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장터에서 나서 자랐다. 장터는 폐쇄적인 촌락들과는 다른 세상이다. 상품교환의 장소일 뿐 아니라 의사소통의 장소이다. 그곳, 개성과 자유, 다양성과 변화성이 꿈틀대는 열린 공간을 지배하는 힘은 말(언어)에 있다! 고 나는 생각해왔다.
내가 사랑한 국민의 정부가 불가피하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강조할 때 내심 장터 문화의 어두운 면을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를 놓친 것은 게으른 탓이다. 다시 선거철을 맞으며, 말놀음이 전면화 되는 '선거'를 소재로 내가 속한 '시대'를 풍자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부디 '안거서공'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안 되길 빈다. 그런데 안거서공이라? 그것은 되도록 읽어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조금 긴 중편이 될 것이다.
내 몸이 그곳에 가장 먼저 닿은 부위는 발이나 눈, 코가 아니라 귀였다. 통학생들로 만원을 이룬 버스에서 인파에 치여 첫 발을 막 땅에 짚으려는 순간 귀가 먼저 그 바닥의 삶에 쓸려 들어간 것이다.
그 촌에서 도대체 무얼 먹고 키들은 그리도 큰지, 앞에 선 여학생 뒤꼭지만 쳐다보고 있다가 "밀래미 내려요"와 함께 우르르 떠밀렸을 때 안겨온 소리.
"아앗따, 아우님도 뭔 욕을 고렇게 떨이(싸구려)로 해버리시까이."
장바닥의 능청이 잘잘 흐르는 이 대사가 누구의 것인지를 나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뭔가 뼈 속에 묻힌 미감(美感)의 심층을 건드리는 것 같은 소리.
'아앗따' 때문이었다. 아앗따! 이 소리가 언제부터 내게 '쥐약'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현상이 왜 생기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앗따' 소리를 듣게 되면 곧장 머리가 혼미해진다. 열 살 언저리에 서 있는 건지 아니면 서른 살 어디쯤에서 헤매는 건지 모를 어떤 아득한 혼돈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리감초(그렇다. Lee감초! 이것이 그의 확고부동한 별호였다)의 '아앗따'가 귀에 닿는 순간 강렬한 풍경 하나가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이미지를 뒤범벅시켜 와락 달려드는 바람에 내가 막 당도한 곳이 달나라인지 아니면 한반도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눈에 힘까지 주어 두리번거려 봤지만 보이는 것은 없고, 당장에 앞을 막아서는 것이 장수처럼 우람한 버드나무 두 그루였다.
오, 그 버드나무 두 그루.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뒤안길에 숨어 있다가 예민한 데가 건드려지면 홀연히 나타나는, 그것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랫 장터와 윗 장터를 나누는 경계에 서서, 한 그루는 손들엇! 하는 동작으로, 또 한 그루는 만세를 부르는 동작으로 위엄 있게 서서 마주보던 추억의 나무였다.
나는 기억한다. 버드나무를 둘러싼 풍경과 거기에 담겨 있는 내 지난날의 희미한 실루엣들을-. 밀래미 장터가 제아무리 거칠고 모질어도 내 유년의 위용을 자랑하는 그 신성한 생물 한 쌍은 언제나 저 홀로 의구했다.
불갑산을 휘돌던 바람이 밀재를 넘어오면 그것이 어서 장터에 닿기를 기다렸다가 하늘에 머리를 감기는 듯이 고개를 휘엉청 늘어뜨리는 것이 그 나무가 보여주는 가장 매력적인 자태였는데, 그럴 때는 의좋은 자매와 같아서 한 그루는 서서, 또 한 그루는 쪼그려 앉아서 머리를 감는 느낌을 주었다.
밀래미에서도 유독 그 나무 위의 하늘이 파랬던 것은 바로 뒤켠의 주조장이 일본식 2층 목조건물에 붉은 색의 양철지붕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몰랐다. 그 옆집은 앉은뱅이 나상(羅氏의 일본말)이 눈깔사탕을 파는 하꼬방이었고, 맞은편 건물은 호랑이가시로 울타리를 친 김의원(金醫院)이었는데, 붉은 양철 지붕을 한 곳은 동네에서 주조장과 김의원 두 곳뿐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철든 우리에게는, 버드나무 위의 하늘이 항시 우물처럼 깊고 섬뜩하게 푸르다는 사실보다도 독립군 놀이를 할 때 일본군에게 처형당하던 장소라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내 나이 겨우 초등학교 문턱을 넘보던 무렵이다.
어느 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놀이 삼매경에 빠졌다가 일본군 헌병 역을 맡은 두 형들에게 온 동네 아이들이 붙들려 새끼줄에 묶인 채 합창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김에, 스스로들 감격을 일으켜 진짜로 울어버렸던(세상에!) 아주 황당한 경험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가 그 버드나무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나무에서 살고 있는 몇 마리인지도 모르는 까치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고, 장에서 만나려면 으레 약속장소를 그곳으로 잡아야 했던 이웃 동네 처녀들이 주인이라는 사람도, 또한 그 나무로부터 가장 가까운 주조장집 사장이나 하꼬방집 앉은뱅이가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밀래미가 공인하는 그 나무 자매의 보호자는 따로 있었다. 무숫날은 코빼기도 내놓지 않다가 장날이면 의연히 나타나곤 하는, 정확히 닷새 간격으로 하루씩,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땡볕이 드나 오로지 낡고 부서진 검정 우산 하나를 지붕으로 삼아 구두통처럼 생긴, 그러나 여느 구두통보다는 큰, 의자 겸용의 나무 궤짝을 깔고 앉아 고무신부터 장화?농구화?가죽구두에까지 이르는 온갖 신발을 짜깁는 수선쟁이였던 것이다.
나는 그 수선쟁이의 얼굴에 드리운 슬픈 그늘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말을 잊은 자의 눈빛이 퉁기는 광채에서 생겨난 그을음 같은 것이었다. 그는 행여 누가 던진 돌에 맞는 한이 있더라도 우는 법은 있어도 아프다고 소리를 내는 법은 없었다.
신발 수선을 끝냈을 때도 손가락을 한 개 펴면 십 원, 두 개 펴면 이십 원……, 안 주면 가슴만 퍽퍽 쳐댈 뿐인 벙어리였던 것이다. 밀래미 장터에서 살자면 인간의 뭇 기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할 언어능력! 그 요물 같은 것을 상실한 벙어리를 어른들은 생불(生佛)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