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의 불길
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
아 ~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가슴을 파고드는 추억 어린 영등포의 밤
영원 속에 스쳐오는 사랑의 불길
흐르는 불빛 속에 아련한 그대의 모습
아 ~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오기택]
오기택(吳基澤, 1939년 4월 2일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아마추어 골퍼이다.
그의 현재 주요 거주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이다.
오기택은 1939년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북일초등학교와 해남중학교를 졸업하였고,
3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중학교 때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고향에 계속 살기 어려워지자 서울에 살던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상경하여
성동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였다.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에서
고복수가 운영하던 동화예술학원에서 노래를 배우던 중 1961년 제1회 KBS 직장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가수로 데뷔하였다.
1962년 12월에 발표된 그의 데뷔곡이었던 《영등포의 밤》은 당대 대한민국 사람들의
척박했던 생활상과 가사가 잘 어우러졌다는 평을 들었고, 1966년 남궁원과 엄앵란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지며 이 영화에 오기택도 함께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데뷔 직후인 1963년 4월 해병대에 홍보단 사병으로 입대한 오기택은
1965년 전역한 후 1966년 한 해동안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 《충청도 아줌마》,
《마도로스 박》 등의 곡들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빠른 시간에 국민가수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67년에는 부산문화방송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대 들어서는 일본에서 원정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직으로 선임된 데 이어,
1980년 1월 19일에는 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제19회 정기총회에서 가수분과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가수 활동과는 별개로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았던 오기택은
1980년 골프에 처음 입문한 이후 아마추어 골퍼로도 활약하며 제69~71회 전국체육대회에
전남 대표로 출전하여 4차례 메달을 수상하였으며, 1990년에는 싱가포르 렉스오픈 골프
아마추어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1997년 1월 제주도 북제주군(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의 무인도에 낚시를 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119 구조대에 의해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되어 뇌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언어장애와 마비증세가 나타났고,그러한 상황에서도 1998년에는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현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한 병원에서
요양사의 돌봄을 받으며 박상철 등 가요계 선후배들과 해남군 향우회 등의 지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