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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20
일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조상호 목사
어느 병원에 밤늦게 응급환자가 실려 왔습니다. 환자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겉모습은 환자의 심각한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응급실 담당의사는 우선 압박붕대로 지혈하는 등 응급조치를 취했고, 부러진 팔과 다리뼈 수술을 위해 정형외과 의사를 급하게 호출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형외과 의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 환자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 환자가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환자의 기도가 막혀 호흡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응급실 의사는 환자의 기도가 막힌 것을 모르고 다른 치료에만 정신을 쏟았다가 결국 환자가 죽고 만 것입니다. 물론 의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잘못된 순서로 환자를 치료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골프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한국의 어느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친구들끼리 골프를 하다가 여름철 위생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너도나도 위생관리에 관한 ‘원 포인트 레슨’을 한마디씩 하게 되었습니다. 골프장 잔디 위에는 들쥐나 야생동물이 돌아다니면서 배설물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잔디에 앉지 말고 반드시 카트나 의자에 앉아야 한다, 실제로 쯔쯔가무시 병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농약이 묻은 공을 만지다가 얼굴을 만지거나 눈을 비벼서는 안 된다, 골프화나 골프장갑도 소독해서 써야 한다, 골프채도 사용 후에는 매번 잘 닦아두어야 한다,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날의 결정적 발언은 남자들의 소변습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늘집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볼 때 ‘먼저 볼일 본 후 손을 씻어야 한다’와 반대로 ‘손을 깨끗이 씻은 후 볼일을 보아야 한다’는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습니다. 좀 말하기가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 전하면 이런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 귀중한 물건(?)에 각종 세균이 묻고 농약까지 묻히니 문제지. 그러니 물건(?)이 제대로 건사가 안 되는 거라고.”
“무슨 소리야. 기왕에 세균을 묻혔으면 농약까지 발라놔야지!”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의사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것도 루틴이 중요한 거야. 반드시 손을 먼저 씻고 나서 그 소중한 물건(?)을 만지라고, 당신들 혼자 쓰는 물건(?)이 아니잖아!”
주말골퍼들이 웃으면서 나눈 이야기지만, 매우 의미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화장실에서 소변이나 손을 씻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일의 순서가 더 중요합니다.
식사할 때도 먹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식사 전에 디저트와 같이 단 음식을 먼저 먹으면 혈당치를 급격히 상승시켜 몸에 큰 부담을 준다고 합니다.
미쓰오 다다시의 <10년 젊게, 30년 오래>라는 책에 보면, 식사는 식이섬유, 단백질로 시작해서 탄수화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순서로 식사를 하면 혈당치가 서서히 올라가므로 인슐린 분비량도 급격히 늘어나지 않고, 식사 후에 혈당치도 서서히 떨어지므로 가짜 공복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마사지를 할 때에도 순서가 중요한데, 심장에서 먼 부분부터 시작하여 심장 가까이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에 순서가 중요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나,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나, 음식을 만들 때나, 식사를 할 때나, 마사지 할 때나, 운동을 할 때나, 비즈니스를 할 때나, 하다못해 여성들이 화장을 할 때도 순서가 중요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여러 곳에서 ‘순서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께서는 먼저 구해야 할 것과 나중에 구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구분 지을 줄 아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입니다. 오늘은 느헤미야 강해설교 네 번째로 “일의 순서가 중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기다리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요구대로 예루살렘에 가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허락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까지 임시직이지만 유대 총독으로 임명 받았고, 건축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자재들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리고 요구하지 않은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붙여 주어서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 때가 주전 444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가 무엇부터 했을까요?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1) 먼저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언제나 기도를 최우선적으로 했습니다. 3주 전에 이미 살펴본 것처럼, 형제 하나니로부터 고국의 참담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1장 4절에서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다른 일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를 시작한지 약 4개월이 지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2장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여기 ‘묵도하다’는 원어는 ‘팔랄‘이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간절한 소원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로 매어 달렸다’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말을 듣고 나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에게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백마를 타고 화려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지도 않았고, “여러분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왔습니다!”라고 선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벽돌을 만들고 성을 쌓기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3일 동안 조용하게 있었습니다.
다같이 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3일 동안 무슨 일을 했을까요?
물론 1,300Km나 되는 장거리를 여행하느라 피곤했기 때문에 휴식을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도 평소처럼 기도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동참할 유대의 실력자들과 유지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국의 참담한 소식을 들은 후 먼저 기도하고, 왕에게 대답하기 전에 먼저 기도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성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의 인생의 첫 번째 키워드는 항상 기도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도 느헤미야처럼 무엇보다도 기도를 우선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하자 다윗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삼상 23:1~2).
또한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시글락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부하들과 함께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기습 공격하여 불사르고 아낙네들을 잡아갔습니다. 그 때도 다윗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삼상 30:7~8).
또 그를 그렇게 집요하게 죽이려고 추격하던 사울 왕이 죽었을 때도 다윗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삼하 2:1)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그가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 군대가 물 밀듯이 몰려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라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기도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모습을 배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위에 보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을 벌이고 나서 뒤늦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수리형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동차가 고장이 난 후 정비소에 찾아가서 수리하는 것처럼, 일이 터지고 나서 기도하는 것을 수리형 기도라고 합니다.
물론 늦게라도 기도하는 것이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지만, 우리는 ‘수리형 기도’보다 ‘정비형 기도’를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일을 벌인 후에 문제가 생길 때 기도하기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인기배우 제임스 머독이 링컨의 초청으로 백악관에 머물었는데,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보니, 링컨이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링컨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어려울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내게는 충분한 지혜가 없지만 기도하고 나면 특별한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이처럼 링컨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기도보다 앞서지 않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윌로우 크릭교회의 릭 워렌목사는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맨 마지막에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우선적으로 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또 백화점 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존 워너메이커는 “어떤 것도 기도보다 앞서지 않아야 합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일을 벌이기 전에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보다 앞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나 다윗처럼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상황을 파악하라
둘째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상황은 급박했지만,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3일 동안 기도를 한 느헤미야는 3일이 지나자 예루살렘 성벽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이미 형제 하나니로부터 들었지만, 예루살렘 성의 형편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다가 그만 두게 되었는지, 예루살렘 성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주변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시 산발랏과 도비야는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하든지 방해하려고 했습니다(10절).
그런데 문제는 예루살렘 성안에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느헤미야 6장 18절에서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13장 28절에서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 예루살렘 성안에는 산발랏과 도비야와 결혼 등 여러 모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의 상황을 비밀리에 파악을 합니다.
다같이 11절과 1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느헤미야는 두어 사람과 함께 밤중에 조용하게 예루살렘 성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만약 성벽 재건계획이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알려질 경우, 시작도 하기 전에 큰 어려움을 당하거나 방해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인 동시에 위대한 전략가였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 시씨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은 학문을 좋아했고, 아우는 병법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형은 제나라로 가서, 제나라 왕에게 인자하게 나라를 다스릴 것을 권유했습니다.
제나라 왕은 매우 만족해하며 그를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병법을 좋아한 아우는 초나라로 가서 초나라 왕에게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알려 주었습니다. 초나라 왕은 기뻐하며 그에게 장군의 벼슬을 주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맹씨 형제가 있었습니다. 시씨네와 마찬가지로 형은 학문을 좋아했고, 아우는 병볍을 좋아했습니다. 맹씨 형제는 시씨 형제의 성공담을 듣고 시씨 형제의 출세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학문을 좋아한 형은 진나라로 가서 인자하게 정치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러자 진나라 왕은 그 말을 듣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각국이 지금 저마다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식량을 마련하고 있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너는 진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이곳에 온 첩자로구나!”라고 꾸짖으며 그에게 매질을 가한 후 궁궐에서 쫓아버렸습니다.
또 동생은 위나라로 가서 위나라 왕에게 자신의 전략과 병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위나라 왕은 크게 화를 내며, “위나라는 주변 강대국에 끼여 있는 작은 나라라서 큰 나라에는 순응하고 작은 나라와는 서로 협조해야 그나마 안전을 유지할 것인데 무슨 전쟁 운운이냐. 너는 위나라를 멸망시키려 왔구나!”하며 그의 두 발을 잘라버렸습니다.
그가 다른 나라로 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위나라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맹씨 형제는 이렇게 쫓겨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시씨 형제를 원망했습니다. 시씨형제가 이 사실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상황 파악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고 상황에 맞는 일은 성공하고, 상황에 맞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당신들이 실패한 이유는, 전쟁이 필요한 곳과 인자함이 필요한 곳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은 항상 일정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유용한 것도 저기서는 무용한 것이 될 수 있으며, 어제 필요했던 것도 오늘은 불필요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분별하지 못하면 누구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업을 하려고 해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낚시나 등산이나 골프를 해도 먼저 물때나 바람 등의 기상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먼저 자기의 적성과 취미가 뭔가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여행을 가기 전에 미리 여행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를 할 때 무작정 복음을 전하기보다, 먼저 선교대상지의 영적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집안과 자라온 배경, 종교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덜컥 일부터 벌이지 않고, 기도한 후 상황을 자세하게 파악했습니다.
여러분, 느헤미야처럼 미리 상황을 파악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덜컥 일을 벌였다가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조금 늦어진다 할지라도 미리 상황을 파악하는 여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3) 확신을 가지라
셋째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그의 일행 두어 사람은 밤중에 성 밖으로 나가 성벽의 모든 부분을 꼼꼼히 살핀 후 돌아왔습니다. 처음에 조용하게 상황을 파악했던 느헤미야는 때가 되자, 이스라엘 사람들 중 중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중을 밝힙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말합니다(17절).
그리고 그 동안에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역사하셔서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많은 자재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느헤미야의 말을 들은 그들은 열광적으로 반응을 합니다.
그들은 ‘일어나 건축하자’고 하며, 모두 힘을 합하여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이 소문이 알려지자 방해꾼들이 등장했습니다.
다같이 19절을 보겠습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산발랏과 도비야는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함께 이스라멜 사람들의 노력을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게셈은 산발랏과 도비야처럼 페르시아 관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북부 아라비아에서 이집트 국경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인 게달을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게셈은 페르시아 통치하에 있었지만 막강한 독립적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이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이 강성해지면 그 지역의 판도에 변화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전에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중지시킨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사실을 들먹이며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라고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심을 약화시키고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다같이 2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여기 ‘형통’이란 한자로 형통할 ’형(亨)‘, 통할 ’통(通)‘으로 되어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세상에서 말하는 형통과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형통은 모든 일이 잘 되고, 원하는 대로 풀리고, 물질적으로는 번영하고 풍성해 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미 형통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역사하셔서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가 원하는 것, 즉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을 재건하는 일을 허락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가 경험한 형통입니다.
그런데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 등 방해꾼들이 나타나서 협박을 하자,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형통해 주신 하나님께서 또 다시 우리를 형통케 하실 것이다‘고 하며 확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인 동시에 전략가였고, 더 나아가 확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느헤미야와 같은 확신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만약 그에게 확신이 없었다면 방해꾼들에게 의해 흔들리고 의심하며 두려움 속에서 성벽재건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 예가 학개서 1장 9절에 나옵니다.
”.... 나 만군의 야훼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위해 기초를 다져놓았지만, 방해꾼들의 위협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여 성전재건을 포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성전은 황폐해진 상태로 놓아두고 다들 자기의 집 짓는 일에만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려면 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는 평생의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835년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로 영국으로 건너가 고아원을 운영하였는데, 1898년 3월10일 93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그는 15만 명의 고아들을 길렀으며, 성경연구와 고아원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경제적, 물질적 필요와 개인적 삶의 필요를 단지 하나님 한 분께 아뢰고 응답 받음으로써,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임을 체험했습니다. 뮬러는 믿음과 기도로 63년 동안 750만 달러(80억)이상을 기부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처음에 30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와서 물었습니다.
"원장 선생님, 오늘 점심 양식이 없습니다. 어쩌지요?"
뮬러는 평소와 똑같은 침착한 태도로 말합니다. "평소대로 식사준비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요리사는 식당으로 가서 빵을 담을 접시를 식탁에 일렬로 놓았습니다. 어린이용 30개의 접시와 물 컵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이렇게 식사준비를 끝낸 요리사는 다시 초조한 얼굴로 뮬러에게 와서 "식사시간이 15분전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요리사는 식당으로 돌아가고 뮬러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친 뮬러는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어린이들에게 빵을 먹여 주시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원장 선생님, 5분전입니다." 다시 요리사가 와서 말을 하였습니다.
뮬러는 대답대신 기도를 합니다. 이를 본 요리사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이때였습니다. 문 밖에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립니다. 요리사가 나가보니 트럭 한 가득 빵이 실려 있었습니다. 식료품회사에서 고아원에 기증하기 위하여 빵을 가져왔던 겁니다. 이렇게 하여 고아원의 어린이들은 식사를 예정대로 하게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요리사와 죠지 뮬러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요리사는 고아원의 원장이 죠지뮬러로 알고 있었던데 반해, 죠지 뮬러는 고아원 원장이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죠지 뮬러에게는 원장 되신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확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아라.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라.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라.”
또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바르게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끝까지 기도를 계속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응답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확신입니다.
로마서 4장 21절에서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기필코 실천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확신은 비단 기도하는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과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확신입니다.
확신이 없으면 시도할 수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가장 무서운 삶의 장애물은 확신 없이 사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진다면 삶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아무도 내 주위에 없어. 나 혼자서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확신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확신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우리와 함께 하시되,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처럼 우리의 삶을 형통케 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어떤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일의 순서가 중요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나 다윗처럼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처럼 미리 상황을 파악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덜컥 일을 벌였다가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조금은 늦어진다 할지라도 미리 상황을 파악하는 여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확신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처럼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순복음교회 조상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