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것은 똥보다 더러워 / 최종호
오래전 일이다. 50대 중반의 교무부장과 차를 번갈아 운전하며 출퇴근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지 꽤 되었지만 그때는 6학급의 산골 벽지학교였다. 한 시간 남짓 같이 오가다 보면 이런저런 학교 일이 화제가 된다. 어느 날 출근길에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장이 학교 돈을 떳떳하지 않게 쓰기에 못마땅하지만 근무평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신뢰가 쌓여서 속내를 내비쳐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지금이야 예산을 편성하고 출납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 투명하게 관리하지만 그때는 관리자와 관계가 좋고, 입이 무거운 교사에게 서무를 맡겨 다른 사람은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분은 비밀을 아무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어 그나마 나를 믿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한참이나 열을 내며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교장뿐만 아니라 서무를 맡은 자신에게도 화살이 돌아오자, “앞으로는 자네한테 말도 제대로 못하겠네!”라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분위기는 냉랭해지고 대화는 한참동안이나 끊겼다. 학교에 거의 도착할 무렵 괜히 말했다며 자신을 책망했다.
안 들었으면 몰라도 들은 이상 이 문제를 그냥 못들은 척할 수는 없었다. 교장은 말이 온화하고 순한 편이었다. 평소에 합리적이고 정직한 분이라 생각해서 실망감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이었다. 퇴근하면서도 어색하고 차가운 분위기는 이어졌다. 집에 가서도 고민은 계속되었고 생각이 깊어지자 잠도 오지 않았다. 내가 직접 본 일도 아니기에 얼굴을 보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편지를 써서 불편하고 끓어오르는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어릴 적 우리 부모님은 남의 것은 똥보다 더럽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방에 돈을 놓아두어도 백 원짜리 한 장 비지 않는다고 칭찬하며 정직을 강조하셨지요. 교직에 첫 발을 들이자, 공직자의 첫 번째 덕목은 부정한 돈을 멀리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촌지라는 것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길에 제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듣고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루 종일 고민했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렇게 편지로 대신 제 마음을 전합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꽤 오래 보관하다가 없애버려서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찢어버리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교장실 책상 위에 쓴 글을 놓아두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을 돌려보낸 후 본관 건물과 숙직실 사이에서 차를 닦고 있는데 좀 보자고 하여 교장실로 갔다.
편지를 읽고 너무나 괴롭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교직 8년 남짓 된 젊은 교사에게 훈계를 들었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관리자에 비하면 자신은 별 것 아니라는 말로 변명을 하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편지를 돌려주었다. 이후에 학교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모르지만 아마 경각심을 갖고 부정하게 쓰지는 않았으리라. 예전과 달리 지금은 교직원이 협의하여 예산을 계획하고 집행하기에 합리적이다. 더더욱 ‘회계 관리 시스템’으로 처리하기에 투명하다.
최근 공직자의 비리와 불공정한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 엘에이치(LH)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이용하여 부동산 투기를 하고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는 소식에 이어, 이름도 생소한 관평원(관세평가분류원을 줄여서 부름)의 직원들이 청사 이전을 구실로 ‘공무원 특별 공급’ 아파트를 분양 받아 많은 차익을 남겼다고 한다. 이들은 세종시에 청사가 지어진지 1년 반이 넘도록 옮기지 않고 있다. 아니 처음부터 갈 생각조차 없었다고 한다. 160억 원의 세금만 낭비한 꼴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받아 충분하다. 이런 사람들이 공복이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어디 이뿐인가? 힘 있는 조직의 고위직 공무원은 거액을 받고 재취업한다. 이른바 ‘전관예우’의 특혜를 받는다.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이 있어 자문 역할도 하겠지만 그동안 쌓아온 인맥을 활용하여 사건을 쉽게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통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큰돈을 거저 줄 리는 없지 않겠는가! 고위직 공무원을 지냈으면 웬만큼 잘 살 것이다. 퇴직 후 꼭 특혜를 받고 재취직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다지 훌륭하게 보이지 않는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신선한 소식을 들었다. 헌법 재판관으로 지냈던 분인데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을 사서 퇴직 후에 정원을 아름답게 만들며 지내고 있었다. 연못을 파고 주변에 꽃을 심었다. 또, 산에 나무를 심고 잘 가꾸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오라는 유혹이 있었으나 모두 뿌리쳤다고 한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을 텐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 분이었기에 더 귀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그분의 선한 인상이 아직도 짙게 남아있다. 세상에는 이런 분들이 많이 있는 데도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적어서 이러는 것일까?
첫댓글 대단하신 선배님! 생각을 실천에 옮기신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예전의 있었던 일을 끄집어내어 부끄럽기도 합니다. 경험한 것이 이뿐이니 어찌합니까? 이해해 주시어 고맙습니다.
그러게요. 교장 선생님은 대단하시네요.
저라면 그냥 모른 채 넘어갔을 겁니다.
교직계의 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 위안을 삼아야지요.
비단 교육계 뿐아니라 사회 곳곳이 다 그랬는데 이 방에 유난히 교원이 많다보니
하늘 보고 침 뱉는 이야기가 많네요.
어려운 시절을 잘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혈기왕성한 시절이니 용기와 정의감이 불탔겠지요.
그 시절에는 학교 돈이 교장 돈이었던 시절이라 거의 그러지 않았을까요? 말을 안해서 그렇지 저도 별일 다 있었어요. 투명해 지니 그런거 신경 안쓰고 참 좋네요.
그때 못 해 본 게 억울할 뿐입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