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기운으로 힘을 뺀 몸을 비실거리며 방안에서 하루를 굴리니 회복이 된다.
술을 경계하고 작은 것도 미리 조심하라는 우임금의 글은 읽으나 마나다.
아침에 일어나 울타리에서 여주꽃을 찾다가 무궁화 가지에 앉은 개구리를 찍고
계요등도 찍어본다.
토요일에 대전 갈 일이 있으니 운동을 하자고 산에 가기로 하고 송광사로 달린다.
10시 반이 지나 청량각을 지난다.
외국여성 둘이 진지하게 사진을 찍으며 앞서가는데 금방 추월한다.
처음인 듯한 그들은 나의 걸음을 따라온다.
불임암을 들를까 하다가 탑전 앞에서 효봉영각 앞으로 오른다.
비문을 다 읽지 못하고 짓고 쓴이만 확인한다.
좋은 돌에 박힌 글씨들이 좋다.
영각을 지나 담넘어로 삼일암을 보며 감로탑에 오른다.
돌계단의 직선 돌이 엄숙하다.
오세창의 글씨를 보고 송광사의 지붕들을 본다.
주암호 건너 모후산 봉우리는 흐릿하다.
대웅보전 앞 마당을 지나 범종루 아래서 '월간 송광사' 9월호와 봉은사의 탑전을 챙긴다.
9월엔 추석도 있고 외출이 잦을 듯하니 월간 송광사를 미리 한다.
안 들른 곳을 들렀더니 어느새 11시 반이 지나고 있다.
숲속에 날파리들이 안 보인다 했더니 땀이 나자 금방 몰려든다.
30분쯤 걸었을까, 숨이 차고 힘이 떨어진다.
하긴 주차장에서부터는 한시간 반을 걸었다.
물가에 앉아 배낭을 멋고 맥주와 과일안주를 꺼낸다.
한캔 마시고 나니 힘이 난다.
송광대피소를 지나 굴목재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그래도 돌을 깔아 조금 편하다. 고개를 쳐박고 지그재그 숨가뿌게 올라가 숨을 고른다.
송광사를 나선지 한 시간 20분이 지나간다. 많이 느려졌다.
보리밥 집에서 막걸리 반되를 주문하고 양말을 벗고 물에 가 씻고 온다.
맥주를 마신 탓인지 막걸리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
장군봉에 오를까 하다가 얼마전 인터넷에서 선암사에 백양꽃이 만발했다는 걸 본 게 생각 나
큰굴목재로 오른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 호랑이턱골바위를 지나 다리를 건너니 금방 편백숲이다.
쑥부쟁이가 피어나고 있고 백양꽃은 시들어가고 있다.
선암사로 들어가 호젓한 대웅전을 본다.
달마와 헤능 임제의 조사전에서 발문을 읽어보지 못한다.
키 큰 전나무를 지나며 화순 사람인 송태회와 구철우의 글씨를 본다.
다시 송광사로 걸어 갈 일이 막막하다.
가장 짧은 길이 어딜까? 비겁하다.
왔던 길로 가기로 하고 내려가 부도전을 지난다.
큰굴목재까지 힘들게 올라 남은 캔맥주를 마시는데 앞의 키큰 나무사이에 구름이 피어난다.
그러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점점 세어져 몸을 적신다. 배낭에 넣어 둔 책이 젖을까봐 수건을 윗쪽으로 넣어둔다.
보리밥집위아 배도사 대피소를 지나 송광굴목재에 오자 비는 그친다.
내려오는 길에 안개인지 구름인 숲속은 은현하다.
가을밭농사를 해 둔 송광사 채마밭을 지나니 5시 40분을 지난다.
비림을 건너다보며 차로 돌아오니 6시가 다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