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요한복음 4장 39-42절
4:39 ἐκ δὲ τῆς πόλεως ἐκείνης πολλοὶ ἐπίστευσαν εἰς αὐτὸν τῶν Σαμαριτῶν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ῆς γυναικὸς μαρτυρούσης ὅτι εἶπέν μοι πάντα ἃ ἐποίησα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40 ὡς οὖν ἦλθον πρὸς αὐτὸν οἱ Σαμαρῖται ἠρώτων αὐτὸν μεῖναι παρ᾽ αὐτοῖς καὶ ἔμεινεν ἐκεῖ δύο ἡμέρας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41 καὶ πολλῷ πλείους ἐπίστευσαν διὰ τὸν λόγον αὐτοῦ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42 τῇ τε γυναικὶ ἔλεγον ὅτι οὐκέτι διὰ τὴν σὴν λαλιὰν πιστεύομεν αὐτοὶ γὰρ ἀκηκόαμεν καὶ οἴδαμεν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ἀληθῶς ὁ σωτὴρ τοῦ κόσμου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 묵상할 내용: " 악의 전염"
-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부르는 악
- 자기 욕심을 이루는 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악
-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구원자라 부르는 악
모든 사람의 말에는 각자가 가진 가치관과 그에 따른 삶의 목적과 현재 움직이고 있는 방향성이 드러난다. 또한 어떤 사람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면서 하는 말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한다거나 그 사람의 말에 동조한다는 의미만 있지는 않다. 말을 옮기면서 자기 욕심을 덧붙여 왜곡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본래의 말은 의미를 잃게 된다.
주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들을 때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물론 주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여기에 해석학적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신의 말씀에 대한 인간들의 끊임없는 왜곡은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다. 주님은 신의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신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셨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신에게 구하고 신이 그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을 진리라고 가르치고 따른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속적 욕망을 이루어 줄 수 있다고 믿는 존재의 말을 따르고 행동한다. 주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상대화된다.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는 주님이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어 줄 것을 기대할 때일 뿐이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성공을 위한 투자일 뿐이다.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모든 사람의 말에는 구조적으로 어떤 것을 중요시하는 가치관, 어떤 대상을 높이는 평가가 기초를 이룬다. 물론 이 모든 말은 자기의 이익과 직결된다. 그것은 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신의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니다. 신이 주신 생명으로 신의 이익이 아닌 자기 이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죽음이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만족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설사 그것을 이루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멸망일 뿐이다. 그것은 결코 구원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욕망을 이룰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행복해한다. 그리고 그런 욕망을 이루어 주는 존재를 신으로까지 높인다. 구원자라고 여긴다. 그러면서 세상에 악을 퍼뜨린다. 입을 닫아라! 주님의 진리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가지도 말고 살지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