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7-14 고난의 때에 '이걸'하세요 부활의 권능을 자주 체험합니다!
바울에겐 육체를 신뢰할 만한 요소들이 많았다. 출신 성분부터 그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다(5). 이방인들은 성인이 되어야만 할례를 받을 수 있었고(행 16:3), 이스마엘 족속들은 출생한 지 13일 만에 할례를 받을 수 었다. 하지만 바울은 이방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히브리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히브리인이요 순수 혈통 이스라엘 족속으로서 율법 규정(창 17:12, 레 12:3)에 따라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진정한 정통 유대인이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의 아들로 태어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베냐민은 야곱[이스라엘]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이 지파였다(삼상 9:1,2). 하만의 음모(陰謀)에서 이스라엘을 구한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였다. 또한 베냐민 지파는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다윗 왕조에 신실하게 충성했으며 바벨론 포로 때에는 성전 건축을 위해 유다와 레위 지파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느 11:7-9). 바울은 이런 베냐민 지파에 속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롬 11:1).
바울에게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5,6). 바리새파는 가장 엄격한 유대 종파로서 구약의 율법은 물론 구전이나 서기관이 해석한 전승[문화, 제도, 풍습 계승]을 연구하며 따르는 자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중앙 성전뿐만 아니라 회당장으로서 지방을 장악하고 있었다. 바울은 바리새인의 아들로 태어나(행 23:6) 바리새파에 입문한 자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존경받는 선생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했다(행 22:3).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데 일조했고(행 7:58),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는 전 지역에 그의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자였다(행 9:13,21). 그는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도유망한 최고의 바리새인이었다. 한편 '율법의 의'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명령들과 기준들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의'를 의미한다. 바울은 이런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다른 사람이 볼 때 흠이 없었던 자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1등이었다. 세상 것을 자랑했던 유대교 출신 거짓 교사들보다 탁월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와 순종은 아니었다. 어쨌든 바울이 밟은 코스는 유대교인 중에 최고 엘리트 코스였다. 바울의 인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이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런 스펙은 바울의 삶에 매우 큰 유익을 주었다(7).
그런데 그는 이런 것들을 해로 여겼고(7) 더 나아가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8). 평생 쌓아 올린 최고의 가치들을 이렇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 어떤 강력한 힘을 통해 큰 충격을 받지 않는 이상 이렇게 되긴 쉽지 않다. 무엇이 바울의 인생 가치를 바꿔버렸던 것일까? 무엇이 소중한 것을 배설물로 여겨 버릴 정도로 바울을 변화시킨 것인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 때문이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8) 바울이 지금까지 배운 율법과 지식은 그리스도와 비교 불가였다. 어떤 율법과 지식도 능가할 수 없었다. 게임이 되지 않았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듣도 보도 못한 지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고상하다[탁월하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그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7,8) 모든 것을 해로 여겨야겠다! 게에게 던지는 똥이나 음식물 쓰레기와 같은 배설물로 여기고 잃어버려야겠다!’ 간절히 원했다.
그리스도를 위하고(7,8), 그리스도를 얻고(8),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발견되기[있기]를 원했다(9). 그런데 이를 가장 많이 방해하는 요소가 자신을 지금까지 있게 만들어 준 스펙이었다. 자부심을 주었던 소중한 스펙이라도 그리스도를 위하고 얻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버리고 싶었다. 그에게 예수님은 목표로 삼아 세운 기둥 즉 푯대였고(14), 바울은 그만큼 그리스도에게 꽂혀(잡혀/미쳐) 있었고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갔다(12).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바울은 보화[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전 재산[인생 스펙; 출신, 바리새인, 열심, 율법의 의]을 팔아 그 밭을 산 사람과 같았다.
바울이 그리스도 앓이를 하자[그리스도에게 상사병이 걸리자]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 싶었다(10,11). 앓이를 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자신에게 손해가 와도 따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신 대속적 고난을 묵상하면서 감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실제적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내적, 외적인 고난을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싶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옛사람[스펙, 악감정]이 어떻게 해서든지 죽고 장사 되어(롬 6:5,6;고전 15:31;갈 2:20) 영광스러운 부활의 권능[생명]을 삶에서 얻고 싶었다. 부활의 권능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이나 그리스도인이 죽음 이후 재림 때 경험하게 될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믿는 자의 삶 가운데서 지금도 실제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바울은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적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기[알기]를 원했다. 이런 소망이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게 해줬다.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후 4:7-11]
바울은 죽음과 부활의 경험을 과거나 현재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무섭게 달려가는 중이었다(12). 뒤에 있는 것 즉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자랑]이나 사도로서 이루어 놓은 업적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리스도와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중이었다(13). 하나님이 하늘 단상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 믿음의 경주 후 받을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중이었다(14).
'달려가노라''(디오코)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목표물을 보고 사냥하고 경주하듯이 푯대 되신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배우고 닮아가고자 했다. 바울의 집중력은 매우 대단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믿는 자들에게 상을 준다.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 고전 3:13,14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고난 중에도 담대함을 버리지 않고 말씀대로 살면 상을 받는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썩지 아니할 승리자의 관; 25절]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 경기에서 우승자가 질주하는 것같이 고린도 교인들도 상을 얻겠다는 목적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목표만을 향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딤후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 그리스도께서 전해 주신 가르침과 복음을 따라 행할 때 면류관이 주어진다.
그가 이렇게 변화된 계기[turning point]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공회로 넘기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하고 아나니아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께 잡혔다. 그 후 그리스도를 잡으려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부활을 경험하고자 달려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경험하고 싶어서 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였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