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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
영광스런 사인(인봉)
느헤미야 9:38, 10:31-39 (청지기주일)
I. 2024, 다시 부흥을 꿈꾼다 송구영신 세이 새벽기도회를 통해 에스라 느헤미야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이 시간에도 느헤 미야 말씀을 이어갑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0장 말씀을 통해서 “영광스런 사인, 영광스런 인봉”이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이후 지난 140년 동안 한국교회 중심 주제는 항상 부흥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부흥이라고 하면 성경적 의미와 상관없이 언제나 교회의 양적, 수적 성장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양적 성장이 없는 부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교회 부흥이란 말은 매우 사치스런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2023년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의 새 희망, 새 부흥이란 화두를 조심스럽게 끄집 어내 보려고 합니다. 송구영신예배를 통하여 “다시 일어나 희망을 재건하자” 이 말은 공중에 매달아 놓는 표어가 아니라 1년동안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가 나아가서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루어 내야 될 거룩한 주제입니다. 2023년에는 몇 가지 기념일들이 겹쳐있습니다. 첫 번째는 앞으로 10년 후 2033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지 20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금년은 D-day 10년 전이 됩니다. 전세계 영적지도자들이 앞으로 10년을 교회 회복 교회부흥 골든타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2023년은 한국초대교회 부흥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하디의 원산 대부흥 120주년 이 되는 해입니다. 하디의 부흥 운동의 물결이 마침내 1907년 평양대부흥으로 이어졌습니 다. 아마 금년 내내 하리영 선교사 즉 하디 얘기를 많이 듣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제가 늘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1주일 만에 6.25휴전 선언이 있었는데 만약 제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을까요? 싱거운 소리를 하곤 했습 니다. 금년은 한국전쟁 휴전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유대나라도 바벨론 포로 70년에 해방 이 되었듯이 한반도 평화, 종전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점점 어려워만 가고 꼬여만 가고 있습니다. 네 번째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금년은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있었던 빌리그래함 부흥전도집회 50주년이 되는 해입니 다. 아마 50주년 기념대회가 열릴 것입니다. 나아가 2023년 금년은 지난 3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엔데믹, 위드코로나로 들어서 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비상황에서 있었던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모임이 지극히 정상적인 현장예배, 현장모임 신앙이 회복되어야 할 때입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 역사상 가장 급성장한 기록을 가진 교회입니다. 가장 급성장한 교회가 급성장의 휴유증을 앓으며 가장 빨리 무너지고 있는 기록까지 남기고 있습니다. 이제 막 빨리 무너지다가 가장 빨리 성경적 부흥으로 가장 빨리 회복되는 제3의 기적을 만들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2023년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자고 부흥이란 말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내 봅니다. 언제나 위기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본질로 돌아오라는, 성경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름입니다. 오늘 본문은 죽었던 성전 제사가 살아나고 무너진 성벽이 수축하고 백성들이 각자 가정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있어야 될 것이 없었습니다. 예배가,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아직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이 다시 모여 말씀을 듣고 우리가 일어서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일으키겠습니다. 다시 성전의 제사를 살리겠습니 다. 에스라의 말씀을 듣고 한번 통곡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부흥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부흥을 위해 구체적인 결단을 하고 실천 목록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의 사인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영광스런 사인”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영광스런 사인에 동참하 고자 합니다. 한국교회 부흥을 위해 우리가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다시 헌신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는 사인입니다. II. 부흥의 물결이 차 올라야 사랑하는 여러분, 갯벌에 좌초된 배를 끌어올리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1번 많은 사람이 갯벌에 들어가 배를 번쩍 들어올린다. 2번 그러면 배보다 심각한 것은 우리의 발이 빠져 어렵다. 밖에서 밧줄로 배를 묶어 끌어낸다. 3번 갯벌에 빠진 배는 폐기처 분해야 한다. 1,2,3번에 정답이 무엇일까요? 정답이 없습니다. 갯뻘에 빠진 배는 가만히 두면 됩니다. 밀물이 들어와 물이 가득차 오르면 배는 저절로 부상합니다. 그러면 노를 저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좌초된 우리 사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한국교회 나아가 우리 가정들 갯뻘에 빠진 것처럼 꼼짝달싹할 수 없는 위기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밀물이 밀고 들어오면 됩니다. 성령의 물결이 들어오면 됩니다. 기도의 물결이, 은혜의 물결이 차오 르면 모든 공동체는 부상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시 오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느헤미야와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백성들은 큰 어려움과 온갖 방해를 이겨내고 단 52일만에 성벽재건 공사를 마쳤습니다. 성전도 재건되었고 성벽이 수축되고 열악하지만 각자의 집들 도 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착 그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없습니다. 예배가, 기도가, 말씀 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학사 에스라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듣고는 온 백성이 통곡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함께 하셨던 섬세한 역사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이 단 위로 뛰어 올라가 울부짖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자 외쳤을 때에 온 백성들이 떠나갈 듯이 아멘, 아멘을 외치며 찬양의 응답을 합니다. 조상들이 애굽에 들어가 노예가 되었을 때 어떻게 우리를 지키셨는지, 바로의 손에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광야 40년을 여행할 때 얼마나 따뜻하게 동행하셨는지를 알고 목 놓아 웁니 다. 자신들이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기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했는지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성전재건, 성벽재건 배후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있었음을 알았습 니다. 처절하게 회개합니다. 모든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성전 제사를 회복하고 앞장 서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는 사인식을 거행하는 장면이 오늘 느헤미야 10장의 내용입니다. 이 얘기가 어찌 유대나라의 이야기만이겠습니까? 우리 민족, 우리 역사에 하나님의 구체적 인 사랑과 따뜻한 돌봄이 없었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주변 강대국들에게 짓밟히고 있을 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 가련한 백성을 내 백성 성민으로 삼으리라! 일제강점기 교회를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마침내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6.25의 총성 속에서 배곯고 가난 하기만 할 때 이 나라를 살린 것은 피난길 기도요, 새벽의 통곡요 밤을 지새운 눈물의 기도였 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회복되고 조금 부강해지자 우리는 착각에 빠지고 교만해졌습니 다. 하나님이 안도와줘도 잘 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영적으로 망해가는 서구의 문화를 선진문화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온갖 성문화, 동성애를 조장하는 차별금지법까지 국회는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교회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삽니다. III. 도장(사인)의 의미 청소년시절 저의 꿈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을 선택할 무렵 하나님께서 저를 치셨습니다. 꼼짝없이 일반 대학교 입시원서 한 장 사지 못하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하나님 앞에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마음의 사인이 이처럼 커다란 능력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셨으면 그렇게 살아야 사는 겁니다. 그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옆에서 날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다른 마음, 다른 길을 갈 때 하나님은 다리를 꺾어서라도 손발을 묶어서라도 사는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로 돌아오도록 만드십니다. 오늘 본문 9장 마지막절 38절에 보면 말씀 듣고 회개하고 돌아온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을 문서로 만들어 사인을 합니다. 그리고 10장의 문이 열리면 사인한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들 이름들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인이 지켜지 도록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그 가문, 그 자손을 축복하십니다. 영원히 기억된 신앙 용사들의 사인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10:1~27에 총84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사인한 첫 번째 이름이 바로 느헤미야입 니다. 1-8절엔 제사장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9-13절엔 레위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14-27 절엔 백성들 그룹 그룹, 리더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사인에 빠진 자들은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가문에서 빠진 자들이 됩니다. 성경에서 인봉이란 도장을 찍어 묶어 두었다는 뜻입니다. 느헤미야 시대 사람들은 진흙에 이름을 새기고 불에 구워 도장을 찍습니다. 도장을 여러 개 다시 진흙으로 묶고 다시 굽습니 다. 도장 하나를 빼면 진흙이 깨지는 겁니다. 이처럼 약속은 견고하다는 겁니다.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서약이,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깨는 자는 공동체가 깨지는 겁니다. 하나님 과의 관계가 깨지는 겁니다.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언약을 할 때 양을 잡아 두 조각으로 가르고 그 가운데 길로 사람이 걸어갑니다. 제가 이 약속을 깨뜨리면 이 양 한 마리처럼 쪼개지고 찢어져도 좋다는 뜻입니다. 이만큼 하나님 앞에서의 사인은 귀한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죽어도 실천할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구원론에서 도장 찍는다는 성령의 인치심은 너무나 중요한 주제입니다. 성령께서 구원받은 내게 인을 치시며 “너는 내자녀다. 이제 너희 구원은 어떤 일이 있어도 깨지는 법이 없고 내가 보호할 것이다.” 인을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사인을 하셨으면 어떤 마귀 권세도, 하늘의 천사도 이 언약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구원의 완전보장이 인치심,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성령님이 인을 치시면 예수가 저절로 믿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주의 몸된 교회가 바로 나요 천국입니다. 교회를 함부로 대하거나 함부로 말하거나 함부로 헤칠 수가 없습니다. 내 몸처 럼 사랑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IV. 성수주일 서약 우리나라에 와 복음 전하던 선교사님들은 한국인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할 때 반드시 결단하고 지켜야 할 강령을 만들었습니다. 이것만은 서약하고 사인을 하고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라는 겁니다. 첫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 예배를 지켜라 성수주일 신앙입니다. 둘째는 조상은 신이 아니니 조상을 귀신으로 섬기는 조상제사를 끊어라. 셋째는 불신가족을 전도하여 가정 복음화를 이루라. 넷째는 농사를 하든 장사를 하든 남의집 머슴살이를 하든 반드시 십일조 신앙을 지켜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장로임직 강령이 아닙니다. 세례받고 예수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습니 다. 하는 최초의 가장 기본적인 서약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성벽 재건 후 일어난 부흥 서약에서도 10:31절 이하 안식일 신앙, 성수주 일을 하겠다고 사인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니 천지를 지으시고 나를 빚어 만드신 하나님의 시간 질서인 성수주일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약속한다는 겁니다. 히브리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데 생명 을 걸었습니다.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소중히 안식일 신앙을 지켰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예수님 부활 이후에 주일은 Lord’s day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내가 쓸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선택권이 내게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 바친 시간이요 잘라 놓은 시간입니다. 그 날은 세상의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고 봉사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 부활신앙으로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상처 입은 마음들이 치유받고 실패하고 넘어져 잃은 신앙과 기쁨을 되찾는 날입니다. 적자생존이란 신조어를 아십니까? 이긴 자가 살아남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적자 볼 줄 아는 사람, 손해 볼 줄 아는 사람이 이기더라는 겁니다. 주일을 하나님께 드리고 6일을 살때 손해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 서 보면 그 하루가 남아 있는 걸,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봉헌하고 살아가면 손해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것만 남습니다. 신동아건설 최순영 회장이 63빌딩을 세웠습니다. 말년에 그런 얘기를 했습 니다. 평생 기업을 일으켰는데 남은 것이 하나도 없더라. 그 당시 푼돈에 불과했는데 온누리교회와 할렐루야교회를 세웠더래요. 이 두 개만 남아 있더라.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니 63빌딩도 내 것이 아니더 래요. 신동아 건설도 내 것이 아니더래요. 어떤 기업도 내 손에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두 교회만 남아 있더랍니다. 요즘은 성수주일이 예배시간 오고 가는 시간 예배하는 시간까지 3시간쯤 됩니다. 그러나 안식일 신앙은 24시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교회에 서 봉사하고, 병원 심방을 하고, 신앙 잃은 낙심자들을 찾아 격려하고 목장식구들의 믿음을 점검하고 서로 격려하는데 사용하는게 진정한 성수주일입니다. 미국 러시모아 산엔 오늘의 미국을 만든 위대한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새겨 져 있습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George Washington),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떼오도르 루 즈벨트(Theodore Roosevelt)입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은 혁명 중에도 반드시 주일을 지켰습니다. 에이브 러햄 링컨도 남북전쟁 중에도 주일은 전쟁을 멈추고 모든 병사들과 함께 예 배를 드렸습니다. 떼오도르 루즈벨트도 내 인생의 최우선 순위는 주일날 예 배하는 것이다 외쳤습니다. 토머스 제퍼슨는 미국 독립선언서는 성경과 주 일 신앙 위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 예 배하는 신앙으로 미국을 건설한 얼굴들입니다. V. 십일조 봉헌 서약 두 번째 사인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0장 마지막 부분 32~39절에서 온전한 십일조 봉헌을 약속하고 사인합니다.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소홀히 섬긴 죄를 회개합니다. 주의 몸된 교회를 거짓되이 섬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했다는 겁니다. 다시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허약하게 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32절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33절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35절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39절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교회 교회 교회를 허약하게 버려두지 않겠다는 서약이었습니다. 무엇으로 섬기겠다는 겁니까? 35절 첫 열매를 36절 처음 난 것을 37절 십일조를, 산물의 십일조를 38절 십일조를 온전히 봉헌하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우리가 부자로 살던, 가난하게 살던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돈이란 놈은 맘몬 즉 돈 귀신이 되어 내 삶의 주인 자리를 놓고 하나님과 경쟁할만큼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인은 내 인생의 주인이 결코 돈이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됨을 고백하는 사인이 됩니다. 내 시간도, 내 몸도, 내 직장도, 사업도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십일조는 내 인생 사업터에 뿌리는 종자와 같습니다. 농부는 배가 고파도 종자를 먹지는 않습니다. 아무런 갈등없이 종자는 다시 논밭에 뿌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혜를 하나님께 다시 뿌리는 돌려드리는 종자가 십일조입니다. 지난 수천년 십일조는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아무런 갈등없이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구제나 선교처럼 공로가 아니고 신앙고백이니 자기 이름을 걸고 드리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나 말라기 등 성경적 교훈은 십일조 가지고 자기 임의대로 드리는 장난을 하지 말고 내가 섬기는 전, 내 맘과 몸담고 말씀 먹는 교회에 드리라는 겁니다. 십일조 봉헌에 의미를 잘 알고 물질이 가지는 영적의미를 가졌던 사람들이 미국 화폐를 만들며 처음부터 그들은 화폐에 이런 글을 새겨놓았습니다. In God we trust 우리는 돈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습니다.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정직한 십일조와 함께 나머지 90%를 사용할 때도 신앙 고백을 담아 정직하게 진실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겁니다. <결론> “영광스런 사인”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삼일운동 당시 33인의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사인을 하기 위해 태 화관에 모였습니다. 누가 먼저 사인을 할 것인가?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 었습니다. 사인을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자신이 먼저 사인을 하 겠다는 겁니다. 왜요? 이 사인의 순서는 곧 잡혀 죽는 순서임을 서로 잘 알 았기 때문입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제안을 합니다. 이 영광스런 사인은 가장 나이가 많은 큰 형님 손병희 선생이 사인하시고 앉은 순서를 따라 사인을 합시다.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서 다시는 무너지지 말자!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말자! 주의 전을 허약하게 만들지 말자!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자! 하나님 앞에 문서를 만들어 사인하자. 느헤미야가 먼저 사인을 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사람들 리더십들이 뒤따라 사인을 합니다. 그리고 백성의 두령들이 사인을 합니다. 오늘 청지기 주일을 통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이 교회를 허약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세상에 조롱거리로 만들지 않겠습니다. 사인하는 날이 오늘 청지기주일입니다. 주일 성수를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에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마음의 다짐을 하는 시간입니다. 끝으로 십일조 하나님의 몫을 온전히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드리겠습니다. 사인을 하는 날입니다. 오늘 이 거룩한 결단이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신앙이 크게 부상하고 가문이 빛나는 자손 대대에 주의 백성으로 이어지는 복에 복이 넘치는 귀한 결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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