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川 위철환(33세, 미발협 회원)
(양곡공파, 1958년, 장흥출신, 변호사, 前대한변호사협회장)
"내 땅 위에 타인의 분묘가 설치되어 있어 재산권 행사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는데 이것을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는가요?"
토지 소유자와 분묘소유자 사이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닐 정도로 계속되어 왔고 전국에 걸쳐 갈등이 잠재되어있는 형국이다. 이 문제는 그동안 관습법에 기초한 판례를 통하여 해결돼 왔으므로 관련 판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산림공유의 원칙에 따라 분묘가 주로 설치되던 임야에 대하여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를 걸쳐 근대적 임야 소유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사회구성원들의 임야에 대한 권리의식은 거의 없거나 매우 낮았고 임야의 경제적 가치도 미미하였다.
또, 매장 중심의 전통적 장묘문화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에서와 같은 공동묘지 등이 없어 분묘를 설치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임야에 조상의 시신을 매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대가족제도와 농경 중심 사회에서는 이웃 간의 정의에 따라 임야소유자로부터 명시적이거나 최소한 묵시적인 승낙을 받고 분묘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계약서 등 근거자료를 남겨놓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토지 소유자가 분묘설치를 명시적으로 승낙하지 않은 경우에도 임야의 가치와 분묘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임야를 무상 사용하는 것을 용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토지와 분묘의 소유자가 바뀌는 등으로 분묘설치 당시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당사자 사이에 분묘굴이를 요구하는 등 분쟁이 생기는 경우에 분묘소유자가 애초에 토지 소유자의 승낙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대법원이 민법 시행 전후에 걸쳐 60여 년 동안 일관되게 확인·적용해 온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에 관한 관습법’은 이러한 애로를 해소해주고 기존에 분묘를 둘러싸고 장기간 형성된 사실관계를 존중하여 분묘가 존치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시효취득에 관한 관습법의 역사적·사회적 배경과 취지를 고려하여,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 의무를 인정함에 있어서도 분묘를 둘러싸고 장기간 형성된 기존의 사실관계를 존중하여 토지 소유자의 이해관계와 함께 분묘기지권자의 신뢰나 법적 안정성을 조화롭게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4월 29일에 2000년 1월 12일 법률 제6158호로 전부 개정된 ‘구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다음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분묘의 기자를 점유함으로써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였더라도,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와 분묘 기지에 관한 자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로부터’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일 후에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설치한 분묘에 대해서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없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지 않고 성립하는 지상권 유사의 권리이고, 그로 인하여 토지소유권이 사실상 영구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시효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사람은 민법상 지료증감청구권규정 등을 고려하여 일정 범위 내에서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사용의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형평에 부합한다.
한편, 자기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그 토지를 양도하면서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은 경우 그 분묘와 주변의 일정 면적에 대회여 사용권을 인정해주는 관습상의 분묘기지권을 이른바 ‘양도형 분묘기지권’으로 대법원이 인정해 왔다. 위 양도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과 다르게 지난 5월 27일 선고한 대법원판결에서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부터’ 땅 주인에게 토지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요약건대, 대법원은 헌법상의 재산권 보장의 원칙·민법상 소유권의 내용과 효력·통상적인 거래 관념을 고려하여 토지 소유자와 분묘기지권자의 이해관계를 종합한 결과 분묘기지권자는 토지의 소유자에게 2001년 1월 13일 이전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경우‘지료를 청구한 날로부터’ 토지사용료를 내야 하고, 양도형 분묘기지권의 경우에는‘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로부터’ 지료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고 정리한 것이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