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권
소림권이란 사실 하나의 권법 이름이 아니며 소림사에서 전해오는 권법을 통틀어 소림권이라고 부른다. 소림사는 중국무예의 총본산이라 자부하는 곳으로 이곳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기예들이 전수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림사는 완전히 관광지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현재 그곳에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무예는 오히려 우슈에 가까운 쇼에 지나지 않는다.
'천하의 무예는 소림사에서' 라는 말은 순 어거지이지만, 사실 상당수의 중국무예는 소림사에서 기원한 것은 사실이다. 소림사에서 무예를 시작하게 된 연원은 전설정도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게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타당성 있는 이야기는 소림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막대한 보물들을 도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무예를 연마했다는 설이다.
국내에도 소림 계열의 무예를 가르치는 도장이 많으나 이런 도장 중에는 사이비가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당랑권
중국문파중 가장 최근에 창시된 것으로 알려진 권법. 왕랑이라는 사람이 사마귀가 매미를 잡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창시했다고 하나 이 역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대게 사마귀의 수법에 원숭이의 보법을 결합했다고 말한다.
당랑권은 특히 국내에 가장 많이 보급된 중국 무예이기도 하다. 당랑권은 그 계보가 매우 다양한데, 원래 당랑권은 칠성당랑권 하나 뿐이었으나 전승되는 과정에서 당랑권 특유의 손기술을 강조한 매화당랑, 기법을 부드럽게 사용한 육합당랑, 신법이 크고 던지기가 많은 솔수당랑, 자세가 낮고 가늘며 짧은 공격을 하는 비문당랑, 형의권·팔괘장·통비권의 장점을 혼합한 팔보당랑 등으로 세분되었다.
일반적으로 당랑권은 매우 실전적인 권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전성을 전제하지 않는 무예란 사실상 없기에 이 또한 하나의 편견이 될 수도 있지만, 아마도 쾌속과 공격의 밀도를 생명으로 삼기 때문에 그러한 평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태극권
대표적인 내가권. 역사에 대해서는 전설 수준의 이야기밖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중국무예의 경우 개인창시설은 거의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연걸이 주연한 영화 '태극권'이 나오기 전까지는(어쩌면 아직도) 굉장히 느리고 비실전적인, 노인네들나 하는 건강체조라는 인식이 일반인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고, 국내에도 무예보다는 양생술로서 많이 보급되었다. 물론 태극권은 양생술로서의 가치가 매우 뛰어난 권법이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실전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태극권의 최대 특징은 상대의 공격력을 지우고 오히려 그것을 되받아쳐 역이용하는 화경이다. 화경을 쓰지 않는 무예는 없지만, 태극권은 그 화경을 고도로 발달시킨, 실로 화경의 정수라 하겠다. 태극권에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강맹하고 실전성으로 유명한 진가에서부터 널리 보급된 양가, 오가, 등등 전승의 계통이 다양하다. 중국 밖으로 가장 널리 전수된 중국무예이기도 한데, 일반인들에게는 원래의 태극권 보다는 24식, 32식 등 비교적 수련하기 쉽게 다듬어진 간화 태극권이 많이 교습되고 있다.
팔극권
하북성 창주에서 발원한 무예로 국내에서는 '권아'라는 일본만화와 전자오락 버츄얼 파이터의 주인공 아키라 때문에 유명해졌다. 굉장히 격렬하고 강맹한 권법으로 일격필살을 추구하는 비교적 단순한 권법이다. 매 동작마다 땅을 강하게 구르는 진각이 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만화에서처럼 권법의 왕이니 하는 호칭을 붙일만큼 특별한 권법은 아니다.
교습 체계는 비교적 간결한 편으로 지류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게는 금강팔식에서 팔극소가, 팔극대가, 팔극연가 등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들 투로는 모두 각기 다른 것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형태로부터 조금씩 살을 붙여 확장시켜 나간 것으로 공통적인 부분들이 많다.
십수년 전에 일었던 팔극권 붐이 아직도 그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시중에 책만을 보고 혼자서 팔극권을 익히려드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굉장히 그릇된 일이다. 어떤 종류의 무예이건 정식으로 지도를 받지 않고서 홀로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리석은 일일 뿐더러, 특히나 팔극권과 같이 격렬한 무예의 경우는 몸만 상하는 결과를 낳기가 십상이니 주의할 일이다.
홍가권
영화로 유명한 황비홍의 무예이다. 남파의 대표적 무예로, 강한 외공 단련으로 유명하다.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방식의 권법이다.
소림사에서 분파된 흔적이 강한 문파로 권법의 수가 굉장히 많고 다양하다. 가장 유명한 호학쌍형권에서 공자복호권, 철전권, 열 가지의 십형권, 취팔선권 등등. 일반적으로 남파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는 단단한 하체고정과 강력한 수법, 정면 공격 성향 등이 그대로 나타나는 무예이다.
절권도
유명한 이소룡이 창시한 무예이다. 이소룡은 본디 어려서 체조화된 태극권에 싫증을 느끼고 영춘권 (소림권을 배운 비구니가 자신의 몸에 맞게 개조한 권법)을 배웠는데, 그 바탕 위에 그가 살아가면서 체험한 세계 각국의 무예들을 총망라하여 자기 나름의 철학으로 정리한 것이 절권도이다.
이소룡 본인이 말하는 절권도의 극의는 '무형의 무예'라고 한다. 그는 너무나 형식에 얽매이고 고루한 중국의 전통무예들에 일침을 가하며 '실전에 임해서는 모든 형식을 버리고 자신의 몸에 맞게 자유로운 스타일로 격투에 임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절권도를 형태적으로 보자면 정말로 그의 철학이 잘 녹아 있는 듯 하다. 발차기만을 보면 태권도 같기도 하고 그의 쌍절봉술은 필리핀의 단봉술에서 배워온 것이며, 그러면서도 기본적인 공방의 원리나 촌경 등은 영춘권의 것을 살리고 있다.
그러나 너무도 자유로운 스타일과 무형의 도를 강조한 나머지 교습체계 면에서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소룡 사후로는 그만한 절권도의 달인이 배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예에 있어서의 형식은 결국 필요악인 것이다.
일본 무예도 뒤섞여 있더군요..ㅠ.ㅠ
가라데
일본무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바로 가라데이다. 그러나 사실 가라데는 일본 고유의 무예는 아니다. 가라데란 공수(空手)의 일본식 발음인데, 원래는 오키나와 지방에서 전해오던 오키나와 당수(唐手)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키나와 당수는 중국권법의 영향을 받은 무예이다. 이것이 일본식으로 정착되면서 이름이 空手로 바뀐 것이다. (唐手와 空手는 일본식으로 발음이 비슷하다고 한다. 중국 연원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발음이 비슷한 空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가라데에도 강유류, 송도류 등 많은 유파가 존재한다. 강유류는 단타와 접근전을 장기로 하며 송도류는 시원한 발차기와 장거리 공격 위주라고 한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유파로 극진 공수(교꾸신 가라데)가 있는데 이는 한국계 일본인 오오야마 마쓰다쓰(한국명 최영의)가 창시한 실전무예이다. 그는 무예의 정수를 터득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사수행을 쌓았으며 백여 회가 넘는 전투에서 단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승리했다고 한다.
가라데라는 이름은 서양에서는 '무예' 라는 단어와 동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이 자국 무예의 세계 보급에 누구보다도 앞장선 결과이다.
대동류 합기유술
한국 합기도를 비롯한 많은 현대 무예의 모체가 된 유술이다. 일본의 오래된 무도이며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대동류의 기원이 신라의 삼랑원의광이라고 말하고 있다. 관절기와 타격기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나 한국의 합기도와는 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합기(合氣)'라는 개념을 중시하여 완력을 쓰지 않고 바른 신체의 자세와 동작에서 나오는 탄력을 강조한다. 중국무예의 '발경'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아이끼도
合氣道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한자는 같지만 한국의 합기도와는 크게 다르다. 아이끼도는 근대에 창시된 무예로,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대동류 합기유술을 배운 바탕 위에 그의 도가철학(정확히는 오모토교)을 접목하여 탄생시킨 무예이다. 도가철학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아이끼도에는 기본적으로 살인기가 없다. 대동류에서 관절기만을 특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아이끼도는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미국 영화배우 스티븐 시갈도 아이끼도를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끼도에 살인기가 없다고 해서 아이끼도를 비실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어차피 무예란 기본적으로 살법이다. 아이끼도에 살인기가 없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끼도의 철학에 불과한 것이다. 즉 수련자가 살의를 품기만 한다면, 아이끼도의 기술들은 언제든 살인기로 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유도
주짓쮸라는 일본 고무도에서 비롯된 유술이다. 원래 주짓쮸는 현대 유도에 비해 위험한 기술이 상당히 많지만, 유도는 근대에 경기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러한 살인기들이 많이 제거되었다. 세계적으로 경찰들이 많이 익히는 무예이기도 하다.
주된 기술은 던지기, 조르기, 누르기, 꺾기, 걸기 등으로 굴근(잡아당기는 근육)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무예이다. 던지기가 주된 공격기이기 때문에 처음에 낙법부터 익힌다. 일반적으로 싸움 하면 주먹으로 치고받는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유도의 실전응용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도 가끔 있는데, 낙법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던지기 기술에 걸릴 경우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무서운 무예이다. 아마도 회전관성과 힘의 작용점, 지면과 인체의 낙차 등을 이만큼 잘 활용하는 무예도 드물 것이다.
아직도 이따금씩 유도가 한국의 무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보나 현재의 한국 유도의 모습으로 보나 전혀 근거가 없다.
인법체술
일본의 닌자들이 쓰던 무예이다. 일본권법과 유술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각종 무기술과 암기술을 비롯, 은신술까지 들어있다. 닌자란 다름아닌 암살자, 혹은 자객이니 이러한 특징이 이해할 만하다. 닌자가 서양인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서구에도 많이 보급되고 있다. 영화속의 닌자는 거의 귀신이나 괴물을 연상시킬 정도로 신출귀몰하고 괴상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과장과 허위가 심하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무림전문사이트에서 찾음...
이건 소림(남파)..
소림사는 중국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서북쪽 소실산(少室山) 오유봉(五乳峯)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위 태화(太和)9년(서기 495년)에 세워졌다.
효창(孝昌) 3년(서기 527년)인도의 고승 달마(達摩)가 이곳에 처음으로 선종(禪宗)을 창시했기에 선조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중국불교의 발전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소림사는 유구한 역사 연원(淵源)과 복잡한 인문(人文)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어떤 사원보다도 훨씬 풍부한 전기(傳奇)적 색채를 띠고 있다. 한때 당나라 초기에는 이세민(李世民, 훗날 당태종)을 도와 많은 땅을 하사 받았다. 아울러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첨가된 전설적인 신기한 무술의 비결 따위가 소림사를 더욱 유명하고 신비스러운 경지로 올려 놓았다.
"모든 쿵푸는 소림사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듯이 과장적이기는 하지만 소림 무술은 중국 무술의 정통으로 인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소림 무술은 중국 정통무술의 두 파중 하나로서 강맹(剛猛)을 위주로 하기에 "외가(外家)"라 불리는데 이는 무당파(武堂派)의 음유(陰柔)한 "내가(內家)" 쿵푸와 대조를 이룬다. 전하는 바로는 바로 소림사 무술은 달마조사가 남겨 놓은 것이며 그가 죽은 후 두 권의 비경을 남겼는데 그 중 한 권은 "세수경(洗髓經)이며 또 한권은 역근경(易筋經)이라 한다.
소림무술은 그 역사가 깊을 뿐만 아니라 각처의 무술 발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공수도(空手道), 합기도 (合氣道) 유도(柔道)도 바로 이 소림 무술을 시조로 하고 있다.
소림사의 규모는 대부분이 북위(北魏)초기때 정립된 것으로 애초의 건축이 비록 명(明), 청( )때 재건된 것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애초의 모습을 모방하였다고 한다. 절내의 주요 건축으로는 산문(山門), 달마정(達摩亭), 백의전(白衣殿), 지장전(地藏殿), 천불전(千佛殿)등이며 이 밖에 당나라 이래의 묘탑(墓塔)이 220여개가 보존되어 있는데 이 탑들은 소림 역대의 주지 스님들을 모셔 놓은 장지(장지)이며 또한 중국 최대 탑군중 하나이다.
2.소림사의 역사
불교가 정식으로 중국에 들어간 것은 대략 동한(東漢) 명제(明帝)때이다. 위진(魏晉)시대 이래 '오호난화(五胡亂華)의 대난동이 있은 후 사람들이 자기들의 운명을 하늘이나 귀신등에 의탁함에 따라 불교도 크게 번지게 된 것이다
북위(北魏)시대 때 불교는 최 절정의 단계에 이르러 당시 전 중국 땅에 사원이 1만 3천여개소가 세워졌고 승려가 10여만명에 이르게 된다. 그 당시 사원 건축, 불상 조각등은 한때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지금도 유명한 용문석굴(龍門石窟)역시 불교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소림사의 창립은 용문석굴을 짓기 시작할 때보다 1년이 뒤진 북위 효문제(孝文帝) 19년(서기 495년)이었다.
소림사의 가장 전성시기는 당나라 때로 그 때의 사원은 500여명의 승병(僧兵)에 진도(眞徒-이미 불계(佛戒)를 받은 승려)가 1천 여명, 전답(田畓)이 1만 4천여지기, 전각누대(殿閣樓臺)가 1천여개로 36만평방킬로나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 규묘는 실로 엄청났다. 승병제도는 당태종 이세민의 하사품인 셈이었으니 이는 그가 승려를 추켜줌으로써 그를 도와 왕세충(王世充)을 정벌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전답을 하사하고 승병을 세우는 한편 소림사에 승려들이 공개적으로 무예를 익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림무술은 "진왕고소림사조교비(秦王告少林寺主敎碑)"로부터 소림무술의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진왕(秦王)으로 봉해진 이세민과 자칭 정왕(鄭王)인 왕세충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세민은 소림사가 무술에 능하다는 것을 아는지라 소림사 주지에게 서신을 띄워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서신을 받은 주지가 즉각 무승들을 내려 보낸다. 결국 진(秦), 정(鄭)의 교전에서 이세민은 대승을 거두게 되고 소림 무승들도 공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 후 이세민이 황제가 되고 공로자에 대한 포상을 내리면서 무승인 담종(曇宗), 지조(志操), 혜창(惠 )등 13명에게 관직을 주게 되지만 오
로지 담종 스님만이 관직을 받았을 뿐이다. 그 이유인즉 소림사에서 무술을 익히는 목적은 원래 동(動)으로써 정(靜)을 키우면서 염불하는 것과 그 외에 산림의 맹수들에 대항하고 사원을 보호하고자 하는 필요에 있었을 뿐인지라 당태종이 내리는 관직을 거부하게 되었으나 왕의 호의를 받아들인다는 마음에서 담종 스님만이 "대장군(大將軍)"이라는 직을 받았던 것이다. 그 후로 당태종은 소림사에 고기, 술을 하사하여 선문(禪門)의 5戒(살인, 도적질, 음탕함, 망령됨, 술)가 깨지고 만다.
소림사가 이러한 전성기를 누렸으나 선종이 중국땅에서 발전함에 따라 소림사도 몇차례 수난을 겪게 된다.
우선 북주(北周) 무제(武帝)때 불교, 도교를 없앤다는 칙령하에 모든 승려, 도사 비구니들은 환속(還俗)하여 고향으로 돌아 가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즉 불교역사상 유명한 "삼무지화(三武之禍)중의 하나이다 -(북위의 태무제(太武帝),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당의 무종(武宗)은 다 불교를 금지 시켰다.)
그리고 6년 뒤 북주의 정제(靜帝)가 불교를 다시 일으킴으로서 소림사도 척호사(陟岵寺)로 개명되었다가 다시 2년 뒤에 소림사로 본래의 이름을 회복한다.
소림사는 또한 3차례의 큰 화재를 당해 파괴된 적도 있는데 한번은 수(隋)나라 때이고 한번은 청(淸)나라 강희(康熙)때이며 재난이 가장 심했던 경우로는 민국(民國)초기 일어난 군벌 싸움에서였다. 그 당시 두 군대가 소림사를 서로 차지하고자 싸우다 결국 불을 질러 연 45일 동안이나 큰불에 시달린 바람에 역대의 중용 문물이 거의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그 후 사회주의 중국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때 재차 수난을 당했으나 근년 들어 관광 사업을 추진하는 덕분에 소림사에 다시 손질이 가해 졌지만 옛날의 "천하제일의 사찰"이었던 본래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3. 소림사의 법
불교의 각 종파는 각기 나름대로의 법규를 갖고 있는데 소림사의 법규는 상상히 독특하다.소림사는 선종(禪宗)의 발원지로 인도의 석가모니로부터 전해 내려 온 계율을 갖고 있으면서도 뒤로부터 발전 상황을 올라가 보자면 원래의 교의(敎義)와 어긋나는 부분이 많이 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불조(佛祖)는 "사대개공(四大皆空)"을 강조한 반면 소림사는 무엇이든 다 가졌다. 고용인, 하인., 무장(승병) 그 외에 방대한 전답을 가졌으며 고승(高僧)중에서는 효승(孝僧), 시승(詩僧), 예승(藝僧) 심지어는 술, 고기를 취하는 주육(酒肉)승려도 있으며 높은 관직을 가진 국사(國師)도 있다.
또한 불조는 "중생평등(衆生平等)"과 그와 신자(信者)들 사이엔 사제 관계 외에 상하 종속 관계 따윈 없다고 주장한 반면 소림사엔 등급이 무척 많을 뿐만 아니라 제도 또한 무척 엄격하다.
그외 불조는 맨처음 힘써 행할 일이 연문탁발(沿門托 )로 사제가 함께 시주를 즐기는 것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고행(苦行)이요 개인의 재산이 있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림사는 적잖은 전답과 가옥을 지녔던 관계로 승려들의 탁발 , 구걸을 엄금하였다.
선종의 특징은 불경이나 설법에 얽매이지 않고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선조의 대승들은 자기 파를 나타내려는 이유 때문에 무수한 저술을 났으며 특히 명, 청대에 와서는 선기(禪機)의 공안(公案)을 강조하여 더욱 많은 저술을 하게 되었다.
선종이 제 6대에 와서는 남북 양파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혜능(慧能)스님이 바로 남종(南宗)의 창시자로 그는 선조의 시조 달마의 면벽(面壁)을 반대하고 좌선(坐禪)의 필요성도 없다고 여겼다.
뿐만 아니라 머리깍고 입사(入寺)하지 않아도 불도(佛徒)가 될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혁신적 주장은 북종(北宗)의 신수(神秀)에게서 도에 어긋나는 반역
자라는 비웃음을 샀으며 그 당시의 불교계에게서는 역시 "6조난전법(六祖亂傳法) 이라는 설까지 나돌았다.
이렇듯 혜능은 제자들에게 좌선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는가 하면 성불(成佛)한다는 말도 믿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내 맘이 곧 불이다(我心卽佛)"를 주장했는데 바로 불법의 3보(三寶)즉 삼규(三規)- 첫째, 불(佛)에 귀의(歸依). 둘째, 법(法)에 귀의. 셋째, 승(僧)에 귀의-를 말하는 것으로 일체(一切)가 자아로부터 출발한 세 번째의 귀의승에 귀난된다. 불법을 수많은 외재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자유자재로운 이 방식은 오히려 민간의 보편적인 환영을 받게 되었다.
선종이 6조 혜능에게 전해진 후 다시 5대 종파로 나뉘고 그중 "임제(臨濟)"파에서는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제정하여 조정의 인정까지 받아 전국 불교계에 확산 되기까지 이른다 그로서 비교적 확실한 법이 서게 된 것이다.
4. 무당산(武堂山)
무당산은 호북성(湖北省) 균현(均縣)경계 내에 있다. 주봉인 천주봉(天柱峯)은 해발 1천 6백 1십미터나 되어 "일주경천(一柱擎天)"이라고 칭한다. 당나라 정관(貞觀)때 이곳에 오룡사(五龍寺)를 짓고 송, 원 이래로 계속해하여 손질을 하고 명대 영락(永樂)년간에는 8궁(八宮), 2관(二觀), 32암(三十二庵), 12정(十二停), 9대(九台), 구정(九井) 15지(十五池), 39교(三十九橋)등 방대한 견축을 하여 도교의 승지(勝地)로 유명해 졌다.
주요 명승으로는 현악문(玄岳門), 옥허궁(玉虛宮), 마침정(磨針井), 복진관(復眞觀), 옥허암(玉虛岩), 자소궁(紫 宮), 남암(南岩), 태화궁(太和宮), 금전(金殿)등이 있다.
현악문-명대 가정(嘉靖)31년(서기1552년)에 세워졌으며 넓이는 약 13미터, 조형이 매우 아름답다.
옥허궁-현악문에서 4킬로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명대 영락(永樂) 16년(서기1418년)에 지어졌다. 대전, 계경전(啓經殿), 원군전(元君殿), 소관전(小觀殿)등 2천 2백여 채의 건물이 있다. 명대 말에 이자성부대가 이곳에 숙영한 적이 있다하여 영궁(營宮)이라고 도 한다. 청나라 건륭(乾隆)10년 (서기1745년)에 화재로 불타 없어지고 소수의 건물만 남았을 뿐이다.(궁문 ,비각등)
마침정-산으로 오르는 길 한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현악문과는 10킬로쯤 떨어져 있다. 옛날에 진무(眞武)가 입산하여 수련할 적에 쇠절구를 갈고 있는 노파 하나를 우연히 만났다. 의아히 생각된 그가 노파에게 쇠절구를 무엇 때문에 갈고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바늘을 맞들고자 함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다시 쇠절구로 어떻게 바틀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 노파는 태연히 '공이 이르면 자연히 이루어진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진무는 크게 깨닫고 수련하여 마침내 선인이 되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이 이를 기념하고자 이곳에 마침정을 지었다고 한다.
5.소림사의 武術
소림 권술(拳術)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무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지, 또는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선 역사적인 증명을 찾아 볼길이 막연하다. 하지만 소림권(少林拳)의 기원에 관해서는 두가지 설이 나돌고 있다.
그 중에서 하나로 소림권은 발다(跋다),혹은 그의 계승자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근거로는 "소림무당고(少林武當考)" "중국무예도적고(中國武藝圖籍考)" 등의 서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발다(跋陀)는 소림의 시조(始祖)로 소림사는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가 전적으로 그를 위해 지어준 것이라 한다. 그에겐 두 제자가 있었는데 혜광(惠光)은 "경공(輕功)"에 뛰어나 우물가 위에 선채로 제기를 찰 수 있을 정도 였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제자는 "경공(輕功)"을 지녀 호랑이 두 마리와 싸워 때려 눕힐수 있을 정도로 강한 무술을 지녔다고 한다. 그리고 달마(達摩)가 중국에서 9년동안 머물다가 효명제(孝明帝)때 우문(禹門-낙양 부근의 용문(龍門) 간성사(干聖寺)에서 죽어 웅이산(熊耳山)에 묻혔는데 생전에 숭산(嵩山)에 갔던 적은 있으나 소림사에 머문 적은 없으며 "면벽9년(面壁9年)"이라는 설은 후세 사람들이 꾸며된 허위라고 한다.
그 외 다른 한가지 설로는 소림권은 분명히 달마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달마의 교파(敎派)는 발다와 전혀 달라 대승(大乘), 소승(小乘)으로 구분되며 "정좌수행(靜坐修行), 면벽좌선(面壁坐禪)" 등을 주장하여 중국 불교에 "선종(禪宗)을 열어 주었으며 또한 불경을 예기하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달마가 소림사에 다다른 후 오유봉(五乳峯) 위에 있는 동굴 속에서 "면벽9년"을 하였기에 지금도 이 동굴은 "달마동(達摩洞)"이라고 불리며 많은 관광객에게 보여지고 있다고 한다. 그때 달마가 긴 세월동안 밤낮으로 벽만 바라보며 수행하여 좌선 시간이 오래되자 굳은 몸을 풀어야만 했
을 것이며, 특히 홀로 심산 유곡에 머물면서 독사나 맹수 따위의 위협을 받아 강한 자는 살고 약한 자는 쓰러지는 이러한 특수한 환경 아래 몸을 단련시키고 그들을 방어하는 사이 절로 몇 가지 일정한 자세가 이뤄지고 세월이 흐르며 세대(世代)를 더해 가면서 "소림권"이 형성 되었다는 것이다.
근거에 의하면 소림권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는 "나한 18수(羅漢十八手)", "심의권(心意拳)" 등인데 바로 달마가 만들어 낸 것으로 훗날 백옥봉(白玉峯)등 여러 명에 의해 변화되어 오늘날의 백십팔수(百十八手)로 변했다고 한다.
이상의 두가지 설을 보면 소림권은 소림사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 오늘날 무술을 연구하는 분들에 따르면 소림권술은 어떤 특정인물, 특정파에서 유래를 찾을 것이 아니라 신체 단련, 방어 등의 필요에서 발전된 것이라 보아야 옳다는 것이다.
소림 권술은 당나라 초기에 와서 전성기를 맞이하여 일약 중국 무술의 일대 유파를 이루다가 명말청초에 이르러 청 왕정에서 소림제자들이 무술로써 명나라를 복원할까 두려워 적대시하는 바람에 많은 승려들이 다른 사원으로 옮겨 버리거나 아예 환속하고, 혹은 은거 생활로 들어가 농사를 짓거나 개명하여 권술로써 생계를 이어가고, 또는 계속 소림사에 남아 남몰래 무술을 익히는 승려도 있었다. 이때 소림 권술은 이미 양자강 유역을 일대로 전국 각지에 넓게 펴져 나간 상태였음 여러 지파(支派)로 나뉘어져 크게는 북파(北派)와 남파(南派)로 구분지어 졌다.
6.소림사의 보(寶)
소림사는 멀리 북위(北魏)로부터 수(隋),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등 각 시대를 거치며 새로운 문물, 새로운 내용이 더해짐에 따라 예술의 보고(寶庫)를 이루었다.
산문(山門)-소림사의 대문이다. 원래는 산문이 없었으나 청나라 옹정년(雍正年)에 와서야 지어진 것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니다. 절 앞으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고 산문 위에는 금빛으로 새겨진 "소림사(少林寺)" 3자가 높다랗게 걸려 있다. 이 현판은 강희(康熙)황제의 어서(御書)이다. 중문에 들어서면 미륵불이 미소를 띄고 환영해 주는데 아무런 근심이 없는 듯한 표정이다. 산문 밖으론 양쪽에 큰길이 두 개 나 있고 동, 서비방(東, 西碑坊) 두 개가 서 있다.
동비방에는 "발다개창, 조원체본(跋다開創, 祖原諦本)", 서비방에는 "숭소선사, 대숭승지(嵩少禪寺,大乘勝地)"라 쓰여 있다. 문앞에는 동서쪽으로 향한 큰 길이 쭉 뻗어 소양계(少陽溪)와 나란히 하고 있다. 또한 소실산(少室山)의 중봉(中峯)인 어안산(御案山)과 산문이 서로 마주하고 있어 소림사에 커다란 병풍이 둘러쳐진 듯하다.
비림(碑林)-산문 뒤쪽으로 난 길 양옆에 당송(唐宋) 이래의 50여좌 석각(石刻)이 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비림"이다. 이 비림은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 각 시대의 뛰어난 서예가들의 솜씨로 상당히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소식(蘇軾)의 "화매비(畵梅碑)"와 "찬비(讚碑)", 송나라 때의 서예가 미불(米 )의 "제일산(第一山)", 북송(北宋)때 채경(蔡京)의 "면벽지탑(面壁之塔), 원나라 조맹부(趙孟 )의 "복유(福裕-승려명)비(碑)"와 명나라 동기창(董其昌)의 "도공(道公-인명)비(碑)"등등 모두가 서법 예술의 보배이다.
그외 당나라 서예가 왕지경(王知敬)이 무칙천(武則天)의 어제(御製)를 쓴 "시서비(詩書碑)", 건륭(乾隆)의 "어
비(御碑), "관공풍우죽화비(關公風雨竹畵碑)", 당태종(唐太宗)의 "사조림주교비(賜少林主敎碑)"와 "소림사비(少林寺碑)" 등이 있다. 이들 비림은 높은 서법 예술과 조가 예술의 가치 외에 역사 연구에도 상당한 물증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 된다.
종고루(鐘鼓樓)와 장경각(藏經閣)-소림사는 중국의 일반 사원과 마찬가지로 정전(正殿)양측에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설치되어 있다. 소림사의 종루와 고루는 원나라 대덕(大德)4년(서기1300년)에 지어졌으며 기재된 바에 의하면 소림사에서 종을 치면 그 소리가 30리까지 퍼져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아깝게도 1928년 군벌혼전(軍閥混戰)때 타 없어지고 말았다. 대웅보전(大雄寶殿) 유지(遺地) 뒤 북쪽으로 계단이 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장격각(藏經閣) 유지(遺地)이다. 장경각은 또한 "법당"이라고 불리는데 소림사 역대 불경, 각종 서적이 들어 있는 보고이며 전내에 아직도 "달마면벽영석(達摩面壁影石)"이 보관되어 있다.
입설정(立雪亭)-장격각 유지에서부터 북쪽으로 가다 보면 방장실(方丈室)이 나오는데 이는 객정(客庭)이라고도 불린다. 건륭(乾隆)황제가 숭산(嵩山)에 놀러 왔다가 이곳에 잠시 머문 적이 있어 "용정(용정)"이라고도 불린다. 방장실 복도 동쪽 끝에는 철종(鐵鐘)이 하나 놓여 있는데 그 무게가 무려 650근이나 된다. 방장실에서 나와 북쪽으로 향하면 입설정(立雪亭)이 보인다. 입설정이라는 명칭이 주어진 유래에 관한 전설이 있다. 즉 2조혜가(二祖慧可) 스님이 아직 "2조"가 되기 달마의 의발진전(衣鉢眞傳)이 되길 간절히 희망하여 오래도록 달마가 있는 정(亭) 밖에서 무릎에까지 눈이 쌓이도록 서 있었다. 이에 달마가 그의 참 결심을 시험하고자 그에게 '네게 쌓인 눈이 붉은 색으로 변해야만 제자로 받아들이겠노라'고 하였다. 그러자 혜가가 당장 팔뚝을 꺼내 잘라 피를 흘리니 흰 눈이 붉게 물들었다. 결국 달마도 그의 성의에 감동하여 즉석해서 그를 제자로 삼았다 한다.
백의전(白衣殿)과 지장전(地藏殿)-백의전은 또한 권보전(拳譜殿) 이라고도 불린다. 전내(殿內) 사방 벽이 벽화로 가득 차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무술, 결투, 전쟁등에 유관한 것들로 무인들이 이곳에 오면 누구나 떠나기를 아쉬워하는 곳이다. 지장전 내에는 지장왕과 십제영군(十帝閻君)을 모시는 자의 조소상(彫塑像)이 서 있다. 중국 민간 전설에서 그는 저승 지옥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장왕이 타고 있는 것은 괴상망칙한 괴물인데 "체청(諦聽)"이라고 불린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괴물은 "순풍이(順風耳)"를 갖고 있어 세상 만사를 다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장왕도 자연히 모든 사람의 일생을 훤히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장전 내의 조소상들은 제작연대를 알수가 없으나 제작 솜씨는 극히 아름답다고 한다.
천불전(千佛殿)-천불전은 소림사에서 가장 큰 전(殿)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다. 전내(殿內) 뒷벽과 동, 서 양벽에 그려진 벽화는 그 면적이 3백 평방킬로에 달하는 놀라운 규모이다. 벽화 내용은 "오백나한조비로(五百羅漢朝毘盧)"를 그린 것인데 각 나한들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고 구도가 대범하며 중국 사원에서도 보기 드문 예술 걸적이다. 천불전은 명나라 때 증건한 것이며 또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고 문사(文史)의 사치를 가장 많이 보유한 건물이기도 하다.
팔극권
중국에는 수많은 무술의 문파가 있는데 실전상에서 명성을 떨친 문파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몇몇 문파는 실전에서 아주 이름을 날렸는데 그중 팔극권은 특히 유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 에게는 생소한 팔극권은 중국 북방의 강권에 속하는 무술중에 하나로 모양은 소박하고 화려 하지 않으나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팔극권에는 수많은 명인 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신창 이서문 (창을 잘써서 붙은이름)은 특히 유명한데 그는 키는 작고 몸은 외소 했지만 그의 공력은 대단했으며 몇백번의 결투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는 불패의 영웅으로 유명하다.
이서문은 처음에는 소림권을 배웠으나 후에 팔극권 으로 바꾸었는데 성격이 괴팍하고 고집이 심하고 싸움을 좋아해 스승이 처음에는 팔극권을 전수하기를 꺼려 했으나 그의 노력이 대단해 허락했다.
그는 시합에 있어서 한수 이상을 써본적이 없으며 그당시 에는 이서문은 한방이면 끝난다 라는 노래가 유행했을 정도 라고 한다.
이서문은 또한 수많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 했는데 곽전각 이라는 개문제자 는 청조 마지막 황제인 부의 에게 팔극권을 전수했다.
이서문의 제자 유운초는 팔괘장 또한 고수이며 그는 여러사람의 훌륭한 스승을 두었다.
그럼 팔극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팔극권은 예,방,의,고. 라는 형태의 공격법을 가지고 있으며 기공발경을 하며 단타를 위주로 하는 무술인데 금강팔식, 소팔극 ,대팔극,과 그외의 비전 기법이 있으며 이서문은 맹호경파산 이라는 비술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금강팔식중 첫번째인 충추는 가장 중요하며 옛날 사람들은 그기법만을 3년씩 수련했다고 한다.
충추와 같은 기법은 다른 무공에도 찾아볼수 있으며 이것들 역시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팔극권에는 독특한 보법인 맥보라는 것이 있으며 이것이 팔극권의 발경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요즈음음 팔극권을 익힐때 벽괘장을 함께 익히며 팔극과 벽괘를 함께 익히면 귀신도 그 기법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
또한 팔극권은 입신중정,삼반합일 등의 자세를 중요시 하며 태극권,형의권,팔괘장 등의 내가권은 기를, 소림권은 힘을 사용한다고 흔히들 얘기하나 팔극권은 기력합일을 채택하고 있다.
백학권
소림권에는 크게 북파 소림권과 남파 소림권으로 나뉜다 각각의 소림권에는 장단점과 특징이 있다.
북파는 자세가 좀더 넓으며 공중으로 도약하는 기법이 많으며 보법이 가벼우며 동물로 표현한다면 마치 독수리와 같은 형세를 띄고 있다.
그에 반해 남파는 자세가 북파보다 좁으며 "각수"보다는 "권"을 맣이 사용하며 높이 도약하는 기법은 그리 많지 않으며 철사장 및 철포삼,박수공 과 같은 외문기공을 맣이 단련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이한 무술인 남파소림 백학권은 그 창시자가 "방칠랑"이라는 여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기법이 수수하면서도 남파소림권 에서는 보기드물 게 부드럽고 "태극권"과 같은 "내가권"에서 흔히 말하는 "졸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수련하고 있다.
방칠랑은 어려서 소림18나한권을 익히고 백학의 형세를 취해 백학권을 창시했는데, 백학권에는 원래 "비학권" "명학권" "숙학권" "식학권"의 네가지 공법이 전해졌다.
백학권은 여자가 창시한만큼 "고랑보"라는 특이한 보법이 있는데 이 보법은 여자가 사뿐이 걷는데서 따온 보법으로 백학권을 익히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보법으로 알려져 있다.
백학권은 자세가 좁고 움직임이 크지 않으며 "오형수"라는 다섯가지 "기본공"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형수"는 백학권을 익히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수법이다.
오형수라는 것은 "금형수" "수형수" "화형수" "목형수" "토형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각각의 수는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이루어져 있다.
백학권을 익히는 수련자는 흔히 "철사장"이나 "철포삼" "박수공" 같은 외문기공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공법은 극히 많은 수련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백학권을 익히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이 오형수는 각 인체의 장기와 연관이 되어있어 기공으로 익히면 신체가 건강해지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백학문은 실전적인 명성으로도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는데 예전에 마카오에서 벌였던 백학문의 젊은 권법가 진극부와 오파태극권의 장문과의 공개 시합은 유명하다.
백학문은 또한 외가권으로는 참으로 드물게 태극권과 같은 추수가 있는데 이것은 아주 놀라운 수련법이 아닐수 없다.
현재 백학권은 대만의 식학권이 아주 유명하며 장문은 유은산 노사 이다.
또한 백학문 식학권의 유은산 노사는 의술로도 명망이 높은데 그 집안의 소림동인부는 집안의 가보다.
영춘권과 더불어 여자가 창시해서도 유명한 백학문은 참으로 강,유의 조화를 이룬 남파소림권이 아닐수 없다.
탄퇴
북파 소림권은 발의 사용을 중시하는 권법으로 탄퇴는 치기의 기법과 발리 움직임의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권법이다.
탄퇴는 담퇴라고도 하며 이것은 원래 회족 사이의 기본 무술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탄퇴는 기본기를 훈련하기 좋은 자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주로 일자 연무선상으로 움직이는 소림권에 이 탄퇴의 반복수련은 탄탄한 기본기를 갖출수 있기 때문이다.
담퇴는 원래 하나의 문파를 이루고 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기본을 필요로 하는 무술은 이 담퇴를 기본 과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현재 한국에 전해져 많은 우슈 도장에서 하고 있는 탄퇴와는 틀린 탄퇴이며 이것은 한번쯤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현재 한국의 탄퇴는 권의 사용을 기본으로 하고 차기로서 보완하는데 반해 중국의 탄퇴는 발의 기법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탄퇴의 기법은 초기 쿵푸 계의 원로이신 이덕강 노사가 전한 것이며 이덕강 노사는 그 문파가 태을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탄퇴의 차는 기법은 무릎관절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허리 높이까지 차 올릴수 있어야 한다.
탄퇴의 연습에 있어서 발을 찰 때 목표물에 발이 이르면 발을 그곳에 멈추고, 한발로 서있는 연습을 해야한다.
물론 실전에서는 차낸 발이 바로 원위치로 돌아오거나 다음 동작으로 옮기지 않으면 발이 상대에게 역습을 당하게 된다.
탄퇴의 차기는 처음에 발을 무릎 부근에 두고 차는 발의 발가락 끝을 앞으로 누르는 것 같은 기분으로 탄력을 넣어서 목표물에 맞춘다.
동작이 점차 익숙해지면 발 차기 동작도 상대방이 준비 자세를 간파하지 못하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탄퇴에는 중앙국술관의 십로탄퇴와 정무체육회의 십이로탄퇴 말고도 두서너종류가 있지만 소림임제정종파의 수제자인 한경당 선생의 십로탄퇴는 유명하다.
왕조원 저
쿵후무술연구회 편저
십로담퇴에서 참고하였습니다.....
흑풍도검객추신: 이거 복사입니다..
채리불가권(蔡李佛家拳)
장교대마(長橋大馬)의 남파종합권법
채이불은 상상을 뛰어넘는 권법이다. 멀고 알맞은 간격에서 뛰어 들어가는 것처럼 다가서는 걸음의 마보로 접근해서(이것을 표마라고 한다.) 눈에도 띄지 않는 빠른 속도로 팔을 휘둘러서 연속 공격한다.
일문의 구결에 [손을 내밀때 마(馬)를 앞에 표시하고, "받기가 공격이고 공격은 즉 받기 이다"라고 되어있다.
"공격 할때는 세운다리를 앞쪽으로 날려서 공방일체로 연속 공격하라"는 뜻이다.
(마란 세운 다리를 교란 팔을 뜻한다.) 이문파는 몸이 부드러운 소년시대부터 그 독특한 기초훈련을 쌓지 않으면 진전을 체득할 수 없다.
통설에서는 채가의 권, 이가의 각, 불가의 장을 합친 권법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개조인 진형(1806~1875) 은 광동성 신회현의 사람으로 어릴 때 부터 천분을 발휘해서 17세로 최초의 스승인 동향의 숙부 진원호로 부터 오의를 전부 전해받은 다음, 이우산 노사에게 사사했는데, 여기서도 겨우 4년간에 모든 것을 배워 체득하고, 다시 이 스승의 소개장을 가지고 나부산에 은거하는 소림승 채복선사를 찾아가 8년간 권법과 불교 철리의 교육을 받고 귀향한 후 2년간에 걸쳐서 권법을 정리하고 형을 평성 하며, 연습과정을 정해서 도광16년(1836년) 채이불파를 창시한 것이다.
그리고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 등의 동란기에 청조정부의 징용을 피해서 남해, 순덕 및 중산등을 전전하면서 권법을 널 리펴고, 삽추의 일격에 들어있는 기합 지르는 방법에 의해서 동방의 증거를 나타내는 암호로 삼도록 했으며,최초의 제2차대전기까지 일문에서 여러 지사를 배출했다.
서림문화사 쿵푸교본에서 발췌...
* 무협에서 흔히 쓰는 오행(五行)에 대한 고찰 *
오행(五行) 목 화 토 금 수
방위(方位) 동 남 중앙 서 북
계절(季節) 봄 여름 늦여름 가을 겨울
오곡(五穀) 보리 콩 찰기장 마 메기장
오기(五氣) 풍기 서기 습기 조기 한기
시간(時間) 아침 한낮 오후 저녁 밤중
반응(反應) 탄생 성장 변화 수확 저장
맛 (味)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소리 (聲) 각 치 궁 상 우
색깔 (色)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오관(五官) 눈 혀 입 코 귀
오장(五臟) 간장 심장 비장 폐 신장
육부(六腑) 담 소장 위 대장 방광
신체(身體) 근육 혈맥 살 피부,털 뼈
정서(情緖) 분노 기쁨 근심 슬픔 두려움
소리 (聲) 부르는소리 웃는 소리 노래 소리 곡하는소리 신음 소리
맥 (脈) 현맥 홍맥 유맥 부맥 침맥
* 팔괘(八卦)에 대한 고찰 *
일원(一元) 태극(太極)
양의(兩儀) 양(陽) 음(陰)
사상(四象) 태양(太陽) 소음(少陰) 소양(少陽) 태음(太陰)
팔괘(八卦)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자연(自然) 하늘(天) 연못(澤) 불(火) 우레(雷) 바람(風) 물(水) 산(山) 땅(地)
속성(屬性) 강건하다 기쁘다 걸리다 움직이다 들어가다 빠지다 그치다 순응하다
(健) (說) (麗) (動) (入) (陷) (止) (順)
가족(家族) 아버지 막내딸 가운데딸 큰아들 큰딸 가운데아들 막내아들 어머니
신체(身體) 머리(首) 입(口) 눈(目) 발(足) 넓적다리(股) 귀(耳) 손(手) 배(腹)
방위(方位) 서북 서 남 동 동남 북 동북 서남
* 태양 : 양성이 강한 존재
소음 : 외면은 양성이나 내면은 음성인 존재
소양 : 외면은 음성이나 내면은 양성인 존재
태음 : 음성이 강한 존재
*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 대한 고찰 *
하도와 낙서의 의미 : 황하(黃河)에서 도(圖)가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서(書)가 나왔다는 뜻
하도는 용마(龍馬:날개가 달린 전설의 동물)의 날개 아래에서 발견되었고,
낙서는 거북의 등딱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불규칙적인 그림인지라 그림을 그려 설명할 수는 없으나
하도는 하얀 동그라미는 홀수로서 양을 표상하고,
검은 동그라미는 짝수로서 음을 표상한다.
이것은 각기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5와 10이 사각형을 중심으로 1과 2, 3과 4가 안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1과 6, 2와 7, 3과 8, 4와 9, 4와 10이 각기 짝을 이룬다.
즉 각 방위별로 음수와 양수가 마주보고 있다.
오행의 측면으로 보면,
가운데(中)을 상징하는 土를 중심으로 음인 水와 양인 火, 음인 金과 양인 木이 마주본다.
이와 같은 음양대대(陰陽對待)의 중층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상이다.
하도를 변화의 측면에서 보면 1과 6이 水에서 시작하여
목 --> 화 --> 토 --> 금 --> 수 의 상생(相生)하는 순환운동을 상징한다.
낙서를 하도와 같은 방법으로 살펴보면
1과 9, 2와 8, 3과 7, 4와 6과 같이 홀수는 홀수끼리, 짝수는 짝수끼리 서로 마주보고 있다.
같은 양이나 음끼리이기 때문에 서로 밀어내는 부조화의 관계이다.
그리고 오행으로 보면
수 --> 화 --> 금 --> 목 --> 토 라는 상극(相剋)의 순환운동을 상징한다.
하도와 낙서를 정리하여 보면
하도는 음양의 조화와 상생을 상징하고
낙서는 음양의 부조화와 상극을 상징한다.
조화와 상생은 양에 속하고 부조화와 상극은 음에 속한다.
따라서 하도와 낙서는 음양관계에 있게 된다.
하지만 하도를 운동의 측면이 아니라 구조 측면에서 보면
북의 1, 6 水와 남의 2, 7 火, 동의 3, 8 木, 서의 4, 9 金은 상극관계이다.
낙서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동남방의 4, 9 金과 서북방의 1, 6 水, 동북방의 3, 8 木, 서남방의 2, 7 火는 상생관계이다.
즉, 하도와 낙서는 상생상극을 동시에 머금고 있다.
이것은 양 속에 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다는 음양논리를 상징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수는 주역에서 말하는 천지지수(天地之數)와 맥락을 같이 한다.
1, 3, 5, 7, 9는 하늘이고, 2, 4, 6, 8, 10은 땅의 수이다.
하늘의 수의 합은 25가 되고, 땅의 수를 모두 합하면 30이 된다.
다시 말해 홀수는 양의 수이고, 짝수는 음의 수에 해당한다.
천지지수는 음영의 관념이라는 주역 근본 관념을 수로 상징한 것으로, 이것이 자연의 변화 현상을 해석하고 귀신을 부릴 수 있는 근거이다.
음?! 육단 취권?재미있겠네요? 따라하시고 싶음 하세요..
*육단 취권
육단중 가장 중요한 제1단을 소개합니다.
준비자세를 취하라. 양다리를 곧게 뻗고 두발은 모은다.
양팔은 몸의 양쪽에 내리고 손가락은 모아서 양쪽 허벅지
바깥쪽에 붙인다.
- 시선은 전면. 어깨힘 뺀다.
제 1 식 허보차장
오른발을 보통걸음으로 앞으로 내딛고 양손을 양 옆에서
팔꿈치를 굽혀 가슴 앞까지 들어올린 다음 손등을 마주
붙인다. 이 때 손가락 끝은 몸쪽을 향한다.
위의 동작에 이어 양 손을 가슴 앞에서 아래로 내려 팔을
펴서 양 옆으로 비스듬히 팔자 형으로 든다. 이 때 손바
닥은 비스등히 아래를 향하게 하고 엄지는 바깥쪽이 앞을
향한다. 오른발은 움직이지 않고 왼발은 앞으로 한 걸음
내밀어 앞 발바닥만으로 지면을 살짝 딛는다.
위의 동작에 이어 오른쪽 다리의 무릎을 절반 굽히고 왼
발의 무릎도 절반 굽히며 체중을 오른쪽 다리에 실어
'우실좌허보' 자세를 취한다. 양 손은 양무릎을 굽힘과
동시에 팔꿈치를 굽혀 가슴 앞까지 들어올린 다음 손목을
젖혀 세우고 양팔의 손목을 교차시킨다. 이 때 오른손은
바깥, 왼손은 안쪽에 두며 양 손의 약지 바깥쪽은 앞을,
손가락 끝은 위를 향하게 하며, 눈은 전면을 응시한다.
- 오른발을 내딛고 왼발은 내미는 동작은 양 손의 팔꿈치
를 굽혀 들어올리고 팔을 펴 양쪽으로 비스듬히 뻗는
동작과 일치해야 한다.
- 우실좌허보의 자세 때 오른쪽 무릎은 직각으로 꺽고 왼
발은 앞 발바닥만 지면에 살짝 댄다. 양 팔꿈치는 수평
을 이루어야 하며 양손 손가락 끝의 높이는 어깨와 같
게 한다. 양 팔은 둘글게 원을 그리듯하고 어깨의 힘은
뺀다.
제 2 식 제슬독립쌍구수
양 손바닥을 가슴 앞에서 위로 올린 다음 양측으로 팔을
뻗어 호선을 그리며 분리시킨다. 양 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리면 오지(다섯 손가락)를 모아 구수를 만들고 구
수끝이 아래로 향하게 한다. 이어 오른쪽 다리를 길게 뻗
어 서고, 왼쪽 다리를 무릎을 굽혀 몸 앞으로 들어올려
발 바닥을 편다. 고개는 왼쪽으로 돌리고 눈은 좌측을 응
시한다.
-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완전히 펴야하고, 왼발 발바닥은
오른쪽 무릎 상방에 가까이 붙인다. 양 어깨는 뒤로 약
간 펴고, 양 구수는 어깨보다 약간 높게 한다. 상체는
똑바로 세우고 오른쪽 다리는 비틀거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제 3 식 병보악권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눈은 전면을 응시하는 동시에,왼
발을 앞으로 내리고 무릎을 굽힌다.
위의 동작에 이어 오른발을 앞으로 한 걸음 내딛고 무릎
을 굽힌다. 왼쪽 다리는 뒤에서 곧게 뻗는다.
위의 동작에 이어 오른쪽 다리를 곧게 뻗고 왼발은 뒤에
서 앞으로 당겨 오른발과 나란히 붙여 모은다. 양 다리는
필히 곧게 뻗고 발끝은 모두 밖으로 벌린다.
차렷 자세로 선 후 양 구수를 주먹으로 바꾸어 불끈 쥐고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게 한다.
- 왼발을 앞으로 내딛을 때 먼저 고개를 전면으로 돌린다.
- 양 발을 모아 선 후 양 다리를 한데 붙여야 하며, 상체
는 가슴과 등을 펴고 배는 오므리며 양 어깨는 약간 낮
춘다. 두 주먹은 불끈 쥐며 손등과 팔은 일직선이 되게
한다.
제 4 식 병보쌍분장
두 주먹을 펴서 장(손 편 상태)으로 바꾸어 좌우에서 양
측 아래로 내린 후 몸 앞으로 팔꿈치를 굽히며 들어올려
가슴 앞에서 양 팔을 교차시킨다. 이 때 오른 팔은 바깥
쪽 , 왼 팔은 안쪽에 두고 손가락 끝이 모두 위를, 약지
바깥쪽은 모두 전면을 향하게 한다.
위의 동작에 이어 쌍장(양 손바닥)을 가슴 앞에서 위로
올린다음 양쪽으로 팔을 뻗어 어깨 높이까지 호선을 그리
며 돌려내리고 손가락 끝이 위를 행하게 한다. 고개는 왼
쪽으로 돌리고 눈은 왼손을 응시한다.
- 몸을 바로세우고 어깨는 약간 떨구며 손가락 끝은 눈섭
높이와 같게 한다.
제 5 식 제슬독립짐주세
우장은 손목을 곧게 하여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게 한 다
음 오른쪽에서 앞으로 팔을 뻗어 수평이동을 시킨다. 전
면에 이르면 팔꿈치를 굽혀 우장을 가슴 앞으로 수평이동
을 시키는 동시에 좌장도 손목을 곧게 펴 손바닥이 아래
를 향하게 한 다음 왼쪽에서 팔꿈치를 굽히며 아래로 내
린 후 복부 앞으로 돌려가고 팔을 안으로 틀어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한다. 이 때 쌍장은 손바닥이 몸 앞에서 상
하로 마주본다.
위의 동작에 이어 왼발 앞 발바닥을 축으로 삼아 상체를
왼쪽 뒤로 돌린다. 오른발은 지면에서 떼어 몸과 함께 돌
다가 상체가 270도 정도 돌았을 때 무릎을 굽혀 왼쪽 무
릎 앞으로 돌며 발바닥을 편다. 우장은 상체가 왼쪽 뒤로
돌기 시작할 때 팔을 안으로 틀고 팔꿈치를 굽혀 어리 위
로 들어올려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한다. 상체가 회전하
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몸 뒤로 내려 다시 오른쪽으로
팔을 뻗어 수평이동을 시키며 손바닥은 시종 위를 향하게
한다. 좌장은 상체가 왼쪽으로 돌기 시작할 때 앞으로,
위로, 다시 몸의 좌측으로 팔을 뻗어 어깨 높이까지 돌려
내린다. 상체가 돌 때 좌장도 함께 돌리며, 손바닥은 위
를 향한다.
위의 동작에 이어 상체가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돌았을 때
우장은 오른쪽에서 계속 몸 앞으로 평행이동시켜 몸 앞에
이르면 팔꿈치를 굽혀 오른쪽 옆구리 옆으로 가져 가고
손바닥은 여전히 위를 향한다. 이 때 좌장은 팔을 안으로
틀고 엄지 바깥쪽이 위를 향하게 하여 엄지로 벌리고 나
머지 사지는 약간 굽힌다. 눈은 왼손을 응시한다.
위의 동작에 이어 상체를 남쪽으로 돌리고 오른발을 왼발
옆에 내리며 다리를 곧게 뻗어 선다. 왼발은 몸을 돌림과
함께 앞으로 차올리며 발끝을 위로 젖히며, 무릎은 곧게
뻗는다. 동시에 왼손은 엄지만 굽히고 나머지 사지는 한
데 모아 펴며 엄지 바깥쪽이 위를 향하게 한다. 눈은 좌
장을 응시한다.
위의 동작에 이어 왼쪽 다리의 무릎을 굽혀 몸 앞으로 들
어올리고 발바닥을 편다. 동시에 좌장의 중지, 무명지,
약지를 굽히고 식지와 엄지는 끝을 서로 붙여 원형상태
를 만들어 술잔을 쥔듯한 자세를 취한 다음 약지 바깥쪽
이 아래를 향하게 하여 팔꿈치를 굽혀 왼손을 가슴 앞으
로 가져간다. 이어 우장은 오른쪽 옆구리 옆에서 뒤로,
위로 팔을 뻗어 반원을 그리며 돌리다 머리 위에 이르면
팔꿈치와 손목을 굽혀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게 한다. 오
를손의 무명지와 약지는 굽히고 엄지는 밖으로 벌리며 식
지와 중지는 나란히 붙여 아래의 왼손을 가리킨다. 눈은
전면을 응시한다.
- 앞에 서술한 분해동작은 필히 연결해서 진행해야 한다.
- 우장을 머리 위로 돌려올리는 동작과 좌장을 움직이는
동작은 몸을 돌리는 동작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 다리를 앞으로 차온릴 때 다리의 높이는 허리보다 약간
높게 하고 차올린 즉시 무릎을 굽혀 몸 앞으로 들어올
린다.
- 왼손으로 술잔을 쥔 모습을 취할 때 필히 엄지와 식지
는 원형이 되게 굽힌다. 다음에 또 이런 형태의 자세가
나오면 간단하게 '악배권' 이라 칭한다.
- 무릎을 든 후 오른쪽 다리는 곧게 뻗어야 하며 왼쪽 다
리는 최대한으로 무릎을 굽혀 높이 들어올리며, 비틀거
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제 6 식 부신탐해단주세
오른손을 우장으로 바꾸어 위에서 오른쪽으로, 아래로 팔
을 뻗어 포물선을 그리며 돌리다 하단에 이르면 팔꿈치를
굽혀 몸 앞에서 왼 팔 안쪽을 통해 위로 찔러내고 손가락
끝이 왼쪽을, 손바닥은 위를 향하게 한다.
위의 동작에 이어 우장을 계속 앞으로, 오른쪽으로 팔을
뻗어 수평이동을 시킨다. 이와 한께 오른발 앞 발바닥을
축으로 삼아 상체를 오른쪽으로 돌려 서쪽을 향한다. 왼
쪽 다리와 '좌악배권'은 몸을 따라 돈다.*악배권은5장에*
위의 동작에 이어 우장의 팔을 안으로 틀고 손바닥이 아
래로 향하게 하여 아래로, 몸 뒤로 팔을 뒤집어 들어올리
고 오지를 한데 모아 구수를 만들며 구수끝이 위를 향하
게 한다. 이와 함께 상체는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앞으로
눕힌다. 동시에 왼쪽 다리는 몸 뒤로 들어올려 발등을 펴
고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한다. '좌악배권'은 여전히 팔
꿈치를 굽혀 몸 앞에 두어 마치 물속에 뛰어들듯한 평형
자세를 취한다.
- 상체를 앞으로 숙여 지면과 평행이 되게 할 때 가슴을
펴고 머리를 위로 들며 오른쪽 다리는 곧게 뻗어서서
비틀거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야 하며, 왼쪽 다리는 뒤
로 높이 들어올린다.
제 7 식 앙신질
상체를 왼쪽에서 뒤로, 위로 뒤집어 돌리고 그 여세에 따
라 오른발 뒷꿈치를 밖으로 벌려 서쪽으로 돌린다.
위의 동작에 이어 상체를 등이 지면에 닿도록 뒤로 자빠
지고 오른쪽 다리의 무릎을 굽히며 왼쪽 다리는 위로 차
올려 발끝을 젖힌다. 우 구수는 상체가 땅에 누울 때 우
장으로 바꾸어 상체 우측으로 팔을 뻗으며 손바닥을 지면
에 붙인다.
- 몸을 뒤집고 뒤로 자빠지는 동작은 연결해서 이루어져
야 한다. 뒤로 자빠질 때 땅에 눕는 동작은 오른쪽 다
리의 무릎을 굽히는 동작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뒷
골이 지면에 닿지 않게 고개를 위위 드는 것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제 8 식 이어타정
위의 동작에 이어 오른쪽 다리를 곧게 뻗으며 들어올려
왼쪽 다리와 가지런히 모은다. 양 발 발등은 펴고 발바닥
이 위를 향하게 한다. '좌악배권'은 좌장으로 바꾸어 우
장과 함께 팔꿈치를 굽혀 양 무릎 앞에 붙인다.
양 다리를 아래로 내리치며 그 탄력을 이용하여 허리와
배를 튕겨 상체를 일으킨다.
- 양 다리를 아래로 때릴 때 양 다리를 약간 벌리고 그
넓이가 양 어깨보다 넓으면 안된다. 양 다리를 아래로
때리는 동작과 상체를 일으키는 동작은 동시에 이루어
져야 한다.
*** 출처 : KITEL 무림 동호회
■벽괘권(劈掛拳)
벽괘권은 일명 벽괘장으로 불리운다.
벽괘권은 한국에 팔극권이 유명해 지면서 더불어 유명해진
권술이 되었다.
벽괘권은 권술을 마치 채찍과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원거리를
주로 하는 공격법을 사용한다.
벽괘권은 몸을 부드럽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하며 이것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벽괘권의 공격법을 능히 발휘할수 없다.
벽괘권은 팔극권가 마찬가지로 하북성의 창주 지역에서 전승된것
으로 팔극권과 더불어 창주의 양대 무공으로 유명하다.
벽괘권은 팔극권 달인을 계기로 유명해졌으며 팔극권을 가르칠때
벽괘권을 함께 가르침으로써 세상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또한 마영도와 같은 유명한 팔극권사 덕분에 더욱더 유명해 지게
되었다.
그후에 벽괘권은 중국국술관에서 정식 종목이 되었으며 팔극권,태극권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급무술이 되었다.
현재는 중국전역에서 익히고 있으며 동남아에서도 그 인기가 높다.
벽괘권은 상대의 움직임을 관할하여 빈틈이 생기면 바로 공격해 들어
가며 상대의 빈틈을 선수쳐 움직임으로서 실전에서 의 이기기 위힌 전투
원리이다.
또한 벽괘권은 모든 무술의 뿌리라고 할수 있는 기본자세가 없으며 이것은
중국무술에서도 가장 특이할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벽괘장이 자세이 변화가 심하고 움직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자세에 의한 기법이 그 이유라 할수 있겠다.
벽괘권은 다른 무공과는 다르게 몸의 유연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것은 팔을 길게 휘두르며 빠르고 강하게 휘두르기 위함이며 보다 장법을
강하게 하기 위한 필수 수련 연습법이다.
벽괘권은 방장격원, 유새추편, 합여복보, 발력기행, 상하전작, 합이즉개,
대개대합, 세맹신유 등과 같은 이념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투로는 3단계로 구분된다.
벽괘권은 장을 기초로 한 여러가지 기본 기법을 수련해야 하며 후에 자신이
자연스러운 몸속에서 순발력에 의한 기법들이 나올수 있도록 충실히 연습해야
한다.
무기부문이군요.
사실, 전 보는 즉시 그냥 복사해서 무기인지 무공인지 ...
알아서들 판단해주시길..
■벽괘권(劈掛拳)
벽괘권은 일명 벽괘장으로 불리운다.
벽괘권은 한국에 팔극권이 유명해 지면서 더불어 유명해진
권술이 되었다.
벽괘권은 권술을 마치 채찍과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원거리를
주로 하는 공격법을 사용한다.
벽괘권은 몸을 부드럽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하며 이것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벽괘권의 공격법을 능히 발휘할수 없다.
벽괘권은 팔극권가 마찬가지로 하북성의 창주 지역에서 전승된것
으로 팔극권과 더불어 창주의 양대 무공으로 유명하다.
벽괘권은 팔극권 달인을 계기로 유명해졌으며 팔극권을 가르칠때
벽괘권을 함께 가르침으로써 세상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또한 마영도와 같은 유명한 팔극권사 덕분에 더욱더 유명해 지게
되었다.
그후에 벽괘권은 중국국술관에서 정식 종목이 되었으며 팔극권,태극권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급무술이 되었다.
현재는 중국전역에서 익히고 있으며 동남아에서도 그 인기가 높다.
벽괘권은 상대의 움직임을 관할하여 빈틈이 생기면 바로 공격해 들어
가며 상대의 빈틈을 선수쳐 움직임으로서 실전에서 의 이기기 위힌 전투
원리이다.
또한 벽괘권은 모든 무술의 뿌리라고 할수 있는 기본자세가 없으며 이것은
중국무술에서도 가장 특이할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벽괘장이 자세이 변화가 심하고 움직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자세에 의한 기법이 그 이유라 할수 있겠다.
벽괘권은 다른 무공과는 다르게 몸의 유연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것은 팔을 길게 휘두르며 빠르고 강하게 휘두르기 위함이며 보다 장법을
강하게 하기 위한 필수 수련 연습법이다.
벽괘권은 방장격원, 유새추편, 합여복보, 발력기행, 상하전작, 합이즉개,
대개대합, 세맹신유 등과 같은 이념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투로는 3단계로 구분된다.
벽괘권은 장을 기초로 한 여러가지 기본 기법을 수련해야 하며 후에 자신이
자연스러운 몸속에서 순발력에 의한 기법들이 나올수 있도록 충실히 연습해야
한다.
일월건곤도(日月乾坤刀)
이건 매우 희귀한 무기로서, 남파소림문에서 쓰이는 희소병기입니다. 길이는 1.5미터에서 2미터 정도이며, 설명하기에도 매우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좌우대칭이며, 양 끝에는 약 30센티의 낫처럼 굽은 칼날이 있어, 폭 5센티 정도의 나무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그 손잡이에 월아(月牙)가 두 개 달려 있습니다. 기법(技法)으로는 벽(劈), 도(挑), 재(載), 추(推), 참(斬) 등이 있으나 그 실제 모습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름의 유래를 살펴 본다면 '일(日)'은 양 끝에 달린 낫모양을 한 칼날, '월(月)'은 손잡이 부근에 위치한 월아(月牙)를 가리킵니다. 또한 '건곤(乾坤)'이란 천지(天地)와 음양(陰陽) 등의 의미가 있어 좌우가 채팅인 형태에서 왔다고 생각됩니다.
불진검(拂塵劍)
일명 팔선순양검(八仙純陽劍)이라고 하지만, 이는 무기의 이름이 아닌, 품세의 명칭입니다. 오른손에 검을 들고, 왼손에 불진검을 듭니다. '불진(拂塵)'의 길이는 30~40센티인 봉 끝에 말총이 달려 있습니다. 그 끝 부분으로써 뿌리치고, 휘두르고, 그리고 무기를 휘어감는 등 공격의 보좌적 동작을 합니다.
요대검(腰帶劍)
요대검(腰帶劍)의 모양은 일반적인 검(劍)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저 손잡이가 보통 검보다 짧아, 약 10센티 정도 밖에 안됩니다.
요대검(腰帶劍)의 특징은 역시 검을 허리띠처럼 허리에 감을 수 있으며, 나아가 허리에 감은 채로 검을 뽑을 수가 있습니다. 즉, 남몰래 검을 허리에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뽑아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살에 쓰이거나 무술가가 여행을 떠날 때 짐이 많아지지 않도록 감편한 요대검(腰帶劍)이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옆으로 들면 휘어지는 칼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겠지요.
건곤대나이와 천마해체대법
'건곤대나이' (乾坤大那移)는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지독한 무공이고, '천마해체대법' (天魔解體大法)은 양우생의 <운해옥궁연>에 나오는 사파의 무공이다.
괴이한 이름을 가진 이 두 무공은 그렇다고 김용과 양우생이 창안해 낸 것은 아니다. 40여 년 전 환주루주의 작품 속에서 '건곤대나이'와 '천마해체대법'은 모두 신이한 법술의 일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무공은 아니었다. 그런데 김용과 양우생 이 두사람의 붓끝에서 한 차례 개조를 거쳐 대단히 지독하고 무시무시한 무공심법으로 변해 버렸다.
김용이 묘사하고 있는 '건곤대나이'는 명교에서 대대로 전승되어 오는 그 위력이 대단한 무공심법이다. 그 근본 원리는 이렇다. 먼저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올린 후 그것을 적의 힘으로 옮기는 것으로, 말하자면 힘으로 힘을 치는 것이고 적으로 적을 공격하는 무공이다. 적을 제압하는 효력이 신기에 가깝다. <의천도룡기>에서 장무기는 이 무공심법을 배운 후, 광명정에서 6대 문파 고수들과 겨룰 대 이 무공으로 '정양의검법'과 '반양의도법'을 사용하는 곤륜파와 화산파의 4대 고수를 이리저리 가지고 논다. 4대 고수들은 본래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장무기를 향해 초식을 전개했는데, 장무기는 어느새 그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결국은 4대 고수가 자기들 끼리 치고 받는 볼상 사나운 장면을 연출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 뒤 장무기가 중상을 입고 몸이 무기력해졌을 때도 이 건곤대나이의 묘법을 빌어 송청서의 주먹과 발길질 속으로 자신의 힘을 옮겨 송청서가 전개한 '화개병체' 라는 1초 4식을 고스란히 그 자신의 몸으로 돌려 보냄으로써 송청서가 자신의 얼굴을 자신이 때리고 자신의 혈도를 자신이 찍게 했다. 실로 신기하고도 불가사의한 무공심법이 아닐 수 없다.
환주루주의 <촉산검협전>에 나오는 '건곤대나이'는 본래 이동하는 대상이 적의 힘에 그치지 않고 주변의 지형과 지세, 산천초목, 사람, 집 등에까지 미친다. 정말이지 하늘과 땅을 옮기는 이름 그대로 신선의 묘법이다. 이 신선묘법의 전체 이름은 '전도건곤오행나이대법' 이다. 이 대법은 산을 옮길 수도 있는, 그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이산축지'니 '이형환신'이니 하는 것들은 '전도건곤오행나이대법' 과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같은 것이다. 모두가 천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신선의 묘법이다.
김용은 교묘하게 '건곤대나이' 이란 이름을 따다가 위력이 대단한 무공심법으로 개조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이 무공심법은 기묘하고도 생기가 넘치는 것이 원래의 신선묘법보다도 더 보기 좋다.
양우생은 <운해옥궁연> 에서 <촉산검협전>에 나오는 '천마해체대법' 을 개조하여 지독한 사파의 무공으로 변모시켰다.
<촉산>에서는 '천마해체대법'을 연마하려면 먼저 이성과 한번도 교접을 거치지 않은 동정의 몸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 꼭대기에서 서방을 향해 36일 동안 연마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36일 동안은 어떠한 요귀가 정신을 혼란케 하더라도 절대 움직여서는 안된다. 초일섭은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심기를 흐리는 바람에 전에 있던 무공까지 모조리 잃고 말았다.
이 마법은 수련에 성공하면 물, 불, 바람을 마음대로 뿜을 수 있게 된다. 단 수련자른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양우생은 '천마해체대법' 이란 이름을 따고 또 이 마법을 운용하는 자는 반드시 목숨을 잃고 만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 위력이 독랄한 무공을 창조해냈다. 이 독하고도 괴이한 사파의 무공은 적과 동시에 죽으려고 할 때 사용하는 것이 되었다. 이 무공을 사용하면 혀끝을 깨물어 피를 내어 온몸의 힘을 모조리 한데 모아 죽을 힘을 다해 일격을 가하는 거인데 그 위력이 평상시보다 3배는 더하다.
<운해옥궁연>의 여승남은 이 사파의 무공을 전개하여 당대의 무림 제일 고수 당효란을 물리친다. 그러나 그 자신도 온몸의 기력이 다 빠지고 지독한 내상을 입어 죽고 만다.
신파 무협소설가들은 구파 무협소설가들이 남겨 놓은 '무기창고'에서 적지 않은 무기를 찾아내어 무공으로 발전시켰다. 위에서 이야기해 온 '건곤대나이' 와 '천마해체대법' 이 그 좋은 예다.
이 밖에 '쌍검합벽', '신검합일', '주화입마', '금잠고독', '금강불괴신법' 등과 같은 이름과 그에 대한 묘사도 신구 무협소설에서 모두 비슷하게 나타난다. 동굴 석벽에서 절세의 무학도를 발견하여 무공이 크게 증진하고 그리하여 무림에 이름을 날렸다는 내용도 신구 무협소설에 흔히 보이는 이야기이다
신파 무협소설과 구파 무협소설은 본래 뚜렷이 구분되는 경계선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계승발전의 관게로 양자 사이에는 대단히 깊은 뿌리가 존재한다. 따라서 무림의 기이한 인연과 만남 및 복수의 대결, 다양하고 기이한 무기와 다채로운 무공 초식이란 면에서는 신파나 구파가 모두 크게 다를 바 없는 서술을 보여 준다.
그러나 신파 무협소설은 이야기의 주변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능숙하고 또 인물의 심리묘사도 뛰어나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다. 또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기복이 심하고 변화가 많은 것이 구파 무협소설이 미치지 못한다. 신파 무협소설의 '신(新)' 자는 새롭게 구파 무협소설의 진부한 언어를 떼어내고 새로운 문예수법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구사하고 사건을 전개한다는 뜻 외에도, 구무협소설에 나오는 무공과 초식을 개조하여 새롭게 창조했다는 뜻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신' 자의 의미는 한결 빛난다.
↗
이건 무공입니다. 죄송.
계속 무기나갑니다.
십팔반병기(十八般兵器) ─
십팔반 병기라는 것은 무학의 기본이 되는 무기를 말하는데 어느 것이 십팔반 병기인가는 정확하지는 않다.
십팔반 병기에 대한 최초의 기술은 수호전의 구문룡 사진편에 나온다. 그곳의 기재에 의하면 십팔반 병기란 모(창), 추(철퇴), 궁(활), 노(석궁), 총, 편(채찍), 강(쇠막 대), 검, 련(쇠사슬), 진(총채), 부(도끼), 월(큰 도끼), 과(꺽창), 극(쌍날창), 패 (방패), 봉(몽둥이), 봉(창), 파(갈고리)의 열여덟 가지의 무기를 말한다. 이 십팔반 병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설은 없다.
十八般兵器(십팔반병기)란?
쿵푸를 칭하기를 십팔반무예라 한다 宋代9송대) 문헌을 보면 弓(궁),弩(노), 槍(창), 刀(도), 劍(검). 矛(모), 盾(순), 斧(부), 鉞(월), 戟(극), 鞭(편), 간, 과, 수, 차, 파, 套索(투색), 白打(백타), 를 이른다 했으며 이외에도 문파나 지역에 따라서 곤,봉,당,구,삭,괴,저,련,권,비수,유성,팔관필 등 외에도 수 많은 병기가 있다.
이를 크게 나누면 구장구단이라 하여 기마병의 장병기와 보병의 단병기로 나누어 군사작전에 이용하였으며 많은 전투와 시대에 따라 발전 했으며 인류의 생존을 위한 전투문화의 유산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많은 신무기의 발전을 전통 무기술은 많이 쇠락 되었으나 쿵푸 수련자들은 권법의 이치와 무기술의 이치가 일맥 상통하니 상승 무공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면 병기술을 등한시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槍(창)
창은 장병기이며 백병기 중의 왕이라 했으며 찰을 위주로 란과 나로서 보조 하여 기술을 쓰며 변화무궁하며, 움직임은 번개와 같고 기세는 용이 움직이는 것 같다 구결에 보면 나아감은 용이 나르고 움직음은 뱀의 형세요 찌르고 거둠은 바다가 뒤집히는 것 같다 하였다.
또한 몸은 활이요 창은 화살이라 나아감은 바람과 같고 걷우움은 종적이 없다 하여 창은 유룡과 같다고 이른다.
棍(곤)
곤은 장병기이며 백병기의 조상이라 했으며 구하기 쉽고 사용하기 용이하다 곤은 손의 연장이며 휘두름, 내리침,휘감기등 다양한 기술을 쓰며棍打一大片(곤타일대편)이라듯 일타에 쪼개는 기세를 가지고 쾌속하며 폭팔력을 가지고 용맹 강력한 기세를 가지며 맹호가 동굴에서 튀어나온 형세라 했다.
刀(도)
도는 단병기이며 고대 전쟁시 창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 됐으며 용맹쾌속함을 위주로 하며 맹호의 기세로 본다 강한 경력과 순발력등을 요구 하며 쪼개고, 자르고, 찌르는등 다양한 기술을 쓰며 구결에 이르길 기세는 산하를 삼키듯 강맹하고, 움직임은 바람이 구름을 가르듯 하며 도의 흐름은 검다 했듯이 질풍노도의 위력을 같는다
雙刀(쌍도)
쌍도는 外門(외문)병기이며 그 쓰임은 도와 같으나 도의 단점을 보완하며 일설로 明代(명대)에 일본의 왜구들이 쓰는 일본도에 대응 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劍(검)
검은 단병기이며 백병기중에 군자라 했으며 그 움직임은 구름을 헤치는 용과 같고 수풀을 헤치는 호랑이와 같다 했으며, 검은 飛鳳(비봉)에 비유 된다.
찍고,베고,흘리고,튕기며 다양한 기술들이 있으며 경쾌하고 부드럽게 바람과 같이 신속히 사용한다.
三節棍(삼절곤)
삼절곤은 외문병기에 宋太祖(송태조)가 발명 했으며 蟠龍棍(반용곤)이라 불렸으며 장병기의 장점과 단병기의 장점을 갖추어 곤의 쓰임과 도의 쓰임을 고루 갖추었다
勾(구)
구는 단병기이며 明末(명말)에 竇二童(두이동)이 발명했으며 생김이 기묘해서 기문병이라 한다 도,창,검,월 등의 특성에 갈구리 특성이 배합된 살상력이 강한 병기이며 손과 팔굽의 변화에 따라 영묘하고 섬전같이 사용한다 또한 호수구라 칭한다.
鞭(편)
편은 외문병기며 연병기이다 마디의 숫자 따라서 구절편 등으로 불리며 사방팔방을 후리고 찍고 하며 영활하고 쾌속히 움직이며 몸에 지니기 간편하여 개인병기로 선호 한다.
拐(괴)
괴는 단병기이며 拐子(괴자)라 하여 중국 지팡이의 일종이며 곤과 갈쿠리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손의 기술에 따라 만가지 기술을 타나내며 한번 되돌리면 사람이 없다 하여 전쟁시 보다는 개인 병기로 선호 됬으며 현재 미국에서는 경찰 호신용구로 사용된다.
大刀(대도)
대도는 장병기며 春秋大刀(춘추대도), 靑龍刀(청룡도)라고도 하며 기세는 용맹 쾌속하며 구결에 이르길 한번 떨치면 백리의 모래가 휘날리고, 한번 뒤집으면 乾坤(건곤) 진동한다고 했다.
삼국지의 관우가 사용했으며 전쟁시 기마병기이다.
盾(순)
盾(순)은 방패를 말하며 전쟁용 방어 장비로서 단독으로 쓰임 보다는 도와 병합되서 사용 됬으며 무거운 철기보다는 대나무 같은 종류의 가벼운 자료로 구성되어서 사용 됬다.
육혼망(戮魂芒) ─
혼을 도륙내는 암기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암기의 일종. 사천 당문의 독문 암기
매화수전(梅花手箭) ─
깃대에 매화를 수놓은 손으로 쏘는 짧은 화살. 암기의 하나로 표창과 비슷하다.
단혼사(斷魂沙) ─
혼을 끊는 모래라는 뜻의 독모래 암기로 당문 비전이다. 피부에 닿기만 해도 썩어들어가 절명하는 무서운 암기이다.
낭아봉(狼牙棒) ─
봉 중에서는 "낭아봉" 이라고 하는것이 있는데. 이것은 봉에다가 날카로운 칼날같은 것을 촘촘히 박아넣은것이다. 이 낭아봉은 때리는 충격과 아울러서 찔리는 타격을 동시에 줄 수 있어서 의외로 많이 쓰이는 무기이다. 특히 연검이나 검과 싸울때에 절대적인 무기의 우세를 점할수 있으며 낭아봉의 가시에다 독이라도 발라놓았다면 상당히 위협적인 무기
의천검 (倚天劍)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에 등장하는 검으로 현철(玄鐵)로 주조 되었으며 내부엔 천하무적의 구음진경 (九陰眞經)이 숨겨져 있다.
암연소혼장(暗然銷魂掌)
김용의 소설 《신조협려(神 俠侶)》의 주인공 양과가 절정곡(絶情谷) 단장애(斷腸崖)에서 소용녀와 16년간의 이별의 아픔을 겪으며 창안해낸 것이다. 수련할 당시 소용녀를 그리워하는 맘으로 바닷가에 멍하니 오랜시간 서 있다가 무심결에 손발을 휘둘러 댔고, 그 순간 내공이 불같이 차올라 엄청난 장력이 격출되었다.
그런후 해변가의 모래밭에 있던 한 마리 커다란 바다 거북의 등짝을 가볍게 내리치자 그것이 산산조각 나버려 이때부터 이를 바탕으로 완전한 장법을 창안해 냈는데 수법이 보통의 무공과는 매우 달랐다. 그 장법은 모두 내공에 의지해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었고 모두 17초로 이루어 졌다.
양과는 이 장법을 '암연소혼장'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는 강엄(江淹)의 <별부(別賦)>속의 한 구절인 '묵묵히 혼을 사르는 자만이 유일하게 구별될 따름이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암연소혼장' 17초식은 다음과 같다.
북명신공 (北冥神功)과 마찬가지로 《천룡팔부(天龍八部)》에서 등장하며, 소요파의 배신자인 성숙노괴 정춘추(星宿老怪 丁春秋)가 사용하는 무공이다.
다른 사람의 내공을 흡수한다는 것과 소요파의 무공이라는 사실로 북명신공과 같은 맥락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 소설에서도 단예의 북명신공을 화공대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었다 - 화공대법은 극독을 손바닥(掌)속에 숨기고, 그 극독을 이용하여 상대방에 내공을 빼앗거나 상대방을 중독시키는 아주 악독한 사파의 무공이라 할 수 있다.