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출발한 불교는 소승과 대승으로 나뉜다.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이 소승불교권이고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을 대승불교권이라고 한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소의경전은 전혀 다르다. 소승불교는 부처님 입별 후 350~380 동안은 경전이 4가가지만 존재한다. 아함부 경전으로 중아함, 장아함, 잡아함, 증일아함 경전이 있다.
대승불교는 용수(龍樹: 150년경 ~ 250년경) 스님과 시작되었다. 용수 (나가르주나) 스님은 대승불교의 논리를 창시했기 때문에 제2의 석가모니 또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석가모니 이래 출가자 위주의 "수행 중심 불교"였는데, 이를 비판하고 대승불교 교단을 새로 만들었다. 용수 스님은 부처님 법을 들을 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중생을 위해 용왕에게 보관해 두었던 경전을 용궁(龍宮)에서 가져왔는데 이것이 화엄, 법화, 열반, 금강경 등 대승 경전이다. 이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보살이란 본래 보리살타(菩提薩陀, Bodhisattva)를 줄여 쓴 것인데, 이 용어는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면서 역사에 등장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붓다가 깨침을 이루고 위대한 성자의 삶을 산 것은 6년간의 고행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아주 오랜 겁(劫)의 시간 동안 윤회를 반복하면서 열심히 수행 정진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기초로 찬불승(讚佛乘)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붓다의 전생담(前生譚)인 자타카(Jataka)다. 그들은 전생담을 활용하여 붓다의 사리를 모신 탑(塔)을 찾는 순례객들에게 위대한 스승의 생애를 설명해주었다. 보살이란 바로 전생담에 등장하는 붓다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깨치겠다는 발심(發心)을 하고 수행하는 전생의 석가모니 붓다가 보살이었던 것이다.
소승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이 없다. 또 중국에서는 정토 신앙이 발달하여 아미타불이 번성하였지만 소승불교권에 아미타불을 모른다. 정토신앙(淨土信仰) 또는 아미타불신앙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서쪽에 위치하는 청정불국토(淸淨佛國土)의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신앙이라고 한다. 그럼 소승불교에서는 죽은 영혼을 정토로 인도할 보살도 없고 아미타불이 없으니 재(齋)를 지내도 극락을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불교 경전 그 자체에 빠져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는 행복하려는 원래 목적을 잊으면 아니 된다.
우리는 죽은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처와 보살들에게 복달라, 명달라 공허하제 빌지 말고 우리 자신이 아미타불이 되고, 우리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되고, 지장보살이 되어야 한다. 내가 실천적으로 빛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수많은 경전이 있지만 그 경전에 이끌려 불교의 본래 목적인 진리와 한몸이 되어 행복하게 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중생이 되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깨달아 '내가 부처가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생명을 존중하며 자비의 마음을 실천하여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출처 : 조현 TV 향봉 스님 인터뷰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