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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 서울대교구 사목국 · 평화신문 공동기획] 5. 사랑으로 열매맺는 신앙 (1) 왜 '사랑의 봉사'에 나서야 하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모든 존재는 생명의 고리로 연결
수메르, 미케네, 로마, 파리. 문명은 항상 소도시로부터 비롯됐다. 위대한 발견, 새로운 발명, 혁신적 아이디어. 세상을 바꾸는 모든 변화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는 어울려 산다.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나아간다. 심리적 안정감, 사회적 보호, 희망의 성취까지도. 개인으로는 생의 기초적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모든 능력을 갖춘 존재는 전능하신 하느님밖에 없다. 농부에게도 시인이 필요하고, 학자에게도 노동자가 필요하다.
조직이 있는 이유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서다. 혼자선 비행기를 만들 수 없지만, 제도적 지식으론 가능하다. 역사와 문화, 도서관에 쌓인 책은 축적된 인류의 자산이다. 화마(火魔)에 휩싸인 인간은 소방관의 도움으로 살아 나온다. 소방관도 살아남기 위해 혼자서 불을 끄러 들어가지 않는다. 관창수는 수압을 몸으로 받아내고, 보조수는 관창수를 지탱한다. 서로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가? 누구를 지탱하고 있는가? 창조와 보존은 구원이라는 바퀴를 굴리는 두 축이다.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창조하는 인간도, 보존하는 인간도 하느님을 닮았다.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노력을 쏟는 인간은 하느님의 상징이다. 모든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노력을 우린 '사랑'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은 사랑 속에서 하느님 얼굴을 드러낸다. 만일 선함이 결핍되어 있다면 그것이 악이고,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면 그것을 죄라 부른다. 모든 존재는 생명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충만한 부자들
소외, 상실, 소멸, 자살. 고립된 인간은 죽는다. 가장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은 버려진 인간이다. 가장 위태로운 인간은 생명의 끈을 놓친 인간이다. 혼자서 자족하는 인간은 교만한 인간이고 스스로 제외된 인간이다.
성경적 의미로 혼자 자족하는 인간이 '부자'다. 돈만 많아 부자가 아니다. 스스로 충분해서 하느님 구원이 필요 없는 사람이 부자다. 내 생각, 내 재산, 내 시간, 내 사람. 혼자 다 가지고 있으니, 굳이 기도할 이유가 없다. 부자가 바라는 영생이 있다면 오직 연장된 현세일 뿐인 것이다.
율법학자, 바리사이, 사두가이. 그들은 가진 자들이었고, 스스로 충분한 자들이었다. 율법과 권력을 독점한 자들이었고, 스스로 늘 옳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충분한 부자를 향해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 '독사의 자식들'(마태 12,34)이라 불렀다.
뱀은 아담과 하와를 속인 죄악의 원흉이다. 원조는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욕망 때문에 은총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자기 뿌리도 모르는 셈이니 요즘 같으면 '홀로' 자식이 된 것이다. 스스로 충분한 부자, 홀로 자식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 한마음한몸운동본부 1000번째 '생애 첫 기부'에 참여한 아기들과 가족들이 조규만 주교, 김용태ㆍ정성환 신부와 함께 축하 케이크 불을 끄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형제의 고통 외면하는 것이 '죄'
부자와 빈자에 관한 루카의 세계관은 좀 더 직설적이다. 루카복음 속 '거지 라자로'의 비유는 부자의 종말 이야기다. 호의호식하던 부자는 죽어 영원한 불에 떨어졌다. 타는 목마름 속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아브라함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26).
아무도 오갈 수 없는 깊은 구렁, 무한한 벽. 소방관도 끌 수 없는 불. 완전한 고립. 지옥이다.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 아니신가? 아브라함도 축복에 힘입어 부자로 살지 않았던가? 왜 이런 극단적 비극이 벌어졌을까?
부자는 좋은 옷에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라자로는 종기투성이 몰골을 한 비참한 거지였다. 둘은 매일 눈을 마주치는 사이였다. 라자로는 부잣집 대문간에서 구걸했으므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 찌꺼기라도 먹기를 바라는 거지. 라자로의 더러운 몸, 진물이 흐르는 종기를 핥고 가는 강아지. 부자와 거지는 둘 다 아브라함을 할아버지라 부르는 형제였다.
그렇다. 잘 먹고 잘 산 건 죄가 아니다. 형제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 죄다. 날마다 그리고 수시로. 대문을 오가며 매일같이 그 비참함을 목격하고도. 어떻게 형제가, 아니 인간이 그럴 수 있는가?
인도 국민의 지도자, 간디는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는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는다." 종교가 아니라 종교인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한 말이다. 구원은 오직 하느님이 하신다. 종교나 신분, 조건이나 자격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나라는 신부, 장군, 박사라서 가는 곳이 아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보답 바라지 않는 사랑 실천을
인(仁), 자비, 용서. 모든 종교는 사랑을 가르친다. 완성된 종교적 사랑은 윤리나 도덕, 원리나 교리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어코 실행되고 실천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나이 예순에 실크로드를 걸어서 횡단했다. 터키 어느 마을, 겨우 구한 잠자리에 대한 보답을 500리라로 표현했다. 하지만 독실한 이슬람 신도였던 주인은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알라의 뜻을 실천한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식사에 초대할 때 가난한 자를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2-14).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은 완성된 사랑이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이 세상 속의 사랑이 자선과 희생이다. 자선과 희생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사랑도 이념적인 것이 아니다. 실재요 실물이다. 멈춘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며,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 체험되는 것이다. 주고, 나누고, 느껴서 도무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확실한 대상이 있다. 가족, 친구, 취미, 개, 돈, 일. 구체적으로 지향하고, 차고 넘치게 움직여서 관념적일 수 없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에너지 같은 것이어서 과거형일 수가 없다. '예전에 사랑했습니다''다음에 사랑하겠습니다''2% 사랑, 30% 사랑' 그런 사랑은 없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진심입니다' 사랑은 지금 하는 것이며, 작지만 확실한 모든 것이다.
율법학자의 사랑은 대상이 불분명한 관념적인 계명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예수님의 사랑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현재적 실천이었다. 그래서 반문하신다. "누가 그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이냐?"(루카 10,36 참조).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신앙의 해,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 서울대교구 사목국 · 평화신문 공동기획] 5. 사랑으로 열매맺는 신앙 (2) 사랑 실천
가슴 가득한 주님 사랑을 이웃에 전하는 신나는 발걸음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하십시오"(1코린 13-16장).
성경에도 나와 있듯, 사랑 실천은 우리의 믿음을 증언하는 역할을 하도록 돕는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신앙의 해' 자의 교서 "믿음의 문"에서 "사랑 없는 믿음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믿음 없는 사랑은 끊임없는 의심에 좌우되는 감정에 불과하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가도록 해 주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신앙의 정점이자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랑 실천'에 앞장서는 이들을 만났다.
서울대교구 암사동본당(주임 김중광 신부) 오인숙(마리안나, 55) 빈첸시오회장은 성당에서 '천사'로 통한다. 밤이나 낮이나 지역 사회 어려운 이들을 챙기는 덕분이다. 그는 매일 오전 10시 평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미사가 끝나면 으레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25년을 암사동에서 살았기에 동네를 돌면 많은 이웃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어디에 사는 누가 어렵다더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빈첸시오 회원들과 함께 찾아가 돕는다.
오 회장은 본당에서 매주 주일미사 뒤 성금 모금 캠페인 '100원의 기적'을 펼친다. 조금이라도 더 어려운 이웃에게 보탬이 돼주려는 것이다. 김장철이면 신자들과 함께 김장하고 쌀도 나눈다. 쌀과 김치를 가득 실은 그의 자전거를 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요즘이다. 본지 사랑 나눔 캠페인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에 외롭게 투병생활 하던 홀몸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자주 소개해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 주특기다. 그래선지 본당에서 빈첸시오회장을 맡은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기라도 한 듯, 얼마 전부터는 암사1동 주민센터 '동(洞) 복지 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서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 발굴과 도움을 주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사랑 실천을 하는 데 남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저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넘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곤 했는데,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다"며 자신보다는 하느님을 내세웠다.
"주님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늘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갑작스레 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만날 때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야 할 때는 (이거 못하면) '내가 망신 당하나? 하느님이 망신 당하시지' 하고 화살기도를 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체면을 구기는 일은 만들지 않으시죠.(웃음) 사랑 실천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덕분이에요."
품속에 부적을 지니고 다닐 정도로 무속인 말만 듣고 살았던 그가 하느님 자녀로 거듭난 것도 모자라, 열정적으로 이웃 사랑에 나서는 이유가 궁금했다. 오 회장은 "굶어본 사람만이 배고픈 사람 심정을 안다"고 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알 수 없는 이끌림에 하느님을 찾았다. 1978년 장녀가 태어났지만 27일 만에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곧 둘째를 가졌지만, 병원에서 유산할 확률이 80%라는 진단을 받았다. 계속된 남편의 사업실패로 임신부가 굶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주위에서 "이혼하라"며 종용하기도 했다. 오 회장은 "그때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다 눈보라가 쏟아지던 날 임신한 몸으로 무작정 물어 찾아간 곳이 서울 대방동성당이다. 난생처음 성당에 들어서자 두 팔을 벌린 예수상이 '이리 오너라'하는 것 같았다. 성당에 도착하자 신기하게 눈보라가 멈췄다. 성모상 앞에 선 그는 '남편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뿌리 깊은 신앙인이 되게 해 주시고, 아버지를 증거하는 딸이 되게 해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1981년 세례를 받은 그는 주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새 삶을 시작했다.
세례 후 암사동으로 이사 온 오 회장은 본당에서 반장직을 맡으면서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돕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아버지와 살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진 여학생을 1년 8개월 동안 자신의 집에 데려와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오 회장의 선행을 적극 지지해온 남편과 두 아들은 잃었던 딸, 누나가 다시 살아온 것처럼 몹시 기뻐했다.
한 신자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자비로 떡을 지어 신자 가정을 돌며 일주일간 모금한 덕분에 무사히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준 적도 있다. 큰아들이 초등학생 때는 점심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들 친구를 위해 남몰래 수년간 도시락을 싸줬다. 홀로 사는 할머니 목욕을 시켜주면서 몇 달 동안 움직일 수 없었을 정도로 아팠던 팔이 저절로 낫는 '작은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는 주님 뜻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더욱 굳센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20년 이상 이어온 그의 선행은 수백 명이 세례를 받는 결실로 나타났다. 2000년에 이미 선교왕에 뽑힌 적이 있는 그의 일화는 2001년 서울대교구 2000년대 복음화사무국이 발행한 「선교의 기쁨」 책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눈이 어두워서 몇 년 동안 집 안 청소를 하지 못한 할머니 집을 말끔히 청소해드렸을 때 할머니가 '나 시집가도 되겠어'하며 기뻐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평화신문, 2013년 11월 10일, 이힘 기자]
서울대교구 신정동본당 사회사목분과 '예로니모회'
- "제가 먼저 나서 나눔을 실천하겠습니다." 예로니모회 봉사자들이 지역 돌봄 대상자 가정의 도배ㆍ장판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신정동본당
사랑 실천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서울 신정동본당(주임 박동호 신부) 사회사목분과는 산하에 봉사를 위한 단체 '예로니모회'를 만들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봉사를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부지런히 발로 뛰는 것이 특징이다.
사회사목분과 김항중(보니파시오) 분과장은 "사회사목은 주님 사랑을 가슴에 담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이웃에 그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기획 회의를 통해 끊임없이 봉사할 수 있는 대상과 장소를 물색한다"고 설명했다.
예로니모회 20여 명의 회원은 봉사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매주 한 번 모인다. 사회사목 활동에 있어 위원들 간 교류와 관계 형성이 중요하기에 주기적인 만남을 통해 결속력을 다지고 봉사 계획을 짠다. 눈에 띄는 어려운 이들만을 돕기보다는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능동적 봉사를 하자는 것이다. 모임을 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샘 솟는다.
"작년 12월에는 '우리 모두가 산타입니다' 행사를 기획했죠. 전 신자가 가정에 있는 비누, 치약, 라면 등 생필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산타 선물 꾸러미를 만들고 신부님이 사회사목분과와 어려운 가정을 방문할 때 선물로 드렸습니다."
큰 비용이 드는 행사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에나 받았을 법한 선물 꾸러미를 받는 이들은 물론 주는 이들의 마음도 설레게 한 가슴 따뜻한 추억이 됐다. 봉사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도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추석이면 송편을 빚고 천연 비누와 딸기잼도 만들어 판매했다. 새벽부터 모여 좋은 재료로 만든 제품들은 신자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다.
봉사 대상이 본당 공동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역 복지관과 봉사단체와 연계해 봉사 영역을 넓혔다. 본당 사회사목분과 계획안이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공모지원사업에 채택돼 안동교구 신기동본당과 '행복한 나눔 여행'도 진행했다. 지난 6월에는 본당 내 나들이가 어려운 어르신들을 모시고 신기동본당을 방문했고, 10월 27일에는 신기동 공동체 어르신들을 서울로 초청해 서울 나들이도 시켜 드렸다.
김 분과장은 "안동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 어르신이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며 여행 준비로 쌓인 피로감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고 말했다. 서울을 찾은 신기동 공동체 어르신들 역시 63시티와 서울의 여러 성지를 순례하며 "이렇게 서울에 와서 교우들의 환대를 받으며 순례를 하니 마음이 너무 기쁘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예로니모회는 지난 10월에 100번째 주회를 자축했다. 봉사가 자신의 소명이라는 의식을 다시 한 번 다지는 자리였다. 박덕순(루치아) 부회장은 "많은 봉사단체가 팀에서 1~2명만 일해도 단체가 지속한다고 생각하지만, 단원 모두는 '왜 다른 사람은 일하지 않지'라는 의문을 갖기보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웃었다.
예로니모회는 앞으로도 지역 사회 도움이 필요한 곳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골 본당과의 연계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신앙의 해,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 서울대교구 사목국 · 평화신문 공동기획] 5. 사랑으로 열매맺는 신앙 (3) 사랑 실천의 누룩
작은 '나눔의 씨앗', 커다란 '사랑의 열매' 맺어
성경은 자선에 대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태 6,3 참조)고 하지만, 때로는 알게 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성실하고도 지속적인 나눔은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한 봉사단체의 사랑실천이 누룩이 돼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나눔에 적극성을 갖게 된 본당이 있는가 하면, 음악을 전공한 대학생들의 '재능기부'가 이제는 사회적 기업 설립을 눈앞에 둘 정도까지 됐다. 나눔이 낳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나눔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
5일 낮, 가을빛 가득한 단풍이 우거진 인천교구 강화도 갑곶성지를 방문한 할머니들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최고령 할머니가 100세, 평균 나이 80세인 할머니들이 소풍을 떠난 소녀처럼 들뜬 표정들이다. 이 할머니들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노인전문요양원 성우회 소속 어르신들이다. 마당이 없는 시설 구조 탓에 답답한 일상을 보내다 서울 대치2동본당(주임 홍기범 신부) '나눔회'(회장 정기호) 회원들 덕분에 당일치기 가을여행을 떠난 것이다. 점심으로 입에 '짝짝 붙는' 맛있는 간장게장과 꽃게탕을 먹으니, 없던 입맛이 다시 돈다.
자녀가 없거나 있더라도 연락마저 끊긴 탓에 정(情)이 그리운 할머니들은 종종 찾아와 선물도 안겨 주고, 말벗도 돼주는 50~60대 나눔회 회원들이 자녀 같고 사촌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가을여행이 더 고맙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나눔회 회원들은 이처럼 거의 매달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봉사를 하고 있다. 때로는 군 본당이나 공소를 찾아 장병 간식거리를 선물하기도 한다. IMF로 인한 실직으로 위암에 걸린 환자에게는 적지 않은 성금을 전하면서 그가 기초생활수급권 혜택을 받도록 주선해 주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미혼모 돌봄시설인 마인하우스에 성금을 전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나눔회 회원들의 봉사는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한마디로 전국구다. 어려운 이웃이 서울 강남구보다는 다른 지역에 더 많아 회원들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서는 덕분이다. 나눔회 회원은 15명. 하지만 이들이 나눔활동으로 집행하는 한 해 예산은 1억 원이 넘는다. 나눔회가 대치2동본당 사회복지 예산의 대부분을 집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래도 모자라는 부분은 회원들이 그때그때 자발적으로 추가 성금을 모은다.
나눔회 원명숙(율리안나, 59) 부회장은 "나눔은 내가 가진 것을 이웃에게 주는 것이며, 신자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사랑 실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눔회 사랑이 본당의 나눔으로
올해로 설립 14년째를 맞은 나눔회는 일반 본당에는 없는 특별한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나눔회와 유사한 단체가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다. 대치2동본당에는 빈첸시오회가 없다. 그 빈자리를 나눔회가 대신하고 있다. 빈첸시오회가 있었으나 본당 사정으로 해체된 뒤 다시 설립한 것이 나눔회다.
나눔회 활동의 이면에는 나눔회를 설립한 권혁노(프란치스코) 전 사목회장의 적극적 활동과 지원이 있었다. 사업가 출신인 권 회장이 설립 초기부터 해마다 적지 않은 성금을 맡겨 나눔활동을 지원해 줬고, 주변 지인들을 나눔활동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든든한 지원 덕분에 나눔회가 지역 사회 울타리를 넘어 어려운 이웃에게 그리스도 사랑을 전하는 일을 꾸준히 펼쳐올 수 있었고, 함께 하려는 이들이 생겨나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후문이다.
나눔회는 한 평신도 단체 회원들만의 나눔활동에 그치지 않고, 본당 공동체에 나눔의 중요성과 의미를 전하는 없어서는 안 될 단체가 됐다. 지난 9월 본당이 개최한 '사랑 실천 나눔 바자'에서 나눔회 회원들은 반ㆍ구역장들과 함께 사랑을 실천하는 바자의 의미를 전하고, 신자들에게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는가 하면, 자신이 가진 물건들을 기부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준비와 참여 덕분에 대치2동본당 공동체는 하루 바자에서 4000여 만 원의 순수익을 올렸고, 수익금 전액을 교구 장애인 시설 등 모두 17곳에 전할 수 있었다.
나눔회 회원들은 '나눔이 성금을 보내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성금을 전할 때도 온라인 송금을 하지 않고, 전국 어디든 직접 찾아가 그곳 현황을 살피며, 사람 냄새와 온정까지 전하고 있다. 회원들은 또한 '나눔은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전적 지원 역시 중요하지만, 봉사자 없이는 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의 여행이나 여름 캠프, 유람선을 태워주는 행사를 열어 성금을 지원하고 함께 나서는 것이다.
회원 김재흠(바오로, 60)씨는 "각종 신심단체 활동을 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느꼈는데, 그것은 이웃을 위한 사랑 실천이었다"며 "나눔회 활동 2년 만에 그리스도인에게 사랑 실천이 왜 필요한지 깨달았고, 신앙생활의 변화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홍기범 주임신부는 "우리 본당은 한 달 치 교무금을 더 걷어 전액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데, 나눔회가 사랑 실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치하했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17일, 이힘 기자]
청년 행복 전도사 '라에뚜스 앙상블'
재능나눔을 업(業)으로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것도 한창 맛집 찾아다니며 데이트도 즐길 대학생들이다. 스무 살 대학 초년생부터 졸업을 앞둔 선배가 똘똘 뭉쳐 지역 곳곳의 어린이들에게 음악으로 희망을 전하는 '라에뚜스 앙상블'이다.
'음악ㆍ행복ㆍ나눔'을 모토로 2012년 뭉친 이들은 가톨릭대 학생 6명으로 구성된 앙상블로, 박형주(안토니오, 27, 피아노)ㆍ이중현(22, 바이올린)ㆍ김지원(22, 첼로)ㆍ최명관(21, 기타)ㆍ승지나(21, 보컬)ㆍ유지인(20, 젬베)씨가 멤버다. 라에뚜스(라틴어로 '행복')로 하나 된 이들의 무대는 경기도 부천시 가톨릭대 인근 공부방과 지역아동센터, 다문화가정 시설이다. 이들은 10여 곳을 매달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찾아가는 음악'으로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전한다.
"선생님 멋져요!", "악기 한번 연주해보고 싶어요."
1시간 가량 연주를 마친 후 어린이들의 호기심이 발동하면 '악기체험 시간'을 제공한다. 평소 접할 수 없었던 첼로도 튕겨보고, '퉁퉁' 젬베도 쳐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색다른 경험이다. 어린이 누구라도 마이크를 잡으면 즉석에서 최신가요 연주도 가능하다. 어린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이들이 만사 제치고 재능나눔을 하는 이유다.
앙상블을 만든 박형주 팀장은 "제가 음악을 하는 행복감을 희망을 안고 살아갈 어린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며 "아이를 좋아하고,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청년이면 신자ㆍ비신자, 비전공자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단원들 전공도 음대생 형주씨를 빼면 경영학ㆍ일어ㆍ영문학ㆍ중문학 등 제각각이다. 대신 리듬감과 봉사 정신은 투철한 게 공통점이다.
막내인 유지인씨는 "원래 아이들을 위한 음악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앙상블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싶어 입단하게 됐다"며 "즐거운 젬베 손동작을 따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음악하며 웃고 즐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부천시문화재단 측에서는 부천시에 있는 공연장을 무상으로 제공해주기도 한다. 또 가톨릭대 측에서도 멘토링 사업 일환으로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해주는 등 이들의 아름다운 나눔을 위한 주변의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지난 10월에는 부천시 오정아트홀에서 그간 찾아다닌 시설 어린이와 관계자 250여 명을 초청해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최명관씨는 "음악 봉사를 하고자 시작한 저희는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오히려 우리 각자가 많은 보람과 교훈을 얻었다"며 "단순히 돕는다는 일차원적인 음악이 아닌, 그 안에서 함께 행복을 나누는 음악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에 모여 저녁 늦게까지 연습하고 기획도 한다. 공연을 앞둔 때면 하루종일 어떻게 하면 기쁜 노래를 부를까 궁리한다. 대부분 음악 비전공자인 이들은 세미 클래식ㆍ영화 및 드라마 삽입곡ㆍ가요 등 모든 곡을 '라에뚜스 스타일'로 편곡하는 실력도 갖췄다. 비영리법인으로 인가받아 공익사업을 펼칠 수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거듭나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박형주 팀장은 "지금은 부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발돋움해 더 많은 어린이들이 웃는 것을 보고 싶다"며 "나아가 문화예술 교육 전문가로 성장해 어린이에겐 물론 저희처럼 음악으로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신앙의 해,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 서울대교구 사목국 · 평화신문 공동기획] 5. 사랑으로 열매맺는 신앙 (4 · 끝) 무엇보다 사랑
신앙의 해, 하느님 사랑으로 향하는 길은 계속
1. 도시는 문명의 총아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모든 길은 로마로 그리고 서울로 통한다. 모든 것이 제공되는 도시는 모든 자원을 누린다. 청소부, 편의점, 운전기사. 도시의 새벽을 여는 사람은 기초 자원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정치, 재벌, 언론. 사회적 권한은 자원의 통제권을 쥐고 있는 자리에서 나온다. 고급 휴대전화, 명품 핸드백, 외제 차. 사치품은 잉여 자원이 있다는 징표다. 남아도는 물질,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신호다. 그렇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 원하는 건 차고 넘치는 소유다. 부자 되는 욕구다.
먹어야 산다. 그것이 살아 있는 인간의 일이다. 섭생이다. 살아 있는 생명은 생명을 섭취해야 산다. 물고기, 고기, 날고기, 생고기, 다해서 살코기. 남의 살만 고기가 아니다. 풀은 식물의 몸이고, 과즙은 과일의 피다. 못 먹으면 죽는다. 다 먹고 살려 하는 일이다. 삶은 무력한 관념이 아니다. 소유와 무관한 신선 같은 인생은 없다. 무소유에 대한 의지도 생각으로 가진 소유다.
오늘도 어김없이 TV 광고의 단골 주제는 대출과 보험이다. 대기업의 합법적 고리대금이 경기 부양 목적으로 장려되고, 다수를 기쁘게 실망하게 할 목적으로 고안된 로또가 창궐한다. 돈을 찍어내는 허상 경제를 고상하게 '양적 완화'라고 부르고, 국민 대다수가 빚더미 위에 앉아 '부채'로 생활을 꾸린다. 강이든 산이든 자연을 남김없이 짜내 자산으로 환원한다. 우리 세대도 모자라 미래 세대의 자원을 끌어다 쓴다. 축복의 꿈조차 재앙의 현실로 다가온 고령화 시대. 젊은이는 시골을 떠나고, 빈국의 노동력은 부국으로 밀려든다.
물, 석유, 일자리, 시간, 기회. 쓸 수 있는 자원은 제한돼 있으나 쓸 사람은 늘어 간다. 개인 병원, 구멍가게는 없어지고 대형 병원, 대형 할인점이 대세다. 다양한 전통적 언어는 사라지고 힘 있는 언어로 통합된다. 획일적인 세계화의 물결이 도시의 팽창을 가속화한다. 2013년 현재, 세계 인구는 1910년에 비해 네 배가 늘었다. 도시화의 결과다.
2. 도시는 세계 자원의 75%를 소비한다. 동물, 식물, 화석 원료 대부분을 도시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소비되는 자원은 오염 물질, 쓰레기와 같은 부산물을 남긴다. 인류는 오래전 '생태 부채'의 한계를 넘어섰다. 생태 부채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재생 능력의 한계를 말한다. 2033년이 되면 정화를 위해 지구 2개가 필요할지 모른다.
나는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다. 사냥하지도 채집하지도 재배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먹고 산다. 나는 혼자 옷을 만들지 못한다. 원료가 무엇인지 모르고, 어떤 과정으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입고 산다. 도시인이기 때문이다. 도시인은 물리적 생산을 통해 먹고 살지 않는다. 장사와 정보, 서비스와 금융 같은 무형의 능력으로 먹고 산다. 그래서 우리에겐 손보단 입이, 노동보단 협상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생산할 수 없으니 생산지나 식민지가 필요한 것이다.
유럽은 바닷길을 개척해서 새로운 땅과 자원을 확보했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세계대전의 불황을 극복했다. 냉전을 버틴 미국은 세계 자원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서구 역사의 이야기 전개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된다.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는 승자 독식의 세계다. 팔레스타인, 티베트, 신장 위구르, 쿠르드. 그들은 자신의 땅을, 정신을, 역사를, 자원을 빼앗긴 민족이다. 투명인간, 아웃사이더, 잉여인간, 소외된 자, 아나빔, 레미제라블. 그들은 거룩한 희생 제물이 된 '호모 사체르(Homo Sacer)'다. 문명의 역사란 결국 도시, 전쟁, 화폐, 그리고 희생의 역사다. 사실은 있지만 실상은 없는 사람들. 자기 인생이지만 남의 인생 같은 자기 인생. 이 세계가 상실의 바탕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내겐 아프다.
3. 도시인은 곡식과 가축 대신 돈을 번다. 돈은 생산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도시인의 유일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곡식과 가축은 오래 두면 썩는다. 돈은 썩지 않는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고, 두고두고 남아 돈이다. 돈이 왜 물질인가. 갖고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힘 아닌가. 상상을 실현시키는 형이상학적 원리이자 성공의 표상 아닌가. 누가 돈을 보고 정교하게 인쇄된 종이 쪼가리라 생각하는가. 돈이 말하고, 돈이 명령하고, 돈이 살아 숨 쉬고. 돈은 생명과 밥줄을 지배하는 도시의 신이다.
우리 시대는 무신론의 시대가 아니다. 다신교의 사회도 아니다. 바야흐로 돈을 숭배하는 유일신 시대다. 우리가 허약해서 믿음까지 약해진 것이 아니다. 믿음은 오직 성령께서 주신다. 우리가 갑자기 악해져서 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문명과 도시와 화폐의 힘이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숭배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4. 교회는 세상과 유관하다. 천상적 공동체이로되, 지상 위에 존재하는 천상적 공동체다. 불멸의 영혼을 꿈꾸되, 필멸하는 몸을 감안하는 유기체다. 탈출한 이스라엘이 도달한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눈으로 보이는 안전 무사한 피신처가 아니었다. 위험한 문화와 위태로운 유혹이 범람하는 이교도의 세상이었다. 폭력 중에 가장 큰 폭력은 폭력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괴물 중에 가장 큰 괴물은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 괴물이다.
우리에겐 더 이상 피 흘려야 하는 박해가 없다. 드러내 놓고 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순교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 다름만 있고 틀림도 없다. 하지만 선택은 있다. 세속의 물결이 범람해도 선택은 우리 자신이 하는 것이다.
구약의 역사는 선택과 투쟁의 역사였다.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이냐, 풍요를 보장하는 바알이눔. 다신교는 관념적인 종교가 아니다. 모호한 내세를 보장하는 약속 따윈 하지 않는다. 지금, 그리고 오늘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단 이승이 낫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감각적인 사랑이다.
추호의 추상성조차 없다. 아무 때나 만날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장사할 때, 전쟁할 때, 여행 갈 때, 심지어 부엌에도 있으니까. 합격과 승진, 출세와 성공도 문제없다. 인간의 욕망만큼 수없이 많은 신이 존재하니까.
5. 인간의 욕망이 자신의 운명을 만든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다르다. 우린 무엇을 원하고 사는가. 돈을 원하는 사람은 돈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영원을 열망하는 사람은 영원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믿는가. 누구에게 속해있는가. 누구에게 복종하는가.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우리는 세례를 받았다. 선택은 하느님이 하셨다. 하느님께서 먼저 부르셨다. 하느님의 선택과 소명은 철회되지 않는다. '구원'은 우리를 부른 목소리가 인도하는 마지막 종착지다. 사랑의 소명을 받은 자는 마땅히 사랑에 복종해야 한다. 빛을 운반하도록 지명된 자는 빛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6.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한다. 도시 문명이 교회가 뿌리박고 있는 현실적 토양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전통 사회로의 회귀가 아니다. 이 세계에 존재해 본 적 없는 유토피아 건설이 아니다. 현재를 혐오하는 일은 자칫 미래의 토대를 흔들 수 있다. 제트 비행기를 탄 성직자가 문명을 저주하는 일과 같다. 인류를 지탱하는 생명의 원천은 예수의 십자가 희생이다. 타인의 몸과 피를 요구하는,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성된 이상적 전망이 아니다. 사랑의 응답이다.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다. 용기다. 모든 사랑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억지로 할 수 없다.
신앙의 해는 지속하고 있다. 세속의 물결에 대응하는 교회의 선택은 기초를 다지는 실천이다.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로마 10,17)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마르 9,29 ; 사도 1,14)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사도 2,42 ; 콜로 2,7)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사도 2,42 ; 1코린 10,17)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사도 2,46 ; 갈라 5,6 ; 1코린 13,13)
말씀은 구원 언어로 계시된 하느님에 관한 책이다.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를 잇는 신앙인의 '정신줄'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지속 가능한 신앙생활의 길이다. 미사는 성사의 꽃이며 지상을 사는 영혼의 음식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실천, 그 '무엇보다 앞서는 것은 사랑'이다.
"교리와 그 교육은 모두 끝없는 '사랑'을 향해야 한다. 믿고, 바라고, 꼭 해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늘 우리 주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이가 그리스도인 완덕의 근원이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목적도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여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모든 사랑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영적 소유가 가진 역설이다. 사랑을 가진 사람은 더 받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더 굳건해지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가진 사랑마저 허물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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