로 제시하고 태연한 모습으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철학적 논증이 옳다는 것을 믿고 떠났다는 것을 보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도 바울과 소크라테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동일하게 확신한 것은 영혼 불멸이었다. 파이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의 영혼 불멸에 대한 논리가 기독교적 교리와 부분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태생인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부터 399년까지 일생을 철학자로 보내며 오늘날에도 서양철학의 제 일인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 <파이돈>은 그의 철학적 사상 중에서 특별히 그가 주장하는 영혼 불멸에 대한 변증법적 논리를, 제자인 플라톤이 기록한 내용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파이돈’, ‘에케크라테스’, 심미아스와 케베스 네 사람이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일원인 ‘에케크라테스‘가 ’파이돈’에게 소크라테스가 운명하기 직전에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묻는 것으로, 소설은 소크라테스의 논증에 대해 심미아스와 케베스가 질문하고 반박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저자인 플라톤 자신의 이름은 드러내지 않았다.
전승에 따르면 ‘파이돈’은 아테네에 전쟁 노예로 팔려 왔다가 ‘소크라테스’의 주선으로 자유인이 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심미아스’와 ‘케베스’는 ‘소크라테스’에게 호의를 가진 인물들로,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도우려 했으나 ‘소크라테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파이돈’, ‘심미아스’, ‘케베스’ 이 세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지킨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소크라테스’보다 사백 년 후세에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고 십자가 죽음을 맞은 후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 복음의 내용이 담긴 신약성서가 완성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신약성서의 복음은 영혼 불멸이라는 관점과, 사후에 영혼의 심판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책에서 육체를 떠난 영혼은 하데스에 머물게 되고 선악 간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주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고, 결과에 따라 이승으로 윤회하는 것을 믿었다. 이것은 BC 560년경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의 교리와 유사하다.
“과연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은 하데스에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자, 우리가 기억하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네. 그 영혼들은 이곳으로부터 가서 그곳에 있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 말일세. 그리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즉 산 자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들의 영혼이 거기에 있지 않을 수 있겠나? 어쨌거나 그것들이 없다면, 그들은 다시 태어날 수 없을 테니 말일세. 그리고 만일 산 자들이 죽은 자들 외의 다른 어디로부터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로 분명해진다면, 이것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데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될 걸세.”(본문)
오늘날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논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지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는 이성적으로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에 비해 성서는 영혼 심판의 주체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며,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종결한다. 성서는 많은 부분에서 영생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성서. 요한1서 5장 13절)고 말하면서 영생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 불멸은 논증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확증되는 것이다.
영혼 불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여러 갈래의 신앙적 토대를 유지하고 있다. 성서에서는 그것을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 속에 남겨 준 것인데, 인간이 죄악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우상으로 바꾸었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로마서 1장20절)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장 23절)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는 아직 지구가 천체의 중심으로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천체가 움직인다는 천동설의 과학 시대였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지구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지구가 천구 한가운데에 어떤 구조를 가지고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지? 그가 생각하는 하데스는 어느 곳에 존재하는지와 같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다. 철학적 논증에 관심 있는 독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는 작은 분량의 내용임에도 골치 아픈 책이다.■
(본문)
"자 이제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케베스. 내게 그렇게 생각되는 것처럼, 우리가 부당하게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게. 만일 마치 원을 이루며 도는 것처럼, 생겨남에 있어서 언제나 한쪽이 다른 쪽과 균형을 이루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직선적으로 한쪽으로부터 그 반대쪽으로의 생겨남만이 있어서, 그것이 다른 쪽으로 다시 되돌아오지 않고 반환점 돌기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것이 같은 꼴을 가지게 될 것이고, 같은 일을 겪게 될 것이며, 생겨남을 그치게 되리라는 걸 자네는 아나? “무슨말씀이신지?” 그가 말했습니다."p55
"이런 이야기가 있네. 각 사람이 죽으면, 그가 살아 있을 때 뽑힌(※어떤 삶의 방식을 선태 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다이몬이 결정되는 것) 그의 다이몬(※각각의 영혼에게 할당된 일종의 수호신)이 그를 어떤 장소로 인도하는 일을 맡게 된다고 하네. 그곳에서 모인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하데스로 가야만 하는 데, 이것은 이승에 있던 사람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도록 지정된 바로 그 안내자와 함께하는 것이네. 그들이 그곳에서 겪어야 할 일들을 겪고 머물러야 할 시간 동안을 머무르고 나면, 또 다른 안내자가 그들을 다시 이승으로 데리고 오는데, 이것은 여러 주기의 긴 시간을 거친 다음에야 이루어지네. 그럼 그 여정은 아이스퀼로스의 텔레포스가 말하는 대로는 아닌 거지. 그는 단순하지도 하나이지도 않으니 말일세. 왜냐하면 누구도 그 어딘가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 테니 말일세. 그런데 이제 그것은 많은 갈림길들과 삼거리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이건 이승에서의 의식들과 관습들을 증거로 삼아 하는 얘길세. "
"이제 방정하고 현명한 영혼은 안내자를 따르고 자신의 상황을 모르지 않는 반면, 몸을 욕망하는 상태인 영혼은, 앞서 말했던 대로, 몸과 보이는 영역 주변에서 오랜 시간 동안 퍼덕거리다가, 여러 번 저항하고 많은 일을 겪은 다음에야 강제로 그리고 힘겹게 지정된 다이몬들에 의해 이끌려 떠나가게 된다네. 다른 영혼들이 이르게 되는 w아소에 이르게 되면, 정화되지 못한 상태이고 다음과 같은 어떤 짓을 저지를 영혼, 즉 정의롭지 못한 살인에 관여했거나, 그런 부류의 짓들과 그런 부류의 영혼들에 걸맞은 짓들을 저지를 영혼은, 모두가 그것을 기피하고 외면하며 아무도 동반자나 안내자가 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까지는 어찌할 바를 전혀 모르는 채 홀로 방황하다가, 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필연에 의해서 그것에 알맞은 거처로 인도되네. 반면 순수하고 절도 있게 삶을 영위한 영혼은, 신이 동반자이자 안내자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에게 합당한 장소를 거처로 삼게 되네. 그런데 지구에는 많은 놀라운 장소들이 있고 그것은 지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것도 그만한 크기의 것도 아니라네. 이건 내가 누군가에 의해서 믿게 된 바일세. 그러자 심미아스가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소크라테스? 지구에 대해서라면 저 자신도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만, 당신이 믿게 된 것들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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