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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잡록-강희맹
◈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경순이요, 호는 사숙재 또는 운송거사라 하고, 혹은 국오라고도 일컫는데 인재의 아우다. 세종 때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는데 시와 문장에 깊이가 있고 자세하며, 온후하고 흥미가 진진하면서 매인 데가 없이 호탕하였다. 웅장 심오하고 우아 건실함은 사마자장(사마천으로 한 나라 때의 역사가)과 같고, 넓고 크고 뛰어나기는 한퇴지(한유) 와 같으며, 간결하고 예스러우면서 정밀하기는 유유주(유종원)와 같았고, 빼어나고 자유분방하기로는 여릉의 문충공(구양수)과 같아서 당시 선비들의 추앙을 받았다. 벼슬은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양공인데 세상에 간행된 문집이 있다.
◈ 사숙재가 조부 통정ㆍ아버지 완역재ㆍ형 인재의 시집을 편찬하였는데 이름을 《진산세고》라고 하였다. -본집
◈ 처음 과거에 올랐을 때에 의정 남지를 찾아뵈었더니 남지가 말하기를,
“갓 벼슬했을 때의 몸가짐이란 가장 어려운 것인데, 세가(대대로 녹을 받는 집안)의 자제는 더욱 어렵다. 가난하고 문벌이 없는 집 자제는 비록 탈선하는 일이 있어도 사람들이 그리 의심치 않으나, 세가의 자제는 그것[세가 자제]을 믿고 멋대로 놀며, 그것을 끼고 교만하다고 하여 사람들이 의심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법이다. 이제 자네는 젊은 나이에 장원으로 뽑혔으니 남의 의심을 받을 만한 한 가지 조건이요, 대대로 재상을 지낸 가문의 자손이니 남의 의심을 받을 만한 두 가지 조건이요, 파계가 임금의 친척[척리]에 관련되었으니 남의 의심을 살 세 가지 조건이다. 이제 세 가지 의심받을 조건을 가지고 있으니, 한 가지라도 삼가지 않는 일이 있으면 나쁜 소문에 더할 것인즉 도리어 문벌 없는 집 자제의 처지만 못할 것이다.”
하였다. -본집
◈ 오설을 지어 아들을 훈계하였는데,
1, 도자(도둑의 아들)
2, 담사(뱀을 잡아먹음)
3, 등산
4, 삼치
5, 요통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옛사람의 찌꺼기[학문]를 늘어놓았으나 너는 그 정수를 빨아 먹고, 나는 옛 사람의 가죽과 털을 말했으나 너는 그 진수를 캐도록 하라.”
하였다. -상동
◈ 한 암자를 마련하고 〈운당게서〉를 지었는데,
“기이한 식물이 있으니 그 이름은 참대[운당]. 훤히 뚫린 속에 굳센 마디, 빛깔은 푸른데 한 뿌리에서 혹은 2, 30대가 나오고 한 대에 4, 50가지를 치고, 한 가지에 수백 개의 잎사귀가 달린다. 성글기도 하고 촘촘하기도 하며, 곧기도 하고 비스듬하기도 한 것이 모든 초목을 초월하여 홀로 절묘한 생각을 얻었구나.”
하였다. -상동
◈ 〈춘순발칩도〉를 그리고 또 장편 고시를 지어 그 왼쪽에 썼는데,
하룻밤의 봄 우레 소리 겨울잠을 깨우니
용들이 강굽이에서 뿔을 드러내는구나
손을 뻗어 자주빛 용뿔을 살짝 벗기니
새싹들이 하나하나 껍질을 찢네
하였다. 상동
◈ 중추 신준이 호서(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을 때 사숙재가 병을 무릅쓰고 강가까지 전송하면서 〈춘강사〉 3편을 지어 그 뜻을 나타내었는데, 1은 〈춘강미미〉, 2는〈춘강담담〉이요, 3은 〈춘강맥맥〉이었다. -상동
◈ 채신보의 정사가 소산 아래 시냇물이 굽이진 위에 있는데, 끊어진 언덕이 앞은 평평하고 뒤는 높고 안쪽으로 약간 구부러진 것이 빗[소]을 누워놓은 형상이므로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인데, 사숙재가 기문을 지었다. -서달성의 시에,
산은 빗 모양이요 물은 활 같으니
기름진 땅과 단 샘이 도리어 반곡보다 낫도다
하였다. -상동
◈ 강진산이 〈노기편〉을 지었는데, 그 소서에 이르기를,
“무자년 봄에 사신으로 제안에 갔더니 몇 명의 기생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관서에 떨쳤다. 같이 간 한 재상이 한 기생을 사랑하였는데 신축년에 다시 사신으로 가서 보니, 그 몇 명의 기생들이 더러는 기적에서 빠져나갔고, 혹은 행수기생이 되었는데, 옛날의 아리따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무자년은 14년이나 지난 것이다. 늙어 추해짐이 오히려 이러하니, 그 아리따운 얼굴이란 잠깐 동안이요 오래 가지는 못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이에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본집
◈ 1은 도둑의 아들[도자]이다. 도둑질을 업으로 삼는 자가 있었는데, 아들에게 그 기술을 모조리 가르쳐 주었다. 아들은 그의 재주가 아비보다 낫다고 자부하였다. 아비와 아들이 어떤 부잣집에 이르러 아들을 보물이 있는 광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아들이 보물을 마구 꺼내고 있는데 아비가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가 버리고는 잡아당겨 주인이 알도록 하였다. 주인집에서는 도둑을 쫓아 나오다가 자물쇠가 그대로 잠겨 있는 것을 보고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광 속에 있는 아들은 나올 도리가 없었다. 손톱으로 긁어 늙은 쥐가 물건을 긁는 소리를 냈더니, 주인은 쥐가 광 속에 있다고 하면서 곧 등불을 밝히고 자물쇠를 열고 보려는 순간 아들은 뛰쳐나와 달아났다. 주인집에서 쫓아 오니까 아들은 못을 돌면서 돌을 던지고 달아났다. 쫓던 사람은 도둑이 물속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도망칠 수가 있었다. 돌을 던지는 꾀를 능히 낼 수 있었던 그 아들은 뒤에 마침내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 큰 도둑이 되었다. 〈도자설〉
◈ 2는 담사요, 3은 등산이다. 노나라 백성에 세 아들이 있었는데, 갑은 침착하고 성실하나 절름발이었고, 을은 기이한 것을 좋아하고 온전하였으며, 병은 경솔하나 날쌔었다. 하루는 서로 약속하고 태산 일관봉에 오르기로 하였는데, 을은 산 밑에 있었고 병은 산 중턱에 있었는데 해는 벌써 어두컴컴하였다. 갑은 쉬지 않고 천천히 걸어 바로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등산설〉
◈ 명주에 뱀을 먹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끝이 갈라진 나무 활과 조금 구부러진 막대기를 가지고 깊은 수풀 큰 골짜기로 들어가 뱀을 만나면 곧 끝이 갈라진 나무로 뱀의 목을 누르고, 구부러진 나무로 펴서 손으로 그 껍질을 벗겨 화살통에 간직했다가 소금에 절여 구워 먹었다. 오랫동안 먹으면 중독이 되어서 죽는 자가 많았다. 〈훈자설〉
◈ 내가 젊어서 산골 절에서 글을 읽고 있을 때, 서캐가 속옷에 끓어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불에다 쬐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속옷을 꾸려서 집으로 도로 보내었더니 집사람이 모지랑비로 쓸고 끓는 물에 빨고 완전히 씻었어도 비늘 같은 서캐 껍데기를 아직 바느질 자리에서 찾아낼 수가 있었다. -상동
◈ 내가 젊어서 절에서 독서할 때 집에서 오는 사환이 오랫동안 끊기어 서캐가 속옷에 들끓었는데 지금은 비단을 몸에 감게 되니, 일찍이 겪었던 그 괴로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이 수풀에 가득 쌓였을 때 나물을 빌어다 먹으면서도 요기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부엌의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널려 있으니, 일찍이 겪은 그 고생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헝클어진 머리에 이불도 못 덮고 주검처럼 누워서 풋잠을 자고, 대낮이 되도록 아침밥 지을 준비도 못하고 있었었지마는 지금은 주졸이 벽제 소리도 요란하게 앞길을 인도하게 되었으니, 또한 그때의 고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상동
◈ 내가 젊어서 학문에 뜻을 두었을 때 겨울에는 바지와 도포 두어 벌, 여름에는 거친 갈옷 몇 벌을 가지고 더위와 추위에 대비했을 뿐이니, 그 지극한 마음을 헤아려 항간의 이야기들은 그냥 흘려 버리지 말라. -상동
◈ 무릇 혈기가 있는 사람으로서 누구인들 남녀 사이의 욕심이 없으랴마는 만일 창녀를 생각하면 모두 아름다운 창녀를 바랄 것이요, 창녀의 아름다움에 모든 사람의 정이 모일 것이니, 마땅히 사갈(뱀과 전갈)과 같이 여겨서 피해야 할 것이다. -상동
◈ 남녀가 한 방에 있기를 자주하려 하면 음란의 해가 심하고, 음식을 맛있는 것만 늘 먹으려 하면 사치하고 마음이 헝클어지는 피해가 심하고, 부귀공명을 늘 누리려 하면 영욕의 피해가 심해진다. -상동
◈ 한 마음속의 작은 것들이 갈라져서 백 가지 생각이 되는 것이니, 그 생각이 득실을 가리게 되면 걱정과 기쁨이 생기고, 걱정과 기쁨이 생기면 은혜와 원한이 일게 되고, 은혜와 원한이 일게 되면 원수가 나타나고, 원수가 나타나면 원진을 좀먹고, 원진이 좀먹게 되면 오래 살 사람이 적으니라. -상동
◈ 대저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함이란 흡사 농부가 곡식을 대하는 것과 같다. 곡식을 길러 이루지 못하면 결국 굶어 죽는 환을 당할 것이요, 아들을 가르쳐 이룩함이 없으면 마침내 외롭고 위태로움의 화를 입을 것이다. 그 거름 주고 김매는 법과 가르치고 인도하는 방법에 있어 어찌 조금인들 마음을 늦출 수 있겠느냐. -상동
◈ 자제를 기를 때에 날마다 부형이 부귀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가 어찌 오늘의 비단옷의 가볍고 따뜻함이 곧 전세의 거칠고 변변치 못한 것의 증험이요, 오늘의 훌륭한 음식의 맛있음은 곧 전세의 나물밥의 쌓인 것임을 어찌 알겠는가? 그 근원을 모르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동상
◈ 덕을 닦아 나아가는 순서는 낮은 데로부터 높은 데로 올라가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힘을 믿고 스스로 중지하지 말 것이며 힘쓰기를 게을리하여 자포자기하지 말 것이다. -상동
◈ 4는 삼치인데, 우인(관리인)이 꿩을 잡는 데 한 번 덮쳐서 잡히는 것과 두 번 덮쳐서 잡히는 것이 있다. 대저 사람이 높이 친구와 어울리어 정에 경솔하여 색에 빠지고도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되면 엄한 아버지도 가르칠 수 없고, 착한 친구도 충고할 수가 없다. 스스로 화의 그물에 걸리고서도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 번 덮쳐 잡히지 않으면 두 번 덮쳐 잡히는 따위가 아니고 무엇이랴. 〈삼치설〉
◈ 5는 요통(오줌통)인데, 큰 시장 가운데 오줌통을 놓아두고 시장 사람들이 급할 때에 쓰게 하였다. 그러나 선비의 아들로서 몰래 여기에 오줌을 누는 자는 불결죄로 막았다. 시장 옆에 사는 선비가 변변치 못한 아들을 두었는데 늘 몰래 가서 오줌을 누곤 하였다. 그 아버지가 엄하게 금했으나 아들은 듣지 않고 날마다 가서 오줌을 누었다. 주인이 때리려 했으나 그 아버지가 무서워서 감히 때리지 못하였다. 얼마 아니하여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은 다시 가서 오줌을 누었는데, 갑자기 뒤통수에 바람 소리가 나더니 모진 매가 이마에 가해졌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까무러쳤다가 되살아났다. 〈훈자설〉
◈ 꿩의 성질이 음란한 것을 좋아하고 싸우기를 잘하며, 한 마리의 수놈이 여러 암놈을 거느리고 있다. 매년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에, 덩굴 숲이 우거진 곳에서 암놈이 다정하게 울면 수놈이 그 소리를 듣고 날개를 흔들면서 다가온다. 우인이 나뭇잎으로 가리개를 꾸며 놓고 수꿩을 잡아 미끼로 하여 날마다 수십 마리씩을 잡았다. 〈삼치설〉
◈ 쌍부도를 그려 이인문이 철원 군수로 나갈 때 보내면서 이르기를,
“왕교 부석의 옛일은 허황에 가까운 일이나 신하가 임금을 대함에 있어, 임금이 탄 수레 밑을 떠나 백리나 되는 곳에 나가면, 반드시 넋이 하룻저녁에도 아홉 번이나 가서 뵐 것을 생각해야 한다. 어찌 다만 초하루와 보름 아침에만 그치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이 뜻하는 것은 예스러운 것을 좋아하며 학식이 넓고 성품이 우아한 선비가 이것을 빌려서 그 신하로서 임금을 그리어 마지 않는 간곡한 충성의 뜻을 담은 것이로다.”
하고, 이에 시 한 편을 지어 쌍부도 밑에 써서 보내었다. 《진산세고》
◈ 광릉군 이극배가 3도를 순찰할 때 지어 보내준 시에,
임금이 나라일을 걱정하여 기미를 밝게 보았는데
상두 벗겨 창호를 막아 안위를 정하시니
공의 이번 감에 계책이 응당 많으리니
삼도의 날쌘 병사 그대 지휘 밑에 있도다
하였다. -상동
◈ 성종 을해년에 명 나라 황제가 야인 정벌을 도우라는 칙서를 보내 왔으므로 윤필상에게 명하여 가서 치게 하였다. 싸움의 수레가 길을 떠날 때에 조정에서 성서까지 나와서 전송하였고, 희맹이 〈출새사〉 다섯 편을 지어 전송하였다. -상동
◈ 남원 광한루 남쪽에 밤숲[률림]이 있는데, 사숙재의 시에 이르기를,
한 가닥 가을빛이 나무 끝에 비치니
연한 노랑 엷은 초록이 아롱거리네
바람이 금빛 모자[밤송이]에 불어 알밤이 쏟아지니
한가로운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로다
하였다. -상동
◈ 무위자의 성질이 벼룩을 싫어하지 아니하였다. 어느 날 밤 홀로 시름없이 앉아 있노라니, 벼룩들이 먼지속에서 나와 쏘아대었다. 독하기가 날카로운 송곳 같아서 무위자는 자꾸 긁어대느라고 손이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천하에 독한 벌레가 벼룩보다 더한 놈이 없구나, 요 속에 살면서 살을 물어대니 칼도 소용이 없고, 그물로 잡을 수도 없다. 여름날 삿자리에 누워 있으면 벼룩 떼가 공격을 하여도 무위자는 즐거운 모습으로 괴로워하는 일이 없었다. 〈기조설〉
◈ 무릇 모든 초목이나 꽃들을 주의해 보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면 손에 응하는 법이다. 그러하듯이 그림도 신묘한 한 폭의 그림은 신묘한 한 천기 그것이니, 때로 먹의 힘을 빌려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항상 천기와 함께 노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은 이름 있는 꽃을 좌우에 늘어놓고 아름답고 고운 것을 자랑하는 자와 크게 다를 것이 있을 것이다. 〈답 이중중 논화설〉
◈ 무릇, 사람의 기예는 비록 같으나 마음 쓰기는 다른 것이니, 군자는 기예에 뜻을 붙일 [우의] 뿐이요 소인은 기예에 뜻을 둘[류의] 뿐이다. 기예에 뜻을 두는 것은 재주를 팔아서 밥벌이를 하는 하찮은 공장이 하는 일이요, 기예에 뜻을 붙이는 것은 마음속으로 묘리를 탐구하는 고상한 선비가 하는 일이니, 어찌 거기에 유의하여 그 마음을 번거롭게 하랴. 〈논화설〉
◈ 갑ㆍ을 두 아이가 있었는데 함께 산에 나무하러 갔다. 갑은 겁쟁이어서 나무에 올라가지 못했는데 을은 날쌔기가 원숭이 같았다. 갑은 겨우 하루 밥 지을 나무를 했는데 을은 낭떠러지에 있는 1백 자나 되는 높은 소나무 위에 올라가서 나무를 하다가 발을 잘못 디뎌 땅에 떨어져 기절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업고 돌아와 입에다 물을 넣어 주었더니 한참만에 깨어났으나 두 팔이 부러지고 양쪽 눈을 다쳐서 외롭기가 한 나그네의 시체 같았다. 〈승목설〉
◈ 윗자리나 아랫자리의 일정한 지위가 있는 것이 아니요, 높든 낮든 정해 놓은 명예도 없는 것이다. 아래가 있으면 반드시 위가 있고, 낮은 것이 없으면 어찌 높은 것이 있으리오. 아래가 있음으로써 위가 되는 것이요,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높은 것은 낮은 것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요, 아래는 위에 오르는 계단이다. 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높은 자리가 낮은 자리로 바뀔 것이요, 윗자리를 즐기는 사람은 그 윗자리가 아랫자리가 될 것이다. -상동
◈ 금천에 만송강이 있으니 곧 사숙재가 전에 고향 송추에서 공부하던 곳이다. 나무꾼 도끼의 해를 입지 아니하였는데, 매양 공무를 마치고 물러나 쉴 때에 황관야복(벼슬 없는 사람의 의관)으로 오가고 거닐면서 시골 늙은이들과 농사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다. 〈금양잡영서〉
◈ 대저 세상의 형편이란 한낱 밭의 흙과 같은 것이요, 시속의 숭상함은 한낱 그 땅이 마르고 습한 것과 같은 것이다. 선비가 세상에 처하여 공명을 세우는 것은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진실로 처음에 실패하면 끝내 낮은 선비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금천 백성들이 곡식을 쌓아 두고 사는 사람이 없고 낭비가 심하였다. 그러므로 첫 겨울에 벌써 거두어들인 곡식이 다 떨어져 굶주리기를 가을 파리[추승]처럼 하였다. 《금양잡록》
◈ 가난한 백성들이 곡식을 아끼어 씨를 매우 성글게 뿌려 놓고는 모가 저절로 무성하기를 기다린다. 땅이 기름지면 한 알이 붙어서 한 포기에 많은 것은 20여 줄기가 되는데, 이런 것은 쌀도 적게 얻어지고 불완전하다. 그 이치를 말한다면 갈라져 나온 곁대가 기운을 받는 것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상동
◈ 사숙재가 그 형 인재와 더불어 젊어서부터 이름이 높았다. 서달성(서정거)이 인재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그대의 자유(소동파의 아우)이다.”
하였더니, 인재가 말하기를,
“형이 자첨(소동파)이 아닌데 아우가 어찌 자유가 되겠는가?”
하고, 서로 한바탕 웃었다. 달성이 사숙재를 인재의 집에서 처음 보았는데, 이때 나이가 겨우 15살이었으나 재주가 벌써 노련 성숙하였다. 《허백정집》에 나옴
◈ 좋은 땔감을 취하는 자는 나무에 오르기를 잘한다. 위에 있기를 좋아하고 아래를 싫어하며, 높은 것을 탐하고 낮은 것을 언짢아하며 일분이 높으면 그만큼 위험함을 모르는 것이다. 땅에서 멀리 떨어지면 몸은 도리어 낮아지는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남에게 자랑하는 것은 또한 어리석은 짓이 아니냐. 〈승목설〉
◈ 사숙재는 학문하는 여가에 의술을 겸하여 익혔다. 부모가 병이 났을 때에는 여러 처방을 두루 찾아보고 수수 약을 지어 드렸다. 〈행장〉
◈ 고금의 일을 담론할 때에는 톱밥이 술술 흘러 내리는 것 같아서 종일토록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아니하였다. -상동
◈ 학문을 함에 있어 고대의 전적을 연구하고 경사를 통달하고, 백가의 말을 모두 찾아 남김없이 밝히어 그 논의가 슬기롭고 뛰어나 듣는 이로 하여금 열심히 듣고 싫증이 나지 않게 하였다. 〈집발〉
◈ 사숙재의 문장은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법식에 그 근본이 있는 것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통정이 문장으로써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었고,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 대민공이 그 아름다움을 뒤이었으며, 선생과 그의 형이 함께 세상에 이름을 떨쳤으니, 그 왕성함이 소가(소동파의 집안)의 풍도가 있었다. 〈집서〉
◈ 공의 시와 문장이 마치 부자집 포백(무명과 비단)이나 곡식과 같고, 물과 불에도 아무렇지 않은 상자들이 곳간에 넘치는 것과 같다. 써도 다함이 없고, 취하여도 모자라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아득바득해도 먹고 살기에 겨를이 없으니, 어찌 자기의 몸을 윤택하게 하여 빛을 발하게 할 수가 있겠는가. -상동
◈ 《금양잡록》 한 편을 보면 모든 곡식의 품질과 모양의 구별, 씨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 작업의 순서 등이 모두 사리에 들어맞는다. 〈제풍변〉, 〈농담농구〉 등 편은 분별하여 기술함이 매우 자세하여 농가의 수고하는 모습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상동
◈ 사숙재의 시문에 대편의 너그럽고 조용함과 소편의 묘하고 아름다움은 장소와 통하고 한위를 능가한다. -상동
◈ 어떤 이가 포식하고 차를 마시는 사람을 보고 말하기를,
“이 물건[차]은 원진을 손상하는 것이니 먹어서는 안 된다.”
하여도, 그 사람이 웃으면서 차 마시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자기 말에 따르지 않는 것을 노엽게 생각하여 동네에서 떠들어대기를,
“아무개는 장차 병이 날 것이다. 사람은 철을 따라 몸조심을 해야 기운이 더욱 맑고 튼튼해지는 법인데.”
하였다. 이것은 차의 성질이 비리고 더러움을 말끔히 씻어버리는 것이어서, 허한 데는 적당하지 않고 포식한 데에 적당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탓이다. 《사숙재설》
◈ 태종이 송경에 행차하였을 때, 따라 간 조정의 선비들이 모두 민가에 머물었는데, 어떤 조정 선비 두 사람이 한집에 있게 되었다. 을은 따라간 창녀를 데리고 있었고, 갑은 형수라고 부르는 여자를 데리고 있었는데, 마음속에 그 생각이 나서 밤에 술자리를 벌이고 세 사람이 함께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갑이 말하기를,
“긴 밤을 지키려면 장난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새우기가 곤란하지 않겠는가. 내가 먼저 한 장난을 하겠네.”
하고는 이불 넣는 푸대 속으로 들어간 다음 을로 하여금 끈으로 봉해서 묶어 가지고 방안을 빙빙 끌고 돌아다니게 하였다. 한참 그리하다가 끈을 풀어 달라고 해서 나와서 을에게 말하기를,
“푸대 속이 굉장히 갑갑했네, 그대도 그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번에는 을이 푸대 속으로 들어가니 갑은 끌어다가 외딴 데 놓아 두고 촛불 뒤에서 창녀와 서로 즐기었다. 주인 노파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이튿날 을에게 말하기를,
“어제 장난은 심히 정상적이 아니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 소문이 잘못 퍼지어 을은 한평생 출세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지냈다. 《사숙재집》
◈
벼슬 바다 넓고 아득하여
건너려 해도 나루가 없구나
규조(임금께 뵐 때 쓰던 구슬의 끈)가 닻줄이 되고
잠홀(벼슬아치가 관에 꽂는 비녀와 홀)이 돛대 되리니
저 만 가지 곡식을 실으면
누군들 뱃길에 오르지 못하랴마는
뜨고 가라앉음이 운수에 달렸으니
잘 건너고 못 건넘은 정해진 것 아니네
-동상
◈ 서울 인왕산에 백운동이 있는데 중추 이염의가 예부터 사는 곳이다. 사숙재의 시가 있는데,
백운동 속에는 흰구름이 그늘 짓는데
백운동 밖에는 붉은 티끌이 깊도다
한 가닥 길이 꼬불꼬불 구름속으로 들어가면
문득 온 장안이 숲속에 싸인 듯하구나
하였다. 《동국여지승람》
◈ 가야동 속은 성난 물결이 바람을 뿜는데 그 소리가 싸움터에 말달리는 소리 같고, 사숙재가 그 물을 이름 지어 음풍뢰라 하고, 이어 시를 지었는데,
쏟아져 흐르는 물이 구슬 튀듯 급하고
놀란 물결이 주름진 닥나무처럼 깊구나
아무리 보아도 싫지 않은 풍경인데
소 밑에는 용이 있어 읊조리네
하였다. -동상
◈ 남원부 남쪽에 대모천이 있다. 사숙재의 시가 있는데,
물 맑아 돌밑까지 한눈에 보이고
할머니의 이름 전하여 몇천 년이던가
구름 변하여 못에 머물었으니
오뉴월 더운 날에 젖같이 달고도 깨끗하구나
하였다. -동상
◈ 가야산 동구에 큰 바위 하나가 있는데, 매끄럽기가 갈아 놓은 것 같다. 사숙재가 절구 한 수를 지어 그 바위 위에 썼는데,
장하도다. 깎아지른 바위 천 길인데
일만 구멍에서 구름이 피어나서 서늘코나
어리석고 완고함을 끝내 깨닫지 못한 채
우뚝 서서 창창하기만 하구나
하였다. 그래서 이름은 자필암이라 하였다. -동상
◈ 의정 한확은 늘 사람들이 창기의 집에서 자는 것을 미워하였다. 이극감 공이 일찍이 의정의 서장관이 되어 따라갔었는데, 도중에서 묻기를,
“어른께서는 집에 첩을 몇씩 두고 있으면서 특별히 다른 사람이 창기의 집에서 자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한확은 웃으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그 때문에 화를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였다. 옛날에 한 중신이 외방에 장군으로 나가서 무뢰한 한 사람을 데려다가 막하로 삼자 사람들이 그것을 이상히 여겼다.
얼마 안 되어서 무뢰한이 가벼운 군율을 범하였는데 군리(군리)가 심문하고 곧 주장[주패]에게 품의(품의)하였더니, 주장이 판결하기를,
“극형에 처하라.”
하였다. 군리가 물러나가 방문 밖에 서서 혹시 다른 분부라도 있을까 하여 기다리고 있었더니, 주장이 장막 안에서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원망하는 말이,
“에이! 고약한 저 나쁜 젊은 놈이 나의 사랑하는 계집을 훔쳤지.”
하였다. 이것으로써 군리는 그 전에 혐의가 있었음을 알았다. -상동
◈ 옥도 갈지 않으면 그릇을 이룰 수 없고, 쇠도 불리지 않으면 검을 만들 수 없다. 옥의 용도는 그릇을 만드는 데에 있으므로 반드시 모래와 돌로 갈아야 하며, 쇠의 용도는 검을 만드는 데에 있으므로 반드시 용광로와 숯으로 녹여야 한다. 실로 모래나 돌이 용광로와 숯의 추함을 싫어하여 상대하기를 부끄러이 여긴다면 옥은 옥돌로 흙에 묻혀 있을 뿐이요, 쇠는 광석에 숨어 있을 뿐이다. 어찌 능히 호련(곡식을 담아 종묘에 바치는 예기)이 되고 용천검으로 만들어져 희한한 보배가 될 수 있겠는가. 〈해조설〉
◈ 바위에는 이끼가 끼어 윤기가 나고 여울은 잔잔히 흘러, 안개 낀 아침과 달뜨는 저녁의 기상이 천태만상이로다. 〈석가산찬〉
◈ 효도하고 우애하는 천성이어서 돌아가신 아버지 대민공과 형 인재가 앓을 적에는 손수 약을 지어 아침저녁으로 받들었고 심지어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밤새도록 눈을 붙이지 않기까지 하였다. 〈비서〉
◈ 〈앵무새를 비웃음[조앵무]〉이라는 시가 있는데,
사슬에 매여 조롱 속에 갇히어
높은 산 두루 다니다가 대가로 들어 왔으나
어찌 강호의 한낱 갈매기가
달밝은 밤에 마음대로 맑은 모래에 자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으니, 은연중 장자의 귀녕예미(거북이 차라리 꼬리를 끈다는 말로 남에게 구속 받는 영화보다는 마음 편한 가난함을 바란다는 뜻)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시격》
◈ 강희맹이 말하기를,
“송 나라 조정의 붕당의 환난은 구래공(송나라 때 정승)이 인물을 공격한 데서 일어났다. 그때 끼친 폐단은 비록 정주라도 붕당에서 모면하지 못하였다. 지금 보건대, 나이 젊은 신진기예 선비들이 날마다 인물을 공격하는 것을 일로 삼고 있으니 그 폐단이 장차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필원잡기》
◈ 강진산의 시문은 법식에 들어맞고 우아하여 천기가 저절로 무르익어 있어 이조의 여러 선비들 중에 가장 맑고 깨끗한 시문을 지은 사람이다. 《용재총화》
◈ 남원부에 광한루가 있고, 그 밑에 오작교가 있는데, 그 고을의 뛰어난 경치를 이루고 있다. 사숙재의,
구불구불한 붉은 난간을 견우가 지나가다
라는 시구가 있다. 《동국여지승람》
◈ 씨 뿌리는 법 10가지가 있는데, 곡식 종자의 준비ㆍ땅갈기ㆍ씨뿌리기ㆍ볍씨 뿌리기ㆍ기장과 조씨 뿌리기ㆍ피씨 뿌리기ㆍ콩팥ㆍ녹두씨 뿌리기ㆍ밀보리씨 뿌리기ㆍ깨씨 뿌리기ㆍ메밀씨 뿌리기 등등이다.
◈ 문답이 다섯이 있는데, 〈농가〉, 〈농담〉, 〈농자대〉 〈제풍변〉, 〈종곡의〉 등이다.
◈ 농사 노래[농구] 14장이 있는데,
- 〈우양약〉
- 〈권로〉
- 〈영양(햇볕 맞이)〉
- 〈제서(호미질 하기)〉
- 〈토초(김매기)〉
- 〈과농(농사 자랑)〉
- 〈상권(서로 권하기)〉
- 〈대엽(들점심 기다리기)〉
- 〈구복(배를 두들김)〉
- 〈망추(가을을 바라봄)〉
- 〈경장무(긴 이랑을 끝마침)〉
- 〈수계명(\물닭 울음)〉
- 〈일함산(해가 짐)〉
- 〈탁족(발을 씻음)〉 등등이다. 《금양잡록(금양잡록)》
◈ 농가의 모내기 하는 법 : 논을 10등분하여 1분은 못자리로 하고 나머지 9분은 모를 심는 데 이용한다. 모의 길이는 한 줌 이상이 되면 옮겨 심어도 좋다. 한 포기마다 3, 4개의 모를 넘지 아니해야 한다.
◈ 볍씨 뿌리는 법 : 논을 다 갈아 놓고 씨를 뿌리되 논에 있는 물을 골고루 다 뽑은 뒤에 뿌리고 나서 끙게로써 씨에 흙이 덮이게 하고 물을 끌어댄 다음 새를 쫓으며, 모에 잎이 셋이 나면 손으로 김을 매어 준다. 끙게 [판로]는 속칭 번지라고 한다.
◈ 농가에서는 날이 가물어 모가 마른다고 해서 호미질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옛말에, “호미 끝에 1백 포기의 벼가 있다.” 하였으며, 노련한 농부에게는 또, “모는 사람의 공을 안다.”는 말이 있다.
◈ 농가에서 오는 해에 잘 될 곡식의 종류를 알고자 할 제는 아홉 가지 곡식의 씨를 각각 무명 주머니에 넣어서 토굴 속에 묻어 두었다가 뒤에 파내 보고 싹이 가장 많이 나온 곡식이 그 해에 잘 될 곡식이라고 한다.
◈ 콩을 심는 법 : 기름진 밭에는 드문드문 심고, 땅이 메마른 밭에는 촘촘히 심어야 한다.
◈ 보리 심는 법 : 미리 곡식을 거두어들이기 전에 자루가 긴 큰 낫으로 풀이 누렇게 되기 전에 베어 밭두렁에 쌓아 두었다가 수곡이 끝나면, 그 짚을 밭 위에 두껍게 깔아 놓고 불을 지른 뒤에 씨를 뿌린다.
◈ 거친 땅을 시험해 보는 법 : 한 자 깊이의 흙을 파서 그 흙의 맛을 보아 싱거운 것은 상이요, 싱겁지도 짜지도 않은 것은 그 다음이고, 짠 것은 하이다.
◈ 삼 심는 법 : 얼음이 풀린 뒤에 좋은 밭을 골라서 갈되 종으로 세 번 갈며 횡으로 세 번 갈고 씨를 뿌린 뒤에는 끙게질을 하여 씨에 흙을 덮는다. 삼이 3치쯤 자랐을 때 풀이 있으면 김을 매어 준다.
◈ 곡식 품종 중에 당서(당기장) 라는 것이 있으니 본디 이름은 촉서다. 그 중에 맹촉서라는 것이 있는데, 쌀에 가스랑이가 없고 익으면 맹은 길어지고 가스랑이는 빨갛게 된다.
◈ 곡물의 씨는 흙기운을 먼저 받고 뒤에 받는 것으로써 일찍 익고 늦게 익는 차이가 생기고, 손해가 되거나 이익이 되므로 심기를 마땅히 얼음이 녹고 땅이 풀린 뒤에 하여야 한다.
◈ 땅을 가는 법 : 거친 땅을 개간할 적에는 첫 번 갈이는 깊이 해야 하고 두 번째 갈이는 옅게 하는 것이 좋다.
◈ 벼에는 종류가 매우 많은데 특별히 올벼[조도] 한 가지가 있다. 산도(메벼)라고도 하는데, 높은 땅에 적당하다. 또 빙절도라는 것이 있는데 가스랑이가 없고 누렁 빛깔에 껍질이 얇으며, 그 성질이 매우 올되고 귀가 몹시 총명하다. 쌀은 희고 연하며, 기름지고 물이 마르지 않는 논에 잘 된다. 얼음이 풀리자 곧 심으므로 빙절도라고 한다.
◈ 무릇 곡식의 이삭이 맨 처음 필 때는 배아가 껍질 속에 물이 되어 있는 것인데, 거기에 햇볕이 내리쬐고 이슬이 적셔 주면 점점 굳어져서 쌀이 되는 것이다. 동풍은 말리기를 잘하는데 배아 껍질 속의 물이 바람을 만나면 말라서 없어진다.
◈ 습기가 많고 기름진 땅은 일찍 심는 것이 좋고, 마르고 굳은 땅은 늦게 심는 것이 좋다. 습하고 기름진 땅은 땅 힘이 왕성하여 식물이 일찍 자라고, 마르고 굳은 땅은 땅 기운이 느리고 식물이 더디 자란다. 마른 땅이냐 습한 땅이냐를 가려서 일찍 심을 것인가 늦게 심을 것이냐를 살피지 않고 곡식을 심으면, 땅과 곡식의 성질이 서로 맞지 않아 모가 제대로 자라지를 못한다.
◈ 밀보리는 익는 족족 베어야 한다. 농가의 소망이 보리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옛말에도, “보리 베기는 불을 다스리는 것같이 하라.”
하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마침내 재앙을 만나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금양잡록》
◈ 우리나라의 지형이 동쪽과 남쪽은 바다에 닿아 있다. 서쪽은 넓고 멀며 북쪽에는 높고 험한 산맥이 동쪽으로 터져 그 세력을 덮고 있다. 동쪽과 북쪽은 모두 산이요, 서쪽과 남쪽은 비어 있는데 바람이 바다를 지나서 오는 것은 따뜻하므로 구름과 비가 되어 식물을 자라게 하고, 산을 지나서 오는 것은 차므로 온화하지 못하여 물질을 손상케 한다. 무엇으로써 그 까닭을 알겠는가? 영동 백성이 농사 때에 동풍을 기다리는 것은 그 바람이 산을 지나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풍변〉
◈ 벼슬살이에 3품이 있으니, 마음을 인의에 두고 몸에는 도덕을 지니고, 풍속을 선량케 하기에 힘을 다하며, 백성을 교화함에 달통하여 내 한 몸의 진퇴를 세상 형편에 따라 가벼이도 하고 무거이도 하는 사람은 벼슬살이로서 상품이요, 도덕은 비록 성현에 미흡하나 문무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외적의 업신여김을 막으며, 나아가서 어짊을 감추지 않고 절개를 지키어 굽히지 않는 사람은 그다음 가는 것이며, 공손과 근검을 스스로 헤아리고 기강을 잘 지키고 충실히 일하면서 날마다 받을 것이나 계산하는 자는 벼슬아치로서 하치에 속하는 것이다. 〈농자대〉
◈ 옛 선비가 이르기를,
“동쪽과 북쪽은 양방이요, 서쪽과 남쪽은 음방이다. 양이 부르는 데 음이 호응하면 비가 내리고, 음이 부를 제 양이 호응하지 않으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람이 동쪽이나 북쪽에서 불어오면 비가 오고, 바람이 서쪽이나 남쪽에서 불어오면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런데 장안은 서풍에 비가 오니 산천과 지역이 다르면 기후도 같지 아니한 것이니, 그 사이에 어찌 변역이 없을 것이며, 그것이 또한 상리가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매양 남풍에 큰비가 오고, 서풍이 불면 날씨가 오래 개는 것은 또한 얼른 알지 못할 일이라 하겠다.”
하였다. 〈제풍변〉
◈ 벼슬살이에 속박되고 풍진에 눈이 어두워서 가까운 강호에 마음은 가지만 몸은 남아 있다. -채자휴에게 보낸 편지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