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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여순사건 사진. 최 목사는 이 사진을 여수증잉초등학교 운동장에 소개된 주민들을 '분류'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
종산국민학교 교정(현중앙초등학교)
여순사건당시 가장 많은 학살이 일어난 곳으로 1948년 10월 말에서 12월 초순까지 여수권역 전체에서 색출된 반란군과 부역자를 이 학교 교실에 10여명씩 그룹을 지어 포승줄로 묶은 후 수용하였다. 수용 후 약 2개월에 걸친 부역자 심사가 진행되었는데 당시 진압군의 책임자였던 5연대장 김종원 대위는 초법적인 살인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교정의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일본도로 목을 쳐서 죽인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죽은 자들은 교정에 임시로 땅을 파고 묻었는데 이곳에 묻은 사체를 후에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기록이나 증언이 없다. 둔덕이나 호명동 야산에서 학살된 사람들도 이곳 종산국민학교에서 수용된 사람들 중 적극적으로 부역한 사람으로 분류된 자들로 주로 밤시간에 트럭으로 싣고 가서 처형되었다.
“기독교인의 배타성, 많은 학살 자행했다”
최태육 목사, 토론회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배타성 비판
1948년 여순사건 사진. 최 목사는 이 사진을 여수증잉초등학교 운동장에 소개된 주민들을 '분류'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
넓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특별할 것이 없는 사진. 조금 특이한 점이라곤 무리를 가로 지르는 가운데 길과 군인들이다. 최태육 목사(예수님의 교회)는 이것을 ‘생사를 가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1948년 10월 여수서초등학교 운동장에 여수 남산동, 군자동 등 인근 주민들 천여 명이 집결된 모습이다. 이때 12연대 진압군은 우익계 학생과 기독교인들을 데리고, 좌익색출을 지시했고, 실제로 목사와 전도사에 의해 가려낸 사진 속 오른쪽 주민들 중 일부는 처형됐다.
당시 이승만 정부의 진압정책이 있었다고 하나, 이런 논리에 기독교인은 어떻게 가담하게 된 것일까? 무엇이 기독교인들을 학살에 가담하게 하였을까?
지난 19일(화) NCCK가 종교개혁50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토론회(미래를 향한 첫 걸음 ‘기억과 반성’)에 토론자였던 3명의 발제자(이화여대 양현혜 교수, 최태육 목사, 백석대 성백걸 교수)는 지난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자행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 알아보고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최태육 목사는 6.25전행 전후 민간인 학살에 가담한 기독교인들의 활동이 한국기독교가 반성해야 할 것 중 하나라며 발표했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연구방법을 차용했다며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지휘 명령한 기독교인들의 행동과 생각 속에는 냉전의 진영논리와 기독교의 배타적 이원론이 담겨져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사진 속의 ‘여순사건’(여수순천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당시 토벌사령관과 SIS(CIC 전신) 장교, 민간간인 분류작업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존재했다며, 특히 원용덕 토벌사령관에 대해 “원용덕은 남감리교 초기 교인이자 목사였던 원익상의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과학과 사회주의의 도전에 대해 대안적 신앙을 모색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최태육 목사. ⓒ에큐메니안 |
또한 최 목사는 기독교인들의 민간인 학살 가담 사례에 ‘국민보도연맹’을 들었는데, 보도연맹 창설을 주도했던 오제도 검사에 대해 “영락교회 청년면려회 지육부장 출신으로, 보도연맹원을 조인으로 규정하고 이를 회개시키기 위해 이들을 특정 집단으로 분류했다”고 전했다.
이어 “오제도는 죄의 고백과 회개라는 기독교적 신념을 토대로 보도연맹원을 특정 집단으로 뷴류한 것”이라며 “그는 평생 자신을 지배한 선악 관념으로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을 구별 짓고 자신이 속한 진영을 정의와 진실로, 공산진영을 독균으로 규정했다”고 오제도의 ‘죄론’에 대해 설명했다.
최태육 목사는 이런 오제도의 보도연맹원 분류 방침을 “마치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의 살해 논리와 분류 방침을 보는 듯하다”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을 긍정적 자아로, 자신의 진영논리에 동조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부정적 타자로 규정하는 ‘구별 짓기’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배타적 이원론은 부정적 타자를 공산독균, 나병, 적마로 비인간화 하였는데, 비인간화는 제거의 정당성을 위한 것”이라며 종교적 논리가 공산주의 적대를 근거로 한 냉전의 진영논리와 어떻게 동조됐는지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최태육 목사는 이런 배타적 이원론이 오늘날 기독교에도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며 “기독교는 뼛속 깊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배타성을 직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직면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정치, 사상, 신념이 다른 사람을 왜 존중하고 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