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초유의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것으로 우려됐던 미국의 부채한도 상향 협상이 최종 타결되며 급한 불은 껐지만, 경계감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양당 지도부는 법안 통과를 확신하고 있으나 공화당 프리덤코커스 등 강경파를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잇따른다. 시장에서는 디폴트 우려 완화에 따른 단기적 랠리를 기대하면서도, 향후 재정지출이 제한되며 미 경제에 부정적 여파를 미칠 수 있다는 점 등을 경계하고 있다.
美디폴트 위기 넘겼나? 경계감 여전..."침체 우려 가중" 분석도© 제공: 아시아경제
오는 31일 하원 표결...공화당 강경파 반대가 관건미 하원 운영위는 30일(현지시간) 오후 3시 부차한도 관련 협상 결과를 담은 '재무책임법안'을 논의한다고 29일 밝혔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오는 31일 전체회의 표결 방침을 밝힌 가운데 하루 전 일종의 '게이트 키퍼'로 불리는 하원 운영위를 시작으로 법안 처리 절차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특히 공화당과 민주당이 9대 4로 구성된 하원 운영위는 공화당 강경파들이 일부 포진해 있어, 어렵게 타결한 합의안이 진통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화요일 오후 개최되는 하원 운영위가 첫번째 테스트가 될 것"이라며 "9명의 공화당원 중에는 극우파 3명이 포함돼있다. 랠프 노먼, 칩 노이 하원의원은 이미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공화당 주요 대권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이날 폭스뉴스에서 "협상 전 미국은 파산으로 향했고,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파산으로 가고 있다"고 합의안을 비판했다.
운영위를 통과해 전체회의 표결에 오르더라도 최종 통과까지는 다소 절차가 남아 있다. WP는 이 법안이 재무부가 새롭게 디폴트 시한으로 제시한 6월5일까지 통과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경로에 직면해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험난하고 길어질 수 있는 여정"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하원은 공화당 222 대 민주당 213 구도다. 222명의 공화당 의원 중 최소한 절반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자칫 법안 통과에 필요한 218표를 얻지 못해 부결될 경우 예산안 수정과정에서 수일이 소요되면서 시한 내 처리조차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매카시 하원의장은 메모리얼데이 연휴인 이날 오전 일찍부터 의회를 찾아 동료 공화당 의원들에게 법안 내용을 설명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美디폴트 위기 넘겼나? 경계감 여전..."침체 우려 가중" 분석도© 제공: 아시아경제
다만 양당 지도부는 합의안 통과를 자신하는 모습이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하원 운영위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주요 중도파 그룹인 신민주연합, 문제해결 의원모임 등이 현재 지지를 표하고 있어, 법안 통과에 충분한 표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애니 쿠스터 신민주연합 의장은 이날 "2025년까지 미국을 디폴트로부터 구하면서 경제 붕괴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동시, 수백만 미국인이 의존하는 주요 프로그램의 삭감을 방지하는 초당적 합의를 달성했다"고 지지를 표했다.
백악관은 메모리얼데이 연휴를 마치고 복귀하는 상원 의원들과 일대일 통화를 통한 설득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원내대표는 31일 법안이 하원을 통과할 경우 즉각 법안 처리에 나설 것이라며 "상원의원들은 잠재적인 금요일 또는 주말 투표를 대비하라"고 예고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워싱턴으로 복귀하며 "초당적 합의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며 의회의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전날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는 2025년1월1일까지 부채한도 적용을 유예하는 대신, 정부지출을 일부 감축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공개했다. 비국방 지출 예산은 2024 회계연도에는 동결되고 2025 회계연도에는 1% 증액된다. 코로나19 대응 예산 중 미사용된 300억달러를 환수하는 한편, 저소득층 대상인 푸드스탬프 신청 제한 연령 확대, 학자금 대출상환 유예 폐지 등을 통해 재정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다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입법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내 기후변화, 클린에너지 등의 예산은 그대로 유지된다.
협상 타결에도 경계감 지속...향후 경기 둔화 우려 가중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경계감은 여전하다. 당장 코 앞의 디폴트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향후 의회 표결 절차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는 물론, 법안 내 재정지출 및 유동성 축소 등이 경제 전반에 미칠 여파까지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 붕괴를 촉발하는 디폴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세계 최대 경제인 미국의 침체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는 합의"라고 평가했다.
통상 정부의 지출감축은 경제회복을 제약할 수 있는 주요 요인으로 손꼽힌다. 더욱이 최근 몇개 분기 간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에서 연방정부의 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였다. JP모건체이스의 마이클 페롤리 수석 미국이코노미스트는 "경기침체기에 접어들 경우 재정지출 감소가 GDP, 고용 등에 더 큰 여파를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JP모건체이스는 2023년 하반기 미국이 경기침체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디스 역시 이번 합의안으로 인해 2024년 말까지 최대 12만명의 고용감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은행 UBS는 향후 통화긴축 여력이 한층 확대되고 강달러, 국채금리 상승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신흥국 금융시장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JP모건, 맥쿼리 역시 국채 발행이 증가하며 금리가 뛸 것으로 내다봤다. 월가에서는 이러한 신규 국채 발행의 물결이 어떤 여파를 미칠 지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금융시스템에서 상당한 유동성을 없앨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연방준비은행(Fed)의 통화정책 경로에도 상당한 고민을 안겨줄 전망이다. KPMG LLP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통화정책을 약간 더 제약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재정정책도 제한적으로 될 것"이라며 "두 정책이 반대로 움직이며 서로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주 금요일 공개된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예상을 웃도는 상승폭을 보이면서 이미 6월 Fed의 금리 인상 전망은 치솟은 상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후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6월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60%가까이 반영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 25%대에서 확연히 뛴 수치다. 반면 동결 전망은 74%대에서 41%대로 꺾였다.
뉴욕증시는 주말에 이은 메모리얼데이 연휴로 이날까지 휴장이다. 월가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이번 주 디폴트 우려 완화에 따른 안도 랠리가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6월 금리 결정, 재정지출 및 유동성 축소, 국채 금리 변동성, 경기침체 우려 등 리스크 요인들이 여전한 만큼 당분간 투자자들이 신중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밖에 주요 외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최종 합의에 나서면서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는 평가도 내놨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