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人文學 리포트] 소크라테스 죽게한 한마디…"너의 `데몬` 따르라"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전에 새겨진 금언, 즉 "너 자신을 알라(Gnoti seauton)"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세아우톤(seauton)'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우리말에서의 '너 자신'과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단어가 다르다는 점은 소크라테스가 바로 "그노티 세아우톤(Gnoti seauton)"과 관계된 주장 때문에 죽게 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첫째, 소크라테스가 아무런 죄가 없는 데도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서 죽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소크라테스가 모함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하게 되면, 아테네 시민들이 왜 재판을 엄정한 절차에 의거해 두 차례나 진행했는데도 결국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한 주장은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나머지 그리스 시민들을 일순간에 무지몽매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성이 있다.
둘째,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모함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 시민들이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소크라테스가 죽은 이유는 "그노티 세아우톤"이라는 말을 젊은이들에게 설파했던 것과 관계가 있다. 사실 그리스 시대에는 그러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소크라테스가 그리스 젊은이들에게 설파했던 것은 단순히 "너 자신을 알라(Gnoti seauton)"는 말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전의 문구를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사용하였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가 그리스 젊은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요지는 바로 "너 자신의 다이몬(daimon)을 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다이몬이라는 표현 때문에 재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다이몬은 한 개인의 운명적인 사건을 주관하는 신적인 존재에 해당된다. 그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행복을 에우다이몬(eudaimon)이라 했고 불행을 카코다이몬(kakodaimon)이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의 기소장에 따르면, 그의 죄목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아테네 시민이 믿는 신들이 아닌, 새로운 신 다이몬을 섬긴 것. 둘째, 다이몬을 섬기도록 젊은이들을 부추김으로써 그들을 타락시킨 것. 중요한 것은 여기서 다이몬(daimon)이라는 말은 바로 데몬(demon)을 뜻한다는 점이다. 데몬(악마)은 바로 그리스어의 다이몬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너 자신의 데몬을 따르라고 설파했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상식이나 사회적인 율법보다는 내면의 목소리, 즉 다이몬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모든 유혹이 제거된 진공 상태에서 생활하도록 만드는 경직된 도덕론자들을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이 내면의 유혹에 직면하여 그러한 유혹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으며 또 유혹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배척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인생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사회의 어른들이 젊은이들의 내면 목소리, 즉 다이몬을 믿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거 아테네 시민들은 그러한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사회의 가치체계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그리스 시민들은 젊은이들의 다이몬이 마치 데몬 같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소크라테스가 죽은 지 2400여 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다이몬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데몬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젊은이들의 다이몬 세계를 신뢰감을 갖고서 바라보고 있는가.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은 한 사회에서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찬사는 "신뢰한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