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보호하는 갑옷(경갑 및 흉갑)의 형태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허리 아래의 갑옷 치마와 신체를 보호하는 띠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단단한 갑옷의 표현과 대비되게, 어깨와 팔 주변을 감싸며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는 천의(天衣) 자락이 조화를 이루어 율동감을 더한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 위로 들어 올려 칼을 쥐고 있으며, 칼날이 위를 향하도록 당당하게 치켜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모로 인해 칼날 끝부분이 둥글게 보이지만, 전형적인 칼을 쥔 신장의 형상이다.) 왼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나 옆구리 부근에 자연스럽게 얹거나 칼집(또는 무구)의 윗부분을 가볍게 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안정감 있는 대칭적 구도를 이룬다.
몸에 딱 맞는 조밀한 갑옷(흉갑과 복갑)을 입고 있으며, 허리 아래로 흘러내리는 갑옷 치마의 주름과 띠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양팔과 어깨를 거쳐 몸 뒤편으로 부드럽게 물결치듯 휘날리는 천의 자락이 화강암의 딱딱한 질감을 완화하며 부조 전체에 리드미컬한 동감을 부여한다.
천왕의 오른쪽 다리(바라보는 방향에서는 왼쪽) 아래에는 천왕의 거대한 발에 밟혀 완전히 바닥에 엎드러진 악귀가 조각되어 있다. 악귀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굴을 위로 치켜들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어, 통일신라 석조 미술 특유의 사실성과 해학성이 동시에 돋보인다.
첫댓글 경주 황룡사지 서편 사지(구황동 제2사지) 동탑의 1층 탑신석에 새겨진 서방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
탑신석 표면에서 형상이 뚜렷하고 두텁게 도드라지도록 새긴 양감 있는 고부조(高浮彫) 기법 취하고 있다.
화강암의 거친 질감 속에서도 신체의 볼륨감과 입체감이 명확하게 살아나 시각적인 안정감과 중후함을 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칼(또는 무기)을 곧게 세워 쥐고 있다.
왼손은 가슴과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 꿈틀거리며 머리 위쪽까지 파도처럼 뻗어나가는 뱀(혹은 용)을 꽉 쥐고 있는 도상적 특징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몸을 보호하는 갑옷(경갑 및 흉갑)의 형태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허리 아래의 갑옷 치마와 신체를 보호하는 띠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단단한 갑옷의 표현과 대비되게, 어깨와 팔 주변을 감싸며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는 천의(天衣) 자락이 조화를 이루어 율동감을 더한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무게중심을 실어 서 있는 역동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천왕의 오른쪽 발밑에는 고개를 들고 고통스러워하거나 힘에 눌려 있는 악귀(생령)의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의 위엄을 극대화한다.
전체적으로 인체의 비례가 비교적 안정적이면서도 치석 수법이 과감하고 간결한 편으로, 통일신라 후기 석탑 부조의 전형적인 특징과 장식성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경주 황룡사지 서편 사지(구황동 제2사지) 동탑 1층 탑신석에 부조된 남방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
오른손은 어깨 높이 위로 들어 올려 칼을 쥐고 있으며, 칼날이 위를 향하도록 당당하게 치켜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모로 인해 칼날 끝부분이 둥글게 보이지만, 전형적인 칼을 쥔 신장의 형상이다.)
왼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나 옆구리 부근에 자연스럽게 얹거나 칼집(또는 무구)의 윗부분을 가볍게 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안정감 있는 대칭적 구도를 이룬다.
서방 광목천왕상과 마찬가지로 탑신석 표면 위로 인체가 두텁게 솟아오른 고부조 양식이다.
가슴과 복부의 갑옷 라인이 매우 입체적으로 치석되었으며, 어깨와 팔뚝, 다리의 볼륨감이 강조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으로서의 강인한 육체미와 당당한 풍채가 잘 드러난다.
몸에 딱 맞는 조밀한 갑옷(흉갑과 복갑)을 입고 있으며, 허리 아래로 흘러내리는 갑옷 치마의 주름과 띠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양팔과 어깨를 거쳐 몸 뒤편으로 부드럽게 물결치듯 휘날리는 천의 자락이 화강암의 딱딱한 질감을 완화하며 부조 전체에 리드미컬한 동감을 부여한다.
천왕의 오른쪽 다리(바라보는 방향에서는 왼쪽) 아래에는 천왕의 거대한 발에 밟혀 완전히 바닥에 엎드러진 악귀가 조각되어 있다.
악귀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굴을 위로 치켜들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어, 통일신라 석조 미술 특유의 사실성과 해학성이 동시에 돋보인다.
두광(頭光)은 표현되어 있지 않았다. 서방 광목천왕상과 동일한 장인 집단에 의해 조각된 만큼, 인체 비례나 치석 수법, 당당한 풍체 등에서 9세기 통일신라 석탑 부조 미술의 높은 완성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원원사지 사천왕상의 뒤를 잇는 사천왕상으로 원원사지 사천왕상보다는 부조의 높이가 낮지만 남겨진 조각이 선명하며, 생령좌까지 손상된 곳 없이 잘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