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종 시조 작가 프로필
(사)종합문예유성 시, 시조, 수필 3개 부문 등단
(사)종합문예유성 글로벌문예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제3기 졸업, 가요작사학과 제3기 졸업
(사)종합문예유성 국자감 문학상 대상, 이태백 수필 부문 대상 외 다수의 문학상 수상
2024 대가 대작 대한민국 대표 명시선 선정 작가
2024 대한민국 대표작가
(사)종합문예유성 글로벌문인협회 사무국장
(사)종합문예유성 글로벌문예협회 회원
코로 마시는 술(수필) / 雲鶴 민 유종
1989년 1월 4일 새벽, 창자가 끊어지는 듯 통증이 온다. 식은땀이 흐르듯이 몸을 적시고 온몸이 뒤틀린다. 그냥 참기에는 너무나 아프다. 아내와 아이들 깰까 이를 악물고 참아보지만 신음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온다. 신음 소리에 잠이 깬 아내가 깜짝 놀라 일어난다. 왜 그러냐고 묻지만, 대답보다 고통의 신음 소리가 먼저 나온다. 말을 할 수 없다.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를 타고 성 바오로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 간이침대에 눕혀지고,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다. 검사를 해야 치료를 할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라 하며, 침대는 순서를 기다리 는 곳에 밀어둔다. 검사를 해야 처방을 내릴 수 있다. 통증의 신음을 참으며, 혈압 재고 피 뽑고,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꼽아준다. 의사의 질문에 답변하고, 주사 한 방을 놓아 주고 링거를 매달아 준다.
날은 훤히 밝아 오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잠자고 있을 아이들, 잠을 깨어 엄마, 아빠 없으면 놀랄 것이다. 둘 다 여기서 있을 수 없었다. 아내를 집으로 보냈다. 진통제를 맞아 통증은 많이 누그러져 참을만했다. 링겔 병은 침대의 움직임 따라 그네를 타듯 흔들리며, 똠방똠방 떨어지는 수액은 가늘고 긴 호스를 타고 흘러 내려 몸속을 적시고 있다. 출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집에 갈 수가 없다. 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집에 갈 때는 집에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야 병원을 나갈 수 있다. 시간은 가는데 아직도 링거는 흘러내리고 있다. 갑자기 몸이 아파 응급실에 실려 와 누워 있다고 말하고, 연차 휴가를 내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통증도 줄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긴장이 풀려 잠이 몰려왔다. 늘어지게 한숨을 자고 나니 거짓말처럼 아픈 데가 없다. 간호사를 불러 집에 갈 수 있게 해 달라 했더니, 가기 전에 담당 의사를 만나 검사한 결과를 듣고 가라며 담당 의사의 진찰실로 안내해준다. 담당 의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 "정밀 검사를 하셔야겠습니다. 지금 상태로 안 좋은 곳이 많아 몇 가지 검사를 받고 가세요." 초음파 검사, 심전도 검사,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온다며 예약을 해준다.
병원을 나오니, 해방 맞은 기분이다. 아침을 먹지 못해 기지고 배고픈 속을 채우려고, 해장국 집을 찾아 해장국 한 그릇 먹으며, 해장술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집으로 왔다. 일주일 뒤 1989년 1월 11일,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나의 이름이 불리고 주치의로 지정된, 담당의사 진찰실로 들어갔다. 내가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가슴이 심히 두근댄다. 의사가 권해 주는 의자에 앉아 의사의 얼굴만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지 초조하기만 하다. 말없이 검사 기록을 보며, “술 많이 하시는가 봅니다?” “예.” “지금 상태는 안 좋은 데가 너무나 많습니다. 술 끊으실 수 있으신가요?” “예.” “아주 이참에 담배도 끊으시죠?” “예.” 나는 그저 ‘예’라고 대답만 했다. 지금 상황에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있느냐, 묻는 의사의 말에 ‘아니오.’ 라고 대답을 할 수 없어, ‘예’라고만 대답을 했다. 안 좋은 곳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심각할 정도로 안 좋은 상태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진단 결과에 대하여, 안 좋은 곳 몇 가지 얘기하더니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나의 가정사를 묻는다. 아이들이 몇이냐, 몇 살, 몇 살이냐 묻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진찰 결과만 알려 주면 되지, 자녀들 나이를 묻고 그러는 것은 검사 결과가 많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아차, 내가 죽을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구나! 그러니 탁 터뜨리질 못하고, 결과를 빙빙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한테 직접 얘기하기 어려운 병인가 보죠, 보호자 오라고 해야 하나요?”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지금 오라고 할 수 있나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보호자 오라고 하면 거의가 암 걸렸을 때나, 심각한 병들어 본인에게 말하지 못하고 보호자 오라고 해서 말해주던 시대라 암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 말 없이 의사와 둘이서 할 말을 잊고, 잠시 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림을 참지 못해 침묵을 깨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죽을병이라 해도 내 몸은 내가 주인입니다. 다른 누가 가꾸는 것이 아닙니다. 제 몸에 생긴 병 제가 알아야겠습니다. 알려주세요.” “괜찮으시다면 알려드릴게요. 당신은 지금 간경화입니다. 간이 너무도 나빠요. 당뇨도 있고요. 당뇨 수치로 보아 이대로는 회복 불가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 간이 굳어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죽는다는 간경화라고, 내가, 다른 사람 아닌 내가 간경화라고, 당뇨까지 있다고 그것 말고 더 말을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몸은 회복 불능의 불치병에 걸렸다는 말인가! 그때부터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엉킬 대로 엉킨 실타래처럼 뒤엉켜, 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인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생각도 안 나고, 지구가 나를 빙빙 돌려주고 있구나 하는, 어지럼증만 남았다. 챙겨주는 약 보따리만 가지고 집으로 왔다. 터덜터덜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집에는 와있었다. 얼굴은 죽을상이고 축 처진 어깨는 맷돌 눌러 놓은 듯 초라한 나의 모습을 바라본 아내의 얼굴이 하얘진다. 나의 표정에서 진찰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는 걸 느꼈는지 묻지도 않는다. 나도 아내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 “별 거 아니래. 약 잘 먹으면 괜찮대.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니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 세 살, 여섯 살 된 두 아이가 “아빠!”하고 달려와 품에 안겨온다. 아이를 바라보니, 다시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다음 날 출근을 한다고 나와서, 회사는 가지 않고, 눈 쌓인 산길을 푹푹 빠지며 수락산으로 갔다. 수락산을 오르는데 석림사라는 절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절로 향하고 법당에 멈춘다. 안에 들어가 향불을 피우고, 108배를 올리며, 간절하게 빌었다. “나 죽는 것은 억울하지 않으나, 남편 없이 아이 둘 키우며 살아갈 아내와 아버지 없이 살아갈 어린 자식을 위하여 건강하게 예전처럼 건강을 되찾게 해 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108배를 올리고 손에 집히는 몇 장의 지폐를 불전 함에 넣고, 석림사를 나와 인적이 드문 곳에서 통곡을 하며 울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엉엉 울었다. 울고 나니 가슴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하지만, 무거운 마음 내려놓을 수는 없었고, 운다고 건강이 다시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하나 현명한 답을 찾아보자,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해보지만, 이거다 하고 딱 부러지게 결정이 안 된다. 그러나 앞으로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생각으로 정립되었다. “아직은 내가 죽기엔 할일이 너무 많다.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지금부터 술 끊고 담배 끊고 치료하면, 더는 굳지 않을 것이다. 해보자, 그렇게 하면 쉽게 죽지는 않겠지.”하는 오기가 생기고 이를 악물고 이겨내면 우리 두 애들 중학교 졸업할 때 까지는 살겠지! “당뇨? 그게 뭔데 내 몸에 들어온 거야! 내가 들어오라고 허락했냐고? 허락도 없이 무단침입 한 놈들, 모두 다 쫓아내면 되지.” 그날부터 담배와 술을 끊었다. 매일 술 마시던 사람이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니 남들 눈에도 이상하게 보이는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기에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줬다. “간이 많이 부었대. 술을 계속 마시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대, 이참에 술 끊으련다. 앞으로 나보고 술 먹자고 하지 마.” 차마 ‘나 간경화래.’라고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두 주 불 사’ 말술을 마시던 애주가가 술을 끊는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먹으면 죽는다고 하니, 술을 먹지 못하는 것이지, 술이 싫어 술을 끊겠다는 것이 아니기에 종종 술 생각이 난다.
88올림픽이 열린 지난해, 명지산에서 따다 담근 다래주와 머루주가 익느라, 술통에서 나는 술 냄새가 내 코를 유혹한다. 참다 참다 잘 익은 머루주 뚜껑을 열고 술통에 코를 박고 코로 술을 마셨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술 향기가 죽여주게 향기롭고 좋다. 평소에 맡아보던 그런 술 냄새가 아니라 새로운 술 향이 코를 통해 들어와 술 향으로 취하게 한다. 코로 마시는 술, 이처럼 맛있는 술,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코로 마시는 술맛이 얼마나 좋은지 마셔본 사람만 그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오랫동안 코로 술을 마셨다, 술을 흠씬 마시고 뒤돌아서다 눈물을 흘리며 서있는 아내를 보았다. 병원 갔다 온 후로, 술 안 마시고, 담배 까지 끊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아내가 가까이 살고 있는 처제와 동서, 셋째 형님까지 불러 모아 무슨 병이냐 모든 것을 숨기지 말고 모두 말해라 채근했다.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의사가 말한 모든 걸 얘기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난 아내는 의외로 침착했다. “이미 몸에 들어온 병이지만 열심히 치료해 봐요. 혜선 아빠 할 수 있지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내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술 제발 조금만 먹으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내가 알아서 먹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 결국은 간경화에 당뇨라고 말하는 나 자신이 너무도 뻔뻔스러웠다. 그날부터 간에 당뇨에 좋다는 것은 모두 먹었다. 병은 숨기지 말고 자랑을 해야 좋은 약이 나온다고 했다. 감추지 않으니 여기저기에서 좋다는 약재를 보내주고, 좋다는 것은 가리지 않고 먹고, 약도 정성을 다해 먹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아내의 정성이 효과를 보았다. 친가 아홉 남매와 처가 아홉 남매 에게 공표를 하고, 협조해달라고 부탁했다. 양쪽 형제들 관심으로 좋은 약재도 보내고, 먹기도 잘 먹었더니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1년이 지난 후에는 예전 건강을 되찾았다. 젊음의 혈기, 무대포로 마셔댄 술, 그로서 얻게 된 건강의 교훈 “잘 지켜.” 간경화였던 나는 완치는 안 된다고 하였던 간경화를 치료하였고 완치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코로 마신 다래주의 술 향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첫댓글 고생많으셨네요
강한 의지에 간경화란놈도
무서웠나봅니다
건강은 건강할때
지켜야 된다는걸
알면서도
잊고 사는거지요
감사히머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