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두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가 된 사람이 가장 먼저 원해야 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고 은혜 나누며 나는 주님의 참된 제자인가를 뒤돌아보는 은혜의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첫째 너희는 무엇을 원하느냐? 다음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었습니다. 이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40절에 말씀하신대로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와 한 사람은 밝히지 않고 있으나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요한’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 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주님이 이 두제자에게 물으신 ‘무엇을 구하느냐’라는 질문은 이 질문은 두 사람을 향해 그들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물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그분은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우리는 이 물음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이 물음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 안드레와 요한이 취한 태도를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두 제자의 답변을 보면 동문서답 같습니다. 그들은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그 이유는 예수님과 보다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좇는 목적이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기를 원했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39절 말씀에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함께’라는 뜻은 그들이 예수님이 머무시는 집에서 매우 긴밀한 교제를 나누었음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두 제자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자 요한은 자신의 인생에서 이와같이 주님을 만난 날을 시간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언제나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목적이 주님과 함께하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교제하고 함께 해야 하는데 축복에 집중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을 따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출세와 부귀영화입니까? ‘참된 제자라면 주님과 함께하는 것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고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변화된 제자의 삶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안드레가 가장 먼저 한 일에 대해 4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주님과 교제함으로 주님이 이제 누구인지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자신이 구원받자 마자 가장 먼저 자신의 동생 ‘시몬’을 찾아가 말하되 ‘메시야’를 만났다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받은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부모, 형제, 자매, 친척,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났다’와 ‘만나지 않았다’는 이제 그 이후의 삶에서 나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변화된 삶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글쎄요, 그 사람을 참된 제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주님과 교제하려고 말씀을 읽는 시간, 말씀을 붙잡고 눈물로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려고 몸부림 치는 삶이 있어야 하고 복음의 열정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는 ‘메시아’라고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물댄동산 성도 여러분~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