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 언제 끝날 것인가?
손 원
엊 저녁 아내와 함께 집 근처 근린공원에서 저녁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의 절친한 친구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와 아내가 받으려는 찰나에 끊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약 한달 간 만나지 못했지만 수시로 전화하는 사이기에 버튼을 잘못 눌렀겠지 하며 아내는 이내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공원가장자리로 난 산책길을 따라 아내는 걷고 나는 가볍게 조깅을 했다. 하루종일 집안에만 있다가 공원에 나오면 밤공기가 시원해서 좋다. 아파트 숲속의 공원이지만 평소에도 밤이 되면 비교적 한적하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 감염우려로 밤에 공원을 찾아 온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한 시간 정도 공원길을 걷더라도 마주치는 사람은 손꼽을 정도이기에 감염걱정 없이 운동을 즐길 수 있다. 공원을 세바퀴 돌고 아내를 뒤따르자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났네, 아까 그 전화 현성이 엄마 전화였어. 방금 다른 친구로 부터 연락이 왔는데 현성이 아빠가 돌아가셨데" 순간 나도 멍해 졌다. "왜? 그 양반 평소 건강했잖아?" "지현이 엄마가 현성이 엄마 전화를 방금 받았는데 전화상으로는 곤란하고 그간 일이 있었다고만 이야기 하더래"
평소 건강했던 지인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에 마음이 찡했지만 평소대로 운동을 마무리했다.
현성이내는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까지 같은 아파트에서 14년을 이웃으로 지내 온 사이다. 남편들은 바쁜 직장관계로 그저 평범한 이웃이었으나 전업주부인 부인내들은 그야말로 이웃사촌처럼 지냈다. 아내와 현성이네, 지현이네는 삼총사로서 지금까지 매달 모임을 갖는 사이다. 아내가 가끔 그들에 대해 언급을 했기에 나는 두 집안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태껏 그들 내외분들과 밥 한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마음 뿐이었다.
현성이내는 나와 종씨로 은행원이었다. 부부가 동갑으로 나 보다 두살 아래다. 국내 유수의 S은행에서 평생을 근무했고 지난 해 년말 지역본부장을 끝으로 정년퇴임 했다.
아들 둘 모두를 결혼 시켰고 자신도 퇴직을 하여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비교적 성공한 삶이이었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어 남부러울 것 없어 보였다. 이웃들 모두가 그렇게 여겼는데 갑자기 그 집안에 닥친 불행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내일 문상을 가기로 했지만 나와 아내는 그 분의 사인이 못내 궁금했기에 온갖 추측을 할 뿐이었다. 평소 지병을 이야기 한 적이 없었기에 혹시 교통사고를 당하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심장마비 정도로 추측이 갈 뿐이었다.
환갑을 앞둔 후덕한 이웃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퇴직 3년차인 나와 비슷한 처지라고 여겨 온 이웃의 불행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튿 날 아침에 지현이 엄마로 부터 전화가 왔다. 부부 동반으로 문상을 가보자고 했다. 시내지만 자동차로 약 50분 거리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오후 2시에 만나자고 했다.
지금은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고 있어 누구든지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금 15일간 사회적거리 두기를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종교행사, 지역축제, 문화체육행사를 금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예식을 치루는 일도 없고 장례도 직계정도만 참석한다. 특히 코로나 감염자의 장례식일 경우 가족일지라도 바이러스검사 결과 양성이면 참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음성판정을 받은 가족 한 두 명이 화장장에 갈 수 있고 승용차에 대기하다가 유골함을 받아 온다고 한다. 다행히도 고인은 사인이 전염병이 아닌 것 같았다.
아내의 세 친구 모두 지금 손자를 돌보고 있다. 현성이네도 돌을 넘긴 손자를 부부가 돌보아 왔다, 우리 부부와 지현이네는 4개월 된 신생아를 돌보고 있어 전염병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절친이 당한 남편상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장례식장을 갔다.
오후 2시 양 부부가 만나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고인의 영정사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상주로 아들의 친구인 장남 현성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차남은 뉴질랜드에 있어 올 수가 없다고 했다. 코로나사태로 입국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은 넓었지만 가까운 친척 10여명이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평생을 몸 담은 은행의 화환은 평소와 다름없이 복도를 꽉 채우고 있었다. 경황이 없는 데도 현성이 엄마는 우리 테이블에 와서 그간의 투병경위를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절친한 친구 사이지만 남편의 뜻에 따라 지병을 수년 간 감추어 왔다고 했다. 아마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직장에서 능력을 마음 껏 발휘 해 보고 싶은 강한 의욕이 앞섰기에 그랬을 것이다.
5년 전에 혈액암 진단을 받고 암암리에 치료를 해 왔다고 했다. 직장생활도 별 지장 없이 해 왔기에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암 발병 1년 만에 본부장 승진을 했고 2년 간 직책을 무리 없이 수행하였고, 퇴직 2년을 앞두고 스스로 휴직을 했다고 한다. 휴직 기간 중에도 병을 가졌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싸이클, 테니스 등 스포츠는 물론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기도하여 여유롭게 일상을 즐겼을 정도였다. 가끔 자신의 승용차로 부인을 비롯한 3총사를 태워 가까운 곳 운전서비스 까지 하곤 했다.
혈액암 발병 후 만 5년을 남몰래 보냈고 완치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금년 3월 9일이 혈액암 진단을 받은 지 5년을 경과한 뜻 깊은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병이 완치 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마지막 건강관리를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사망 5일 전 몸에 이상을 느꼈으나 병원가는 것을 미루고 감기약 을 복용했다고 했다. 병원은 코로나19가 진정된 시기에 가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틀 쯤 약을 복용해도 차도가 없어 대학병원의 주치의를 찾아 검진을 한 결과 걷잡을 수 없이 병세가 악화 된 상태라고 했다. 심폐소생술까지 했지만 결국 입원 이틀만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고인의 부부는 무서운 암을 이겨냈다고 축배를 드는 순간 마지막 찾아 온 한번의 고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했다. 결국 코로나19를 잠시 피하려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때 누구든지 웬만한 응급상황이 아니고는 병원가기를 미루고 있을 것이다. 병원가기가 무섭고 실제로 병원 특히 응급실 감염사례도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웬만한 질환은 참고 병원진료를 미루고 있다.
나 또한 한달 전 대학병원 응급실을 갖다가 맞은 편 병상에 있던 분이 코로나19 확진을 받는 바람에 놀란 가슴을 쓰러내려야 했다. 응급실 내 지척의 거리에서 적어도 10시간을 있었으니 감염걱정은 당연했다.
확진자가 생기자 응급실은 바로 폐쇄되었고 응급실 환자는 입원 또는 자택으로 돌려 보냈다. 집으로 돌아 온 우리 부부는 15일간 몸 상태를 살피며 살얼음판을 걷는 조바심으로 보냈다.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면서 경과를 살폈던 2주간은 상상하기도 싫다. 태어난지 2개월 된 손자를 돌보고 있고 매주 홀로계신 아버님을 돌봐야 하는 절박감으로 감염에 대한 우려는 너무나 컸지만 다행히도 무탈했다.
오늘 자리를 같이 한 친구부부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손자를 돌보고 있기에 각자 휴대폰에 저장 된 손자의 재롱을 돌려 보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문상을 마치고 나오는 우리들에게 현성이 엄마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하늘이 무너진 심정이지만 집안의 어른 이기에 정신을 차려 가족을 다독이고 남편을 편안히 보내야 겠다고 했다. 그간 우리가 알기로는 현성이 아빠는 건강했고 엄마는 지병이 있는 줄 알았다. 올 해 환갑을 앞두고 열심히 살아 온 이웃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요즘의 코로나19로 말미암은 불행은 누구든지 겪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희망을 무너뜨리는 잔인한 이 봄이 언제 지나 갈 것인가?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일 지도 모르는 여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2020. 3. 24.)
첫댓글 건강의 중요성을 이번 기회에 많은 사람들이 알게됩니다. 소중한 친구를 잃어서 무척 서운하겟습니다. 코로나를 잘 이기고 모두 건강합시다.
어쩌면 환자가 즉시 병원에 가지 못한 것도 '코로나'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는 직접 간접으로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조심 해야 겠네요. 잘 읽었습2니다.
코로나 앞에 인간의 무력함을 느낍니다. 절친한 친구의 문상을 망서려야 하는 하는 사태가 안타깝습니다.
전자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도 없는 작은 것이 만 물의 영장 인간을 완전 무력화 시키는 군요.치료약도 백신도 아직은 없으니, 안타깝고 두렵습니다. 조심 조심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