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에 고양이
정용채
고양이 한 마리
풀숲에 누우며 말했어요.
- 생각보다 포근한걸.
엉겁결에 눌린 풀잎도
조용히 생각했지요.
- 이 아인 보기보다 얌전하네.
한참을 그렇게 둘은
누르고 눌린 자세로 있었습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고양이가 중얼거렸지요
- 이런, 이런!
이거 나만 생각했는걸.
떠나는 고양이를 보며
풀은 생각에 잠겼어요.
- 누군가의 쉴 자리가 되어주는 건
참 멋진 일이야.
고양이가 앉았던 자리
오래도록 남아있는 온기
누구의 것일까요?
-[약력] 정용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지구문학작가회의 부회장
-안양문인협회 감사
-2019년 시집 <마음로1번길에 시가 산다> 지구문학상 수상
--------------------------------------------------------------------------------
[심사평-공재동]동심이 사라져 가는 시대 흠집 없는 동시
예심을 통해 올라온 동시 작품은 모두 73편이었다. 먼저 전체를 일별하면서 눈에 띄는 작품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2~3번의 정독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5편의 작품을 건져냈다. ‘하루살이 새’ ‘건널목 피아노’ ‘꿈을 튀기는 시간’ ‘마을도서관 가는 길’ ‘풀숲에 고양이’가 그것이다. 이 중 1편의 작품을 골라내기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하루살이 새’는 코로나 팬데믹이 사회적 배경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큰 흠이었다. ‘건널목 피아노’는 원관념인 건널목과 보조관념인 피아노 건반과의 비유를 효과적으로 그려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아 두 작품은 제외했다. 마지막 남은 3편을 두고 오래 고심했다. 몇 번을 거듭 읽는 동안 ‘꿈을 튀기는 시간’에서는 ‘옥수수가 팝콘이 아니어도’ ‘완두콩이 땅콩으로 튀겨지면’ 등의 모호한 표현이 시를 산만하게 한다는 것을, ‘마을도서관 가는 길’에서는 제목과 소재가 동떨어져 시의 핵심이 흐려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마지막으로 남은 ‘풀숲에 고양이’는 제목이 좀은 부자연스럽지만 비교적 흠집이 없었다. 고양이와 풀잎의 정다운 대화를 통한 자연과의 교감하며, 마지막 연을 ‘고양이가 앉았던 자리/ 오래도록 남아있는 온기/ 누구의 것일까요?’로 마무리한 동심이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게 했다. 신춘문예가 보여주는 도전과 패기라는 점에서는 다소 미진한 감이 없진 않지만, 동심이 사라져 가는 이 시대에 이만한 동시를 쓰는 동시인을 찾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선자의 생각이었다.
이번 경상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응모작품들을 읽으며 동시에서 동심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동시단의 염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내내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어설픈 제목 설정, 군더더기 같은 장황한 표현, 모호한 주제의식 등은 맑고 간결한 동심이 바탕이 되는 동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이어령은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서 ‘동요의 종말 속에서 인간은 종말해 가리라’고 했으니, 우리 동시 전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시점에 이른 것은 아닌지.
■[약력]공재동
-제13회 세종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수상.
-<꽃씨를 심어 놓고> <어른이 읽는 만큼 아이들이 자란다> <초록 풀물> <초록이 태어난 날> 등 출간.
출처 : 경상일보(http://www.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